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5:17/ 과학 시대와 정신 혁명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15:26 read : 1608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五․十七)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온전히 그리스도께 몸과 마음을 바치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롭게 지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하나님의 지음을 받아서 우리의 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성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새로 지어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 것은 온전히 지나가고 새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져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 사람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받으신 순서지에 있는 대로 이 시간에는 신앙 강좌로서 큰 제목을 七十년대의 크리스천, 혹은 기독인 이란 제목 아래서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七十년대의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생각하는 것이 더 분명할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급 一九七0년, 七十년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는 나날이 변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변하여지는 七十년대의 상황 아래에서 우리가 옳은 생활을 하고 이런 시대에서 우리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사회를 봉사하며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의 직책을 다하려고 하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 것입니다.
전에 제네바에서 존 칼빈 선생이 교회를 인도할 때에, 그 때에는 주일날만 성경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칼빈 선생이 주일날 이외에도 성경을 항상 계속해서 가르쳤습니다. 성경 진리와 그 시대의 신앙과의 관계에 대해서 항상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 있게 되었는고 하니 제네바에 있는 교인들은 그 모든 성경에 관한 지식과 일반 상식이 당시의 구교의 주교나 신부보다도 낫다고 하는 말이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시대에 살면서 신앙과 진리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일반상식에 대해서도 일반 모든 다른 동포들보다 뛰어나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특별히 과학 혁명과 정신 혁명이란 제목 아래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우주 시대라 말합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람이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시대입니다. 혹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원자 시대라고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인간이 물질을 분석할 줄을 알아서 원자까지 분해해서 그 핵의 힘을 이용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원자력으로 전기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또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원자탄도 만들게 된 까닭입니다. 혹은 어떤 이는 이 시대를 컴퓨터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옛날 같으면 동양에서 기껏해야 주산을 가지고 계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자를 이용해서 사람의 머리로는 얼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컴퓨터라는 전자 계산기를 통해서 계산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말하지마는 결국은 한 가지 말입니다. 어떻게 우주 시대가 되었느냐, 어떻게 원자 시대가 되었느냐, 어떻게 컴퓨터 시대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과학의 발전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시대는 과학 시대입니다.
과학 혁명 시대입니다. 혁명이라고 하는 말은 급격한 변천을 의미합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생활은 급격한 많은 변천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과학에 대한 이해를 옳게 가져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그래야 이런 시대에서 복음을 바로 전파하고, 이런 시대에서 우리가 사회를 바로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특별히 이런 면을 생각해서 七0년대에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과학 시대를 살게 되는데 여기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줄 생각해서 이 문제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과학에 대한 공부가 전혀 없는 분들에게는 얼른 이해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문제들을 생각하고자 하니 주의 깊게 들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 먼저 잠깐 생각할 것은 과학이 인간의 생활에 얼마나 큰 변천을 가져왔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잘 목도하는 것입니다. 가령 교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세요.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을 때는 어디 가려고 하면 거의 걸어갔습니다.
조금 잘 사는 사람이래야 말 타고 갔습니다. 조금 더 잘 사하는 사람은 마차를 타고 갔습니다. 혹은 부자들은 교자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다닙니까? 자동차를 타고 얼마나 빨리 다닙니까.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비행기 가운데도 이제는 좀 멀리 가려고 하면 제트기를 타고 갑니다.
오래지 않아서 보통 사람도 우주선을 탈 날이 올 것입니다. 말하자면 과학을 통해서 교통에 혁명이 왔습니다. 교통혁명이올시다. 큰 변천을 가져왔습니다. 그것뿐일까요. 통신에 대해 보세요. 옛날은 누구에게 편지를 전하려고 하면 다른 길이 없었어요. 우편 제도가 없었으니까 그저 편지를 써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편지를 갔다가 올리는 그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약 가운데서 고린도 전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이런 편지들을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냈는데 거의 다 어떻게 보낸 줄 압니까? 우편으로 붙인 줄 압니까? 친 편에 다 보냈습니다.
그 곳에 가기까지 아마 한달 여 허비한 데도 여러 곳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지금 편지를 붙이려면 비행기로 붙이면 얼마나 빨리 갑니까? 그러나 그뿐입니까. 전보가 있지 않습니까. 전에는 서울 가까운데 나 전화했지만 지금은 미국에 척 불러도 서울 안에서 하는 것처럼 가까이 드립니다.
이제는 인공 위성을 통해서 이용하게 되니까 전에 보다 퍽 편리하게 됐습니다. 참, 통신 혁명이 됐습니다. 뭐 그것뿐이 아닙니다. 가령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보통으로 말하는 대로 매스컴 시대라, 매스 커뮤니케이션 시대라 말합니다.
그것은 옛날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말하려면 거저 목소리가 커야 많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十七세기에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설교가 스펄존 같은 분은 매주일 약 六천명의 교인을 한 예배당에 모아 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확성기가 있어서 한 줄로 압니까. 육성으로 했습니다. 본래 그 분은 음성이 좋았습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확성기가 있기에 말이지 제가 이렇게 나지막한 소리로 하는 이 말을 확성기가 없이 한다면 저 끝에서 들릴 것 같습니까? 안 들릴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안뿐입니까.
라디오란 것이 있어서 전국에 일시에 말할 수도 있고 세계적으로 연결하기만 하면 여러 천만 명에게 한꺼번에 말할 수 있는 이런 시대가 된 것이 아닙니까. 뭐 음성만 듣는 시대입니까. 텔레비전에서는 말하는 이의 얼굴까지 보는 시대가 아닙니까. 우리 나라에는 아직 컬러 텔레비전이 안 들어왔습니다.
그 천연색 텔레비전이 아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천연색 텔레비전이다 나옵니다. 옷은 무슨 빛깔을 입었는지 모두 다 보입니다. 입술에 새빨갛게 바른 것 그대로 다 나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스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 그뿐인가요. 지금 사는 시대를 대량 생산 시대라고 그러치 않습니까. 전에는 천을 짠대야 집안에 베틀을 놓고 거저 여자 한 분이, 폭 넓이도 얼마 안돼는 것을 짰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짭디까? 여러분 방직회사에 가 봤지요. 얼마나 넓게 짜며 사람은 옆에 가만 서 있기만 합니다. 직공들은 옆에 서서 구경합니다. 누가 짜는고 하니 기계가 저 혼자 짭니다. 그래서 이 방직 기계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이후 영국에서 소위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산업으로 크게 변천이 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으로 인해서 인간 생활이 큰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한 가지 결과는 뭡니까. 세계에 먼 곳이 없게 됐어요.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서 꼭 가야할 일이 있으면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서 거저 二十四 시간 이내에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평양엔 아직 못 가지요. 하지만 어디나 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제 주일날, 우리 교회서 二부 예배를 보고 이 아래층에 내려가서 미국에서 온 손님들을 잠깐 만났는데 어제 아마 四十명 온 것 같아요. 미국에서 온 사람이 많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홍콩에서도 손님이 왔지요.
대만에서도 오고 비율빈에서도 손님이 왔습니다. 내가 얼른 인사해도 네 나라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같이 봤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二十년, 三十년 전에 있을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까?
지금은 이렇게 먼 곳 가까운 곳이 없어지게 되었어요. 세계가 한 집안이 됐습니다. 전에는 큰 강만 하나 있어도 아주 멀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 있습니까. 격강천리(隔江千里)라고, 강 하나만 있으면 천리만큼 멀다고 했습니다. 사실 배 없으면 못 가니까 만리지요. 그러나 지금은 강이 문제입니까. 비행기 타고 다니는데. 전에는 큰 산맥만 하나 있어도 그것이 국경이 됐습니다.
만주와 우리 나라와 국경이 된 것은 백두산이 가운데 있고 두만강 압록강이 있어서 국경이 됐습니다. 지금은 높은 산, 그게 문제입니까? 제가 역사책을 보니 알프스 산을 넘어 다닌 사람이 얼마 안됩니다.
역사상으로 알프스 산을 넘은 대장들이 몇 사람 있지요. 군대들을 데리고 넘은 카르 타고의 유명한 한니발 장군 같은 분들, 그 다음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를 정복한 일이 있지요. 옛날에는 알프스 산 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알프스 산이 문제입니까? 이렇게 약한 사람도 비행기 타고 알프스산 꼭대기 위로 대여섯 번 넘어 다녀 보았습니다. 거 알프스 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 이만큼 우리 인간 생활에 변천을 가져옵니다.
또 이 과학 시대의 생활에 한 가지 현상은 자연히 상업과 공업이 발전되니까, 농촌에서 사람들이 도시로 계속해서 집중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압니다. 서울이 五백만이 넘었습니다. 대구도 내가 이번에 내려가 보니까 백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부산이 一百 二十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대도시로 사람들이 집중이 됩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인간 생활의 변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여러 가지 문제도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이 여러 가지 면으로 인간 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오게 되니 자연히 학생들도 무슨 인문 계통보다는 자연 계통을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아마 한국의 대학도 공과대학 들어가기가 더 어려운 모양입니다. 옛날에는 인문 계통에 공부하는 이들이 많더니, 지금은 과학을 배워야만 된다고 하면서 물리니 화학이니 무슨 전기학이니 원자 학이니 해서 거저 과학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국적인 사정에서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학이 큰 영향을 주니 과학에 대한 오해를 가지는 사람도 점점 많게 되었습니다.
가령, 이렇게 과학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 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오니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을 더러 하게 되는고 하니『아 지금은 과학 시대야. 과학만능이야. 과학이면 못할 것 없어』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됐습니다.
자, 여러분 그건 너무 도에 지나치는 생각이요, 과학에 중독이 된 사상입니다. 과학이 여러 가지로 하는 것이 많지마는 과학은 만능은 아닙니다. 또 과학을 치중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진리는 믿을 수 없어, 진리라고 할 것이면 실험실에서 증명할 수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심지어는 무슨 얘기까지 나오게 되는 고 하니 전에 후루시초프 같은 사람은 『아 우리 소련 사람들이 인공위성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빙빙 돌아다녀 봐도 하나님을 못보고 내려왔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망원경을 끼고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야 하나님은 안 보이니 하나님 계신지 안 계신지 알 것 뭐 있나.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또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소위 과학으로 말미암아 중독 된 사람들입니다. 과학만 잘 발전시키면 사람은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十九세기 말엽에 이런 사상이 팽대(膨大)해서 소위 유토피아 사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유토피아란 말은 이상향(理想鄕)이란 뜻입니다. 거저 과학이 발전돼서 세상이 변하게 되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된다고 합니다. 싸움 안하고 살고, 돈 없어도 살고, 돈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가 이후에 사실상 공산주의를 낳았습니다. 이런 사상이 생기게 됩니다. 자 그러니 여러분, 과학이 아주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중독이 되어서, 바른 면을, 보다 더 중요한 면을 잃어버리는 시대에 우리가 살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사는 우리로서는 과학과 신앙과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자, 먼저 과학의 제한성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고 과학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제한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과학이란 것은 우주에 있어서 물질을 연구해서 물질 하나 하나의 성품을 연구하고 알아내고 그 물질에 운용되는 소위 자연법칙을 발견해 내고 물질 사이에 운행되는 법칙을 깨달아서 그 법칙과 지식을 가지고 인간 생활에 필요한 새 것을 만들어 내서 우리 인간들에게 혜택을 주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가령 이 우주 전체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으며 이 물질 전체의 뜻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며 이 우주의 궁극적 운명이 어떻게 되었나?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과학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과학의 영역은 물질 자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가령 천문학 할 것이면 별 하나 하나의 형편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그 별이 얼마나 큰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와 얼마나 먼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그 별이 얼마나 빨리 궤도를 돌아가는지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그 별이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는지 이런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별들이 어떻게 되어서 있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것은 종교의 영역입니다. 신앙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이런 우주의 전체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창세기 一장 一절에『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라고 우리에게 교훈 하여 주시는 것이올시다. 우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과학이 인간에 대한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가령 과학적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인간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 안의 모든 기관이 어떠하고, 혈액이 어떻게 순환하고 간장은 무슨 역할을 하고, 폐장은 무슨 역할을 하고, 세포 조직이 어떻게 되었고, 신경 계통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 모든 것을 다 분석하고 해부해서는 우리에게 과학이 보고해 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전체입니까?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 하러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 단순히 육신뿐인지, 이 속에 영원한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과학이 무슨 말을 합니까? 아니올시다.
과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함구합니다. 입을 다뭅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모릅니다. 그것은 종교와 신앙의 영역입니다. 과학의 영역은 아닙니다. 이렇게 과학은 그 영역이 제한돼 있습니다.
주후 六세기와 七세기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영국 본토에 전파될 때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지요. 그 때 영국 남방에 조그만 나라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나라, 아마 노오던불리아란 나라 같습니다.
이 나라에 어떤 기독교 선교사가 가서 전도를 합니다. 왕에게 가서 예수를 믿으라고 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왕이 가만 들어보니 좋은 말이 많은데 자기 혼자 결정할 수가 없어서 하루 저녁은 모든 그 나라의 유력한 인물과 대신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 이거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가 들어와서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믿으면 좋다고 하는데 당신 네 들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 나라에서 이 종교를 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 토론을 합니다. 밤새도록 토론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얘기를 저런 사람은 저런 얘기를 합니다. 결론이 잘 안 납니다.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불찬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데 밖에는 비가 옵니다. 소나기가 아주 심하게 옵니다. 캄캄합니다. 방안만 불을 켜 놓아서 아주 밝은데, 여름이니까 문을 열어 놨습니다. 어떤 새가 한 마리 밖에서 날아 들어옵니다.
그 밝은 방을 날아 건너가서는 저편에 문이 열렸는데 그리로 날아 나가 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에 늙은 대신 하나가 일어나서 천천히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 이 새를 보셨지요. 새가 바깥 캄캄한 곳에 있다가 잠깐 밝은 방안에 날아들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캄캄한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 한편 생각하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까요. 우리가 과거를 모릅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밝은 세상에 잠깐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살다가 캄캄한 죽음 속으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들이 전파하는 새 종교인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인간이 과연 어디서 왔으며 또 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에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하면, 다시 말하면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내 생각으로는 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대신들도 다 찬성을 했습니다. 『아 들어보니까, 이 새 종교는 그것을 분명히 성경에서 가르쳐 주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여러 나라 가운데서 노오덤불리아란 나라가 제일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일화가 교회사에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의 깊은 문제에 대해 과학은 무슨 말을 못합니다.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영역입니다. 종교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많아서 전에도 제가 얘기를 한 줄 알지마는 그래도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싶어요. 우선 이 우주에서 되는 모든 일은 제一원인과 제二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가령 비가 어떻게 오느냐? 를 살펴보십시다.
과학자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얼른 잘 설명합니다. 비가 왜 옵니까? 비는 달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 태평양 바다나 강 위에 있던 물들이 따뜻한 햇빛을 받게 되면 수증기가 돼서 다 올라갑니다. 수증기는 가벼우니까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공중에 올라가서는 구름이 됩니다. 빙빙 떠돌아다니다가 찬바람을 만나게 되면 그 수증기가 다시 응고되고 작은 빗방울이 되지요. 그래서 빗방울은 무거우니까 다시 아래로 떨어지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비가 옵니다. 과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 그런데 어떤 학생이 어렸을 때부터 잘 믿는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합시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슨 말을 들어 왔는고 하니 비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비는 하나님께서 주시고 이슬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늘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선생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더니 괜한 말이로구먼 주일학교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구먼, 아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닌데 뭐 하나님께서 비를 주다니.』
이렇게 어떤 학생이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닙니다. 과학은 제二원인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一원인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어떻게 가르쳐 줍니까. 비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고 가르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물을 내신 것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물의 성질을 누가 냈습니까. 보통 온도에는 물이요, 좀 뜨거우면 수증기요, 좀더 추워지면 얼음이요, 이렇게 얼음의 성질을 만든 분이 누구입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 지구에 대기의 온도가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 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一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에서 과학 선생이 비가 어떻게 온다고 설명하는 것은 제二원인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은 모든 사물의 제一원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과학적 대답도 옳고 성경의 대답도 옳습니다. 하나는 과학적 대답이요, 하나는 종교적 대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든 사물에 대해서 제一원인과 제二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과학에 대해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과학이 이렇게 인간 생활에 대해서 큰 영향을 주는데 그래도 과학은 인간의 외부 생활에 변천은 가져오지만 인간의 내부 생활의 변천은 과학 자체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산다고 그 사람이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살던 가정이 큰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고 그 집이 화평하게 됩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가만히 보면 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오히려 큰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불화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자 그래서 여러분 이런 무서운 얘기를 듣지 않았어요. 몇 해 전 외지에서 본 얘깁니다.
뉴욕에서 한 번은 이발업자 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도 그런 줄 알지마는 이발업자 조합이 큰 호텔에 모여서 대회를 엽니다. 대회를 하는 중에 이발업자가 미국 사회를 위해서 어떤 공헌을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연구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저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과 깡패 많은 빈민굴, 그런데 가서 아주 오래 머리를 못 깎은 사람, 어지러운 사람을 데려다가 이발을 잘 해주자』고 했습니다. 모두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들 해서 아주 어지러운 사람, 길가에서 제집도 없어서 바깥에서 잠자는 사람을 하나 데려다가 먼저 사진을 찍었습니다.
머리가 밤송이 같고 거저 얼굴이 쥐, 고양이 같고, 의복이 너절하고, 뭐 형편 있습니까. 먼저 그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발을 했습니다. 잘 머리를 깎고 기름을 바르고 얼굴에는 분을 바르고 그렇게 해놓으니 의복이 너절해 못쓰겠단 말입니다. 그래서 옷도 한 벌 해 주자고 해서 좋은 새 양복을 사다가 입혔단 말입니다.
그리고 세워 놓으니 신사가 됐단 말이요. 얼굴이 번뜻하고 아 멋진 신사가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사진을 한꺼번에 놓고는 자 이것 보라고, 우리 이발 업자들이 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는가. 이렇게 너절한 사람을 변해서 이렇게 신사를 만드는 것이 이발 업자의 공헌이 아니냐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고 하니『이만한 사람을 도로 그 빈민굴 속으로 돌아가서 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직업을 하나 얻어 줍시다. 이만하면 이 사람이 자기 일을 하며 살 것 아니겠소.』그래서 직업을 구하는데 마침 호텔에서 엘리베이터(승강기) 운전할 사람이 필요한 것을 알고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이 사람을 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섭을 해서 얻어 주었습니다. 그러고서는 돈을 그 사람한테 넉넉히 주면서『이 돈을 가지고 어디든지 하숙집에 가서 잘 자고 내일 아침 九시에 오시오. 그러면 당신이 여기에 취직을 해서 승강기 운전하는 사람으로 일하게 될 것이고 좋은 사람이 될 터이니 그렇게 하시오.』 그는 감사하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九시가 되어서 이 사람이 오기를 아무리 기다려도 이 사람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아 十시가 되어도 안 옵니다. 이거 이상하다. 十二시가 되어도 안온단 말입니다. 아 이상하다. 어떻게 됐나 찾아봅시다.
여러 사람이 본래 살던 그 마을에 가서 찾습니다. 오후 三-四시쯤 해서 두루 찾다가 어느 거리에서 새 양복을 입고 구석에 쿨쿨 잠자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흔들어 깨워 봤습니다. 어제 왔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아무리 깨워도 깨어나질 않았습니다. 거 뭐, 얘기 더할 것 없지요. 이 사람은 양복 좋은 것 입고 이발 잘하고 아주 돈까지 가지게 되니 돌아가서는 나쁜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 먹고 도박하고 돈다 잃으니까 잘 데가 없어서 바깥에서 잠잤단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과학이 알겠습니까? 과학이 이 사람 이발해 줄 수 있습니다. 수염을 깎아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양복을 입혀 줄 수 있습니다. 분까지 발라 줄 수 있고 보기에는 번듯한 신사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그렇게 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먼저 마음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던들 다시 그런 대로 안 들어갔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과학의 제한이 여기 있어요. 과학이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기껏해야 사람의 외부의 생활의 변천만 가져왔지 속은 어떻게 할 재간이 없단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의 속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오늘 아침 여러분이 들으신 성경의 말씀『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은 새 사람을 만들려고 속으로 맘이 변해서 술 먹고 어지럽게 굴던 사람이, 술 먹을 마음이 없어지고 음란하던 사람이, 음란한 마음이 없어지고 속을 변해서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 한번 나아와서 온전히 그 마음을 바친 사람이 전적으로 변해서 새 사람이 된 것을 여러분이 많이 보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과학만 배워서는 부족해요. 경제 발전도 그렇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말할 기회가 있겠지마는 우리 한국이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많이 애를 쓰지요. 경제발전을 반드시 해야지요. 그러나 경제 발전만 해서 한국이 바로 사는 줄 생각합니까? 정신혁명이 필요합니다. 정신 혁명은 신앙으로 온단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돼야 새 생활을 할 수 있고 새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새 사회, 새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사는 二十세기의 전 인류가 당면하는 문제가 많은데 그 가운데도 한 마디로 말해서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인지 여러분, 생각해 봤습니까?
저는 몇 해 전부터 많이 생각해 봤고 지금도 가장 심각히 생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오히려 과학에 의해서 전 인류가 위협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과학이 발전돼서 우리 인간에게는 전에 없던 새 지식이 많아졌고 전에 사용 못하던 새 힘이 그 손에 잡히게 됐고 전에 없던 새 무기가 사람의 손에 잡히게 됐습니다.
가령 옛날에도 전쟁은 있었지요. 그 때는 싸워야 기껏 해서 창 가지고 싸움하고 칼 가지고 활 가지고 싸움을 했어요. 그러니까 싸움을 했대 야 사람이 몇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인간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二차 대전 마지막에 히로시마에 원자탄 하나가 떨어질 때 二十만의 일본 사람이 일시에 몰살했습니다.
지금 미국에다 만들어 놓은 원자탄과 수소탄, 소련에 만들어 놓은 원자탄, 수소탄, 또 영국, 불란서, 이제는 중공에까지 이렇게 많은 무기가 쌓여 있는데, 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이런 무기를 함부로 쓰게 되면 이 앞에 전세계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나 큰 문제입니다.
요컨대 무엇인고 하니, 과학의 발전으로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무기, 참으로 위험한 것이 많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을 사용할 사람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한 사람이 二十세기에는 더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마는 우리가 다 二十세기에 살지마는 세계의 역사를 내가 읽는 대로 二十세기처럼 가장 피비린내 나는 세계가 없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一차 대전에 얼마나 사람이 죽었습니까? 一九一八년 공산당 혁명이 일어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나치한테 많은 사람이 죽고 나치에게 유대 사람은, 이건 전쟁에 죽은 것이 아니고, 유대 사람이란 명목 아래서 六백만 명이 가스 챠넬에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런 일은 전에는 없었습니다. 세계 역사에 없었어요. 다른 민족이라고 六백만 명을 한꺼번에 죽였습니다. 二十세기에 말입니다. 二차 대전에 동서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一九四八년에 전 중국이 공산당에게 점령되면서 중국 안에 있던 교육받은 사람, 재산 있던 사람, 믿는 사람들이 몇 천만 명이 죽었는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최근에 북경에 있다 나온 어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요 몇 해 안에 중공 안에서 문화혁명이 있을 때에 북경 안에서만, 아마 一백만 명은 죽었을 것이랍니다. 이런 무서운 세상에 삽니다.
지금 방금 북한에서는 밤낮 연구하는 것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남한을 무력으로 정복해 볼까? 하는 것입니다. 틈만 찾아서 괴롭히려고 듭니다. 이렇게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무서운 무기가 손에 잡히게 됐는데 사람의 마음은 순해지지 못하고 악한 그대로 있단 말입니다.
옛날 굴속에 살던 야만의 그 마음, 욕심, 물욕, 정욕, 권세욕, 지배욕, 허영심, 시기, 질투의 죄악이 사람의 마음에 그냥 있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二十세기의 가장 큰 딜레마는 어떻게 되려는 건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선하게 못 만듭니다. 오직 이런 인간을 파멸에서 구원할 이는 하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선하게 만들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복음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보다 이 시기는 정신 혁명이 가장 필요한 시기입니다. 내 이런 얘기는 언젠가 했을 것입니다.
전에 어떤 과학자가 사람을 만들기 원해서 사방으로 다니며 연구를 해서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버튼만 누르면 사람이 움직이게 만들어 놓고는 여러 친구들과, 유명한 과학자들, 정치가들, 이 과학자의 친구들을 다 초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 축사도 했겠지요. 여러 가지로 예식을 한 다음에 버튼을 눌렀어요. 아 그러니까 사람 만들어 놓은 것이 우물우물합니다. 눈을 번쩍 떱니다. 눈을 굴립니다. 아,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앉습니다. 일어나 섭니다.
보니까 키가 九척이요 또 얼굴을 잘 만들어서 얼굴이 미남으로 생기고 아주 든든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인공 인간이 어정어정 기어 나옵니다. 과학자와 그의 부인이 서있는 곳까지 어정어정 오더니 손을 번쩍 들어서 다짜고짜로 과학자 부인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단번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아 그러더니 과학자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그러니 정치가니 과학자의 친구니 모두가 혼비백산이 돼서 사방으로 도망합니다. 그런데 이 과학자가 사람을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한 가지만은 실패를 했다고 그럽니다.
뭔고 하니 그 속에 양심을 못 넣어 주었답니다. 이것은 우스운 얘기지마는 현대 문화의 풍자입니다. 현대 문화가 모든 인간의 외부적인 것은 다 만들지마는 인간 속의 양심은 못 넣어 준다는 말입니다. 과학은 새 사람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 한국이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하려고 하면, 통일도 잘 하려고 하면 세 가지 전선에서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첫째는 반공 전선입니다. 철저히 공산주의를 막아내야 합니다. 이건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모든 방면으로 반공전선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경제 전선입니다.
빈곤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됩니다. 빈곤한 농민들, 빈곤한 노동자들도 다같이 참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서 우리가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과학도 공부하고 경제 발전도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범죄 하는 사람, 부정과 부패, 이것이 구축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정신적인 방면이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반공을 잘하려고 해도, 아무리 경제 건설을 하려고 해도, 내부가 썩어서 부정과 부패와 죄악이 많아지면 결국은 나라는 속으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七十년대에 있어서는 정신 혁명 운동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온 사회의 지도자들이 이 정신 혁명에 대해서는 누구를 바라보는지 압니까? 우리를 바라봅니다. 믿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사명이 이 七十년대에 사는 크리스천의 사명이요, 우리 민족을 영적으로 구원해서 정신 혁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한 사람 두 사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들을 새 사람을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새 사람 만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점점 우리 사회에 정신 혁명의 기풍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직장에 있던지 가정에 있던지 참 빛 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돼서 우리 사회에 정신적 혁명을 일으켜서 도덕적으로 중생하고 명랑한 사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七十년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一九七0년대에 이 나라 이 땅에서 살게 한 것은 바로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를 살게 하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 책임을 다하시렵니까? 그렇게 하려면 오늘 이 성경 본문을 잊지 맙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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