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자녀들
2002-03-11 11:19:57

고린도전서 4:14-15 // 2002. 3. 3.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야,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신다면 무엇을 아뢰겠습니까?
사람은 얼굴이 다르듯이, 가치관과 세계관도 다 다릅니다. 또 입장과 처지와 상황이 다 다르기에 원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큰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 외에 다른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대학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음식이 없어 며칠 간 굶주린 사람에게는 우선 밥 한 그릇이 중합니다. 배고파 본 사람은 밥이 얼마나 귀한가를 압니다. 며칠 전,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저의 작은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작은어머니께서 TV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TV에서 한 가정을 소개하면서 “이 가정은 너무 가난하여 어렵게 사니 우리가 도와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어려운 가정을 도와 줍시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 하얀 쌀밥이 한 그릇씩 담겨 있더랍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예전에는 큰 부잣집에서나 하얀 쌀밥을 먹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이나 죽을 먹었고 굶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얀 쌀밥을 한 그릇씩 담아서 배 부르게 먹는 사람을 도와 주자고 하니, 저의 작은어머니께서는 이해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쌀밥을 실컷 먹는 부자를 왜 도와 주자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난은 상대적이지만, 배 고플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쌀밥을 실컷 먹는 사람은 도와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배 고픈 사람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소중합니다.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부산의 한 조폭 두목은 평생 감옥에서 썩을 것이 싫어서 에이즈에 감염된 부하를 끌어들인 후 자기 몸과 부하의 몸에 상처를 내고 접촉시켜 자기도 에이즈 환자가 되었답니다. 에이즈 환자가 되면 밖으로 내보내 줄까봐 서였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중한 것은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고등고시나 대학교 입학 시험을 치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합격입니다.
마음에 끌리는 이성을 만나 프로포즈를 해도 상대방에게 반응을 얻지 못한 사람의 소망은 오직 그 사람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 다릅니다.
여러분에게도 나름대로 중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 모든 입장, 모든 처지를 초월해서 중한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가정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영국 격언에 ‘결혼한 가정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일광을, 태양 빛을 빼앗긴 지구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자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가정의 단란함이 최고로 빛나는 기쁨이요, 자녀를 보는 즐거움이 가장 성스러운 행복이다.”
다른 것이 다 있어도 자녀가 없으면 부족한 가정이 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장입니다. 그는 건강하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없으니 늘 공허했나 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아,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약속이 ‘자식이 없는 너에게 자식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때 아브라함의 귀가 번쩍 열렸을 것입니다. 그는 안정된 생활을 다 버리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광야로 가서 자식을 얻어 살게 됩니다.
이삭도 꽃다운 여인 리브가와 결혼해서 19년간 부부 생활을 했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내일 모레가 환갑인데 자녀가 없으니 이삭은 허전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불임 여자였습니다. 당시는 의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리브가가 불임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셔서 성경에 기록하기를 ‘불임 여자(she was barren)'라고 하셨습니다. 리브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태를 치료하셔서 잉태케 하시므로 야곱과 에서 두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라헬은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그의 애인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 29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년간 일을 해도 라헬을 아내로 얻을 수 있다는 소망 때문에 7년을 며칠처럼 기쁘게 일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야곱이 라헬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하니, 남편의 사랑이 있고 건강이 있고 자유가 있고 밥이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있어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0장 1절을 보면 “나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라. 아니면 내가 죽겠노라.”하며 야곱에게 마구 앙탈을 부립니다. 그러자 2절에 보면 야곱이 “이 미련한 여자야, 내가 하나님이냐?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내가 어떻게 아기를 낳게 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라헬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보시니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기가 요셉입니다. 그 후에 또 베냐민을 낳습니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자를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니 그 여자에게 아기가 생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자녀가 이렇게 귀합니다. 자녀를 두신 분들은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해서 세월이 지났는데도 자녀가 없는 분은 자녀를 입양해서 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를, 라헬의 태를 돌아보셨듯이 여러분의 태를 돌아보셔서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므로 자녀를 생산하는 축복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면 집이 달라집니다. 가게가 달라집니다. 자녀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만 돌아보셔도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진주에서 밤 농사를 짓는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해마다 밤농사를 지어 일본으로 수출을 하는데, 한 해는 일본에 밤 풍년이 들어 일본에서 밤을 사러 온 사람이 턱없이 헐값에 사려 했습니다. 그 값에 팔지 않으면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값에 팔면 장로님은 낭패를 당합니다. 한 해 농사를 접게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장로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한 해 동안 지은 밤농사를 이렇게 접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일본에 태풍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태풍에 일본의 밤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일본 사람이 다음 날 장로님에게 다시 와서 제발 밤을 팔아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전날 부른 값보다 3억 원을 더 받았습니다. 하루 만에 3억 원을 더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한구석에 있는 양곡교회가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돌보아 주시면 세계가 깜짝 놀랄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셨던 목사님께서 설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큰 숙제를 안고 돌아갑니다. 양곡교회는 어쩌면 이렇게 순순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고, 향기롭고, 말씀을 잘 받는지, 어찌 이런 교회가 이루어졌는지….”
우리 양곡교회는 밖에서 보아도 좋지만, 안에 들어와서 보니 더 좋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니 이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양곡교회를 계속 돌보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을 돌보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기가 없었던 한나를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니 한나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니 한나가 하나님을 얼마나 찬양하는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2장 1절에서 10절을 보면 한나의 찬양이 나와 있습니다. 한나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작년 어린이날인 것 같습니다. 저랑 같이 앉아서 차를 마시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이래 뵈도 저는 기업의 총수예요. 세 개의 기업을 거느린 총수니 함부로 보지 마세요.”
“무슨 말이오?”
“자식은 기업이라고 하셨는데, 성이, 경이, 성찬이 자식이 셋이니 세 기업을 거느린 총수잖아요.”
그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식이 얼마나 귀합니까?
제 아내는 아이들이 집에 오면 달라집니다. 얼굴에 핏기가 돌고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부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아이들이 오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두부찌개, 이것 저것 다 합니다. 자식이 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그런데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내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늘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왜입니까? 물론 예수님, 하나님 때문이지만 그에게 자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녀입니까?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모든 교인들을 자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my dear children, my be loved children)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라는 바울의 말은 풍자적인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이 몇 백만 명이 되었겠습니까? 몇 십만 명이 되었겠습니까? 그 교회에 만 명의 교사가 있었겠습니까마는, 바울이 ‘너희에게 만 명의 교사는 있을지라도 아비는 하나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사는 노예 교사를 의미합니다. 당시 큰 부잣집에서는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 많은 교사를 두었습니다. 과목별로 교사를 두어서 부잣집의 아들은 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분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사는 많을지라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은 자는 바울 한 사람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을 자신의 믿음의 아들딸로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 육신의 자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녀와 영원히 떨어져 살게 됩니다. 나는 천국에 가고 그는 지옥에 가니 그가 자식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서 믿음으로 낳은 자녀, 영적인 자녀는 천국에도 같이 가니 참 자녀인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할 테니,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긴장을 하시는 것 같은데,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대답하지 말고 마음으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까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여러분의 믿음의 자녀는 몇 명입니까?”
여러분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어떤 분은 많을 것이고, 어떤 분은 몇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믿음의 자녀가 한 사람도 없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혼하여 열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한 자녀가 한 사람도 없다면 아주 심각한 사람입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간음하고 살인하고 도적질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악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악 중에서 그들이 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다 돌이켜 와서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3장 17절, 18절에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일깨워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하십니다. 만일 그들을 일깨우지 않아서 그들이 악한 가운데서 죽으면 그 피 값을 우리에게서 찾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따라 합시다.
“복음을 전하면 내게 복이 오고 상대방이 살고, 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죽고 내게 화가 온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면 나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고 사랑을 받고 상을 받고, 상대방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가수 폭포가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큰 폭포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 폭포의 길이가 4.2km입니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굉장합니다. 폭포 위에 다리가 놓여 있는데, 거기에서 보면 악어들이 보입니다. 큰 악어들이 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고 낮잠을 자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은 물결이 얼마나 거세고 무서운지, 그곳을 ‘악마의 목구멍’이라 일컫습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이 떨어져 죽는답니다. 천천히 내려오던 물이 갑자기 치솟아 오르면서 물결을 휘젓는데, 사람들은 물이 천천히 흐르니 폭포가 먼 줄 알고 계속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놀다가 떨어지곤 하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악마의 목구멍에 들어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멸망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순간 무서운 지옥의 폭포로 떨어져 불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몇 년 전,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한 아파트에 불이 붙어 삽시간에 아파트 전체가 불덩어리에 휩싸였습니다. 소방관들이 재빠르게 행동해서 아파트 주민들은 다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뛰어나온 한 부인이 “저 2층 아파트 침대에 내 아기가 있어요.”하며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 아파트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소방관들이 “들어가면 죽습니다.”하고 부인을 붙잡았습니다. 부인이 “내 아기! 내 아기!”하며 울부짖으니, 희생적이고 용감한 한 소방관이 “내가 사닥다리를 타고 들어갈 테니 호수로 내게 물을 뿌려 주시오.”하면서 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밖에 있던 소방관들이 계속 물을 뿌려 주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은 불이 치솟고 연기로 가득찬 캄캄한 방에서 아기를 찾아 급하게 요로 싸서 안고 나왔습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기뻐했습니다.
아기 엄마가 기뻐하며 아기를 받아들고 요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아기가 아니라 인형이었습니다. 캄캄한 곳에서 급하게 찾아 요에 싸서 안고 나오다 보니 인형을 갖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기가 잿더미가 된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나라에도 많습니다. 여러분의 친척, 친구 중에도 많습니다.
“목사님, 내 친구는 성공자예요.”
“내 친구는 스타가 되었어요.”
“내 친구는 병원 원장이에요.”
“내 친구는 대법원 부장이에요. 괜찮아요.”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성공자라도, 대법원 부장이라도 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한 교수님이 이 시대의 최고 스타 100명을 조사했습니다. 헐리우드 배우들, 최고의 가수들, 최고의 운동 선수들, 최고의 예술인들을 비롯한 성공자 100명을 조사한 결과 성공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4배로 더 받는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성공자들은 대개 사생활이 거의 없고, 문만 나서면 스트레스를 받고, 삶이 목마르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수명이 58세랍니다. 보통 사람은 대부분 72세까지 사는데, 스타의 자리를 차지한 인기인들은 대개 58세 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스타가 되고 성공하면 그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스타도, 성공자도, 별 같은 사람도, 아무리 높이 올라간 사람도 예수님 없으면 가장 비참한 자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윤치호 선생은 미국 유학 중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소망이요 천국의 사닥다리 되시는 예수님’을 알고 감격해서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올 때 그 당시 큰돈인 200불을 갖고 미국 교회에 갔습니다.
“선교 헌금으로 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선교사님을 많이 파송해 주셔서 우리 대한민국을 구원해 주세요.”
윤치호 선생의 청원을 듣고 감동을 받은 미국 교회가 선교사를 많이 보내어 우리 나라가 이만큼 복음으로 구원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
또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생명을 걸고 전도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형님, 조카, 형수님,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지 않으면 안 돼요. 이 세상은 잠깐이에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아요.”하고 전도해서 온 집안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단 한 분, 윤보선 대통령의 할아버지만 조상의 제사 때문에 믿지 않았는데, 그분의 막내딸이 금식하며 생명을 걸고 기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 집안 사람들 100%가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가 떨어지면 폭발하여 바위를 부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어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할렐루야!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다이너마이트)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던지면 그곳에서 터져 그가 구원받고 그를 잡고 있는 사탄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전도한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길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로 잡아 주려고 고린도전서를 보내고, 고린도후서를 보내고, 디모데를 보내고, 디도를 보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린도전후서뿐 아니라 길고 짧은 편지를 계속 보냈답니다.
‘이렇게 믿어라. 이렇게 섬겨라. 그것은 잘못 되었다. 그것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벗어나서위험하다. 그러면 안 된다.’라는 편지를 계속 보내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잘 자라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으면 그대로 버려 두지 않고, 먹이고 입히고 목욕시키고 공부시켜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전도한 사람을 그냥 두지 말고, 잊어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잘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한 최고의 도움은 교회에 잘 나오게 하는 것이요, 그 다음의 도움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참 신비로운 것은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정도까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지도 않았고 맹세하지도 않았고 탐심으로 은 30에 예수님을 판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회복해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가룟 유다는 망합니다.
왜입니까?
누가복음 22장 31절,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도 예수님께서 기도한 베드로는 회복했고, 기도하지 않은 유다는 망했습니다.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가 살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마귀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서 그 사람이 믿게 된 것도 감사하지만, 끝까지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사람으로 여기에 서기까지 복음을 전해 주신 선교사님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 나를 위해 애써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자다가 받는 것 같았습니다.
“야, 지금 몇 시인데 누워 있니? 오늘은 주일, 제일 큰 날인데, 지금까지 누워 있니? 빨리 일어나서 밥 먹고 교회에 가야지.”
“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없으면 못 살 줄 알던 자식이 조금 크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자기 혼자 큰 줄 아는 것입니다.
고린도, 그 방탕한 도시에 바울이 와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며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은사를 받고 영적으로 배부르니 자기들이 잘 나서 구원받은 줄 알고 “바울은 말이 시원치 않아.”하며 바울을 비방하는 말,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자녀들을 생각하면 기쁜데, 고린도 교회의 자녀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를 영적으로 길러 주신 분들께도 감사해야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은 저의 아버님 추도일입니다. 아버님께서 천당으로 이사가신 지 벌써 9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추도일이 바로 오늘, 주일이니 저는 추도 예배를 드릴 생각도 못합니다. 시장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어도 대통령이 오면 시장님의 계획은 접고 대통령의 계획대로 해야 하는 것처럼, 제게 중한 아버님의 추도일이 주일이니 주일에 삼킴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침 지난 금요일에 시간이 나서 새벽 기도를 마친 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오늘 제가 어머니께 갈 겁니다.”
“왜?”
“내일 모레가 아버님 추도일인데 주일이라 가지 못하니 오늘이라도 가야지요.”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어머니께 가지 못할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해서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기다리지 않으마.”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어머니께 갔습니다.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간다는 연락도 드리지 않고 그냥 갔는데, 어머니께서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셨습니다. 장도 다 봐 놓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준비해 놓으신 산나물에 밥을 비벼서 자반 고등어와 같이 먹으니 얼마나 맛이 있는지….
저의 어머니 댁에 와 계시던 작은어머니께서 “형님은 이상도 하시지….”하면서 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작은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가셨는데, 어머니께서 “아들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이렇게 자꾸 사네.”하시면서 산나물, 채소, 자반 고등어 등 제가 좋아하는 것을 이것 저것 자꾸 사시더랍니다.
제가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어머니께서 차려 주신 식사를 맛있게 한 후 어머니 등을 두드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만일 그저께 제가 어머니께 가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장성했다고 여러분 스스로 큰 줄 아십니까? 부모님의 은혜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내시면서 우리를 기르신 부모님을 잊으면 안 됩니다. 부모님이 지금 늙고 약하다고 뒷방 늙은이처럼 취급하면 안 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우리를 길러 주신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도록 영적으로, 믿음으로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분들,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신 분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세례 받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고 그분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늘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의를 지켜야 됩니다.
두 주 전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리산 기슭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지리산 기슭에 그 지방이 다 아는 큰 지주, 여러 머슴을 거느린 엄청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한 머슴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확신하니 얼마나 기쁜지, 주인에게 그 귀한 예수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 어른,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하며 계속 전도했습니다. 신실한 머슴이 전도를 하니 주인이 교회에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설교를 듣고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도 믿음 생활을 하고 머슴도 믿음 생활을 했는데,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머슴이 먼저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하늘 같은 주인이 교회에 가서는 “장로님, 장로님.”하며 머슴을 깎듯이 섬겼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머슴 때문에 구원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집 머슴이 바로 자기 믿음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머슴에게 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 머슴이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인은 장로님이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 장로님이 교회도 잘 지었는데, 그 교회에 자기 집 머슴이었던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목사님을 주의 종으로 잘 받들어 섬겼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큰 부자와 머슴은 대화도 잘 안 될 텐데, 그 큰 부자가 자기를 전도한 머슴을 ‘믿음의 아버지’라 여기며 높이고 공부시켜 목사님이 되게 하고, 자신은 장로님이 되어 한평생 그 목사님을 잘 섬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니 제 가슴이 찡했습니다. 자기 집 머슴이었던 목사님을 그렇게 잘 섬긴 장로님이 하늘 나라에 가면 얼마나 큰 상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르는 것도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잘 전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고 그들이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우리의 더 큰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상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유명한 명사 티베리우스 크리쿠스의 부인인 코로레리 여사는 당대 최고의 존경을 받는 귀부인이었습니다. 그 나라 왕후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의 집에 많은 귀족의 부인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분위기가 바뀌어 서로 자기들의 보석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자기 보석을 자랑하느라 야단인데, 크리쿠스 부인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을 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크리쿠스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께서도 가지고 계신 보석을 구경 시켜 주세요.”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보여 주세요.”
크리쿠스 부인은 조용히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나왔습니다.
“부인들, 제 보석은 나의 아들들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보석은 이 두 아들입니다.”
그 두 아들도 로마의 역사에 남는 호민관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천당에 가면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이들이 내가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나의 보배들입니다.’ 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아서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했다면, 나의 전도 열매가 하나도 없다면, 나는 자식이 없는 사람보다 더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설 때, 믿음의 자녀를 많이 자랑할 수 있는, 주님 앞에 보고할 자녀가 많은, 바울처럼 많은 믿음의 자녀를 두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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