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1-10/ 질그릇에 담긴 보배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12:25 read : 1749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四․七)
一九六九년 새해 아침을 당해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우리 교우들과 온 한국의 교회와 우리 민족 전체 위에 임하시기를 먼저 기원합니다.
말씀에 보배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보배라고 하는 말의 뜻은 그 전 절을 읽어보면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보배라고 여기에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의 보배라고 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는 문자 그대로 보배올시다. 값진 진주보다 더 귀한 보배입니다.
이 보배를 통해서 인간이 생명을 얻습니다. 죽음 가운데서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이런 보배 저런 보배 금이니 은이니 다이아몬드니 하지마는 가장 귀한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 다음에 한 말씀을 더 주의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이것은 보배와 너무 대조적인 현상입니다. 이렇게 귀한 보배를 우리는 질그릇에 가졌다.
질그릇은 무슨 놋그릇이 아닙니다. 은그릇이 아닙니다. 금 그릇이 아닙니다. 진흙으로 빛은 토기입니다. 이렇게 귀한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여기의 질그릇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질그릇과 비슷합니다. 약합니다. 파손되기 쉽습니다. 초라합니다.
육에만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인간성도 내포합니다. 우리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성은 질그릇과 비슷합니다. 약합니다. 깨어지기 쉽습니다. 조심하지 아니하면 아주 손실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육체로 생각해 보든지 인간성을 생각해 보든지 모든 것이 질그릇과 비슷하여 약하고 실수하기 쉽고 넘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말씀할 때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보통 사람이 보면 사도 바울은 질그릇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몸이 약했던 것은 사실이요, 그 몸에 가시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요, 그이도 물론 성격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위대합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생각할 때에 자기 자신도 질그릇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을 깊이 느낀 것입니다.
그러하거든 하물며 우리 보통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며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받았다고 하고 세례도 다 받았다 하지마는 사실 내 자신을 생각해 보면 질그릇과 같습니다. 아주 허약하고 아주 약하고 파손되기 쉬운 우리 인간입니다.
오늘 이 점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주 값진 보배를 우리가 받기는 받았는데 이 보배를 받아서 간수하는 우리 인간 자체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다고 할 것이면 우리는 항상 기억할 것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질그릇 같이 약한 것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조심할 것입니다. 질그릇은 잘못 다루면 안 됩니다. 잘못 다루면 깨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질그릇에 불과한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몸 가지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사교 생활이나 모든 일에 있어서 조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근신하라고 했습니다. 근신하고 깨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러 다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약한 것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조심할 것입니다. 죄를 멀리할 것입니다. 유혹을 멀리할 것입니다. 내 약점이 있는 그곳을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경계합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혜는 뱀과 같이 하고 순하기는 비둘기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이 귀한 보배를 질그릇에 받아서 간수하는 우리는 우리 몸 가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분명히 깨달아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낮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겸손할 것입니다. 무슨 재능이 있든지 무슨 은혜가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보배에 속한 것이며 내 자신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생각할 것입니다. 무슨 일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자세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랑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물며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기 자신을 낮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그 나귀가 걸어가는 길에 옷을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부르며 찬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습니다.
만일 그 나귀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잊어버리고 자기가 잘나서 찬양 받았다고 하면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이 어디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내가 질그릇인 줄 깨달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겸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내 자신이 이런 질그릇에 불과한 것을 깨달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권능은 약한데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고 나를 믿지 아니하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그 긍휼과 자비만 믿고 그를 의지하고 무엇이든지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각에서 뛰어난 능력을 나타내어 크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새해 아침을 당해서 우리 개인으로 보나 교회로 보나 민족적으로 보나 다 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기억할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나 땅은 평탄한 시대가 아니요 평온한 땅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언제 무슨 일이 어디서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매일 매일 삽니다.
원수는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이러한 땅에서 내가 받은 이 귀한 보배를 우선 나를 위해 지키고 이 보배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하고 이런 사회 속에서 살면서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어느 방면에 있든지 그 곳에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해서 우리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할 것이면 내 힘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질그릇 같은 나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오히려 약한 것을 통하여 온전히 나타나시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봉사해야 나도 축복을 받고 우리 교회도 축복을 받고 우리 나라도 축복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