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다!
2002-08-13 14:52:49

사사기 7장 1-8절 // 2002년 7월 28일

성경에 나타난 인물 중 가장 장대한 거인을 들라면 골리앗일 것입니다. 그의 키는 거의 삼 미터가 넘었습니다. 힘과 크기는 가히 인류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장수였습니다. 골리앗은 전신에 갑옷을 입었고 투구를 썼습니다. 앞에는 방패가 있었고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습니다. 걸어다니는 탱크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도전하는 다윗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갑옷을 입기에도 둔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골리앗에게 도전하는 다윗에게 갑옷을 주었지만 다윗은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직 청소년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뛰는 목동의 모습 그대로 였읍니다. 그리고 손에 든 것은 골리앗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물매와 작은 돌 다섯 개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둘의 대결은 골리앗의 승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는 대로 다윗의 완승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소리만 질렀지 단 한 번의 창을 던지거나 칼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젔습니다.
사무엘 상 17장 45절에 보면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작고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의지하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과 전능하신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유럽을 침략할 때 알렉산더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군사의 수를 겁주려고 참깨 한 부대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군대의 수가 이렇게 많다는 뜻을 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알렉산더는 겨자씨 한 톨을 봉투에 넣어 보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으로 싸우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나간 알렉산더가 이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쟁은 꼭 외적은 힘이나 수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에 처해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사 기드온이 일어나 이스라엘 군대를 일으키는 과정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제압하고 모든 것을 수탈하여 가는 나라는 미디안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고난 중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기드온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이 이스라엘 군대를 일으켜 미디안과 대결하려고 준비하였습니다. 나라를 미디안의 억압에서 다시 찾아 자유 국가를 이루기 위하여 미디안과 싸움에 참여하겠다고 의연히 자원한 군대의 수가 32,000여명이 되었습니다. 미디안 군대에 비하면 정말 비교가 안 되는 적은 수였습니다. 사사기의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미디안 군대의 수는 135,000명에 달했습니다. 8장 10절에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일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좇아 거기 있더라"는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 분의 일도 안 되는 이스라엘 군대를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숫자가 많아서 이기면 자신들이 힘이 있어 이겼다고 자만하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게 될 것을 아시고 수가 많은 이스라엘과는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미디안 군대의 135,000에 반하여 이스라엘은 32,000명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많다"고 하신 것은 단순한 수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사의 수가 많다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자만심"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을 앞세우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 스케쥴에 의하면 이미 이스라엘의 승리로 결말이 나 있습니다. 단지 어떻게 그 승리를 거둘 것인가 하는 과정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의 우매함과 교만함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숫자나 외적인 크기와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먼저,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여든 떠나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과 근심, 염려는 믿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예수께서도 말씀하셨고 디모데 후서 1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뛰어 들려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우면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돌아선 사람들이 2만 2천명이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은 만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13분의 일도 안 되는 적은 수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전쟁은 참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장렬하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을 믿은 신앙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만 명으로 135,000의 적과 싸우겠다는 것은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 명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선별하여 수를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 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더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만 명을 데리고 나가 싸우는 것도 열세 배가 넘는 미디안과의 대결에서 자살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 그것도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만 명도 많다고 하시면서 줄이라고 하신 데에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의지하거나 자랑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없애려는 의도였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승리할 수 없는 전쟁임을 철저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를 줄이고 또 줄인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조치를 취하십니다. 아! 이런 숫자로 전쟁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숫자를 줄여 가십니다. 그래서 4절에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르쳐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르쳐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따르는 사람들 중 두려움이 없는 만 명을 강가로 데려가 그들에게 물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6-7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과 함께 한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준비나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의지할 만한 것들을 다 배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의 수를 상상을 초월하게 줄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정도면 이스라엘 백성도 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데까지 낮추신 것입니다.

만 명에서 다시 더 줄여 300명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선발 기준을 보면 칼을 잘 쓰는 자도, 말을 잘 타는 자를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분명 전쟁을 위하여서는 활을 잘 쏘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무술인 물맷돌을 잘 던지는 사람을 택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쟁에 나갈 자들을 가려내는 방법은 세상에서 군사를 선별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들의 물을 먹는 태도로 선별하였습니다. 왜 손으로 물을 떠서 먹는 자를 선택하셨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분명한 뜻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 남은 300명은 외적인 어떤 조건보다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자들이요 전쟁의 상황이나 결과를 볼 때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쟁은 칼과 창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횃불, 나팔 같은 것으로 일반적인 무기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쟁을 치르려는 군사들이 지닌 장비로서는 너무나 의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군사들을 모집해서 선별하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남은 자들이 지니고 있는 무기가 칼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도 미디안 사람을 물리치는 주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삼백 명의 병력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기드온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미디안의 대군 앞에 선 기드온의 입장은 인간적으로 볼 때 참담했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승산이 없는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요 그들의 운명은 더욱 비참해 질 것이 불을 보듯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겸손과 신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난관에 처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함을 간직하게 하십니다. 문제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하나님이 쓰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련하기 때문에 쓰시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시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냐가 중요합니다. 혹 당신은 당신의 능력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재물을 신뢰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건강이나 젊음을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분명 하나님이 남기신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이런 소수의 사람들을 들어서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믿읍시다.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너무 숫자나 외적인 조건을 앞세우지 맙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실하게 신뢰합시다. 그래서 미디안 보다 더 강한 세력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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