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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 붙잡힌 교회 /빌3:12-16
    2011-03-02 17:58:51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교회를 떠난 지 9년 3 개월 만에 다시 동안교회 강단에 서게 되니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불러주신 김형준목사님과 당회에 감사드립니다. 제 집이 이문동 삼성래미안 아파트입니다. 17층인데 거실에서 내려다보면 동안교회가 보입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 늘 교회 앞을 지나다니며 봅니다.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에 좋은지 모릅니다.

    동안교회는 매우 특별한 교회입니다. 2대 목사님이셨던 송치헌 목사님께서 자그마했던 교회를 큰 교회로 성장시켜 놓으셨는데 3대 목사였던 제가 부임한 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했었습니다. 그리고 김형준 목사님께서 4대 목사로 오셨는데 제가 있을 때와는 또 비교도 안 되게 교회가 성장하였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거나 사임한 후 후임으로와서 그 성장을 계속 담당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제가 김형준 목사님에게 ‘김 목사님 은퇴 후에도 동안교회가 계속 성장한다면 기네스북 감’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사실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 부흥하고 성장하는 동안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2살 나이에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면 주일마다 성경공부 반을 하나씩 맡아 강의를 해야만 했습니다. 성경공부 반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제게 맞았습니다. 원래 교인이 많았던 교회가 강의가 조금씩 소문이 나자 금방 강의를 듣는 교인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작은 방에서 큰 방으로 옮기고 그것도 부족해 어느 날 창문을 뜯었습니다. 교인들이 복도에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교만해지고 있었습니다.

    34살 나이에 승동교회 담임목사 청빙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싸워서 갈라진 교회였고 위치나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말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한껏 교만했던 저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냐?’.....

    누구나 가도 되는 교회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승동교회처럼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가서 부흥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락교회 성경공부 반 창문을 뜯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교인배가운동을 벌렸습니다. 150명 정도 출석하던 교회였는데 연말까지 300명 교인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젊은 담임목사가 부임하자마자 교회를 부흥시키겠다고 열심을 내는 것이 좋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인도한 후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느닷없이 제 마음에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300명이냐?’ 당황스러웠습니다. 질문하시는 느낌이 좀 부정적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은 하나님께도 좋으신 일이실 터인데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물으시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왜 300명이냐?’를 물으셨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50명 교인을 300명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교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때 300명 교인배가운동을 벌인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저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너냐?’를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소명을 가장한 야망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장 교인들에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배가운동을 취소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인들 앞에서 다시는 이런 마음과 목표를 가지고 목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야망과 소명은 꼭 닮아서 깊이 살펴보지 않으면 본인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인도 속아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릭 워렌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책을 쓰셨습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도 그 책을 가지고 특별집회를 많이 하였습니다. 아마 우리 동안교회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소명의 삶입니다. 소명이 곧 우리 삶의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삶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고 소명의 삶인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반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이 이끄는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야망이 이끄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당연히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욕심이 이끄는 삶을 삽니다. 저들은 예수께 붙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욕심이 이끄는 삶 즉 야망에 이끌리는 삶을 삽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놓고 욕심이 이끄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 예수님께 붙잡힌 척 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척합니다. 소명의 삶을 사는 척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소명이 아니라 소명을 가장한 야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그것을 알면서 남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쁘고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도 속아서 자기가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소명을 가장한 야망에 스스로 속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위험하고 나쁜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살 되셨을 때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여럿이 무리를 지어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루 길을 와서야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착각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시는 것 같지만 이미 오래 전에 예수님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수 천,수 만의 교인들이 모여와 예배한다고 하지만 그 수 천,수 만의 교인들 중 정작 예수님은 계시지 않는 교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뭔가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하지만 예수님하고는 상관없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걸고 많은 사역들을 하지만 사실을 예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일을,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작 예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일은 그 때문에 뒷전에 밀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전에 동안교회에서 설교할 때 했었던 이야기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영락교회에서 시무할 때 경기도 어느 지방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제직수련회를 하였습니다. 저녁 집회만 사흘 동안 하는 집회였습니다. 둘째 날 낮에 연합회의 회장 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에 조금 일찍 와서 교회의 목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집회를 하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일찍 갔습니다. 목사님들이 저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은 보신탕을 하는 집이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 아시다시피 저는 개를 너무,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없이 자라나 개와 고양이를 형제인줄 알고 자랐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습관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이 위기를 모면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보신탕을 못 먹는 줄 알면 목사님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미안해 하실까 걱정이 되어 그것을 모면하게 해 달라고 되지도 않을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얼마나 개고기를 좋아하시는지 보신탕에 정신이 팔리셔서 정작 강사가 먹는지 안 먹는지는 잘 신경 쓰지 못하셨습니다. 당연히 저도 함께 잘 먹는 줄로 착각하셨습니다. 기도한대로 잘 모면하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운전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값은 연합회비로 처리를 한 것 같은데 그랬다면 영수증을 받아다가 장부정리를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장부에 뭐라고 쓰셨을까? ‘강사 접대비’.... ‘난 안 먹었는데,,, 자기들이 다 먹어 놓고 강사 접대비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웃음이 진정되질 않아 한참을 애썼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생각을 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나도 저런 식으로 목회하기가 쉽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 빙자하여 자기 좋아하는 일과 짓을 하고 장부에는 예수님 접대비라고 기록하기 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로 시무할 때 심방 때 점심 대접을 하기로 한 집사님이 제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그럴 때 함부로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만일 칼국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평생 칼국수만 먹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집도 칼국수 저 집도 칼국수...

    아내가 다행히 김 목사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이야기하고 끝내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사님 할 수 없이 당신이 알아서 점심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점심을 먹다가 입에 맞는 음식이 있어서 그 음식을 잘 그리고 많이 먹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심방을 다니다가 점심 대접을 받는 집마다 그 음식이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 음식이 집집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느냐고? 그랬더니 그 날 점심을 준비해 주신 집사님이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도 저희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는데 안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래서 어제 점심을 대접한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뭐라고 전화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그 대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 젓가락이 어딜 많이 가더냐?!!!.....’

    그날 참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저 마음으로 목회를 하면 성공하고 하나님이 기뻐 하시겠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젓가락이 어딜 많이 가는가?’를 살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일들을 준비해 드리는 목회를 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저들은 모세도 만나고 엘리아도 만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도 하셨습니다. 세 제자들은 황홀하였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상황이라면 산에 초막만 짓고 살아도 복잡하고 속상하는 세상의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곳에 초막을 짓고 그냥 여기서 살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아도취였습니다. 자신의 삶에 도취되어 자신의 본분과 삶의 목적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데리시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귀신 들린 아이와 그 부모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변화산으로 데려가신 것은 변화산의 체험을 통하여 영적인 능력을 받고 그 능력으로 산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를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변화산에 도취하여 중요한 자신의 소명을 잊은 것이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들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신드롬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산 신드롬입니다. 교회가 너무 재미있고 자랑스럽게 되면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잊어 버리고 교회 자체가 교회의 존재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욕심과 야망이 이끄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소명에 붙잡히는 교회가 아니라 야망에 붙잡히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그 순간부터 교회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경제학에 ‘성공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교회의 성장과 성공 속에도 똑같은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성공 속에 우리도 모르는 패망의 인자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성장과 성공 속에 도취되어 그것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그것에 매몰되어 교회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참으로 충성스러운 사도였습니다. 그의 열정과 열심은 참으로 특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도바울 못지않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인 경우 열심은 소명에서 나오지 않고 야망에서 나옵니다.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바울 보다 더 열심히 삽니다. 물, 불을 모르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삽니다. 그런데 바울은 야망 때문이 아니라 소명 때문에 물, 불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예수께 붙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 얼마나 근사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대부분 욕심과 야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께 붙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새파란 청년 목사로 왔었는데 지금은 손주가 셋이나 되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조금은 늙었나봅니다. 그래서 오늘 제 인생의 황금 같은 40대 10년을 섬김 동안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간에 동안교회는 제 목회의 잊을 수 없는 로망입니다. 시무하는 동안 다투기도 많이 하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동안교회는 제 삶의 사랑이고 자랑입니다. 축복이었습니다.

    동안교회가 계속해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교회가 너무 좋아, 베드로처럼 교회에 초막을 짓고 예수님을 잊어버릴까봐, 교회의 존재 목적인 변화산 아래의 세상을 잊을까봐, 교회 자체가 교회의 목적이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교인은 예수님께 붙잡힐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정신없이 좇아 갈 때가 가장 훌륭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좋아도 교회에 붙잡히면 안 됩니다. 교회가 교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 붙잡혀야만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그 목적에 사로 잡혀야만 합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동안 교회가 늘 예수께 붙잡힌 교회가 되어 그 예수께 붙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부족한 저를 불러 세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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