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7:11-22/ 나와 내 민족이 사는 길/ 한경직 목사 2014-08-23 20:06:20 read : 158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 七․十四)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또 여러분 가운데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지만, 일찍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첫 번으로 취임할 때에 이 성경구절 위에 자기 손을 얹고 선서를 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구절을 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정치를 하기로 맹세한 것입니다.
이 구절의 내용을 다시 설명하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하고 자기의 궁궐도 온전히 이룬 다음, 많은 희생물을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를 들리고 성전 봉헌식을 거행할 때 유명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이 구절의 말씀도 같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어서 이 곳으로 나를 예배하는 곳을 삼았노라, 그러나 혹 이후에 내가 하늘 문을 닫아서 비가 내리지 아니하든지 메뚜기로 하여금 토산을 먹게 하든지 혹은 염병이 유행해서 많은 생명의 손상을 보게 되든지,
곧 천재지변(天災地變)혹은 재난이 있게 되면 이것은 내가 너와 네 백성을 책망하는 것인 줄 알고 그런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고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고 내 얼굴을 구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민족적 재난과 환난 가운데서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간단하게 네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 온 백성들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라.
둘째는 스스로 겸비하라.
셋째는 기도하여라.
넷째는 범사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그러면 내가 모든 죄를 사해 주겠고 너희 사는 땅을 고쳐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생각하는 가운데서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 악할 길에서 떠나라. 민족적으로도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라.「떠나라」고 하는 말은「돌이 키라」고 하는 뜻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 키라, 회개하라.
제가 얼마 전 좀 조용한 시간을 얻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재 자신을 좀 더 알기 위해서 우리 나라 역사를 다시 한 번 통독하였습니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북으로 흑룡강(黑龍江), 서로 송화강(松花江)까지, 남북만주(南北滿洲) 전체와 또 우리 한반도가 우리 민족의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고려 말엽 이후로는, 특별히 이조 五백 년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점점 쇠잔하여져서 마지막에는 이 모양이 되어 지금 세계 약소민족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대체로 지적하는 공통한 원인 몇 가지를 우리가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말합니다. 삼국(三國)가운데 제일 크고 강한 나라는 고구려(高句麗)였습니다. 고구려가 어떻게 멸망하였습니까?
물론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으로 인하여 패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고구려 말기의 영웅이었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임종시에 자기 아들 四형제를 불러다 놓고서 간절히 권면 하기를『내가 죽은 다음에도 너희들이 꼭 협력해서 나라를 잘 받들어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죽은지 얼마 후에 그 아들 남생(南生)이라고 하는 사람과 남건(南建)이라고 하는 사람이 서로 싸웠습니다. 남생이 국내에서 패하게 되자 당나라로 도망을 갔습니다.
신라가 와서 당병(唐兵)을 청하기 전에 이 남생이 당나라에 먼저 가서 군대를 빨리 평양(平壤)으로 보내서 고구려를 멸망시킬 음모를 하였습니다. 사실 당나라 군대가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서 평양으로 진군하여 올 때에 그 길을 향도한 사람이 바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 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가 망했습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하고 한반도를 통일한 것은 물론 위대한 역사적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런 생가도 해 봅니다.
어찌해서 같은 민족이 백제와 고구려와 연합해서 그 때에 당나라를 쳐서 중원을 점령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국군인 당병(唐兵)을 청해서 이웃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는가?
그리해서 결국은 일시 만주에서 발해(渤海)가 일어나긴 했지만 그 이후로 우리 민족은 남북만주 넓은 들을 영원히 잃게 만들었을까? 여기에도 골육상쟁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이조시대(李朝時代)이후의 모든 골육상쟁(骨肉相爭)에 대한 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둘째는 당파와 파쟁(派爭)을 흔히 원인으로 듭니다. 특별히 선조조(宣祖祖)이후에는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남인(南人)이니 북인(北人)이니, 노론(老論), 소론(小論), 해 가지고 당파로 갈리어서 온갖 음모와 술수와 모든 수단으로써 정권 쟁탈전을 계속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의 눈에는 민족도 보이지 아니했고 국가도 별로 보이니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 당파의 정권과 세도를 생각하였습니다.
셋째는 공의(公義)가 없는 정치를 하였습니다. 특별히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불의 하게 사육신(死六臣)을 죽이고, 단종(端宗)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조정(朝廷)이나 사회에 고의라고 하는 것이 땅에 떨어져서 다만 폭력과 세도로써만 정치를 행하였습니다.
이 여러 당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법도 없고 동의도 없고 갖은 아부와 수단을 썼고, 그리해서 한 번 정권을 잡은 다음에는 자기의 정적(政敵)인 그들을 역적으로 몰아서 씨도 없이 삼족을 멸해 부리고 한 번 정권을 잡은 다음에는 그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역시 공의나 법이 없이 갖은 수단과 모략으로 정권 연장을 힘썼고,
이렇게 세도를 잡은 사람들은 다만 자기 당파, 자기 안일만을 생각하고, 대중이나 국민에 대해서는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학정을 감행했고 공의와 법이 없는 정치를 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예를 들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알 것은, 여기에 선 저나 여기 앉은 여러분이나, 이 이조 五백 년의 더러워진 죄악의 피가 우리의 혈관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정계를 생각해 보세요. 방금 되어가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특별히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역사가 하는 말을 주의해 들을 점이 있습니다.
이조 五백 년 동안의 정신적 기초가 된 종교는 유교(儒敎)입니다. 이태조(李太祖)가 등극해서 정권을 잡은 다음에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서울에 성균관(成均館)을 지었고, 각 도시와 읍에 향교(鄕校)를 지었고, 대 성전을 지어서 공자(孔子)를 숭배하였습니다. 그런데 五백 년 동안에 유교의 지도자들의 일이 무엇입니까?
대체로 네 가지로 지적을 합니다.
첫째, 허문(虛文)과 허례(虛禮)만 숭상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과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유교의 근본 도덕을 실천하는 데는 게을렀습니다.
둘째로, 유교에도 철학이 있습니다. 우주기원(宇宙起源)에 대한 철학, 소위 이기론(理氣論), 이(理)로 되었다, 기(氣)로 되었다 하는 이기론을 중심으로 해서 실제 생활과는 상관없는 공리 공론으로 파쟁만 일삼고 싸움만 하였습니다.
셋째로는 대체로 이 사람들의 사상이 고루하고 편협해서 새로운 문화나 새로운 사상을 맹목적으로 배척을 하였습니다.
넷째로는 이 사람들은 소위 사대주의(事大主義), 큰 나라를 섬겨야 된다, 소위 모화(慕華)사상(思想)이라고 중화(中華)를 사모하는 사상, 중화가 아름답다고 사모하는 이 모화 사상에 중독이 되어서 민족은 얼을 잊어버리고, 민족의 정기를 저상(沮喪) 시켰습니다. 대체로 이런 몇 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는 벌써 二백 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신교가 들어온 지도 七十 년이 지났습니다. 해방 후, 특별히 교계에 되어진 여러 가지 사정을 볼 때에, 오늘날 우리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힘있고 생명이 있다고 하면 기독교뿐인데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었습니까?
우리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희생적 정신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실천 생활인데 이 생활보다도 오히려 생활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작은 신학적 문제로 싸움만 거듭해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지도자들 가운데는 너무 편협해서, 무엇이나 새 것이라고 하면 전혀 이단시하는 경향은 없었습니까? 유교 지도자들이 과거 五백 년 동안 믿어오던 그 태도, 그 정신, 그 사람의 혈관에 있던 그 피가 오늘날 여기 서는 저나 여러분의 혈관 속에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어야 합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 있어서 소금의 직책을 하여야 될 터인데 믿는 사람자체가 이 죄악에서 떠나지 못하면 무엇이 우리 민족을 깨끗케 할 수 있습니까?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죄악에서 떠나라』고, 회개하라고, 먼저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은 죄 뿐 아니고 열조(烈祖)의 죄를 회개하라고.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은『스스로 겸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겸비」,「겸손」은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람은 흔히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할 때에 내게 대해서는 제일 장점을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제일 단점을 봅니다. 나의 제일 잘한 장점과 다른 사람의 제일 잘못한 단점과 비교하니까 아무래도 내가 낫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마다 저 잘난 재미에 산다는 알이 나오지요. 여기 이남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에 북도에서 들으니까「민충이」라고 - 여기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민충이가 쑥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면서「천하가 작구나」그런 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 보는 사람은 흔히 자기가 잘난 줄 압니다. 교만해집니다. 참된 겸비가 어디서 오느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비판해 볼 때에 내가 얼마나 더럽고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미련하고 얼마나 비겁하고 말할 수 없이 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자연히 겸손해 집니다.
그러기에 참된 겸손은 참된 믿음에서 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교만합니다. 여기 한문 가운데「당랑거철」(螳螂拒轍) 이란 말이 있지요. 이것 좀 미안한 말씀이지요. 쉽게 말하면 소똥벌레가 길로 굴러오는 수레를 항거하며 싸우겠다고. 요사이 하나님과 싸우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똥벌레가 수레와 싸우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연히 미련하고 교만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나 할 것 같이 생각됩니다. 천하가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사람이면 자연히 겸손해 집니다. 잠언 十六장 十八절에『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꼭 이대로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올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제가 오래 살지는 못하였지만 二十세기에 와서 된 일을 볼지라도 교만하던 모든 독재자들, 독재의 꿈을 꾸던 사람은 대부분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몇 사람 남아 있다고 해야 오래 못 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기도하며…』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히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살펴보고, 나의 모든 부족과 나의 모든 죄악을 깨닫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것을 잘못했습니다. 내가 그릇된 길을 갔습니다. 내가 이렇게 더럽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하고, 내가 이렇게 약하고, 내가 이렇게 미련하니까 하나님을 향해서『오, 하나님이여, 내게 지혜도 능력도 용기도 주시고, 나의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니 이웃을 위해서, 동포를 위해서, 이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습니다. 숨쉬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우리의 영혼이 질식되지 아니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하늘의 권세를 움직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한 번 기도할 때에 하늘이 삼 년 육삭(六朔)동안 닫혔고 또 한 번 기도할 때에 축복의 소나기가 내린 것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하나님의 중심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에 사무엘은『내가 어찌 내 동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수가 있겠는가』고 말하였습니다.
어느 때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리요 마는,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우리 민족과 국가와 나와 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죄올시다.『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에 가르쳤습니다.
넷째로는『내 얼굴을 구하라』하였습니다. 적극적 실행 면을 가르친 것입니다. 악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내 얼굴을 구하라고. 사람의 얼굴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사람의 뜻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고. 사람의 길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길을 찾으라고. 모르면 모르지만 알면 꼭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상인들이 저자에서 장사를 할 때나, 선생들이 학교에서 가르칠 때나, 공무원들이 관청에서 사무를 볼 때나, 정치인들이 국사를 의논할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를 힘쓰라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여기에 언약해 주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너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네 죄과 네 열조(烈祖)의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고. 네게 복을 주실 뿐더러 땅을 고쳐 주시겠다고. 황폐한 강산에 축복을 하여 주시겠다고. 천재지변도 거두어 주시겠다고. 우리 한국의 견지에서 보면 남북 통일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과거 근 一세기에 우리 민족에게 미친 온갖 재난을 잠깐만 돌이켜 생각해도 진저리가 납니다. 이조 말기의 모든 재난, 결국 망국의 슬픔, 三十六 년간의 일제의 압박, 많은 희생과 눈물을 기억합니까?
해방된 후에도 국토는 양단 되었습니다. 六․二五의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거듭되는 혁명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방금 제三공화국을 건설하는 준비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설화(雪禍)가 호남과 제주도에까지 미쳤습니다. 목포와 인천 앞 바다에서 기선이 침몰되어서 수백 명을 잃었습니다. 원인은 없다고 하는데 물가는 계속해 올라만 갑니다. 작년에 흉년이 들었고 아직까지도 보리 고개를 멀었는데 벌써 절량(絶糧) 동포들이 싸전마다 장사진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민정 이양을 앞둔 정계의 현상은 어떠합니까? 파벌과 파쟁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한 편에서는 무엇을 사전에「했다」,한 편에서는 「하지 않았다」
,한 편에서는「공약을 지켜라」,한 편에서는「공약을 안 지킨다,」「했다」, 「안 했다」,「지킨다」,「안 지킨다」하는 다툼이 국민학교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용혹무괴(容或無怪)올시다.
그것쯤 뭐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적어도 불의와 구악(舊惡)을 일소하고 제三 공화국을 건설하고 남한 二천 五백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다스리려고 나선 정당의 대표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실 기가 막힙니다. 눈물을 흘리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나와 내 민족의 살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일찍이 솔로몬 왕에게 간단한 이 몇 가지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파하여 주셨습니다. 열조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구악을 문자 그대로 떠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바로 살펴서 겸손하게 누구든지 내 허물을 먼저 고하고 남의 허물을 보려고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되겠습니다. 어떻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시행하여야 되겠습니다. 수원숙우(誰怨熟尤)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우리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쳐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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