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30:15-20/ 청년과 그 선택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54:13 read : 156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 三十ㆍ十九)
이 말씀은 나이 많은 모세가 일생토록 자기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광야 四十년을 지나고 세상을 떠날 기약이 가까울 때에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들을 모아 놓고 자기가 죽기 전에 청년들에게 꼭 할 말을 다하고 결론으로 한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네가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생명의 길이 있고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복 받는 길이 있고 화를 받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자유입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우리 인간에게서 빼앗을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자 할 때에는 언제나 자유를 얻기 위해서 항쟁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영국에 반항해서 독립을 얻으려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을 때 애국자 가운데 하나인 패트릭 헨리의 유명한 부르짖음을 기억합니다. 다른 말이 아니고『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옛날이나 오늘이나 인간은 자유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三ㆍ一운동으로 이것을 의미했습니다. 자유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언론의 자유, 신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여행의 자유, 거주의 자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도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입니다.
나이가 좀 많은 이는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六ㆍ二五 사변이 거의 끝나고 휴전 회담을 할 때, 많은 인민군 포로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생각할 때, 이북 괴뢰들은 무조건 포로들을 돌려보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 자유 진영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들에게도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휴전 회담이 일년이상 끌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포로들에게 이북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게하고 이남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주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북 포로 가운데 자유를 얻어서 남한에 자유롭게 살게 된 청년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자유는 매우 귀합니다. 이 선택의 자유가 이렇게 귀한데 선택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 뒤에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선택이 아주 귀한데 더욱 귀한 것은 선택을 바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 혹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어떤 청년은 선택을 바로 해서 성공을 했고 어떤 청년들은 선택을 바로 하지 못해서 패망하는 예를 많이 보는 것입니다. 다른 얘기를 할 것 없이 여러 학생들은 에서의 얘기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종일 사냥하기 위해서 산과 들로 뛰어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피곤하고 배고플 것 아닙니까? 그 때에 마침 야곱이 뜰에서 팥죽을 쑤며 앉아 있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프니까 동생보고『얘, 야곱아, 그 붉은 것 좀 주려무나』팥죽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생 야곱은 깜찍한 사람이올시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얼른 대답하는 말이『예. 형님께 올리기는 올리겠는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내게 주세요.』장자의 명분이란 말은 옛날 유대 나라의 풍속으로는 여러 가지 특권이 많았습니다.
가령 재산을 나눌 때에도 맏아들은 둘째 아들보다 곱을 상속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그냥 가지고 있겠느냐 팥죽 한 그릇에 그것을 포기할 것이냐,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을 놓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얘기를 다 아시지요. 허기에 찬 에서는 깊은 생각 없이 그까짓 장자의 명분이 뭐냐 어서 팥죽이나 가져오너라. 그리고 장자의 명분은 너 가져라. 그래서 팥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어리석은 선택을 한 에서는 지금까지 그 기록이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다른 청년의 이야기를 해 봅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는 다니엘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으로 잡혀간 청년의 하나입니다. 바벨론 사람은 장래를 생각해서 잡아온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주 준수한 청년 몇 사람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잘 훈련시켜 자기 나라에서 앞으로 쓰려는 방침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그중 하나로 뽑혔습니다. 좋은 집에 유하게 하고 왕이 특별히 좋은 음식으로 먹이라고, 술은 어떤 술을 주고, 고기는 어떤 고기를 먹이고 왕이 먹는 진미를 다 주라고 명령해서 특별한 대우를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술 먹지 말라는 교훈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고기 가운데 먹는 고기도 있고 안 먹는 고기도 있는데 물론 소나 양의 고기는 먹었지마는 우상에 제사했던 고기는 전혀 먹지 말라는 교훈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는 소나 양을 잡으면 으레 우상에게 제사한 다음에야 그 고기를 먹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먹으라는 대로 하게되면 술을 먹어야 하고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우상에게 제사했던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거기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과 우상의 제물을 아니 먹느냐, 먹느냐, 먹으려고 하니 자기 양심에 괴롭습니다. 먹어야 되겠느냐 안 먹어야 되겠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다 잘 아시지요. 다니엘은 안 먹는 쪽을 택했습니다. 나는 술을 안 마시겠습니다. 나는 고기를 안 먹겠습니다. 채소와 물만 먹겠습니다. 결국 이런 선택이 다니엘로 하여금 역사에 남는 그런 인물이 되게 한 것입니다.
여러 학생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살 때에도 무엇을 마시느냐 무엇을 먹느냐에 대하여 선택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먹느냐 안 먹느냐,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 담배를 피느냐 안 피느냐,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봅시다. 롯이라는 청년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의 조카올시다. 아브라함이나 룻이 다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 사이는 괜찮은데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 사이에는 자기 양을 먹이겠다고 목장을 두고 다툽니다. 서로 먹이겠다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불렀습니다.
우리 서로 골육지간인데 네 목자와 내 목자가 싸워서야 되겠느냐? 네가 서편으로 가면 나는 동편으로 갈 테니 네 마음대로, 네 보기에 좋은 데를 택하라고 하니 젊은 사람이 자기보고 먼저 택하라고 하니, 기뻐서 저 유대 동방을 보니 거기 푸른 풀이 장성했는데 아주 양 먹이기가 좋겠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어디에 속했는고 하니 그 당시 죄악이 극심했던 소돔과 고모라 근처였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 푸른 풀이 많으니 나는 이리로 가겠어요 하고 롯이 푸른 풀만 보고 소돔과 고모라 가 얼마나 악한지는 안보고 그 곳을 택하여 갔습니다.
갔다가 어찌 되었는지 아시지요. 소돔과 고모라 가 재앙을 받아 망할 때에 롯이 거의 죽을 뻔하고 겨우 살아났고 재산은 다 없이 하고 하나 있던 아내는 소금 기둥을 만들어 놓고 단신으로 죽지 않고 살아났어요. 이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생각지 아니하고 이익만 생각하고 물질만 택해서 그런 방면으로 선택을 했다가 망하는 젊은 사람들은 롯 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많습니다.
물질 방면에 꼭 옳은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롯이 있는 반면에 모세와 같은 청년이 있음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본래 유대 사람의 가정에서 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기구한 운명으로 애굽 궁중에서 자랐고 애굽 공주의 아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호화스럽게 잘 입고 잘 먹고 잘 공부하며 커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된 다음부터 모세의 마음은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자기가 애굽 사람의 궁중에서 잘 먹고 잘 지내지마는 실상은 자기가 애굽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의 모세의 동족인 유대 사람은 애굽 사람에게 압박을 받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받았습니다. 내가 그냥 이 애굽 궁중의 공주의 아들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러자니 양심이 괴롭습니다. 민족적 양심이 고통을 줍니다. 그러면 내가 이것을 다 떨쳐버리고 유대 청년으로서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이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겠느냐? 그렇게 하자니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사실 난관이 많습니다.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양심은 불안하지마는 애굽 궁중에 그냥 살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그냥 계속할 것이냐? 비록 괴로움이 많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내 양심대로 내 민족과 같이 운명을 함께 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압니다. 모세의 선택을 잘 압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된 데에는 이러한 선택을 한 까닭입니다. 이런 선택을 못했더라면 우리는 모세의 이름을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선택을 바로 해야 합니다. 특별히 청년들에게 있어서 이 선택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청년 시대는 일생을 놓고 볼 때 말하자면 분깃점에 있는 까닭입니다. 사실은 내가 청년으로서 이 앞에 일생토록 어떤 방면의 공부를 하고 어떤 방면에서 일하겠느냐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 것은 나를 통해서 꼭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인데 그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각각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맡겼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은 무엇인가? 잘 살펴서 공부할 과(科)를 택하고 앞으로 일할 길을 바로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택한 사람은 성공 못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앉은 여러 학생들을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이 다음에 가정을 이룰 때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선택을 한번 잘못해서 결혼을 잘못하면 일생을 불행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택을 바로 해야 합니다. 미국의 속담 가운데 <비유티 이즈 스킨 디프> (beauty is skin deep)즉 아름다운 미인이란 피부두께 만큼 깊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얼굴이 아름답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거저 그 가죽만큼 아름답다는 말이요, 가죽 베껴 놓으면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얼굴만 반반하고 번듯하다고 얼른 결혼하지 말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잘 살펴서 그 사람의 배후와 가정과 그 사람의 성품과 교양과 모든 것을 잘 살펴서 결혼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청년 시대에 있어서 특별히 선택 문제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마는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견지에서 내가 어떤 길을 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산상보훈에 볼 것 같으면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말라. 좁은 길, 험한 길로 가라. 넓은 길로 가지 말라. 좁은 길이 험해서 처음에는 가기 힘든 것 같지마는 실상은 생명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 얼른 보기에는 쉬운 길 같아서 가는 사람이 많지마는 결국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인생의 앞길에는 이 두 가지 길이 있고 두 가지 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시는 길이 있고, 반대로 세상이 가르쳐 주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길 가운데 어떤 길을 택하느냐? 그것이 가장 귀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을 가멜산상에 모으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왜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느냐, 바알이 참 신이면 바알을 쫓을 것이요. 여호와가 참 신이면 여호와를 쫓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들, 청년들은 이따금 예배당에는 출입하지마는 이 두 길 사이에서 확실히 작정하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면서 지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흔히 저절로 넓은 길로 가게 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전에 미국에서 된 일인데 어떤 두 사람이 가까운 친구입니다. 언제나 함께 다니고 함께 먹기도 하고 함께 자기도 하며 아주 가까이 지냅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 좋지 못한 길을 가면서 안 갈 때도 가고 죄도 많이 짓고 지내는 두 젊은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주일 저녁 둘이 좋지 못한 노름하는 곳, 댄스 홀 같은 데를 가던 모양인데 지나다가 마침 예배당 앞을 지나게 됐습니다. 그 날 저녁의 설교 계시 판에「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 지금 방금 죄를 지으러 가는데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한 친구는 놀러갈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가자 거니 말자 거니 하다가 둘이 끝내 갈라졌습니다. 한 청년은 그대로 놀려가고 한 청년은 집으로 돌아오는 체 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도대체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나 보자 하고 혼자서 예배당엘 들어갔답니다.
맨 뒤에 앉아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긴 얘기할 것 없고 이 청년은 예배당에 들어와서 온전히 회개하고 몸을 예수님께 온전히 바치고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라고 그럽니다. 그 후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정치 방면으로 나가서 끝내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을 합니다. 모든 신문이 대통령 취임 기사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미국에 유명한 교도소에 어떤 늙은 죄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신문보도를 보면서 홀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합니다.
스스로 하는 말이『이 사람이 三十년 전에는 내 친구였는데 그 어느 때 나와 갈라지고는 별로 만나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나는 일생을 교도소에서 죄로 말미암아 감옥 생활 중에 죽게 되었으니 이런 분한 일이 어디 있느냐』면서 눈물을 흘리더라고 합니다. 이 대통령이 누군 고 하니 클리블랜드 대통령이라고 프린스톤대학 출신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이 많다고는 하지마는 간단히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좁은 길입니다. 신앙생활은 얼른 보면 좁은 문이요 좁은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려면 회개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얼른 보기에는 좁은 길입니다
, 그리스도를 따라가려고 하면 나를 이겨야 합니다.『나를 이기고 따라 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생활이 얼른 보기에는 좁은 길입니다. 왜? 신앙생활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먹을 것도, 먹을 줄 알지만 먹지 않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실 것도 해로우면 안 마시는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은 참으로 좁은 길인 듯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려면 때로는 핍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마지막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은 넓습니다. 왜? 이 길은 극기가 필요 없습니다. 절제가 필요 없습니다. 거기는 회개가 필요 없습니다. 거기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이니까 핍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청년 시대는 인생의 분깃점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여야 하겠는가,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마는 우리 나라의 제일 큰 백두산에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라고 합니다. 거기서 두 강이 흘러내립니다. 하나는 압록강인데 서편으로 흘러서 황해로 내려갑니다. 또 다른 하나는 두만강인데 동편을 흘러서 동해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보세요 백두산 꼭대기 천지 속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조금만 서편으로 기울어지면 압록강으로 흘러가게 되고 조금만 동편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두만강으로 해서 동해로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천지라는 같은 못에 있었으나 며칠 후에는 수 천리 멀리 있습니다. 왜?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一九七0년 六월 十四일 오후 三시에 여러 귀한 청년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참으로 하나 하나가 흑발 홍안이올시다. 검은머리요 붉은 얼굴들이올시다. 다 아름다운 청년들이올시다. 다 같습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각각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약 三十년 후에 이 자리에 모인다고 하면 그 때 아마 같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지나보니 같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혹은 선지자로서 세계적으로 공헌하고 크게 일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분도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것이 어찌해서 그렇게 되느냐, 젊었을 때에 내가 갈 길을 옳게 선택하느냐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七十년대를 전망하며 삽니다. 우리는 七十년대가 평화롭기를 원합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남북이 통일되기를 원합니다
. 세계가 평화롭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七十년대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장래를 우리가 모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멀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 그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 앉은 여러 학생들은 앞으로 五十년 내지 六十년 살 사람들이요, 장래에 무슨 일을 당할지 사실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의 교훈에 의지하여 또한 내가 七十년을 산 사람으로서 경험에 의하여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七十년대에 무슨 일을 당하든지, 평화가 오든지, 혹 전쟁이 오든지 여러분이 온전히 생활의 방향을 바로 택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삼고 주안에서 살면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무슨 일을 당하든지 여러분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따라간다고 할 것이면 무슨 역경을 당하든지 다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선을 이룹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청년, 학생들이 연합 예배로 이 곳에 모인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하나 하나를 사랑해서 금생과 내생에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모임을 주신 줄 믿습니다.
내가 부탁합니다. 이미 온전히 방향을 정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내 구주로 받아들인 분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치 못한 분들은 이 시간 온전한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