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9:9-14/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03:16 read : 1617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14-08-21 12:38:41 read : 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로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十九․十二)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호렙산은 이스라엘 민족, 종교 역사상 아마 가장 유서가 깊은 곳입니다.
일찍이 모세가 불붙는 가시덤불 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도 이 산 기슭이요, 또는 모세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해 내온 후에 열 가지 계명을 비롯해서 모든 율법을 받은 곳도 역시 이 호렙산 꼭대기였습니다. 이런 산에 엘리야가 왔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갈멜산 위에서 여러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항쟁하여 큰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이 승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종교에 대한 모든 문제는 해결된 줄 생각했지마는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은 크게 노해서 엘리야를 잡아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해서 엘리야는 부득이 광야로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히 피곤해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고대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시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떡과 물을 마시고 새 힘을 얻어서 四十주야를 걸어 마지막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것입니다. 이 때에 엘리야의 모습은 가멜산 위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 심신은 매우 피곤하여졌습니다. 외롭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엘리야의 모습을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호렙산 골짜기에 있는 굴을 집으로 정하고 그 곳에 유하는 중입니다.
한 번은 그의 앞에 강한 바람이 붑니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급한 바람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지축을 흔드는 큰 지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큰불이 붙었습니다. 혹은 뇌성벽력이 등반하는 번개 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지나간 후에 고요한 중에 세미한 소리 즉 고요하고 적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때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곧 깨달아서 얼굴을 가리우고 굴에서 나와서 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섰다고 했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가 심히 외롭게 생각하면서 너 혼자밖에 남은 이가 없다고 하지마는, 실상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七천명을 내가 남겨두었노라. 너는 결코 외롭지 아니하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는 것이니라. 너는 발길을 돌이켜서 광야 길을 가서 네 일터로 다시 돌아가 엘리사를 만나서 기름을 부어 네 후계자를 삼고 이스라엘과 아랍나라를 위해서 네가 마땅히 할 일을 하라』고 하는 자세한 지시를 주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음성을 들은 후에 새 힘을 얻어서 다기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바람, 불, 지진, 이런 것들 후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바람」,「지진」,「불」이런 것들은 자연계에 있어서 큰 세력의 상징입니다. 이들은 우리 인간에게 큰 경이감, 혹은 공포심을 가지게 합니다. 대자연의 위력에 억압 감을 느끼게 되고 반면에 인간의 무력감을 또한 체험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같이 계시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일어날 때에 오히려 세미 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도 때때로 바람이 일어납니다. 지진도 있습니다.
인간 역사에도 때때로 불이 붙습니다. 사상과 주의의, 큰바람이 우리 사회를 휩쓸 때도 있습니다. 지진과 같은 큰 전쟁이 이 땅을 뒤집어 흔들 때도 있습니다. 혹은 혁명이 불과 같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역사의 거센 물결이 이 세계를 뒤덮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과히 놀랄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때야말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二十七장 十四절을 보면 거기에 사도 바울이 로마를 향해서 배를 타고 갈 때에 지중해의 유라굴로 라는 데서 큰 풍파가 일어났습니다. 열 나흘 동안이나 해와 달을 볼 수 없고 거센 물결에 밀려서 방향 없이 표류해 갑니다. 모든 사람들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꼭 줄을 줄만 생각했습니다. 공포에 싸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에 오직 사도 바울만은 그런 환경가운데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설 것이요. 이 배에 있는 사람들을 네 손에 부칠 것이니라.』오직 사도 바울이 혼자 정신을 차리고 모든 사람을 격려하면서 우리가 한 사람도 생명을 잃을 사람은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 것입니다.
인간의 힘을 믿지 말고,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조용한 가운데 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역사의 파도가 높을수록 우리는 조용하고 적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는 우리가 이 엘리야의 경험을 볼 때에 생각되는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에 물론 바람이 이따금 붑니다. 지진도 이따금 일어납니다. 불로 이따금 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요, 하나님께서는 보통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모든 큰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하나님입니다. 큰 권능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그 능력을 사람처럼 과시하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조용히 모든 별들이 그 궤도를 돌아갑니다.
조용히 우리가 사는 지구도 자전과 공전을 계속합니다. 아침해가 조용히 동편 하늘에 뜨고 저녁달이 조용히 밤하늘을 비추어 줍니다. 춘하추동도 조용한 가운데 스스로 바뀝니다. 저녁 이슬도 조용히 풀잎 위에 내립니다. 조용한 가운데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곡식이 익으며 과실이 맺힙니다. 다 하나님의 조용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자연계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 역사에 있어서 큰 일을 하실 때에도, 역시 하나짐께서는 조용한 가운데 그 일을 하십니다.
조용한 가운데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가나안 땅을 향하게 하고, 이렇게 해서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선민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조용한 가운데서 나일강 변의 어린 아기 모세를 구원해 주시고 아기가 애굽 궁중에서 남 몰래 장성하고 배우게 한 것입니다.
조용한 중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조용한 중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바나바를 택하시고 그 머리에 안수를 하셨으며, 그들이 조용히 안디옥을 떠나 복음 전도를 시작하게 될 때에 온 세계에 선교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 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강권을 쓰지 않으십니다. 오직 사랑과 자비로 긍휼(矜恤)로써 죄인들의 마음을 조용히 감화시켜서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재주는 비상하나 방탕하던 청년 어거스틴의 마음을 조용한 가운데 감화시키고 세미 한 음성으로 책을 펴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조용히 성경을 읽은 마르틴 루터의 마음속에『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진리를 분명하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 자비, 긍휼의 방법은 약한 듯하지마는 사실은 강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동화 가운데 햇빛과 바람이 서로 누가 더 힘이 센가 내기해 본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이 서로 힘이 세다 고 자랑을 합니다. 마침 어떤 사람이 외투를 입고 길을 지나갑니다.
그 때에 바람이 하는 말이『누가 저 사람의 외투를 벗길 것 같으냐? 네 힘이냐, 내 힘이냐?』먼저 바람이 벗겨 보기로 하였습니다. 갑자기 돌개바람을 일으켜서 외투를 벗기려고 합니다. 거의 벗겨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저 이 사람이 외투를 단단히 잡고 안 놓습니다. 힘껏 바람이 불었지만 끝내는 못 벗겼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햇빛이 따뜻한 양기를 길가는 사람에게 비쳤습니다. 한참 가더니 이 사람이『아 날 참 덥다!』하더니 외투를 훌떡 벗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조용한 가운데서 오직 사랑과 긍휼과 자비로써 사람을 변화시키는 큰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민족이 당하는 공통한 과제는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 바른 민주주의의 터전을 확립할 수 있겠나? 어떻게 하면 우리 삼천만 민족이 이 땅에서, 자유와 평화와 질서가 있는 가운데,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번영의 나라를 세울 수 있겠나?
물론 이와 같은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법이 필요합니다. 질서를 유지할 경찰이 필요합니다. 우리 국가를 방위할 군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가능한 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조용한 가운데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이 감화되고 순화되고 성결해지고 온유해지고 정직해지고 새로워지는 이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역사가 없이 단순히 표면에 나타나는 강한 힘으로 이와 같은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조용한 역사가 우리 민족 가운데 나타나, 우리 민족의 대부분이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다고 하면 자연히 부패도 갈 것이요,
불법도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요, 자연히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요, 우리의 희망하는 아름다운 나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이 하나님의 사랑은 총칼보다도 강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될 줄 압니다.
이사야의 경험을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이사야 四十二장 一절 이하에 장차 올 메시야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세미 한 음성입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혹은 이사야 五十三장 七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운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조용한 모습입니다.
그의 일생의 모습은 한 세미 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세미 하게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 애굽에 피난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나사렛 촌에서 장성했습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조용한 가운데 갈릴리 바다 근처를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조용한 가운데 된 것입니다. 또한 조용한 어떤 새벽에 부활이라는 큰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활의 전체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큰 힘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한 번은 사마리아 지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어떤 사마리아 촌에 잠깐 들러서 그 저녁을 지내려고 교섭해 보니 이 사람들이 민족적 편견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대사람이라고 해서 그 날 저녁 그 동리에서 자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때에 예수 님의 제자가운데 요한과 야고보는 크게 노해서『주님이시여 이런 법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아예 이런 동네는 불을 내리도록 합시다.』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 요한 과 야고보를 오히려 책망하시고 조용히 다른 촌으로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조용한 음성을 통해서 인간의 심령을 부르십니다.『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려 함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려 왔노라.』『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수고하고 무거운 집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는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내가 온 것은 너희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니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 속에서 영생의 강이 흐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호렙산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큰바람이 붑니다. 어떤 때에는 지진이 일어납니다. 어떤 때에는 불이 붙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 교회 안에서,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을 듣기 원해서입니다.
역사의 파도가 높은 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네 할 짓이 무엇인 줄 네가 깨닫느냐, 너와 같이 할 七천명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나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나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하였습니까?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아직까지 내 일생의 갈 길을 바로 정하지 못하였습니까? 분명히 정하여야 하겠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 인류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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