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사는 길입니다. 본문은 야곱이 인생의 위기를 만나서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위기를 극복한 내용입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난지 20년이 되어서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형을 축복하려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자기가 가로챘습니다. 그 일로 형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형의 계획을 알게 된 야곱은 형의 칼을 피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2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형의 분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은 얍복강에서 홀로 남아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시고 야곱을 죽이려던 에서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나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위기를 만날 때 대처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포기형입니다. 포기형은 어떤 일을 만나면 ‘아이고! 이제 끝났네.’라고 하는 사람으로 그러다 죽는 것입니다. 둘째는 순응형입니다. ‘이것이 내 운명이로구나.’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정복형입니다. 대다수가 포기형이거나 순종형입니다. 정복형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정복형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400명 군사가 와도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존 밀턴은 62세에 [실낙원]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감옥에서 썼습니다. 나이 52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부인마저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위대한 명작 [실낙원]을 썼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비참한 일은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비참한 것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환경을 이겨낼 수 없다고 그냥 주저앉는 일입니다” 그의 문제가 오히려 삶을 승리케 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는 포기형이나 순응형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정복형 인생을 산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들 중 한 분이 강영우 박사입니다. 강영우 박사는 열네 살에 아버지를 잃고 열다섯 살에 축구를 하다 축구공에 맞아 두 눈을 잃었습니다. 장남인 그가 두 눈을 잃자 그의 어머니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여섯 살 먹은 누나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16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살길이 없어 아홉 살 먹은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가고 열세 살 먹은 남동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철물점에 점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두 눈도 잃고 부모도 잃고 동생들도 잃고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시각장애자가 할 일은 점치는 것과 안마하는 것, 두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는 인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10년은 맹인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자. 그 다음 10년은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자. 그리고 10년은 값진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따라합시다.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 인생은 비전만큼 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인생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30년 계획을 세우고 기도한 대로 노력해서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예쁘고 신앙심이 좋은 여대생과 사귀어 결혼했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인디애나 주의 교육국장이 되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또 UN의 세계 장애인협회 부위원장이 되어 봉사를 잘했습니다. 그가 2000년도에는 미국의 저명인사 사전에, 2001년도에는 세계 저명인사 사전에 이름이 등재되고 백악관의 정책차관보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장애물들을 극복한 것입니다. 두 눈을 잃고 부모도 잃고 다 잃었지만 극복하려고 하니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는 포기형이나 순응형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정복형 인생을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이 어렵고 그 환경을 극복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인생의 위기를 기도로 극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포기형이나 순응형으로 살지 마시고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도 믿음으로 극복하는 극복형으로 삽시다.
오늘 설교의 내용은 야곱의 기도입니다. 두 가지를 살펴봅니다. 하나는 야곱은 어떻게 기도했는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야곱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1. 야곱은 어떻게 기도했는가?
1)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약해지시는 분입니다.
9-12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서 전에 자신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근거로 형의 손에서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참된 길이 있음을 알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중국의 제나라 왕이 전쟁터에서 길을 잃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든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늙은 말을 앞세우면 됩니다.” 그 신하의 말대로 늙은 말을 앞세웠더니 말이 궁으로 잘 인도하여 쉽게 돌아왔습니다.
또 돌아오는 길에 물이 없어 목말라 힘들어 할 때도 그 신하가 “왕이여, 개미집을 찾아 거기서 여덟 자만 더 파면 물이 나옵니다.”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물이 나왔습니다. 경륜이 있는 한 신하의 말을 들어도 길을 찾고 물을 찾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말씀을 따라하면 무리가 없고 응답이 빠릅니다.
2) 할 일은 하면서 기도했다.
야곱은 기도한 후에 형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형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야곱은 형의 칼이 두려워 지혜롭고 예절바르며 품위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몇 사람을 골라서 형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했습니다. “주의 종 야곱이 외가에서 20년간 살다가 이제 고향으로 오니 형님의 은혜를 입기 원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말 한 마디 없이 칼을 찬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오는 것입니다. 한 발 앞서 달려온 야곱의 종들이 말합니다.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주인의 형께서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십니다.”
그 400명은 사냥꾼이고 싸움꾼입니다. 종들에게 보고를 받은 야곱은 신속히 재산을 두 떼로 나눕니다. ‘형이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또 ‘내가 무엇을 해야 될까? 형의 칼에서 살아남는 길이 무엇일까? 그렇다! 예물을 준비하자.’ 하고는 살지고 윤택하고 기름진 것들 중에서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약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 40마리와 황소 10마리, 그리고 암나! 귀 20마리와 그 새끼 10마리를 택했습니다. 약대 새끼를 제하고도 550마리입니다.
그 모든 떼를 염소 떼, 양 떼, 약대 떼, 소 떼, 나귀 떼, 이렇게 다섯 떼로 나누어 종들에게 붙여 보내는데 그 행렬이 장장 2km가 넘습니다. 소 한 마리 한 마리의 거리는 7~8m, 양은 2~3m, 낙타는 10m를 잡아야 되니 한 마리에 평균 거리 4m를 잡아도 그 거리가 2,250m가 됩니다. 선물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에서가 그것을 보고 “당신들은 누구냐? 어디로 가는 거냐? 이게 뭐냐?”라고 물으면 “저희는 야곱의 종들입니다. 이 모든 떼는 야곱께서 형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라고 대답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에서가 예물을 다섯 번이나 받으면 ‘야곱, 맛 좀 봐라.’ 하며 20년간 칼을 갈았던 마음이 봄 눈 녹듯이 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 21:14에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와주시고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못하게 막으셨지만, 예물의 영향력도 컸습니다.
저는 전에는 이 부분을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다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고 깨달아졌습니다. 무엇이든지 극단적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데 그건 극단적인 신앙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 않고 일만 하는데 그것도 한 극단인 것입니다.
부모가 등록금과 용돈은 줄 수 있지만, 아무리 부자라도 공부는 대신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공부는 자식이 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니 자기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고 그 비전을 이루게 하실 것이지만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모세의 기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전쟁터에서 군인들을 이끌고 전쟁을 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면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학생은 열심히 기도하면서 공부해야 하고, 직장인은 열심히 기도하면서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사업가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서 열심히 사업을 해야 합니다. 가정주부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가정 일을 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기도하더라도 할 일은 하자”
3) 간절하게 끈질기게 기도했다.
24-26절에 보면 야곱이 기도를 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주님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야곱은 밥이 새도록 씨름하듯이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야곱이 주님을 놓아주지 않으니 주님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그래도 야곱은 주님을 놓지 않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주님을 이기게 되고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옛날 부흥 강사님들은 ‘소나무 뿌리 열 개만 뽑으면 은혜를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산각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붙잡고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소나무 뿌리를 뽑도록 기도하라는 말은 그만큼 간절하게 결사적으로 끈질긴 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응답을 주시려면 주시고 말려면 마세요’라는 소극적인 자세로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응답하세요. 응답하지 않으시면 저는 못 일어납니다’라는 적극적인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일단 어떤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했으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려야 합니다. 몇 번 기도해서 응답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받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교회에서 8일 금식을 하고 이틀은 강남금식기도원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때 84세 할머니를 만났는데 무슨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5일 금식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응답 없다고 다시 5일 금식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84세 할머니에게 10일 금식은 목숨을 거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그 할머니 정도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기도를 작정하고 작정한 기도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작정기도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응답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21일을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도 응답이 없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작정한 21일을 다 채웁니다.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는데 언제 응답을 받았습니까? 21일째 되는 날, 작정마지막 날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끈질긴 기도로 응답을 받아낸 것입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박 터트리기입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모래주머니를 수도 없이 던지다보면 언젠가는 박이 터져 내용물이 쏟아집니다. 모래주머니 한 번 맞고 박이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박은 모래주머니를 맞아도 전혀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 박을 싸고 있는 종이가 찢어지기 시작하고 결국은 박이 터지고 내용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우직하고 끈질기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박이 터지듯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때가 있습니다.
2. 야곱의 기도의 결과
기도하는 시간은 기적의 시간입니다. 그 이유를 본문에서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한 판 붙자.’ 하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다 보니 어떤 분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씨름하듯이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초림하시기 전, 구약에도 때때로 주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야곱과 씨름 했던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봅니다. 야곱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30절에 보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이기게 된다. 28절에 보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입니다.
따라 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 아들처럼 사랑하신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이불을 펴놓고 씨름을 한 적이 많습니다. 제가 장난으로 아이들을 ‘툭’ 건드리면 아이들이 “이~야” 하고는 덤빕니다. 저는 아이들을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두 아이가 덤벼도 저는 가볍게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부러 아이들에게 집니다. 제가 “아이구” 하면서 넘어지면 좋아라합니다. 제가 “너희들이 이겼다”라고 말하면 정말 이겼는지 알고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야곱에게 지시겠습니까? 그냥 져주신 것입니다. 귀여운 자식에게 져주듯이 져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하는 시간은 축복의 시간이다. 29절에 보면 “거기서 야곱을 축복한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은 기도하다가 기도의 장소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기도의 시간은 기적의 시간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축복의 시간이지만 기도하다가 축복을 받으려면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야곱을 축복하셨는데 언제 하셨습니까? 밤을 새워 기도한 후에 기도시간의 막바지에 축복하셨습니다. 밤을 새우고 새벽녘이 되어서 축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끈질긴 기도를 드리십시오.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 기도자가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28절에 보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줍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한 것입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남의 발뒤꿈치를 잡는다는 것은 좋은 뜻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잘 가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뜻이 있는데, ‘속이는 자, 간사한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형의 복을 중간에 가로채려 했고, 외삼촌의 재산을 가로채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사람들과 다투고, 사람들을 이기려고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상대가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그의 싸움은 ‘하나님께 매달리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한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유치한 싸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창 32장에서는 형 에서가 무서워서 가족들을 앞세우고 자기는 뒤에 남아있었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가족들이라도 희생시킬 태세입니다. 그러던 그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로 변화된 후에는 창 33장에 보면 형 에서를 만날 때 가족들을 뒤에 두고 자기가 앞서 나갑니다. 야곱이 기도하더니 변한 것입니다.
창 32:10 이하를 보면 야곱이 자기 형 에서를 다섯번이나 ‘주’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형의 주가 되기 위해 형을 속이고 큰아들의 명분을 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 한 맺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기도 후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을 20년 만에 만나자 형님을 주님으로 높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기도하면 사람이 겸손해지고 자기를 낮추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낮은데서 점점 높아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높은데서 낮아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 33:3을 보면 야곱이 에서 앞에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했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자신을 꺽은 것입니다. 철저히 낮아졌습니다. 야곱은 기도를 통해서 겸손해진 것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변한 것입니다.
야곱이 기도한 장소가 얍복강입니다. ‘얍복’이란 ‘비운다, 몽땅 털어버린다. 쏟아 버린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기도했던 얍복 나루터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기인생을 철저히 비우는 장소였습니다. 야곱은 기도하다가 과거의 자기를 벗어버린 것입니다. 비워버린 것입니다. 야곱이 변한 것입니다. 사람이 변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달라집니다. 내가 변한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은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변해야 은혜를 풍성하게 받고 축복도 풍성해진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깨물고 노력해도 잘 변화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었듯이 사람이 변합니다. 그리고 변화되면 생각지 않았던 복을 받게 됩니다.
래리 넬슨(Larry Nelson)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프로골퍼가 있습니다. 그는 1983년 미국 오픈 경기에서 우승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퍼가 됐습니다. 그 때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그는 16번 홀에서 잠시 앉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의 골프 성적은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가 우승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본 그의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우승 트로피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건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정반대일세, 트로피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마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지.” 경기 결과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래리 넬슨은 그 경기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자기 속에 있던 욕망을 비웠습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뜻밖의 우승컵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2) 환경이 변화는 기적이 일어났다.
창 33:4을 보면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고 했습니다. 동생을 죽이겠다고 400명 장정을 동원해 출동했던 에서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동생을 만나자 달려와 껴안고 입맞추고 대성통곡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야곱이 목숨 걸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먼저 내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합니다. 이것은 기도의 공식이고 변화의 절차입니다.
안소니 멜로 박사는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답니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켜 주십시오"하고 기도 드렸고, 70이 된 그는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이 좋은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보처럼 바라봅니다. 한심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비웃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바꾸시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바꾸시고 우리의 환경을 바꾸시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성남 영도교회 원로목사이신 강문석목사님의 자서전 [저 창가에도 등불은 켜져 있는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6.25때 육군대위로 중대장을 맡아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중대원으로 들어 온 병사 중에 칠뜨기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밤중에 보초를 서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나 코를 흘리지 않나 하여튼 팔푼이 짓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알고 보니 포항에서 주인집 아들 대신 징집되어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중대가 특공대로 차출되어 적진을 향하여 진격하는데 그만 포탄공격을 받고 모두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 8명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그 칠뜨기 이기철일병도 끼어 있었습니다. 국제 포로법에 따라 대우하여 달라고 하자 군량미도 부족하고 지킬 병사들도 없다고 하면서 즉결 재판을 열어 모두 사형을 언도하더니 바로 사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제 눈을 가린 다음 나무 기둥에 묶어 두고 8명의 사수들이 총을 가지고 엎드려 사격준비를 하는 가운데 인민군 군관이 “마지막이다 할 말이 있다면 하라”고 하자 칠뜨기 이기철일병이 “노래 한 번 해도 됩니까”하는 것입니다.
그는 허락! 을 받고 “예수사랑하심은”이란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달밤에 보초를 서면서 불렀던 노래도 찬송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찬송을 다 부른 후 “하나 더 불러도 됩니까”라고 하였고, 그 집형관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는 다시 “하늘 가는 밝은 길이”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제 집행관이 거총 하고 소리친 후 막 사격을 개시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따발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구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죽지 않고 의식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누가 후다닥 하고 뛰어 오더니 눈을 풀어 주면서 어서 다른 동료들 눈을 풀어 주라고 하여 함께 달리고 달려 아군지역으로 들어와 보니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인민군 사형 집행관이었습니다.
그는 인민군 소위인데 그의 아버지는 장로였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교회에서 즐겨 불렀던 찬송이 바로 ‘예수사랑하심은’이었고 그의 아버지가 즐겨 불렀던 찬송은 ‘하늘가는 밝은 길’이엇습니다. 사형집행관은 사형장에서 이기철일병이 그 찬송을 부를 때 이들을 죽이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천벌을 받을 것 같아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부하들에게 총질을 하! 고 그들을 구하여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전장에서 마지막 사형을 당하는 자 리에서도 예수사랑을 확신하는 한 병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변화시켜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도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살기 힘들고 바쁘시죠?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장소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에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야곱처럼 인생의 위기를 만난 분들이 있습니까? 야곱처럼 기도합시다.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도 응답하시고 여러분을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찰스 스원돌’은 [지혜]라는 책에서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어때? 나랑 같이 오늘도 살아보자. 뭐 좀 힘들다구? 걱정 마. 넌 그저 나와 함께 있으면 되는 거야!"
1. 야곱은 어떻게 기도했는가?
1)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
2) 할 일은 하면서 기도했다.
3) 간절하게 끈질기게 기도했다.
2. 야곱의 기도의 결과
1) 기도자가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2) 환경이 변화는 기적이 일어났다.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CDNTV] 2009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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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가족치료
지금 서울 장안에는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삶을 살펴보면 행복의 정도도 천차만별이고 그것을 발휘하는 능력도 서로가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 어떤 사람이 무능력하게 살고 싶을까?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고 싶어한다.
부부갈등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불행하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거나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과, 불행하거나 실패적으로 사는 사람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대답은 분명하다. 그들이 성장해 온 가정에서 하나님 사랑을 얼마나 체험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영의 실체이다.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강력한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살려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영에 불이 붙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불을 댕기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은 바로 내 가정 내 부모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역사를 이끌어 왔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가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정에서 하나님 사랑에 가까운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만큼 이웃 사랑도 폭넓게 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의 속성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면에서 가정은 이웃 사랑의 능력을 키우는 전초기지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어려운 이 땅에서 천국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천국과 닮은 분위기를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플라톤은 의문에 직면했다. 똑같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왜 삶을 그렇게 다르게 살아가는가? 플라톤은 그 사람들을 그렇게 서로 다르게 살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원인을 발견했다. 그 뿌리는 그들이 성장해 온 가정에 있었다. 그것도 그들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서로 다르게 꽃피워 갔다. 여기에서 생각한 것이 유명한 플라톤의 가정 사다리 이론이다.
가정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이다. 두 기둥이 양쪽에 튼튼하게 서 있을 때,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안정감을 갖는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관계일 때, 아버지 기둥과 어머니 기둥 사이에 여러 개의 사랑의 사닥다리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이어진 사랑의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며 살 수 있을 때, 정신도 영도 몸도 함께 건강해진다.
반대로 어머니 기둥과 아버지 기둥 사이에 불화가 일게되면 자연히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이어진 사랑의 사닥다리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사랑의 사닥다리를 붙들고 놀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아이들은, 흔들리는 사닥다리에 달라붙어 불안해하며 떨 수 밖에 없다. 플라톤이 발견한 것은 인생의 성공여부, 그리고 행복의 여부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사랑 사닥다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이어진 사랑의 사닥다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오르내리며 즐겼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 기둥과 아버지 기둥간의 사랑 사닥다리를 즐기는 시간만큼 그의 삶의 폭이 달라진다. 똑같은 교육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사닥다리를 충분히 즐기며 성장했던 제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았다.
그런 반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사닥다리를 즐기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제자들은 그들이 가진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나 사회 그리고 국가는 그만큼 어둡고 살기 힘들어진다. 하나님은 교회와 사회 그리고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그 주춧돌로 가정을 주셨다. 그래서 가정이 흔들리면 자연히 교회, 사회, 나라는 따라서 흔들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오늘 우리 가정은 어떤가? 미국은 결혼한 사람의 절반이 이혼으로 갈라지고, 한국은 삼분의 일에 가까운 부부가 이혼한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고 이혼하지 않은 부부는 참 행복한 부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가정들이 이렇게 흔들린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이 쏟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의 교회, 사회, 나라의 미래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정을 살리는 일이요, 상처 입고 흔들리는 가족을 치료하는 일이다. 학교를 세우고 공장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가정을 살리고 난 다음의 일들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종교, 정치, 사회, 교육 모든 국가제도를 떠받들고 있는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공장이다. 똑같은 공장인데, 어떤 곳에서는 좋고 훌륭한 그릇이 나오는데, 어떤 가정 공장에서는 금이 간 그릇이 나온다. 튼튼하고 큰 그릇은 좋고 많은 것을 담아내지만, 금이 간 깨진 그릇은 쓸모가 적어 좋은 것을 담을 수가 없다. 교회가 힘들고 사회나 정치가 어두운 것은 모두 이렇게 깨진 그릇들 때문이다.
어지러운 덴마크를 품 속에 안아 다시 세운 그룬드빌트 같이 그릇이 큰 사람이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인구 2000만 명 정도인 유태인이 세계 노벨상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유태인의 머리가 비상해서 그렇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말한다. 아니다. 유태인과 우리의 차이는 다른데 있지 않다.
인간을 만들어 내는 유대인 가정 공장이 우리 가정과 조금 다를 뿐이다. 유태인 가정 공장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먼저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고, 크고도 튼튼한 그릇으로 만들어져 나온다. 본래 인간은 큰 그릇으로 가정에 보내어진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부모 관계가 나빠서 가정 분위기가 흔들리고 불안하면 아이의 큰그릇은 점점 위축된다. 또한 너무 심하게 가정이 흔들리면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이런 마음의 그릇을 가진 사람은 건강한 일,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창의적인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 그들은 쉽게 절망하고, 쉽게 흔들리고, 쉽게 쓰러진다.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 교회가 살아서 큰 역사를 이루어 내고, 이 민족이 세계에 빛을 던져주는 민족으로 성장하기 위한 척도는 크고도 튼튼한 인간 그릇을 만들어 내는 가정을 살리는 일이다. 가정을 살리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가족 치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