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6:1-6/ 8.15의 마음: 하나님의 경륜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14:24 read : 1246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시 一二六․一-二)
이 시는 해방의 노래올시다. 우리는 누가 이 아름다운 시를 지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정녕 이 시인은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파사왕 고레스 때에 해방을 받아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 온 해방 받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가 꼭 어느 해에 지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예루살렘에 돌아온 수년 안에 지은 것만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그 시인은 여기 옮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도릴 때에 꿈꾸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 너무 기뻐서 꿈꾸는 것 같으며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찼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느끼던 해방의 감격과 해방을 감사하는 지정이 여기에 여실히 차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시를 읽을 때에 자연히 十년 전 옛일인 처음 맞은 해방의 감격을 생각하게 됩니다. 一九四五년 八월 一五일 정오에 한국이 일제 아래서 해방을 받던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 여러분의 생각을 돌이켜서 十년 전의 해방의 첫 뉴스를 듣던 순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개인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저는 남 신의주 보린 원에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전쟁은 점점 절박하여 남 신의주 일대는 일본 군인들이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보리원 일부에도 일본 군인이 점령하고 병사로 사용하고 있었던 중이며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이 아무래도 이곳은 위험하고 또 우리가 이 원사((院舍)를 전부 써야할 터이니까 속히 적당한 곳을 구해서 소개해 나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八․一五날 아침에 제가 남 신의주 十五리 북편 서한 동에 자그마한 학교로 쓰던 어떤 집이 있어서 임시 보린 원을 그 곳에 옮길 수 있을까 해서 때마침 많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그 곳을 갔다 왔습니다. 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十二시 좀 지났는데 十二시에는 뉴스가 있다고 하여 들어오자 곧 라디오를 틀어 놓았습니다.
천만 뜻밖에도 일본이 포스탐 선언을 수락했다는 일본 방송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일본 국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잠깐 마지막 말만 들었으므로 혹 내가 잘못 듣지나 않았나 해서 마음 가운데 처음부터 들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위에서 보린 원에 있는 선생들이 그 방송을 처음부터 듣고 내려오면서 너무 기뻐서, 몇 달 전에 미국서 세상을 떠낫지만 김은혜 선생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우리 방에 모였던 몇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한 시간 쯤 후에 여러 사람이 신의주에서도 나오고 남 신의주에서도 나와서 감격에 찬 눈물 흘리면 기도했습니다. 그때 신의주에 들어가니까 모두 뒤숭숭한 가운데서 눈에 눈물을 머금고 기쁨과 감격과 감사 가운데 악수를 하면서 지낸 일이 지금도 생각됩니다.
그 때에는 누구든지 너무 감격하고 감사해서 무엇으로 은혜를 갚을 수가 있을까 하는 가운데서 그저 감격과 감사의 정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예배당에는 가득히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을 여러분이 다 생각하실 것입니다.
첫 八․一五는 무한한 감격과 감사의 지정으로써 우리가 맞았습니다. 이와 같은 무한한 감격과 감사는 자연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은혜의 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보은 보답의 지정으로써 사람의 마음이 채워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신의주에 어떤 돈 많은 부인이 예배당에 다니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믿는 줄은 저는 몰랐지만 저에게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제 앞으로 어느 장소를 가리키며 그 장소에 내가 전담에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마 그 후에 공산당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면 그 부인이 홀로 예배당 지었을 줄 믿습니다. 자기의 사재를 내서 학교를 짓고 평안 중학교를 우리가 인계해서 좋은 중학교로 만들겠다고 유지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든지 그 학교를 잘 해 나아가자고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재산을 드리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심정은 우리가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어떻든지 이 은혜의 만분지일이라고 보답하자고 하는 감격이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 민족을 봉사하고자 하는 그런 심정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야말로 누구나 애국자였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나 나라 일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바로 세울까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정치가요 만나는 사람마다 국가의 경륜을 발표하던 때입니다.
일본 사람 지사는 자기가 그 자리에 더 오래 있지 못할 것을 깨닫고 항복하는 날 곧 신의주 유지 몇 분을 청해서 자기는 이 자리에 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으니까 당신 네 들이 이 앞으로 연합군이 들어올 때까지 치안을 유지하기 바란다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탁을 받고 몇 사람이 자치회를 조직하여 연합군이 들어올 때까지, 소련군이 들어올 때까지 치안 유지의 일을 담당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일본 사람들은 자기가 가졌던 무기를 다 내어놓았고 한국 사람들이 치안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처음이니까 모든 것이 혼란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늘 감사해 하는 것은 자치해 나가는 동안에 어디서 도적놈이 도적질했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그 때는 도적놈들도 다 애국자였었나 봅니다. 자치회로 있는 동안 제가 알기에는 범죄 사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 때에는 어떤 사람이든지 어른이든 아이이든, 학생이든 선생이든,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와 감격의 지정으로써 마음이 순화되어 도적놈도 도적질 할 것을 잊어버리고,
협잡꾼도 협잡할 것을 잊고, 누구든지 바른 마음을 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해방을 받았으니 어떻든지 나라를 바로 세워서 우리 자손 만대에 복을 누릴 수 있는 국가를 만들자는 그런 참된 애국심, 참된 감사의 생각, 봉사심으로 가득히 찼었습니다.
이것이 첫 八․一五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심정은 신의주 사람과 평안북도 사람만 가진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온 한국 十四도 三천만 민중이 꼭 같은 심정을 가진 줄 압니다. 여러분 기념이란 잊지 말고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내일이 우리는 해방 十주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해방 十주년을 기념할 때에 무엇보다도 첫 八․一五의 심정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심정을 대통령도 기억하고 어른 아이도 기억하고 이 심정을 학생도 선생도 기억하고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서울 운동장에 가는 사람이나 안가는 사람이나 누구든지 첫 八․一五의 참된 마음, 이 감격의 마음, 보은 보답의 심정, 진정한 애국의 신정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헌데 십 년을 지낸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첫 八․一五에 가졌던 우리의 참 애국심 그 때에 가졌던 참 회개의 마음 그 때에 가졌던 참 감격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몇 조각이나 남았습니까?
유감 된 것은 이렇게 감격한 가운데 첫 八․一五를 맞았지만 그 때의 감격은 점점 식어져서 사람마다 각각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마다 한국이 해방된 것이 마치 자기의 힘으로 된 것처럼 자기의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공산당들은 자기의 조국 소련이 한국을 해방해 주었다고 떠들었습니다. 남한에 있는 사람들도 마치 자기의 행적이 한국의 해방을 가져온 것처럼 떠드는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보은 보답의 생각은 점점 변해서 어떻게 하면 이권이나 좀 더 얻을까, 적산이나 점령할까. 어떻게 하면 이런 때에 내 무엇을 좀더 얻을까? 하는 이런 심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해방 된지 몇 달 후에 어떤 사람이 이런 말하는 것 들은 것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그 때 서울에 적산이 여러 곳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적산이 여러 곳에 너무 많이 있으니까, 이 집 저 집 가보고 하다가 지금으로 말하면 매를 가지고 꿩을 잡으려 갔는데 꿩이 너무 여러 마리 되니까, 매가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어리둥절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만찬가지로 너무 적산도 많으니까 너무 얻을 이권도 많으니까 어떤 것을 얻어야 할지 모르는 이런 심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애국심이란 어떻게 하면 내 당파를 많이 모아서 권세를 얻고 내 지위를 높여 볼까 하는 권세욕 정권욕 영도 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해방 十주년을 무엇 하려 기념합니까? 무엇으로 기념하겠습니까? 첫 八․一五의 심정은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는 이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 동포가 이 첫 八․一五의 심정을 그 애국심, 그 봉사의 마음 그 희생의 정신을 몇 분지 일이라도 가지고 내려왔던들 오늘날 이 사회가 이 모양 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첫 八․一五의 마음을 회복하는 해방 十주년 기념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무명 이스라엘 시인이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다음에 三, 四절을 읽으면 기도가 있습니다.『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
이것이 무슨 기도인지 아세요.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으시는 분은 대강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가서 대략 七十년을 종노릇한 다음에 바벨론이 파사 제국에게 멸망을 당해서 파사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다스리면서 포로로 잡아 왔던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마음대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을 지으라고 조서를 내렸던 것입니다.
조서를 내릴뿐더러 일찍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왔던 기명을 도로 내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격한 가운데 먼저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약四천 五백 명, 거기에 노비까지 합쳐서 약 五만 명이 제 일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이 시를 쓴 사람은 제일 먼저 돌아온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약 五만 명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시작하고 그 동안 황무(荒蕪)했던 전답의 개척도 시작했지마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네들은 이와 같이 가나안복지 시온성에 돌아왔지마는 아직까지 바벨론 하수 가에서 돌아오지 못한 포로인 자기의 동포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해서 이렇게 시온에 돌아와서 감격의 기쁨을 누리는 자기들로서, 자기들은 이렇게 돌아왔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돌아오지 못하고 옛 바벨론에 흩어져 있는 자기의 동포를 잊을래 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께서 해방해 주신 은혜를 감격해서 노래하는 동시에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저곳에 포로가 많이 남아 있으니 그 사람들을 남방의 시내처럼 돌려보내 주소서 했습니다.
남방의 시내란 무슨 말인가 하면 유대 나라 남방은 물이 많지 못한 곳이지만 저 높은 산에서 눈이 녹게 되고 비라 오게 되면 갑자기 홍수가 되어서 물이 많이 내려가는 그런 곳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아직도 바벨론 하수 가에 돌아오지 못한 내 동포가 많으니 이 동포들을 남방의 하수가 콸콸 흘러 내려가는 것처럼 수백 수천 수만 명 한꺼번에 돌아오게 해 주소서. 이런 길을 열어주소서 하고 아직도 채 돌아오지 못한 포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가 해방 十주년을 맞이합니다. 적어도 우리 남한은 一九四八년에 완전히 독립이 되었고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온전히 자유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三八이북에 우리 동포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남한에 내려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동포들, 지금은 내려오려고 해도 내려올 수 없는 동포들, 해방 十주년을 맞는 우리로서 잠시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말할 것도 없고 오직 가족까지도 맘놓고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심히 혹독한 정치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압박 가운데서 매일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해방 十주년을 맞는 우리가 한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첫 八․一五의 심정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아직까지 자유를 얻지 못한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서 여호와여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남한에 있는 하수처럼 자유를 주시고 해방을 주시 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이번 삼각산에 가서 기도할 때에 특별히 하루는『주여 조국을 구하여 주소서』하는 제목으로 하루 저녁 철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해방 十주년을 맞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북한에 얽매어 있는 동포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일 八월 一五일은 특별히 북한에 있는 성도와 동포들을 하나님께서 十년 전 우리에게 해방 주시듯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해방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북한 동포의 해방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기적적으로 밖에는, 사람의 다른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강하고 연합군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지금 정세로는 북한 동포를 해방하기 위해서 전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북한 동포의 해방은 사람의 눈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의지해사 일어나는 기적적 해방이 있기 전에 사람 보기에 용의 한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또 우리 남한의 군대가 아무리 있다고 하지만 남한 군대만으로는 북한 동포를 해방하기 어려운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여러 공산당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천지에 대 주재되시는 공의의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나타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음으로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께만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줄 압니다.
이 해방의 노래를 지은 사람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둘째는 아직도 해방을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셋째로 五-六절에 해방 받은 사람의 믿음과 확신 그리고 신념을 나타낸 글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는, 처음 이스라엘 민족의 사정을 살필 때 말씀 드린 대로 몇 만 명이 먼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여러 이방인들이 이것을 다 반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부흥되는 것을 거기에 살던 사람은 다 반대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반대 공작을 했습니다.
고레스 왕이 죽은 다음에 아가사스트 왕이 새로 임금이 되었는데 그 왕에게 이스라엘에 대해 무고한 고소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옛날부터 아주 패역한 도성이요, 유대 사람으로 말하면 언제든지 반역자요, 언제든지 어려운 일만 일으키는 이런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지금 와서 성정을 짓고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으려고 하는데, 이것을 그냥 허락해 두면 필연 이 사람들이 왕을 배반하고 큰 역적이 될 터인데,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하고 새로 등용된 파사 왕에게 이렇게 무고한 고소를 했습니다.
새 왕은 자기 조상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들의 말만 듣고 곧 일을 중지시키라는 명령을 파사 왕국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성전 지대를 놓고 굉장한 기공식과 정초 식을 거행했지만 그만 성전 건축은 중지되었습니다.
十五년 동안이나 중지되었습니다. 이렇게 원수가 많은 가운데서 전답을 찾아서 개척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울면서 들로 나가서 종자를 뿌리는 일입니다.
처음에 기쁨으로 돌아왔지마는 그 후 二十년을 눈물의 역사며 그야말로 탄식의 역사며 환난과 재앙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때 해방을 받아 돌아온 민족이 확실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확실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하는 확실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처음 돌아와서 이렇게 고생을 하지만 이 모든 고생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뜨거운 날 김을 매는 것과 같아서, 먹을 것이 없지만 씨를 내 놓아서 종자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심히 어렵고 괴로워 환난과 원수가 많지마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이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기쁨으로 수확을 해서 단을 가지고 돌아올 때가 있을 것이라는 장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하여 다시 시온으로 오게 했습니다. 아무리 원수가 많고 환경이 어지럽다고 하지만 반드시 우리가 꾸준히 이 고생을 참고 나아가면 장래에 큰 수확이 있을 것이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다 변해서 장차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기쁨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굳게 가졌습니다.
이것이 해방 十년을 맞는 우리 민족의 신념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랫동안 정부와 자유를 가지지 못했던 우리가 해방을 받아서 독립한 정부를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원수가 둘러싸고 이스라엘 민족의 발전을 방해한 것처럼 지금도 三八선 이북에서 악한 사람들이 우리의 독립과 자유를 방해하고 어떻든지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합니다.
三八선을 철폐하고 통일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六․二五를 지냈습니다. 많은 눈물도 흘렸고 울음도 울었습니다. 인명도 잃었습니다. 이 땅의 흘린 눈물, 이 땅에 흘린 피를 모으면 오히려 한강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믿는 것은 오늘날 흘리는 그 눈물 그 피는 다 종자로 심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종자가 나서 좋은 수확을 거두어서 이 앞으로 완전한 통일과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민주주의 나라로 꽃을 피울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념으로 해방 제 十주년을 맞이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四十년간 일본 압제 아래서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는 큰 경륜이 있습니다. 이 경륜을 이루는데 여러 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하지마는 반드시 이룹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험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