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들어오는 사람 2002-01-10 23:19:54 성경말씀: 마가복음 12;41-43 성경은 하나님 눈에 들어 온 사람들 기록부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보신 특별한 사람들 이야기가 성경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감독이 되신 김 해종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과 둘이서 미국 목회자 쎄미나 강사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김 감독님이 강의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독님이 관리하는 교회가 800 교회인 데 연말 부담금이 다 걷히면 총무가 보고서를 가지고 오는 데 모두 100%..100%....100%라고 기록되어 있는 데 101%라고 적힌 교회 하나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5만원이면 200만원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 이름과 목회자 이름을 기억하여 두었다가 칭찬하였다는 것입니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목사님들 성막 쎄미나를 일년에 18차례 정도합니다. 눈에 딱 들어오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첫 시간 강대상에 딱 서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이는 유난히 이마가 넓어서 번쩍이는 대머리 목사입니다. 또 수염을 유난히 길게 기르고 앉아 있는 이가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머리가 완전히 백발이라든가 여자인 경우는 유난히 화장을 짙게 하고 눈에 뜨이게 하고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 옵니다. 조금 지나면 껌씹는 사람, 조는 사람, 부채질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 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런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다가 질문을 날카롭게 자주 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자주 머믈게 됩니다. 헌금을 매시간 정성껏 드리는 사람도 눈에 들어 옵니다. 기도할 때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진실하게 기도하는 이도 눈에 들어 옵니다. 여하간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는 여인의 뜰이 있었습니다.그 뜰에는 헌금함이 13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헌금통에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 데> 무리가 헌금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중에는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헌금 액수가 많았습니다. 헌금 통은 작았습니다. 구멍도 조그만 것이었습니다.당시는 헌금이 모두 동전이었기에 한꺼 번에 넣지 못 하고 하나 하나 넣어야 하니까 오랫동안 헌금을 드리는 이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무리 가운데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온 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 과부는 단지 두 렙돈을 헌금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말하면 약 600원 정도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눈에 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가요?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유심히 보실까요? 예수님의 안목을 알아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는 데 어떤 모습이었기에 예수님의 눈에 들어 왔을까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과 함께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였던 류 태영박사가 지난번에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새마을 운동 본부를 만들면서 류장로님에게 조직을 맡겼습니다. 박 대통령에 늘 보고드리면서 글씨를 잘 써야 합니다. 그래서 각 부에서 청와대로 올라온 보고서를 일일이 들추어 보던 중 정말 눈에 들어오는 서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정성껏 작성하였는 데 산더미같은 보고서중에 가장 눈에 들어 왔습니다.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을 찾아서 "청와대 근무로 특명을 낼 터이니 내일부터 청와대로 들어오시요"라고 전화 하였더니 그 분이 대답하였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어떤 이가 눈에 들어 올까요? 하나님의 눈에 들어오는 이는 어떤 이일까요? 1.희생이 달랐습니다. 남다르게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눈에 들어 옵니다. 수 많은 무리가운데 그 과부가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게 된 정확한 동기가 있습니다. 희생때문입니다. 그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많이 바친 액수를 보시지 않고 나머지 액수를 보시는 분이셨습니다.전부를 바쳤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바쳤지만 나머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두 렙돈을 바쳤지만 나머지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는 동전 모으기를 하였습니다.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사랑 선교회로 세어 보지 않고 보냈습니다. 필림통 223개가 수집되었습니다. 693,500원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다 필림통이었는 데 유독 큰 저금통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몇 달 동안 모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 통을 보셨을 것입니다. 남다른 희생이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포드 목사님은 엄청난 교회 건축을 3년만에 마치고 나서 온 교인들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담임목사인 포드는 그 동안 성전 건축에 노고가 많은 이들을 위하여 한 분 한 분 놓고 골방에 축복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헌금을 많이 한 이들 명단이 들어 왔습니다. 우체국장 헨리,지서장 죤슨,광산업 사장 오웬, 국민학교 교장 맥밀란....그는 이들을 축복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조용한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집을 지을 때 형식적으로 일부분을 내놓은 사람들의 이름만 놓고 기도하고 있구나! 그러나 난 너와 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주님!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너희들이 거지라고 부르는 짐이다. 너희들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짐 은 성전을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구걸하여 매일 몇 장씩 벽돌을 사다 놓았다. 이 성전을 짓는 데 가장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짐이다" 예수님은 희생하는 사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희생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2.당당함이 달랐습니다. 이 과부가 예수님 눈에 들어 온 이유는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바치기에 당당하게 드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많이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드렸습니다. 최선을 드리는 것이었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렸습니다. 봉투에 넣어서 드렸다면 예수님은 두 렙돈인지 보지 못 하셨을 것입니다. 챙피하고 미안하다고 하여 몰래 드렸다면 예수님은 알지 못 하셨을 것입니다. 비록 적게 드린다고 할 지라도 자기의 최선이었기에 당당하게 드렸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두 렙돈밖에 없습니다. 다 드립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내 심정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부자들은 용돈을 드리지만 나는 생활비입니다. 부자들은 돈이 남아 있지만 나는 남아 있지 않는 최선임을 아실 것입니다. 나는 헌금을 드리고 나서 돈을 벌어야 저녁을 먹을 수 있습니다.작습니다. 그러나 받아 주옵소서!" 과부는 당당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 일본과 축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일본에 계속 축구를 지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은 이겨야 한다고 결의가 대단하였습니다. 1;0으로 이겼습니다. 그렇게 기분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 석주가 왼 발로 찬 것이 꼴대를 철렁하게 만들었습니다. 황금의 한 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들어 보니 하 석주 선수는 국제 경기에서 왼 발 슛을 헛발질하여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지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왼발 슛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10만번 왼발 슛을 연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고 꼭 노력의 대가를 받게 하시는 분이심을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옛날의 조소가 당당함을 바뀌었습니다. 온 국민이 대견스러워 하였습니다. 이제는 당당하여졌습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조금 드려도 믿음으로 당당한 이들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자 말츠가 조사한 통계를 보면 98%의 사람들이 열등감에 빠져 산다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잃지 않는 개성있는 과부의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 돋보인 것이었습니다. 애공과 공자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애공-세상에 굉장한 건방증 환자가 있다더군요 공자-어떤 사람인가요? 애공-이삿짐을 싣고 가면서 아내를 잊고 간 녀석이 있답니다. 공자-아니 그보다 더 심한 자가 있는 데요 애공-그보다 더 심한 이가 있다구요? 공자-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고 다닙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분명한 사람을 주님은 정확하게 보시는 분임을 본문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당당하게 살아야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됩니다. 3.믿음이 달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과부가 예수님 눈에 들어 온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벌어야 하는 과부입니다. 사도 되고 안 사도 되는 옷값을 넣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과일값을 넣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꼭 필요한 생활비를 드린 것입니다. 일부를 남기고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부를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헌금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이시돌 농장이라고 있습니다. 그 농장에 방문하여 들은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장에 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저녁이 되면 언제나 이시돌이 남보다 3배 일을 많이 하여 놓았습니다.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늘 이시돌은 3배였습니다. 감자를 캐도 남보다 3배나 많이 캤습니다.모를 심어도 3배나 많이 심었습니다. 당연히 주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눈여겨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인은 이시돌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양 쪽에서 이시돌을 도와 주는 이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고용한 일군이 아니었습니다. 두 명이 도와주니까 세 배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다가가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시돌은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시며 천사를 파송하여 주신 것같습니다" 꼭 믿음대로 됩니다. 과부가 생활비 전체를 구차한 중에서도 바친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 한 경직 목사님 장례예배가 있었습니다. 그 분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성전 건축을 하여야 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렇게 광고하였습니다. "내일 성전 기공예배를 드립니다. 재산의 반을 성전 건축에 바칠 믿음이 있는 사람만 기공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이튿날 보니 39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재산의 반을 성전 건축에 드렸습니다. 30년 지나고 보니 39명이 모두 한국 500대 재벌에 들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믿음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옵니다. 우리 교회 등록한 지 이제 겨우 두 주 정도된 이 상형, 한 미자 집사 부부가 있습니다. 단독으로 교회 하나를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하려고 기도하고 있는 분입니다. 며칠전 아들 승민이 돌을 맞았습니다. 돌잔치를 하려고 하는 데 뉴질란드에 아는 교회가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돌잔치를 포기하고 그 돈을 그 곳으로 보냈습니다. 사모님이 너무 감격하여 울면서 감사의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주님의 눈에 돋보이는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보시지 않고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한 가지 이야기 더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환자가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가서 기도하기 전에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께 당신을 낳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 면 당신은 내일 아침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그 환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나는 이 침대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여도 소용없겠군요. 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 그 분은 믿음이 없음을 회개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믿음이 없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나 기도받기 전에 사장님에게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침대위에 있는 전화를 들어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 내일 출근할 것입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의 전화를 듣고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그 분은 고침받고 이튿날 출 근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예수님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1.희생이 남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 옵니다. 2.당당함이 남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 옵니다. 3.믿음이 남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