완전한 단일체
2002-01-09 12:35:41

(고린도전서 1:10-1)

교회는 50명이 모이든, 5만 명이 모이든, 100만 명이 모이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가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형제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 모두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혈관에도 주님의 피가 흐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기념으로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떡을 떼어주실 때 "이것은 내 살이다."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주실 때 "이것은 내 피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피로 생각하고 마시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성찬에 참예할 때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지만, 사실은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찬식을 할 때 포도즙을 사용하는 교회가 많은데 제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포도주를 마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니,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이 주님의 살인지, 우리 혈관의 어느 피가 주님의 피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라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한 피, 예수님의 피가 흐릅니다.
또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우리는 같은 몸(one body), 오직 하나의 몸(only one body)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상징이나 특징이나 본질상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여당 야당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국회가 아닙니다. 정치 집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모세가 200만 명의 교인을 거느려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아 그대로 전하여 다스렸습니다. 제직회나 당회를 해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곳입니다. 교회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 의견은 이렇고, 당신 의견은 이러니 이렇게 해요."라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 교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말도 못 합니까?"라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말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될 때 아름답습니다.
우리 양곡 교회에 오시는 분마다 놀라십니다. 동양선교교회 목사님, 퀸즈 한인교회 목사님, 펠리세이드 교회 목사님 등 우리 교회에 오셨던 분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 교회처럼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쁘고, 말씀을 잘 받는 향기로운 교회는 처음 보았다고들 하셨습니다. 인사로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근거 없는 인사는 아닌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향기로운 교회가 된 것은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고맙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톡 튀어나오는 사람이 없고 모두 하나 되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편)
교회가 하나 되면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쁘고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에도 예산이 넘쳐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연고인 줄로 믿습니다. 이상하게도, 교회가 다투고 싸우면 교인들의 비즈니스가 안 됩니다. 교회가 다투고 싸우면 교인들의 사업이 잘 안 되고, 자식들이 잘 안 됩니다. 교회가 화목하면 교인들이 복을 받고, 힘있게 됩니다. 교인이 50명이든, 5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하나님께서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양곡교회는 100만 명이 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 세계를 구원하신 것처럼, 창원의 양곡교회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하나님께서 양곡교회를 쓰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1000만 명도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100만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하나 되어야 합니다. 100만 명 중에 5만 명이 따로 놀면 마귀가 거기에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힘이 없게 됩니다.
자동차 부속이 어느 책에는 2만 개, 어느 책에는 3만 개라고 되어 있던데, 2만 개가 맞습니까? 3만 개가 맞습니까? 2만 개든, 3만 개든 그 중에 하나만 떨어져도 차가 달라지 못합니다. 제너레이터의 선 하나만 떨어져 나가도 차가 섭니다. 타이어 하나만 빠져도 차가 섭니다. 2만 개, 3만 개 부속 중에 하나만 잘못되어도 차가 가지 못합니다. 연합해서 하나 되어 있을 때 힘있게 나가는 것입니다.
한 장군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일곱 아들을 불러 놓고 막대기를 하나씩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부려뜨려라."
아들들도 모두 장수들이라 우지직 우지직 부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막대기 일곱 개가 밧줄로 묶여진 것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이것을 부러뜨려라."
장남부터 일곱째 아들까지 아무리 애써도 한 아들도 부러뜨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뿔뿔이 흩어지면 세상의 밥이 된다. 그러나 너희 일곱 장수가 하나가 되면 아무도 너희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진해에 쥐들의 섬이 있습니다. 전에 해군사관학교에서 아주 큰 고양이, 왕 고양이 두 마리를 쥐 수천, 수만 마리가 있는 그 섬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그 고양이들이 없어졌습니다. 쥐들에게 잡혀 먹히고 만 것입니다. 고양이가 쥐보다 세지만 쥐 수백 수천 마리가 대어드니 상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도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망한다."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1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해서 세운 고린도 교회에 분파가 생겼습니다. 글로에(고린도의 큰 거부, 여자 실업가) 집의 종들이 에베소에 와서 말하여 바울이 알았습니다.
때로는 바울이 그 교회에 가보지 않아도 그 교회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신령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아는 것입니다. 저도 때로는 어떤 사람과 악수를 하면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압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만 아는 것입니다. 제가 손을 잡을 때마다 다 안다면 사람들이 겁이 나서 저하고 악수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 글로에 집의 종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바울 목사님, 우리 교회는 야단이에요. 바울 파, 게바 파, 아볼로 파, 그리스도 파 4개의 분파가 생겨서 아파요."
사도 바울은 심각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로 잡아야 할 문제가 많은데, 가장 우선 순위로 다루어야 하는 것은 분파를 바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왜입니까?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면 마귀가 들어와 휘저어서 교회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집회하러 갔던 교회에서 그 교회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00명, 90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교회가 싸우니 얼마 후에 400명밖에 모이지 않더랍니다.
교회에 여당 야당이 생기면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교회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에, 이 세계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그 교회를 세운 설립자, 창립자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바울의 이름으로 한 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볼로는 누구입니까?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유대인으로 대단한 인텔리이고, 학식이 풍부하고, 성경에 박식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 했습니다. 말하자면 변호사 같았습니다. 바울은 글은 잘 써도 말이 서툴렀는데, 아볼로는 말을 잘 했습니다. 참, 제 딸 결혼식 때 주례하시는 목사님이 제 사위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시면서 감동을 받으시던데, 제가 들어봐도 문장력이 있었습니다. 제 딸이 그 편지 때문에 넘어간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도 말을 잘 하여 말씀을 잘 가르치는 아볼로에게 기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말에 은사가 있어서 교인들의 믿음을 도와 주었지만, 큰 교회를 세우거나 삼천 명, 오천 명을 구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그에게서는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떠나간 후에 고린도 교회에서 한동안 목회를 한 아볼로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었던 것입니다.
게바는 누구입니까? 베드로의 아람 말입니다. 교회사를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성경 안에서나 성경 밖에서나 베드로가 고린도를 지나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 파가 생겼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제자 중에 으뜸인 수제자입니다. 바울 후에 고린도에 와서 교인들을 가르친 목회자가 베드로의 제자였거나, 아니면 고린도의 힘있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야! 베드로가 참 사도야. 베드로는 예수님께 3년 동안이나 직접 배운 예수님의 참 제자야. 바울이 어디 예수님의 제자였나?"하면서 사람들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도 한 무리가 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에게도, 아볼로에게도, 게바에게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는 뭐야? 그래, 우리는 그리스도 파다."해서 네 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마귀가 스테이크처럼 한 쪽씩 잘라서 먹으면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귀의 밥이 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분당이 생기면 마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를 졌냐?"라고 한 것입니다. 뒤의 말을 줄였지만, 그 뒤의 말은 이런 말입니다.
"아볼로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냐? 게바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를 졌냐?"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그들을 위해 피를 흘린 적이 없습니다. 만일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 해도 그 피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인 예수님의 피만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만 깨끗한 보배 피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의 피도 죄인의 피고, 게바의 피도 죄인의 피고, 아볼로의 피도 죄인의 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의인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할렐루야!
바울, 아볼로, 게바가 피 흘려 죽어 봐도 효과가 없지만, 죽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가 있느냐고 바울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주 무섭게 책망을 했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다 주님의 종들이고 하인들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주인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여러분, 저 지용수 목사도 70세가 되면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70세가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 기다리지 마십시오. 혹 제가 총회장이 되면 70세를 연장하여 80세로 법을 바꿀지도 모르니 제가 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겹도록 이 강단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장례식도 제가 다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도 언젠가는 양곡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이 목회하고 지나가고, 아볼로가 목회하고 지나가고… 그런 것처럼 제가 양곡교회를 떠나간 다음에 박용수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를 하고, 또 그 다음에 이용수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를 해도 나는 이용수 파, 나는 박용수 파, 나는 지용수 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변화산에 있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나중에는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교회에 영원히 남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목사도 사라지고, 장로도 사라지게 되니, 절대로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만일 제가 우리 교회를 떠나창원에서 가까운 장유에 가서 교회를 개척한다 해도 저를 따라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양곡교회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양곡교회의 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양곡교회 지체다.'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바뀌어도 그 교회에서 충성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분당이 생긴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해결책을 줍니다.
"형제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명하고 권한다. 다 같은 말을 하라."
따라 합시다.
"같은 말을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말을 쓰시지만 마귀도 사람의 말을 씁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성령에 의해서(by the Holy Spirit), 하나님의 의해서(by God) 말을 해야 같은 말, 하나 되는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잘못하면 교회가 시험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장로님 선거를 하는데 당회에서 몇 분을 추천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기 이웃집의 아주 훌륭한 집사님이 추천되지 않은 것을 보고 그 집사님께 전화를 했다고 합시다.
"아이고, ○○○ 집사님, 우리 당회에서 실수했다 그지예? 오늘 추천된 분들은 별 인물 아니고 집사님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신데, 집사님 같은 귀한 분을 장로로 추천하지 않고, 당회에서 실수했다 그지예?"
그것은 그분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그분에게 섭섭 마귀가 들게 하는 말입니다. 그분이 '아, 내가 혹 장로로 추천되나 했는데 추천되지 않은 것을 보니, 나는 아직 부족한 모양이구나.'하고 있는데, "집사님, 이럴 수 있어요? 이건 불공평이에요."하는 말을 들으면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맞아….'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집사님, 서운하시겠어요."하는 전화가 옵니다. 그런 전화를 한 다섯 번만 받으면 시험들게 됩니다.
'맞아, 당회에서 잘못한 거야.'
말조심하십시오. 정말 말조심하십시오.
어떤 분이 "성공 비결을 얻을 사람은 다 오시오."라고 외쳐서 많은 사람을 시장에 모아 놓고 돈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려면 말조심해! 말조심해!"하고는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말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당회에서 장로를 추천할 때는 기도를 많이 한 후에 최소한 30명 이상 전도한 사람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존경을 받고 마을에서도 존경을 받는 귀한 인물, 까다롭지 않고 긍정적인 분을 고민 고민한 뒤에 추천합니다. 그런데 당회에서 실수했다는 그런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말은 상대방을 죽이는 말이 됩니다.
은쟁반에 금사과 같은 빛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하면 상대방이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분이 권사님이 되실 만한 분인데 권사님이 되지 않았다 해도 내 말이 그분에게 은혜가 되지 않으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침묵이 낫습니다. 여러분의 입을 절대로 마귀에게 맡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하는 말에 고라가 늘 반대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는데, 모세의 사촌형인 고라는 자기 동생이 왕 노릇하는 것이 싫어서 "못 가! 못 가!"하다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여러분, 어디서나 말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떨어지면 상대방이 어떻게 되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고, 교회는 어떻게 되나를 생각해서 조심하여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같은 마음, 같은 마음'
빌립보서 2장 2절에 같은 마음, 한 마음을 품으라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종처럼 사람을 섬기는 그런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게바 파, 아볼로 파, 바울 파는 게바가 만들고, 아볼로가 만들고, 바울이 만들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틀림없이 팽 장로님, 노 장로님, 김 장로님 같은 우두머리가 있어 가지고 그들이 사람을 모았을 것입니다. 야당 총재가 있듯이, 팀장이 있듯이, 그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고라를 팀장으로 해서 250명의 장로가 모였듯이, 아볼로 파의 팀장, 베드로 파의 팀장, 사도 바울 파의 팀장, 그리스도 파의 팀장을 중심으로 서로 교회의 주도권을 잡으려 무리가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높고자 하면 낮아지고 낮고자 하면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할렐루야!
베드로전서 5장 6절에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교회에 큰 예방 주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화목하고 하나 되어 있는 것을 마귀가 얼마나 배 아파하겠습니까? 그래서 마귀에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예방 주사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제게 인사하러 온 신혼 부부에게도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당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둘째아들이 그 귀한 재산을 창기에게 팔아먹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너는 죽었다가 산 아들이요, 잃었다가 얻은 아들이다."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아라. 잔치를 벌여라. 새 옷을 갖고 오너라. 새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를 끼워라. 내 아들을 찾았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자식이 살아 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들에서 돌아온 큰아들은 섭섭해하며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는 양 새끼 한 마리도 잡아 주지 않더니 재산을 창기와 함께 다 팔아먹은 동생놈이 오니 잔치까지 벌여 주네."하며 집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집이 하나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큰아들이 아버지 입장으로 돌아가야 됩니까? 맞습니까? 아버지가 큰아들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작은아들을 쫓아내야 되겠습니까? 큰아들이 아버지 입장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집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입장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담임 목사인 제 입장이 되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 입장이 되면 안 됩니다. 장로님 입장이 되면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장로님이 몇 분이나 계시는데, 그러면 팽 파, 노 파, 김 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을 때 담임 목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이 이 일을 왜 이렇게 하셨겠나?'
전에도 제가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오래 전 성탄절에 넥타이 세 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제게 선물을 주신 분들은 그 다음 주일에 제 넥타이만 보지 않겠습니까? 제가 고민하다가 새 가족에게 받은 넥타이를 메고 갔습니다. 새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날 그 새 가족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그러나 헌 가족들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목사가이 어떻게 모든 교인들에게 다 맞출 수 있습니까? 교인들이 목사에게 맞추어야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큰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로서는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뚝 떼어 가지고 가서 술과 방탕한 생활로 그 재산을 다 쓰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온 놈이니 나쁜 놈입니다. 나쁜 동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님의 입장입니다.
아버지의 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살아 왔으니 기쁘고 좋단 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입장이 되어야,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야 집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세워 주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파송하신 저의 입장으로 들어서면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늘 하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마음, 같은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뜻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뜻은 하나입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뿐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에 말씀하십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교회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주님께서 높아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주님의 뜻만 따라야 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뜻을 일으키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 2:13)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뜻을 일으키시고 행하게 하시니, 그러므로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고 성령님께서 뜻을 일으켜 주시는데, 성령님의 그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생각하면 교회에 분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부잣집의 아들이 울타리 안에 있는 연못에 애완용 거북이를 길렀습니다. 거북이랑 같이 놀고, 뽀뽀도 하며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못에 가 보니, 거북이가 죽어서 둥둥 떠 있었습니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죽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들은 "아빠, 내 거북이가 죽었어. 내 거북이가 죽었어."하며 슬피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연못으로 나와서 확인해 보니 거북이가 죽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둥둥 떠 있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우리가 거북이를 위해서 아름다운 묘를 만들고 묘비도 세워주자. 그리고 매일 꽃을 꺾어서 거북이를 찾아가자."
"야! 좋겠다."
사람들을 시켜서 거북이의 묘를 파고 묘비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꽃도 준비해 놓고 거북이 시체를 가지러 갔더니 거북이가 살아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거북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좋아해야 합니까? 싫어해야 합니까? 거북이가 살아 있었으니 아들이 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는데 시무룩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왜?"
"우리 거북이 죽이자."
거북이를 죽여서 준비해 놓은 대로, 자기가 계획해 놓은 대로 장례식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사장님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회사가 아닙니다. 회사는 사장이 결정해서 일을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병원 원장님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병원의 일은 여러분이 결정하겠지만, 교회는 병원이 아닙니다. 어느 공동체의 부서장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부서의 일은 여러분이 결정하겠지만 교회는 여러분의 부서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교회에서는 여러분의 뜻을 다 포기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오직 주님의 뜻만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낮아지고 더 밑바닥에 내려가도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종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로마서 14:7-8)
내 마음에 맞고 맞지 않고를 생각하면 내가 주인입니다. "예, 그럼요. 예."하는 것이 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저는 워싱턴 대통령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매일 저희 아들이 워싱턴 같은 대통령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조금 더 위대하지만 링컨은 중간에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희 아들이 워싱턴 같은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의 모든 국민이 왕처럼 모시려 했는데도 스스로 기도하고 물러난 위대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스 대통령 때 프랑스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에는 프랑스의 뛰어난 군대를 막을 장군이 없었습니다. 지휘자가 중합니다. 교회나 회사나 군대나 그 지도자, 그 장이 중합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뛰어난 군대를 이길 사람은 백전의 용장인 워싱턴 대통령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스 대통령이 워싱턴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사령관이 되셔서 전쟁을 좀 막아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때 사령관은 중장이었습니다. 대통령을 했던 분에게 대장이 아닌 중장 계급장을 달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워싱턴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그래야죠. 미국을 위해서라면 나가서 싸워야지요."
워싱턴 대통령은 기꺼이 중장 계급장을 달고 사령관이 되어 전장에 나가 싸워 이겼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더욱더 "워싱턴! 워싱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스 대통령이 사령관이 되어 싸워 달라고 했을 때 워싱턴 대통령이 "나를 뭘로 보고 하는 소리야?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라고 했으면, 미국민들이 "워싱턴도 별 사람 아니네."하며 존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낮아져서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에 미국민들이 지금도 워싱턴을 그렇게 존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우리는 섬기고 주님만 높아지는 길이 교회가 나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할 때 성령님께서 이런 교훈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마귀는 아니지만 주님께 십자가를 지지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마귀는 아니지만, 그때 마귀가 베드로를 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아니가 베드로를 쓰는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그들은 교인들입니다. 마귀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을 짓게 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따라 합시다.
"분쟁이 있는 곳에 마귀가 있다."
소곤소곤하고, 섭섭해하는 곳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단호하게 마귀 분위기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4장 7절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는 말씀이 영어 성경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마귀가 도망가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기 전에 녹음기처럼 "내가 예수 이름과 권세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 마귀, 병마, 사탄은 물러갈지어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괜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명할 때 마귀가 기분 나빠하며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자꾸 물리칠 때, 마귀가 '아이구, 기분 나빠. 여기는 내 일터가 아니네.'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도 사탄을 매일 묶으면 욥처럼 시험 당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마귀를 매일 묶으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 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귀신아, 떠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라!"
그러면 여러분 집에도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면 마귀는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이 들어서 은혜가 되는 말만 하고, 마음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뜻도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내세우고, 그리고 사탄을 늘 묶으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교회가 하나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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