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2:1-11/ 죄의 고백과 그 축복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17:32 read : 121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三十二․五)
이미 읽은 시편 제三十二편의 이 시는 옛날 다윗 왕이 지낸 내적 경험을 묘사한 시올시다. 그래서 그 머리에 다윗의 마스길이라 하는 그런 제목이 있습니다.「마스길」이라 하는 뜻은 교훈 하는 시라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는 사무엘 하 十一장과 十二장과 같이 읽을 만한 시입니다. 사무엘 하 十一장을 읽으면 거기에 다윗이 어떻게 범죄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어렸을 적부터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이올시다. 좋은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그의 생활 가운데는 심히 검은 페이지가 역시 있는 것입니다.
요압 대장을 위시해서 자기의 심복들이 암몬 사람을 쳐 물리치기 위해서 전장에 나갔던 때입니다. 자기는 홀로 예루살렘에 머물러서 어떤 한가한 날 아마 낮잠을 쉬고 저녁에 자기 궁전에 올라가서 화려한 도시 예루살렘 성을 사방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우연히 어떤 여자의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같이 일어나는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범죄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자기의 심복 우리아의 처 밧세바이었습니다.
그 후에 임신하였다고 하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다윗 왕은 이 죄를 감추기 위해서 방금 자기를 위해서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 자기의 심복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싸움하기에 수고하였는데 집에서 며칠 쉬어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충성된 사람이었는지『나의 전우가 지금 야영을 하면서 들에 있는데 제가 왕명을 받들어 예루살렘에 잠깐 돌아왔거니와 어떻게 집에 가서 평안히 쉴 수가 있습니까?』집에는 전연 돌아가지 아니하고 행랑방에서 이틀 저녁을 자고 돌아갑니다.
다윗 왕은 자기의 계교(計巧)가 맞지 않을 때에 매우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보다 더 무서운 죄를, 무서운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손에 밀서를 하나 써서 요압 대장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은 다른 내용이 아니고 암몬 사람과 싸울 때 이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요압 대장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그대로 했습니다.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다가 이 우리아는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윗은 그저 아무 일 없는 듯이 태연히 그냥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뭐 과히 염려할 것 없습니다. 죄는 무사히 감추어 놓았습니다. 말할 사람이 다 없게 되었습니다. 평안히 그냥 남아 있습니다. 약 一년이 남짓해서 하나님의 사자 나단이 나타났습니다. 나타나서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암 양(羊)의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동네에 큰 부자가 하나 있고 매우 가난한 집이 한 집 있는데 이 부자의 집에는 소도 맑고 양도 많고 재산이 풍부하지마는 이 가나난 사람의 집에는 아무 다른 것 없고 조그만 암 양 하나 뿐이어서 이 가난한 사람은 이 암 양을 극진히 사랑해서 그저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자기 딸처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동리 부자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에 그 부자는 자기 집에 있는 여러 양도 소도 많지만 그것은 그냥 두어두고 이 가난한 집의 암 양을 취해 다가 자기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다윗 왕이 이 말을 들을 때에 분이 났습니다.『그런 사람이 어떤 동네에 잇느냐? 그런 사람을 그냥 줄 수 없다 벌할 수밖에 없다.』고 호통을 했습니다.
그 때에 나단이 조용히 다윗 왕을 손가락으로 가리 치며 하는 말이『대왕,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올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목동으로 일으키셔서 사울의 온 집을 당신에게 맡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손에 맡기고 높은 위에 앉게 하고 모든 축복을 각 방면으로 더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십니까?』그 때에 다윗이 얼굴이 아마 불빛이 된 줄 압니다.『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습니다!』그 때에야 자복했습니다.
다윗 왕이 이와 같이 무서운 죄를 짓고도 그 죄를 가리우고 이을 때에 어떠한 경험을 가졌던가. 그 말씀은 여기 오늘 아침에 읽은 三절과 四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내가 토설(吐說)치 아니할 떼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그 때에 그는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도 하나님께 대해서도 백방으로 자기 죄를 가리우기를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아도 죽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 앞에까지 가리우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핑계를 자기 마음 가운데 생각하여 본 줄 압니다. 환경을 원망한 줄 생각합니다.
『아, 그 때에 그만 환경이 꼭 그렇게 되어서 내가 유혹에 빠지게 되어서……. 부디 목욕은 그 때 왜 했나?』환경을 아마 원망한 줄 생각합니다.
『아 또, 자기는 군인인데, 제왕인데, 이런 자리에서 그런 시험을 만날 때에 남자로서 뭐 으레 그런 시험에 들 수 있지 않을까?』여러 가지 핑계로써 죄를 가리어보려고 애쓴 줄 생각합니다.
『아 왕의 체면도 있지 않느냐? 왕의 체면도 아무래도 세워야 되지 않겠나? 내가 사실은 우리아를 얼마나 생각했나? 일부러 불러들여서 어떻게 이 허물을 감추려고 애썼느냐? 아, 그 녀석이 충신은 충신인데 너무 고지식해서 죽었지! 또 하기야 실상은 내가 죽였나, 암몬 사람이 죽였지.』아마 이렇게도 생각해 본 줄 압니다.
여러 가지로 이 사실을 합리화하고 핑계를 해서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 보려고 많은 생각도 한 줄 압니다. 그리고 물론 이렇게 죄 지은 다음에도 으레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사를 드리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절차는 아주 전에 보다 더 부지런히 한 줄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 으레 머리도 숙이고 속은 기도가 막혔겠지만 입술로는 기도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주 태연히 점잖은 제왕이올시다. 그러나 실상 그 때 형편은 어떠했어요. 여기 三절과 四절에 기록한 대로입니다. 종일 신음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번역에는 종일「부르짖었다」고,「뼈가 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아프면 뼈가 저리다고 하는 말 쓰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 생명의 진액이 말라서 마치 여름 가물에 마르는 것처럼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뜨거운 여름에 오래 가물면 모든 것이 마르고 부스러집니다. 그 심정, 그 다급한 심정, 초조한 마음, 애 타는 심정, 그저 가슴이 탈탈한 그 심정을 이런 말로써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이 종일 계속되었고 그런 고통이 낮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밤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왜? 자기는 암만 이 죄를 가리려고 애쓰지만 가리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는 암만 이 죄를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이 죄를 잊어버리겠다 하고 저녁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시편 五十一편에 고백한 말씀과 같이『내 죄가 내 앞에 있나이다.』자기의 범한 그 흉악한 죄가 눈앞에 환하게 나타났습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가릴래야 가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속에서 성령은 떠난 지 이미 오랬습니다. 따라서 즐거움도 떠난 지 오랬습니다. 그 대신 불안과 공포가 그의 마음에 사무쳤습니다.
그저 항상 무엇이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밤에 자려고 하면 잠이 들자마자 꿈자리가 사납습니다. 그 우리아가 자리를 죽이려고 칼을 들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릅니다. 자려고 하면 흉몽(凶夢)으로 잘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여기 기록한 대로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눌렸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눌렀는지 알 수 없지만 육신도 누르고 마음도 누른 줄 압니다. 그래서 몸도 쇠약해지고 정신도 쇠약해졌습니다.
이런 고통이 밤낮 계속합니다. 아마 이대로 그냥 지나갔으면 정신 이상이 생겼을는지 모릅니다. 이런 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서 계속해서 고민하다가 여러 가지 신경쇠약과 히스테리와 마지막에는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가 나단의 솔직한 책망을 듣고 자기의 죄를 확실히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내가 여호와 앞에 범죄 하였나이다!』
자기 자신에게, 자기 양심에게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을 했습니다. 자아 기만의 장막을 온전히 벗어 놓았습니다. 죄는 합리화하려고 더 힘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죄는 잘못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죄는 단순히 자기 혼자와의 관계가 아닙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남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올시다. 이 은혜와 사랑을 저버린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깨끗한 심령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죄인이 죄인인 것을 고백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단 앞에도 사람 앞에도 솔직히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과연 죄를 지었습니다 어떠한 형벌이든지 받겠습니다.』겸손히 자복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험악한 죄에도 불구 하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죄의 결과가 그 가정에 미치지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죄인이라고 어떠한 죄는 지었을지라도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는 그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아무리 탕자라도 많은 재산을 허비하고 허랑 방탕하고 음란한 생활을 한 탕자가 돌아올 때에도 죄를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그 아버지는 새 옷을 입혀주었고 손에는 금가락지를 도로 끼워 주었고 반가이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심지어 살인 강도라고 십자가에서 못 박혔을 때에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용서해 주시면서『오늘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시게 될 때에 다윗의 마음가운데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와의 주야로 누르는 손이 없어졌습니다. 압박감이 없어졌습니다. 무거운 짐이 벗겨졌습니다. 숨을 자유로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심령이 해방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와 초조 대신에 안심과 화평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섭더니 이제는 사랑의 아버지로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잠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픈 머리도 거뜬하게 되었습니다 악몽에서 온전히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이와 같은 사죄의 축복을 받고 감사한 가운데서 지은 노래가 여기 三十二장 一-二절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복이 있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시편 三十二편을 끝까지 읽어보면 자기가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그런 까닭으로 무릇 경건한 자들은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하라.』
회개의 기도를 하라고 하는 말입니다.『너희들이 어떠한 허물이 있든지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고. 그와 같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우리들을 축복하여 주시리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서 九절에 보면『너희는 그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지한 말, 무지한 노새는 주인의 채찍을 맞고도 그냥 고칠 줄을 모릅니다. 우리에게 그런 말처럼, 노새처럼 그냥 죄 가운데 있지 말고 더 형벌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채찍이 내리기 전에 회개하라고, 모든 사람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미도 말했지만 다윗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큰 범죄를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도 큰 유혹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전감(前鑑)이 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우리가 얼마나 신앙 생활을 하였든지 항상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하여서 시험에 들었다고 하면 우리가 이 죄를 가리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 죄를 덮으려고 할 것이 아닙니다. 곧 그 자리에서 깨달아 아는 대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솔직히 자복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죄는 값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범한 다음에 값이 없는 줄 스스로 속지 맙시다. 물론 무신론자들은 죄를 부인합니다.
지금부터 약 三十년 전에 전 세계적으로 극단의 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해질 때에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죄를 경히 여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드를 비롯해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심리를 깊이 연구했습니다.
육체의 모든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그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많은 육체의 질병과 여러 가지 정신적 이상이 어떤 때에는 자기도 모르는 내적 분열과 내적 충돌에 의해서 여러 가지 육체의 질병과 여러 가지 심리적 고장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적 분열, 내적 충돌은 결국은 어디서 원인이 되는 줄 압니까? 속에 죄가 깊이 묻혀 있을 때에, 결국은 속에는 분열이 생기고 내적 충돌이 생깁니다.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버려서 그 죄를 잊어버리지마는 사람의 심령 깊은 속에는 죄를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고통이 생깁니다.
번민이 생깁니다. 오뇌가 생깁니다. 유명한 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읽어보십시오. 미국의 유명한 소설, 호오돈(Hawthorne Nathaniel)이 지은「주흥 글씨」(The Scarlet Letter)라고 하는 소설을 읽어보세요. 혹은 우리 한국의 소설 가운데 춘원(春園)선생의 세조대왕(世祖大王)을 읽어보세요.
죄에는 값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값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솔직히 하나님 앞과 또한 부득이 어떠한 경우에는 사람 앞에서라고 온전히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 은 요한 一서 一장 九절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가 어떤 허물이 있을지라도 솔직히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셔서 십자가의 공로를 보시고 우리 죄는 사해 주시고 우리 심령을 다시 깨끗하게 하여주실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은혜가 우리 각 사람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