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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후9:6-15/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10:58   read : 163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九․十五)

    먼저 이 시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시는 가운데서 이 부족한 사람이 서백림(西伯林)까지 무사히 다녀서 지난 월요일 본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만 열흘 동안, 백여 나라에서 온 대표 약 一,二00명이 서독의 유명한 콩그래스 홀이라는 곳에 모여서 각기 전도를 위해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고 토의하며 은혜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은 아마 우리 二十세기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미국의 유명한 빌리 그램 목사와 또 오늘의 기독교라는 잡지를 통해서 문서적으로 많은 전도 사업을 하는 그 잡지의 편집인이 되는 칼 에스리 박사가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 대한 자세한 보고는 다음 주일 지난 월요일 저녁에 그 곳에 갔던 몇 분들이 여러분에게 보고해 들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통해서 전세계 교회에 새로운 축복을 내려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을 생각하십시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고린도 후서 三장과 九장에는 연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교훈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궁핍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그 때에 여러 교회에서 헌금을 거두어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연보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 몇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헌금은 일종의 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이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풍성한 은혜를 주시며 이렇게 헌금을 하여 남을 주면 드리는 사람도 복을 받고 이런 봉사를 통해서 도움을 받는 사람도 복을 받으며 이것은 다 합해서 하나님께 돌아가며 영광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 읽은 이 말씀이올시다.『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오늘 이 시간 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은사라고 하는 말은 거저 준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은 거저 주는 것을 말합니다. 돈 받고 주는 것을 누가 선물이라고 합니까?「그의 은사」의「그」는 물론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거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선물이올시다. 오늘 이 감사주일에 마침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혹 여러분이 예배당에 오기가 좀 불편하니, 오늘은 왜 비가 오나 하고 불평하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는 매우 필요합니다. 비 없는 광야에 가 보세요. 사막에 가 보세요. 하나님께서 때때로 비를 넉넉히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비가 내리므로 풀이 자랍니다. 꽃이 핍니다. 곡식이 자랍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습니다. 물이 있으므로 우리 사람들이 삽니다. 물이 있으므로 깨끗이 살수도 있습니다. 이 귀한 물을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이 비는 선물이올시다. 거저 주는 것입니다.

    햇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해는 우리에게 광명을 줍니다. 우리에게 열을 줍니다. 모든 에너지가 해에서부터 옵니다. 해가 있기에 풀이 자랍니다. 해가 있기에 곡식이 열매를 맺습니다. 해가 있기에 나무에 열매가 열립니다. 얼마나 해가 필요합니까?

    햇빛은 귀합니다. 이 햇빛도 거저 줍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올시다. 돈 받고 햇빛 삽니까? 돈주고 삽니까? 그리고 공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밥은 며칠 안 먹어도 살지만 공기는 몇 분 안 마시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만 사는 것 것처럼 우리 인간은 공기 속에 라야 살지 않습니까? 얼마나 공기가 귀합니까? 공기가 있기에 비행기도 타고 다니지요.

    지금 사람들이 달나라에 굉장히 애쓰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달나라에는 공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생명이 없을 것입니다. 달나라에 가 봐야 기껏 금 덩어리나 가지고 오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다 공기를 가지고 가서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지구를 공기로 감싸주어서 언제나 시원히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다른 천체에서 떨어지는 운석이라는 부스러기가 있는데 그놈이 다 공중에서 공기와 마찰이 되어서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에 모자를 안 쓰고 다녀도 머리가 안 깨지고 삽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공기를 거저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금수 초목, 오곡백과, 산해어별(山海魚鼈), 금, 은, 동, 철, 모든 보석, 자연계를 통해서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침마다 일어나서 아침마다 뜨는 해를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숨쉬면서 감사해 본일 있습니까? 이것이 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바울이 여기 말씀하신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은사, 이 선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말한 그것들입니까? 제 생각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물론 그런 모든 선물도 생각했겠지요. 다른 편지에 보면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것을 생각하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은사가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주시는 선물 가운데 너무 크고 너무 귀해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는「이구난설」(以口難說)이라는 말이 잇지요.「이필난기」(以筆難記)라는 말이 있지요. 붓으로 다 기록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으로 우리의 생각을 발표하고 우리의 감정을 발표하기도 하지마는 말은 퍽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춘추전국 시대의 인물인 소진과 장유 같은 사람이 말 잘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서양에는 데모스 테네스 같은 사람이 말 잘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우리 교회사를 보면 크리소스톰 같은 이는 아주 말 잘하는 사람으로 금과 같은 입을 가졌다고 해서 골든 마우스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말을 잘 한다고 하지마는 말로써 우리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금강산을 항상 보고 싶어 하다가 정작 금강산에 한 번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그 굉장한 만이천봉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아, 아, 아』하고 소리만 세 번 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화려하고 너무 웅장하고 너무 아름다워 말을 못했던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자연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적이 특별히 한 번 있습니다. 그것은 알프스 산을 보고 그런 것도 아니고 금강산을 보고 그런 느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 그랜드 캐뇬 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면서 대협곡이 생겼습니다. 놀랜 것은 차 타고 가서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가 보니까 좌우의 절벽과 모든 것이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아 소리밖에 다른 말 할 것이 정말 없었습니다.

    이번에 베를린 다녀오면서 전에 얻지 못한 한 가지를 얻었습니다. 전에는 유럽에 갈 때 인도로 해서 갔지요. 지금은 제트기가 있어서 동경에서 직접 북극으로 넘어갑니다. 북극을 다녀서 갔습니다.

    책에서는 읽었지만 전에 보지 못하던 북극을 가까이 하게 될 때에 북극에 만 볼 수 있는 오로라라고 하는 극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비행기 위에서 정말 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많은데 특별히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아!』하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선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게 무언지 압니까? 여러분,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귀하고 가장 값지고 가장 고귀한 선물이 하나 잇는데 그게 누굽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입니다.

    사도 바울이 언제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는 말로 형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의 표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요한도 이렇게 기록한 줄로 압니다. 요한一서 十七장 十四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골로새 二장 九절에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그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여기 신성이란 말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한 것이 육체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무한하셔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권능은 무한하셔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의 긍휼과 자비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의 겸손도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받으신 고난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의 사랑은 너무 넓고, 너무 높아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지각과 언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이 지상의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자연계를 통해서 주시는 은사도 감사하려니와 말할 수 없는 그 은사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 여러 가지 은사를 받았고 여러 가지 선물을 다 받는 중에 참 말할 수 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선물 받은 사람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한가지지요. 선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선물 받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못하면 그게 뭡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 세상에 볼 것이면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에 로마의 문인 시세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의 말은 최고의 덕일뿐더러 모든 덕의 어머니이니라.』사실 그렇습니다. 반대로 배은망덕은 가장 추한 죄일뿐더러 모든 죄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문명할수록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습니다.

    우리 고아원에서 자라난 간호원 하나가 서독에 가서 있는데 나한데 편지를 하면서 하는 말이 여기 와 보니 독일 사람들은 무슨 조그마한 일만 해 주어도 언제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보니 독일 사람들이 그만큼 문화가 놓은 사람들입니다. 문화가 놓을수록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언제나 감사하다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여호와께 사례하라 그 모든 은총을 잊지 말라.』심지어『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권면을 우리가 들을 때 어떤 때는 믿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나? 물론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말은 누구에게나 하는 알은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니 누구나 이런 감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를 맞아서 중심에 영접한 사람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 환난 가운데도 그리스도께서 같이 계십니다. 그런 사람은 실패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 실패 가운데도 그리스도께서 같이 계셔서 재기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슬픔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왜? 슬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같이 계셔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런 이는 죽는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왜? 주님께서는 부활과 생명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중심에 받아서 언제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은 캄캄한 밤에도 언제나 별을 봅니다.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가시나무에서도 장미꽃을 봅니다. 꽃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 가운데서도 무지개를 보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체험인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현이 됩니다.

    우선 감사한 사람은 그 마음에 표현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합니다.『초막이나 궁궐이나, 높은 산이 거친 들이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하늘 나라가 그 마음에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입으로도 감사가 나타납니다. 찬송을 부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어거스틴의 저서를 보면 그 때에 믿던 사람들은 피차에 서로 이별할 때에 언제나 비오그레티아라고 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감사가 인사처럼 되었습니다. 감사한 사람은 그 감사가 모든 봉사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문둥이를 고쳐주시고 조용히 집에 가서 있으라고 했더니, 그가 집에 있었습니까? 아니요,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돌아다니면서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 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전도를 합니다.

    이번 세계 복음화 대회에 가서 미국서 온 이스터 심파스라고 하는 이를 만났는데 그 분이 저에게 와서 자기가 만든 활동 사진을 좀 봐달라고 해서 가 보았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분은 큰 실업가로서 처음에 사업을 잘 하다가 술 먹기를 시작하여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아주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된 후에 술을 딱 끊고 너무 감사해서 활동 사진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전도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일들이 더러 있지요. 감사한 마음은 전도로 표현됩니다.

    물론 거기에 한 가지는 더 있겠지요. 자기가 남에게 선물을 많이 받은 후에는 물론 답례할 생각이 나겠지요. 감사 예물도 좀 드리지요. 그러기에 구약 시대에 보면 여러 가지 제사를 하나님께 들릴 때에 속죄제(贖罪祭)뿐 아니라 감사의 제사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감사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도 일년 동안에 한번씩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리지마는 이 예물을 드릴 때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독생자, 최고의 선물을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 물론 드리는 액수는 생활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적든지 많든지 우리의 참 정성의 표현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아시지요. 전에 인도의 한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거지를 하나 만났어요.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이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가 뭐 있겠습니까?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척 받더니 웃으면서 그 하인에게『얘! 금 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 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내가 이것을 대신 너에게 주니 받아라.』물론 거지가 감사히 받았지요. 그러나 속으로 탄식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왜?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 주머니를 내가 다 받았을 텐데 하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 보세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감사의 예물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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