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된 사람 2002-08-13 15:11:30 2002. 08. 11 // 막 5 :1-20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 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 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마가복음 5장 1~20절) <목회기도> 세상을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신 하나님 우리들에게 망하지 않는 복과 영생의 삶을 주시려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셨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비록 죄인들이지만 용서하신다는 말씀 믿고 당당히,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의 찬양과 예배드림과 헌금,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받으시옵소서. 그러나 이 복된 자리에 있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특별히 몽골에서 활동중인 단기선교단원들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에 누워 있음으로 이 귀한 자리에 있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도 우리와 함께 있는 기쁨과 우리가 받은 은혜를 함께 누리는 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셨고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여러분들은 피해가 없으신지요? 우리 교회에 양평에서 사시는 조이순 집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이번 비에 큰 피해를 보셨다고 합니다. 양평에서 나오는 교인도 있나! 하고 놀라시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기둥교회는 양평에서, 이천, 강화… 등에서도 오십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는 아주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멀~리 중동에서도 오시고, 더 높은 상동에서도 오십니다. 옆의 분들에게 "비에 피해는 없으신지요?"라고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8월이면 우리나라는 [해방]이라는 큰 기쁨을 누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런 저런 일에 얽히고 묶여 힘들고 어렵게 사는 성도들도 놓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해방되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자유 오늘 본문 말씀(막5:1~20)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신다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바다로 번역되어 있으나 갈릴리 호수이다.) (막4:35~5:1, 영문성경에는 "They went across the lake~"라고 되어 있음) 마태복음 8장 28절에는 [가다라 지방]이라고 설명했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두 지역 모두 갈릴리 호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마을은 부유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최소한 2000마리(막5:13)나 되는 것을 보면 그 당시로서는 돼지 사육(양돈)을 주로 하는 동네였던 것 같다. 예수님의 일행이 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 3절에 보면 무덤 사이에 거처하였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버림받은 인생이요, 고립된 삶이었습니다. 짐승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 4절에 보면 사람들은 그 귀신들린 사람을 쇠사슬로 묶어 두려했습니다. 물론 그 사슬도 귀신들린 그를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조절 능력(통제)을 잃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질서도, 평안도 구별치 못했고… 자신의 육체와 감정을 통제할 이성적 판단력도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이런 저런 것에 얽혀 있고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묶임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고 행복을 주며 때로는 그로 인해 슬퍼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묶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묶여 있는 것이 행복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에게 묶여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부모의 간섭에 묶여 있는 자녀도 행복한 것입니다. 그 묶임이 없으면 고아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나가 일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것입니다. 때로는 일하면서 상사에게서 싫은 소리도 듣게 됩니다. 그것이 싫다고 투덜거리지만 직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요. 직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그 묶임에서 벗어나면 실업자가 되고 맙니다. 요즘 교인들 중에 등록 하지 않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속박 당하는 것이 싫고 얽히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허전한 사람입니다. 얽매어 있다는 것이 짜증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속회로, 부서로, 선교회로 묶여 있어 사람들에게 간섭받는 것이 싫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하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와 신앙생활의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속박'을 속성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과 행동, 먹는 것, 오고 가는 것…등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약 받는 일이 많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꾹꾹 참는 것이 많습니다.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속이 후련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먹는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묶여 있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묶여 있는 자,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묶여 있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우리 기둥교회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교회에 등록하여 적을 두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교회에 소속 되어 있고 목사님과 연결되어 있어서 주일에 교회에서 안보이면 왜 안 나왔느냐고 야단치는 목사님이 계시고, 때로 그 목사님을 찾아가 무릎 꿇고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안하면 책망하는 목사님과 교회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목자 있는 양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묶여 있는 자유, 참된 자유를 누리며 신앙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 5절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장소도 구별하지 않고,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소리질렀습니다. 대화가 아니라, 노래가 아니라 그냥 소리 질렀습니다(cry out). 자기 혼자 떠들었습니다. 그는 언어를 잃어 버렸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혼자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낼 뿐이었습니다. • 5절에 계속해서 보면 그는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영문성경에 보면 "~cut himself with stones."라고 되어 있습니다. 돌을 가지고 자기 몸을 찢어 상하게 하고 살았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고통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해 쓸모 없는 인생, 사람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귀신들린 사람 이 귀신들린 사람, 버림받은 사람, 쓸모 없는 인생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인생에 있어 누구를 만나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들에 가서도 산에 가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집(일반주택)으로 이사를 가든 아파트로 이사를 가든 이웃을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동차에서, 비행기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타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테러범을 만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만남의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병이 들면 '죄를 지어서 병이 들었나보다. 귀신이 들렸나보다'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서의 병(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창48:1). 하나님은 인간을 100년 200년, 천년 만년 살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 질서에 따라 나이가 들면 아파서 죽는 병을 노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들을 보고 '귀신이 들렸나보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랬나보다'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② 이스라엘 백성이나 개인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거나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의 수단으로 질병을 주시는 병도 있습니다. (신28:20~22, 왕하15:5, 대상21:13~15, 대하26:19, 시38:3) ③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나(요9:3)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요11:3~4), 또 어떤 경우는 하나님의 섭리로(욥2장, 고후12:7~9) 병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픈 것도, 병드는 것도 죽는 것도 없습니다(사35:10, 계21:4, 22:2).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들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시고 때로는 우리를 질병 가운데 두시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추측을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고통스런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한번 간절히 기도했을 때은 3년 기도했는데 병 때문에 고쳐 달라고 여러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고후12:8). 하나님은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왕의 병을 고치기도 하셨지만 바울과 같이 내 버려 두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말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위하여 안타까워 하며 간절히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자유함을 얻은 귀신들린 사람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8절)고 명령하자 귀신이 답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귀신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 자세히 '압니다'. (참조, 약2:19) 절에서 도를 닦는 승려들도 예수님을 압니다.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크리스챤이 아님에도 성경을 줄줄 외우고 예수님에 대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아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군대]로 불려질 만큼 수많은 악령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군대(헬라어 '레기온')라는 말은 6000~10,000명 단위의 로마군 조직을 말한다. 이 표현은, 그 사람이 수많은 귀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그 귀신들린 사람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회복되는 해방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유함과 평안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그 불쌍한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들은(evil spirits) 돼지들(pigs)에게 들어갔고, 그 돼지들은 바다를 향해(호수를 향해) 뛰어 들어 몰사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2000마리의 돼지들이 물로 뛰어드는 장면이 굉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돼지 기르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기가막혔을 것입니다. 14~15절에 보면 이 사건으로 돼지 2천 마리를 잃은 거라사 동네에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쳐 온 동네에 알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계신 곳에 와서 악령에 사로 잡혀 있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두려워하였습니다." 이것은 거라사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짐승과 같았던 사람 1 명을 고치기 위해 2천 마리의 돼지가 몰사한 것은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 지방(지경)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추방령을 내린 것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계22:17)가 아니라 "예수여 떠나가라"하는 요구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만 빼고는 아무 일 없이 잘 살던 마을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 1명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묘지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 놓고 먹을 것만 던져 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혼자 울던지 웃던지 짖어대든지 몸을 바위에 던지다가 혼자 죽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살리려고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은 동네에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예수님께는 비록 하나지만 그는 사람이었고, 2000이지만 그것은 돼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2000을 희생시켜서라도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다 환영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모든 곳에서 환영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틈에 끼워 줄 수가 없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한 생명을 위해, 한 영혼을 위해,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위해 돼지 2000마리 이상을 희생시킬 수 있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값진 물건도 희생하고 어려움도 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한 생명을 건지기 위해… 예수님 이름으로 봉사하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습니까? 얼마나 손해보셨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손해 본 것 때문에 몸에 진동을 느낄 만큼의 희생, 경험이 있으십니까? 정상적인 사람의 체온이 37~38℃라고 합니다. 37~38℃는 굉장히 뜨거운 온도입니다. 왜냐하면 목욕탕 온탕에 들어갈 때 "앗 뜨거, 앗 뜨거"라고 하는 물의 온도가 41℃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은 37~38℃ 정도를 유지해야 살 수 있습니다. 겨울철에 추운 곳에서 소변을 보고 나면 우리 몸이 진저리를 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오줌보에 따뜻한 물이 난로처럼 가득 담겨 있다가 빠져나가니까 몸에 한기가 느껴져 온 몸의 신경세포를 움직여 열을 보충하기 위해 몸을 떠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줌을 내보내도 진저리를 쳐야 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희생하고 몸에서 빠져 나간 것이 있음을 느낄 만큼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손해 보는 것이 없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야… 거라사인들이 예수님께 마을에 들어오지 말고, 떠나라고 했던 거라사를 등 뒤에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배에 타려 할 때 고침 받은 사람이 "주님 제가 주님을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멀찌기라도 좋으니 존경하는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의 눈길이 닿는 곳에 살고 싶다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로 거절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서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리라. 너를 싫어하고, 무시하고, 사람 취급도 안 하던 그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차별할 지도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거라사 동네에서 발을 붙이고 살라. 그리고 네게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났는지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때는 병고침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조, 막1:44/ 3:12/ 5:43/ 8:26) 그런데 여기에서는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에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과 이적만 보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이적을 보이실 때 왜곡될 염려가 있어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 이방인 지역에서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으셨던지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드러낼 때와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어느 한 쪽만 보고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단정지어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고침 받은 사람에게 "네가 정들었던 곳, 네가 자란 곳, 네가 귀신들렸던 것을 아는 그 사람들 속에 살면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아 다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돌아가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고침 받았다고 병원에서 살아야 합니까? 의사선생님이 너무 고맙다고 의사선생님 집 옆으로 이사가야 합니까? 병원에서 고침 받은 사람은 하루 속히 병원에서 나와 삶의 현장으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은혜 받아 병고침 받았다면 자기의 가정으로, 삶의 현장으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잘못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기도원에 가서 병고침 받고 은혜 받았다고 아예 기도원에 가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도록 권하는 기도원이 있다면 신앙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끗해진 사람에게 "거라사 땅 너의 고향에 그대로 머물러 살라. 그것이 곧 나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길에서 만난 한 사람, 귀신 들린 사람을 해방시키셨습니다. - 그는 귀신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 그는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그는 무덤에서 사는 인간 이하의 짐승 같은 삶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그는 상처와 아픔도 모르며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사는 통제 불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그는 때도 모르고 장소에도 상관없이 소리지르며 날뛰던 삶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비로소 가족과 동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 친구와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사람답게 살게 되었습니다. -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해방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은 예수 믿고 의지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말씀 위에 서 있을 때입니다. 이 험한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구원의 방주에 타고 있는 것이 진정한 해방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시고, 진리시고, 생명이십니다. 부활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움을 당해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8;28)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참된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 그것이 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견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불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약점만 공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너무 과신해서는 안되며, 그것들을 자랑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 건강한 사람, 가진 것이 많은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장점을 가지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때로 그 장점은 오히려 사탄의 공격을 받고 사탄의 쓰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삼손은 힘이 셌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삼손의 힘을 이용했습니다. 여러분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의 터 위에 견고하게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15:58). 우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믿는 다면 참된 해방,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섬으로 얻는 해방의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진정한 해방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있음으로, 구원의 방주에 있음으로 얻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게 하시고 믿음안에 있어서 천국과 영생을 꿈꾸며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 모든 믿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함께 신앙생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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