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五․十六-十八)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큰 특색이올시다. 오늘 이 시간에 특별히 셋째의 특색, 즉 신앙생활과 감사에 대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 五장 二十절에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골로새 三장 十五절에는『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빌립보 四장 六절에는『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는 바와 같이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이 세 편지는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이올시다.
로마 감옥 속에서 쓰면서 이렇게 감사하라고 외쳤습니다. 사도행전 二十七장 三十五절을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로마에 가는 길에 지중해에서 큰 폭풍우를 만나서 열 나흘 동안이나 해와 별을 보지 못하는 광풍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바울의 감사의 원천이 어디 있습니까? 환경은 아닙니다. 그는 도처에서 핍박을 받으며 산 분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그는 다메섹, 루스드라, 이고니온, 빌립보, 데살로니가, 에베소, 예루살렘 등 여러 곳에서 핍박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十一장에 그가 친히 기록한 바와 같이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한 사람이올시다. 이런 감사의 생활은 건강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이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건강의 축복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친히 기록한대로 그의 몸에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를 괴롭게 했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에서는 병 때문에 여행을 못하고 머물러 있는 동안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분에게는 가정의 위로가 있은 것도 아닙니다. 가정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분에게는 그런 위로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일생 동안 독신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예수 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머리 둘 곳 없이 방랑의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가운데는 감사한 생각이 충만했습니다.
이상에 말한 것과 같이 외계에 있은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 있었습니다. 환경에 있은 것도 아니고 건강에 있은 것도 아니고 가정에 있은 것도 아니고 물질에 있은 것도 아니고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 있는 믿음이올시다. 믿음은 뿌리요 감사는 그 열매였습니다. 우선 그는 믿음으로 구속의 기쁨이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로마서 七장을 보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깊은 고민을 겪은 분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한 분입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닙니다. 내 양심 앞에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심적으로 율법 그대로 지켜보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그 육신 속에 죄의 법이 있어서 항상 그로 하여금 실패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은 못하게 하고 원치 아니하는 것은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탄식하였습니다.『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그러다가 예수 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믿는 가운데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외쳤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그리스도를 인해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九장 十五절에는『말로 다할 수 없는 은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이 은사가 무슨 은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는 말로 얼마나 고맙다고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감격이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는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一장 十二절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핍박(逼迫)자요 훼방 자요 폭행자이었노라.』그는 몰라서 그리스도를 핍박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폭행을 한 사람이올시다. 핍박을 하고 훼방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자기를 불러 이 복음을 전파하는 직분을 맡겨 주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사도 바울은 너무 감격해서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는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감격할뿐더러 또한 우리가 직분을 받았다고 하면 얼마나 더 감격한 일입니까? 넓은 의미에서는 누구든지 직분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직분은 누구나 받았습니다. 이런 감격이 그의 심령 속에는 언제나 가득 찼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그의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은 진리가 있은 것입니다. 모라서 八장 二十八절에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체험적으로 아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안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건강이나 질병이나 모두가 택함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선을 이루게 한다고 하는 이 진리를 그는 체험적으로 안 것입니다.
찬송가 三四八장 첫 절을 여러분도 기억하시지요.『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이 믿음이 사도 바울에게 있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 후서 六장 九절과 十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이와 같은 믿음과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이 믿음은 감사의 열매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감사는 얼마나 하는지 그것을 보고 그의 믿음이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 알 수가 있다는 그 말입니다. 믿음을 재어보는 자(尺)와 같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믿음이 아주 없는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一장 二十一절에『믿지 아니하는 자는 감사치도 아니하고』이렇게 단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농사를 잘해서 쌓을 창고가 부족한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 하나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어떤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연명할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왜? 이 가난한 과부는 그 마음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으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을 만듭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돈을 잘 번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믿음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이 충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감사가 그 마음에 충만해집니다. 친지만물 일월성신을 바라볼 때에도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산천초목과 오곡백가를 바라볼 때에도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봄 동산에 꽃을 볼 때나 여름에 녹음방초(綠陰芳草)를 볼 때에나 가을에 붉은 단풍을 바라볼 때에나 겨울에 흰 눈을 바라볼 때에도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큰 감격에 넘쳐 감사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부모에게도 감사할 줄 압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회의 은혜를 깨닫고 사회에 감사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국가의 은혜도 깨닫고 국가에 대해서 충성을 다하고 감사할 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로마의 유명한 시세로는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뿐더러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되느니라.』사실 그렇습니다. 감사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남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물의 한 일을 도모할 수가 전혀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는 이는 자연히 봉사를 잘하게 됩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을 때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그 열병을 고쳐주시니 그 여인이 곧 일어나서 예수 님과 그 제자들에게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곧 봉사를 했습니다.
왜? 감사해서였습니다. 예수 님께서 두 소경을 만나서 고쳐주면서 조용히 돌아가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부탁해 보냈는데 그들은 이런 부탁에도 불구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파했다고 그랬습니다. 왜? 너무 감사해서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이 아까워서 왜 향유를 허비했는가 고 책망을 했는데 베다니 마리아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그 발에 부어주었습니다. 왜?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였습니다. 누가 교회를 제일 열심히 봉사합니까? 감사한 마음이 많은 이입니다.
누가 제일 열심히 복음을 전파합니까? 감사함 마음이 많은 이입니다. 누가 정성으로 헌금을 드립니까? 감사한 마음이 많은 이입니다. 누가 효자와 효녀가 됩니까?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 많은 이입니다. 어떤 직장에서든지 감사한 마음이 있는 그 직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충성되게 잘 감당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왜 반역자가 되었습니까? 감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는 배반해서 역적이 되었습니까?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감사는 이렇게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에 다니엘 같은 사람은 조서에 어인 이 찍힌 줄을 알고도, 다시 말하면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다 사자 굴에 넣으라는 조서에 왕의 인장이 찍힌 줄 알고도, 그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와 감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욥의 환난을 여러분이 다 기억하십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유에서 큰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모든 재산이 일시에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잘 생겼던 자녀 十남매가 하루아침에 몰살을 당했습니다. 이 비참한 소식을 듣고 욥이 남긴 말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 아십니까? 욥기 一장 二十一절을 읽어보세요.『내가 적신(赤身)으로 모태에서 났으니, 적신으로 돌아갈 찌라 여호와 주시고 여호와 거두시니 여호와의 이름을 가이 찬송하리로다.』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나서 손 양원 목사님의 아들 형제가 공산당에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때 손 목사님은 장례식에 나와서 여덟 가지로 감사를 했습니다. 한 집안에 순교자 하나만 나도 감사한 일인데 우리 집안에 둘씩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구약에 보면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라고 했는데 이 어린것들의 피가 이 앞으로 교회의 종자가 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등등 그는 여덟 가지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올시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도 들으셨지요. 하나님께서 한 번은 어떤 교회에 천사 둘을 내려보냈다고 했습니다. 천사 둘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주어 내려보내면서 한 천사는 그 교회에서 감사를 얼마나 하는지 그 감사하는 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두 천사가 교회에 내려갔다가 올라가는데 한 천사는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무거워 겨우 올라오는데 한 천사는 가쁜 한 것을 가지고 올라옵니다. 간구하는 바구니는 가득한데 감사하는 바구니는 거의 비었단 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감사의 바구니가 가득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에 어떤 성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우리 땅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하늘에 올라가면 천사가 그 감사를 받을 때 다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변한다. 그래서 땅에서 드리는 성도의 감사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 나라를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한다.』
오늘 우리 교회가 하늘나라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아시아 복음대회에 가니까 회교 나라에서 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파키스탄도 회교 나라, 아프가니스탄도 회교 나라, 말레이 자체도 회교 나라입니다.
회교를 설립한 마호메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한 번 꿈에 큰 천사를 보았는데 머리가 七만이요 매 머리에 얼굴이 七만이요 매 얼굴에 또 입이 七만이요 매 입에 혀가 七만이요 매 혀가 七만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더라.』
이렇게 하늘은 찬송과 감사가 충만한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은 감사와 찬송으로 충만하면 이 교회에 하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