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 Duplicate entry '3.147.79.68' for key 'PRIMARY'
INSERT INTO current_con VALUES('3.147.79.68', 1745927880,'none') 설교신문 0691.in/sermon66.com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2002-07-19 18:36:39

(2월24일 주일)


시편 23:1-6

어느 유명한 인사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마침 유명한 배우가 참석한지라 사람들이 그에게 멋진 솜씨를 보여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시편23편을 낭낭한 목소리로 멋지게 낭송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솜씨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목사님께 한마디 해주시기를 부탁했습니다. 목사님도 시편23편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그리 좋지 못했고 또 멋지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암송이 모두 끝났을 때에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배우는 목사님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시편23편을 알고있을 뿐인데 목사님은 그 안에 계신 목자를 알고 계시는군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라고 믿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편23편은 다윗만의 시편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시편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십니다. 아니 당신의 목자십니다.
사업에 실패한 한 젊은 사업가가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사업에 실패하고, 삶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그에게 처방을 내렸습니다. “시편 23편을 아침에 10번, 점심에 10번, 저녁에 10번 읽으시오.”이 젊은이는 그 처방대로 시편 23편을 아침에 10번, 점심에 10번, 저녁에 10번 읽었습니다. 3년쯤 지난 어느 날, 한 성공한 사업가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께서 알아보지 못하자 신사는 쪽지를 내보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3년 전에 목사님께서 이 쪽지로 처방을 내린 후, 저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성공하여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처방대로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심을 믿고 살았더니 부족함이 없게 해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나는 늘 건강하고,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나는 부도를 안 당하고, 자동차 사고를 안 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도 여전히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야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나는 병중에서도, 혼란 속에서도, 사고를 만나고 인생의 풍파 가운데서도 전혀 부족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왜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필요함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은 굶주리고 집 없는 아이들을 모아 커다란 캠프 안에서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며 보살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밤이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심리학자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이들이 침대 속에 들어간 후에 각자가 손에 쥐고 있을 빵을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손에 들고 있도록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그마한 빵 한 조각이 놀라운 효과를 가져 왔습니다. 아이들은 내일 먹을 것이 있다는 안도감에서 평안히 잠들었던 것입니다.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해야만 했던 이 아이들이 내일 염려를 해결 받았을 때 비로소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전쟁 고아들만의 심리 상태이겠습니까?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가진 사람 중에도 자식들 대에 먹을 것까지 염려하느라 평안히 자리에 눕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함을 느끼기 오래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에 대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급을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고 묘사했습니다. 푸른 초장에 누워 있는 겁니다. 왜요? 배가 이미 너무 부르기 때문에 앞에 푸른 초장이 있어도 더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속이 꽉 찼어요. 포만감으로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서 그 음식 위에 쭉 누워있는 양의 모습!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만이 당신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쉬지 못하고 힘들어하며,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까? 이유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이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내 자식의 학비를 대는 것이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이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내 아파트를 유지하는 것이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내 자가용을 유지하는 것이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내 사업을 유지하는 거예요. 삶의 모든 짐을 나 자신이 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왕궁에 음식과 재물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능력으로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들 압살롬이 반역해서 광야에 쫓겨나가 누군가가 음식을 갖다주지 않으면 굶어야 했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아무 것도, 쌀 한 톨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내 목숨을 위해 양식을 공급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내 가족, 내 부하들을 먹여 살린 것이 아니로구나!" "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지금까지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광야에는 길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을 트레일(Trail)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일부러 길을 닦아 놓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꾸 밟아서 생긴 산길 같은 것을 Trail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의 길"이란 것은 바로 이러한 길입니다. 짐승이 밟았든, 사람이 많이 밟았든, 거기에는 수많은 길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길들은 사나운 짐승이 밟아서 생긴 잘 닦여진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가면 양은 죽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좋은 길을 한번은 알았다고 해도 사막에 모래바람이 불고 나면 그 길이 금방 다 숨어져 버려 어디가 길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자는 압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괴로운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부담이 되고 괴로운 것은 바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 직장을 가질 것인가, 사업을 할 것인가? 사업을 한다면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가? 이렇게 해야 되는가, 저렇게 해야 되는가?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 무언가 결정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유행가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서 갈까~" 무엇이 옳은 줄 압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환한 길이고, 대로같지만 결국에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를 누가 인도한다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프리카의 최전방 선교기지에 있던 여자 선교사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한달 동안 생활비도 도착하지 않아 매일 보리죽과 깡통에 든 분유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0일 정도 지나자 건강이 회복됐고, 생활비도 도착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안식년으로 귀국한 선교사가 당시 힘들었던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의사가 찾아와 말하기를 "선교사님의 생활비가 제때 왔더라면, 선교사님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사실 그런 소화장애 질병은 30일간 보리죽 처방을 해야 낫는 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그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자기를 인도하며 돌봐주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뒤만 따라가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95%는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잠언 3장 5,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당신을 좇겠습니다. 주여,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항상 뚜렷한 길을 지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인정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은 목자이시고 나는 양입니다. 가르쳐 주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하나님이 거친 길로 가라해도 당신의 뒤를 좇아 그 길을 주저 없이 선택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되심을 인정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확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는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칠흑같이 어둔 밤 밀림으로 데리고 가서 칼 한 자루만을 주고 돌아온답니다. 아들은 밀림 속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입니다. 맹수들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려움에 떨면서 뜬눈으로 긴긴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밤이 가고 어렴풋이 주위를 분간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가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아하, 나는 혼자서 무서운 밤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버지가 내 옆에 함께 계셔 밤새 나를 돌보아주셨구나 하고 깊이 깨닫게 된답니다. 그후 그 아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비록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 가에서 항상 자기를 지켜봐 주고 돌보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생의 순간 순간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수많은 고통과 삶의 풍파를 겪은 사람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시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찌할 수 없는 풍파, 어찌할 수 없는 질병,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풍파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드시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드시며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로 지나가게 하십니다. 이 시간 여호와가 목자되심을 진정으로 고백하십시다. 그리할 때 그분의 채워주심이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분의 보호하심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admin

�댁쟾�쇰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