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좇아 행하라
2002-02-12 14:31:31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미국의 존 필립스라는 사람은 지난 200년 동안 신앙생활을 잘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을 무작위로 골라 통계를 내서 그중 대표적인 예를 발표했다.


그 발표에 의하면 교회를 망치고 주의 종을 쫓아내고 자신도 교회를 떠났던 일본계 미국인인 마스시꼬의 가문에서는 거지가 306명, 강도가 63명, 살인자가 7명, 매음자가 26명, 저능아가 203명, 하급관리가 73명 나왔으며 그 외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영적대각성운동의 지도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에서는 목사가 203명, 대학총장이 13명, 교수가 108명, 부통령이 1명, 전권대사가 1명, 국회의원이 21명, 기자가 81명이나 나왔다.

말 그대로 두 가문은 심은 대로 거두었다. 마스시꼬의 가족은 나쁜 열매를 맺었고 에드워즈 가족은 좋은 열매를 맺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씨앗을 뿌리며 사는가에 따라 맺는 열매가 달라진다. 내 욕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육신'은 치열한 전쟁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죄악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 둘이 서로 싸움을 벌인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신앙생활은 실로 이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끼어서 매일매일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 곧 내 육신이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의 원어는 사륵스, 영어로는 flesh, 우리말은 육, 육신, 육체로 번역되어 있어 우리의 신체적인 몸으로만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죄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전 인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면 맞은 사람은 나를 비난하지 내 주먹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마음으로 죄를 지었든 몸으로 죄를 지었든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신체적인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서 죄의 영향을 받는 나의 전인격, 즉 죄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나 자체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이 육체로 짓는 모든 죄악이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로보트가 아닌 이상 외부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마음으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밖으로 표현하게 되어 있다.

육체의 소욕을 이루느냐 성령의 소욕을 이루느냐는 일차적으로 내 마음의 문제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그러므로 구원 받은 백성들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두어야 할 분야는 마음의 청결이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마음에 가득한 것이 몸을 통해 행동으로 나올 때 짓는 죄가 바로 육체가 저지르는 죄악들이다. 갈 5:16-25에 기록된 대표적인 죄악들을 그룹별로 나누어 보면,

(1) 첫째, 성문란과 관계된, 더러운 것과 음행의 죄.

(2) 우상숭배와 술수 즉 점치고 마술하는 죄,

(3) 이웃끼리, 형제끼리 당 짓고 원수 맺는 죄,

(4) 술취하고 방탕한 죄 등이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갈 5:21)라고 기록한다. 이런 죄를 어쩌다가 연약하여 한 두 번 짓는 것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짓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변질된 신앙. 그러나 마음을 다루고 그로 인해 나타난 육체의 행동을 다루는 기독교의 구원이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된 것을 본다. 신앙생활의 핵심이 마음의 문제이고 겉으로 나타난 육체의 죄악을 다루는 문제인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 것이다.



첫째 전통주의자들이다. 바른 고백 바른 전통만 있으면 구원 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든 장로교인이든 감리교인이든 그것에 따라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부패한 마음이 변화를 받아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가에 따라 구원을 받았는지의 여부가 판가름 난다. 그 잘난 전통 내세우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둘째 율법주의자들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전통주의자들과 비슷하다. 이들은 외적인 규정이나 율법을 준수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613개의 자질구레한 규정을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쳤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율법을 준수했는 지는 복음서 도처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말씀을 열심히 상고했고, 열심히 기도했으며, 가난한 사람에게 열심히 구제했고, 십일조를 철저하게 했으며, 전도도 열심히 하고, 안식일을 열심히 지켰다.

이들은 외적으로 필요한 것은 열심히 했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마음의 깨끗함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셨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

오늘날에도 이런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생활 조금 하면 겉으로는 정말 잘 한다. 교회 행정, 예배 인도, 기도, 전도 등 너무나 잘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속은 엉망이다. 걸핏하면 당을 지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자기보다 조금만 나은 사람이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하여 끌어내린다. 신앙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도대체 저 사람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런 일을 일삼는 사람은 결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불건전한 은사주의자들이다. 큰 능력은 행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큰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낫게 하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마 7:23)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비록 큰 능력은 행했지만 삶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외적으로 보기에는 거창한 일을 한 것 같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근거는 얼마나 많은 능력을 행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선한 열매를 맺었는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성령을 좇아 행하라. 우리가 삶 속에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 곧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죄로 물든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이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성령의 열매. 육신의 욕심을 행하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맺어지는 아름다운 열매가 곧 성령의 열매이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단수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모든 열매를 맺어야 하다는 말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절).

어떤 사람은 이 9가지를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3개인 사랑과 희락과 평강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산다.

두 번째 3개인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이웃에 대해 오래 참고, 이웃의 잘못과 불행을 불쌍히 여기며,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이웃을 향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한다.

세 번째 3개인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나의 내적 심성을 말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시험과 환란이 와도 예수님께 충성(믿음)을 다하며, 성격이 온유하고, 매사에 절제하는 생활을 한다.

이런 열매를 맺는 사람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이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 .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4, 11).

물론 이 열매는 어느 한 순간에 완전히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열매는 잘 맺어졌는데 다른 열매는 잘 맺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죄를 회개하여 성령을 받고 새 마음을 받을 때 조금씩 조금씩 맺어간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이다. 이럴 때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이겨 성령의 열매를 맺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구요한 목사. 글로리아넷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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