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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34:1-22/ 다윗의 간증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19:35   read : 1293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三十四․八)

    시편의 대부분이 그 시를 쓴 사람들의 신앙 간증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三十四편은 특별히 그러한 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신앙에 대한 간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음식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고 하면 맛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선하신 지, 맛을 보아서 알아보라고 하는 말과,
    그에게 피하는 이는 복을 받는다고 하는 말은, 내가 하나님을 체험으로 맛을 보아 알아보니 과연 그는 선하시고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시요.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시 三十四편 전편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다윗의 신앙 간증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먼저 이 말씀을 생각하십시다. 맛을 보아서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선하심을 알아보는 것은 몇 가지 있습니다.
    이성의 길이 있습니다. 추리의 길이 있습니다. 이치를 미루어서 무엇을 아는 길이 있습니다. 옛날 헬라 사람 알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뛰어 나오면서『나는 깨달았다. 나는 깨달았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몸을 물에 잠겨 보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왜 가벼워지며 또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알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면서 그것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추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즉 물 속에 들어가면 몸의 용적 만한 물의 중량만큼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추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아이작 뉴톤 같은 이도 과수원에 앉아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자세히 살피다가 지구에서는 모든 것을 잡아당기는 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을 통해서 무엇을 아는 예입니다. 그러나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으로는, 직감 혹은 직각 곧 느낌으로 깨닫는 길이 있습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줄 아는 것은 무슨 이치를 생각해 보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 해와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줄 아는 것은 누가 설명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꽃을 보고나 음악을 듣거나, 위대한 문학이나 시를 읽거나, 혹은 위대한 조각품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고 놀라움을 나타내게 되는 것은 이성으로 생각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직감입니다. 예술적 방면의 모든 지식은 흔히 이런 직감적 경로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됩니다.

    또 다른 길은 우리가 많이 쓰는 길인데 권위입니다. 이 권위를 통해서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각방면에 전문가가 있습니다. 나는 깨닫지 못하지만 그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신용함으로 우리가 압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라도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줄을 다 압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코페르니크스가 이 세상에 나타나서 주장하기 전에는, 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줄 다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이 생각해서 알아냈습니까? 아닙니다.

    직감으로 압니까? 아닙니다. 무엇으로 압니까? 권위의 말을 믿음으로 즉 천문학자의 말을 믿음으로 압니다. 그들의 말을 신용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모든 교과서를 읽고 지식을 배울 때에는 다 이런 여러 가지 경로를 이용해서 배웁니다.

    다른 또 하나의 길은 매우 중요한 방법인데 실험을 통해서 아는 길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콘 같은 분은 이 방법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三백년 동안의 위대한 과학의 발전은 모두 이 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학설이나 진리가 과연 옳은지 알려면 그대로 실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보아서 귀납적으로 그 이론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지로 해보는 것이 새 지식을 아는 방법입니다.
    여기 맛보아 안다는 말은 이치를 미루어서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직감적으로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본인의 말을 듣고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실지로 해보라는 말입니다. 실지로 해보아서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라는 말입니다.

    종교적 진리를 아는 데도 이 몇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아는 데도 대략 다음의 네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의 길입니다. 우리가 대 우주를 살펴볼 때에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마는 자세히 과학자의 눈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렇게 않습니다.

    일정한 법칙이 있고, 일정한 구조가 있고 일정한 조직이 있고, 따라서 질서가 있고, 고안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계보다도 더 정밀한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래도 이런 우주를 계획하고 고안한 대 우주의 창조자가 계시지 않겠는가?

    철학자들은 이런 이성의 추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틀 같은 사람도 이 우주에는 움직이는 큰 힘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이것들은 처음에 움직인 이가 계시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길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감의 길도 있습니다. 가령 시편 十九편 一절을 읽어보면『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穹蒼)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연구를 통해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에 자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직감할 것입니다. 대 우주를 바라볼 때에 거기 하나님의 손의 자취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우주의 창조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군이 이지마는 이런 직감의 은혜가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그가 한 번은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애굽을 정복하려 가기 위해서 지중해를 건너갑니다. 마침 바다는 잔잔하고 달은 밝은 밤인데 많은 군인들이 갑판 위에 올라와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폴레옹이 조용히 뒤로 다니면서 이 군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살펴봅니다. 한편 구석에 가 보니까 어떤 군인 둘이 앉아서 열심히 변론을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자요. 하나는 유신론자입니다. 나폴레옹이 뒤에서 가만히 듣다가 그만 성미가 급해서 불쑥 한 마디를 했습니다.『여보! 변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좀 바라보시요.』

    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하늘을 쳐다보니 명랑한 달빛이 아름답게 비치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면서 그들을 내려다봅니다. 그 때에 나폴레옹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저걸 보고도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모르겠소?』직감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도 아닙니다. 또한 권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종교가의 간증을 듣고 우리가 하나님을 압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종교가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친히 받은 이요, 하나님과 동행한 이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간증을 해줍니다. 과연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종교가입니다. 이런 모세가 우리에게 간증을 해줍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종교가입니다. 이런 엘리야가 자기의 체험을 우리에게 간증을 해줍니다.

    사도들은 다 위대한 종교가입니다. 이런 이들이 자기의 체험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라고 간증을 해 줍니다. 우리가 그 간증을 안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 종교적 권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을 아는 데도 한 가지 중요한 길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시험해 보는 길입니다. 이치로 미루어서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고, 직감만 믿는 것이 아니고, 남의 말만 듣고 믿는 것이 아니고, 내가 실지로 하나님을 만나보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참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맛보아 아는 길입니다.『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 보라』고 하는 말은 이 말입니다. 이것은 가장 분명히 아는 길입니다. 체험적으로 아는 길입니다.


    지금은 가을이라 시장에 나가면 여러가지 과실이 많습니다. 아주 아름답게 보이는 사과도 많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과를 하나 놓고 이 사과가 어떤 사과인가 알아보기로 했다고 합시다.

    그 사과를 아는 데에도 네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저 사과는 어떤 종류이고, 지금은 가을이니까 사과가 익을 때이고, 그러니까 필경 이 사과는 맛이 있을 거다.』이렇게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습니다.

    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저 사과는 보기에 참 먹음직하다. 참 맛이 있어 보인다.』이것은 직감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또 남의 말을 듣고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과와 꼭 같은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먹어보니 참 맛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사 가십 시요.』이것은 권위를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사과가 어떤 사과인지 내가 꼭 알려고 하면 어떤 것이 제일 빠른 길이겠습니까? 먹어보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내가 먹어보면 아주 알기 쉽습니다. 수박도 쪼개서 먹어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다윗은 우리에게『너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인가를 알려면 맛을 보고, 먹어보고 실지로 체험해 보고, 기도해 보아서 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여기 三十四편 전편에 내가 이렇게 맛보아 알아보니 과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복을 받더라고 하는 그의 신앙에 대한 간증입니다. 이제 몇 절을 제가 읽어드립니다.『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四절입니다.

    『이 곤고(困苦)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六절 말씀입니다. 여기 보니『남(他)이 구해보니…』이런 이야기는 없습니다.『내가 간구 하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내 두려움을 없이하여 주셨느니라.』

    『내가 곤고 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내 두려움을 없이하여 주셨다』고 하는 자기 체험의 간증입니다. 사실 그는 이런 체험을 다 얻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시기를 받아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습니까? 한 번은 그가 거문고를 탈 때 갑자기 창을 던졌습니다.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해서 그의 낮을 피해서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 때도 있었습니다. 엔게디 굴과 광야 여러 곳으로 도피해서 큰 환난 중에 여러 해를 살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내 생명을 구원해 주세요. 내 생명을 보호해 주세요.』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고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모든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는 이것을 간증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모세의 간증인 줄 압니다. 이것 역시 요셉의 간증인 줄 압니다. 이것 역시 엘리야의 간증인 줄 압니다. 이것 역시 바울의 간증인 줄 압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사자의 입에서 나를 건져내셨느니라.』이것이 또한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여기 앉은 여러분의 간증이 아닙니까?

    혹은 三八선을 넘어 올 때 六․二五를 통해서, 혹은 천재지변을 통해서, 혹은 큰 질병 가운데 있은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내 까닭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또 이런 간증도 했습니다.『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九절 말씀입니다.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의미는 어떤 세상의 물질의 부족이 없다든지 무슨 곤란한 일이 없다고 하는 뜻은 아닌 줄 압니다.

    그것은 이 말을 한 다윗 자신도 궁핍한 생활도 많이 했고, 위험한 생활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께서 족한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그 뜻입니다.

    바울의 말과 같이 자기 몸의 가시는 그냥 있습니다. 가시가 그냥 아픕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족한 은혜를 주실 때에 그 가시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또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두시는 동안에는 그의 마음에 언제든지 부족함이 없는 참된 화평과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느 시편보다도 시편 二十三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뜻을 더 분명하게 간증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기 푸른 풀밭에 눕고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말은 조금도 곤란한 일이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요. 어떠한 환경 가운데 있든지 주님께 의지하는 그 심령은 언제나 생명의 양식이 부족하지 않고, 심령의 상처를 입도 회복해 주시고,

    아무리 아득한 길도 인도해 주시고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그 말입니다. 왜? 주님께서 같이 하시는 까닭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족한 은혜를 주신다고 하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제가 몇 해 전부터 얼굴은 모르지만 어떤 적은 시골 교회에 있는 청년과 편지 거래를 가끔 해왔는데 며칠 전에 이런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제 이 편지의 일 절을 읽어 그리겠습니다. 여기에 이 청년의 신앙 간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 힘써 주의 전에 일하는 자는 모두가 복 받는다구요. 이것은 한 목사님의 경험으로도 모두 그렇더라고 하셨지요. 목사님, 이 일에 또 한 사람의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입니다) 재작년 편지하셨을 때에 목사님은 저도 앞으로 직장이 생기고 우리 교회도 번영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지요. 저는 그 후 목사님의 이 말씀을 모두 진실로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참 많은 애를 쓰다가 어떤 곳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봉급은 박해요. 四천 원 이하 三천 七, 八백원 받는 이런 직장을 얻었어요. 그 후에 그 교회에서 집사의 직임(職任)을 받고 또 회계 집사의 직분을 받았는데 교회를 다시 지어야 될 수밖에 없는 까닭으로 그 박봉을 받아서 아껴 가면서 교회를 지었습니다.』이런 이야기와 함께 자기 가정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간증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조모님의 제삿날입니다. 이 때까지 주일날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시면서 가정에서는 제사를 지내시던 저의 부친이 七十五세의 노령에 모든 구습을 버리고 오늘은 제사를 추도식으로 거행했습니다.

    이제는 저의 아버지가 온전히 주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기쁨을 저는 금하지 못합니다. 물론 저의 어머니는 금년에 권찰로서 수고를 또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나이 많으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고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 지옥도 천당도 보는 제가 저의 아버지를 뵈올 때, 그 심경은 가히 짐작하시겠지요. 저는 저의 아버지가 온전히 믿기 전까지는 제 자신의 믿음이 아무 것도 아님을 늘 명심하고 집사의 자격도 아무 것도 아님을 자인해왔습니다.

    그러나 七十五세의 아버지께서 그 구습을 버리고 제사를 금하시고 주의 자녀 되시기를 바라기는 사실 어려웠습니다. 몇 번이나 애원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마음의 큰 축복을 저의 가정과 제게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이렇게 한 목사님께 편지를 올립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교회 부근에 집을 지어 주의 보내신 사자와 찬양대와 주일학교 반사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손님을 치르는 일입니다. 그 때에야 저의 신앙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 목사님께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교회 짓는 바로 앞에 상점도 할 수 있는 터가 있어서 이미 교섭중입니다.
    대지 값까지 모두 四만원 정도면 상점과 집을 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저축하고 있는 계돈이 十一월이면 끝나는데 二만 三천 원입니다. 그러면 몇 년 이내에 되리라고 생각도 합니다. 저녁에는 쑥을 캐서 또는 풋나물로 죽을 끓여 먹어도 저는 이미 주님 안에서 사랑을 느끼고 삶의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로마서 十二장 十三절,『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하는 이 말씀은 저의 가정의 목표입니다. 언제쯤이나 제가 주안에서 온전하여져서 주님의 뜻을 따라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을 지요. 한 목사님 저를 위해서 계속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여러분이 들으신 대로 이 청년의 생활을 보면 매우 어렵습니다. 적은 봉급을 가지고 애써서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당 건축 헌금을 하고, 회계 집사로서 목사의 봉급까지 책임지고 꾸려나가려니 자기의 생활은 무한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또 다윗의 간증의 계속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도 사실 자기중심의 간증인 줄 압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습니다.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충심으로 통회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시고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내가 지내보니 하나님께서는 사실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은 간증주일입니다. 다른 분의 간증을 하나 더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편지를 받았는데 대구교도소에 있는 죄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입니다. 이 사형수가 자기의 신앙을 간증하기 위해서 이런 긴 편지를 복사해서 보냈는데 제가 몇 절만 읽겠습니다.

    『저는 온 세상이 좇고 있는 죄악과 향락을 찾아서 헤매었던 끝에 오늘에 사형이란 형을 받고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저에게 부닥쳐오는 괴로움과 불안은 저의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 무시무시하던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선을 방황하던 제가 지금 그리스도를 저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또한 이 은혜를 받을 만한 아무 의도 없고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하나님은 자비의 은혜로 이끌어 주셔서 지금까지 영 육간에 보호하심을 받는 것을 생각할 때에,「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 님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에서 저주받은 자의 한 사람이었던 저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을 신앙하기 전까지는 마음속에 잠시도 평안을 얻지 못하는 자이었으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섭리로써 저의 감방에「승리의 생활」이란 책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가 보내준 책인지도 알 수 없으나 책명 그대로 이길 수 있는 생활이란 호기심에서 읽어보았습니다. 이 때에 저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불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후의 승리로써 끝까지 읽어갈 때에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마 그때 성신님께서 저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신 줄 믿습니다. 이 때에 저는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의 매사가 죄악의 행위일 수밖에 없으며 또 하나님 외에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자가 없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어떠한 죄든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으며 또 영원한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을 만 분의 一이라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매일 계속적으로 몇 장씩 읽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마음의 참 평안을 찾고 가질 수 있으며, 죄악 속에서 허덕이던 저를 건져 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은 저와 항상 동행하신다는 것과 또 하나님은 저를 버리시거나 떠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나머지 내용도 거의 다 비슷한말입니다. 무슨 죄인지는 알 수 없지마는 사형수로서 복역하면서『승리의 생활』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하나님께서 죄 사하시는 확신을 얻었다고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속담에「수박 겉 핥기」란 말처럼 어떤 분은 예수를 믿지마는 수박 겉만 핥는 것처럼, 실지로 체험이 없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충심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세요.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으세요.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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