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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90:1-17/ 빠른 세월 가는 인생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20:17   read : 1426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九十․十)

    시편 九十편 十절의 하반절에『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신속히 간다는 말입니까?

    세월이 신속히 간다고 하는 뜻입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무엇이 날아갑니까? 우리가 날아간다는 말입니다. 인생이 날아간다는 말입니다. 빨리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든 이런 생각이 없으리요 마는 특별히 이렇게 한 해가 다 저물어 가고 마지막 주일로 모이게 될 때에 세월이 빠르다고 하는 느낌을 더욱 새삼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세월이 빠른 것은 우리 인생이 속히 간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어제 사무실에서 물어보니 금년에 본 교회 안에서 세상을 떠난 우리 교우들의 수가 일 백 한 명이라고 합니다.

    일 백 한 명의 우리 교우들이 금년 一년 동안에 교회의 교적을 떠나서 천국의 국적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빠른 세월 가는 인생입니다. 오늘 이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九十편은 모든 시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 중의 하나입니다. 모세의 기도, 혹은 모세의 인생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제목은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성의 순간성입니다. 그 시상이 웅대하고 문장이 미려하고 의미가 심장 하였습니다.

    어떤 주석 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시는 아름다운 종교시이나 봄날 하늘 높이 즐겁게 부르는 종달새의 노래가 아니라 그보다는 쓸쓸한 가을날 나뭇가지에 외로이 앉아 우는 라빈의 몇 마리의 노래일 것이다.(라빈은 새의 이름이다) 고요한 밤저녁에 외롭게 우는 두견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엄숙한 면을 가르치는 노래입니다.

    이 시편 九十편 一절로 十절까지는 인생의 이런 면을 묘사하는 내용입니다.

    三절에 보니『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이런 글귀가 있습니다.『인생들아 너희는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육체는 티끌에서 났습니다. 티끌로 돌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백골로 돌아갑니다. 진토로 돌아갑니다.

    五절에 보면『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홍수처럼 쓸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 뜻은 갑자기 많은 생명이 일시에 가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재지변, 혹은 큰 사고, 큰 전쟁을 당할 때, 우리가 친히 목도하는 인간의 현상입니다.

    홍수처럼 쓸어갑니다. 일전에 신문을 보니 우리 서울에서도 매三十분에 한 사람씩 죽는다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매분 홍수처럼 쓸어 가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처음으로 뉴욕엘 갔을 때, 이층 버스를 한 번 타고 구경을 했습니다. 거기는 이층 버스가 있는데 왜 이층 버스를 탔느냐 하면 이층에 올라가 타야 높아서 내려다보면서 구경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층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도는데 아마 타운스퀘어 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한 곳에 가니 아주 넓은 마당인데 사람이 수천 명, 수만 명 들끓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일 백년 후에 다시 이 자리에 와서 선다고 하면 오늘날 여기서 움직이던 이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본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五절에 보니『잠깐 자는 것 같고』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인생 일장이 한 잠 잠깐 자고 깨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잠깐 자고 깬다는 것은 꿈과 같다는 말입니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말을 우리가 종종 듣습니다.

    六절에는『아침에 돋는 풀 같습니다.』이런 구절이 있습니다.『아침에는 자라가다 저녁에는 배인바 되어 마르나이다.』이런 뜻입니다. 예언자 이사야 도 四十장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오직 여호와의 말씀은 세 세에 있느니라.』인생을 잠깐 있다 마르는 풀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九절에 보면 심지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여러분, 인식간이라고 하는 말뜻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보통 읽으면 그 뜻을 모르고 읽습니다. 일신간이란 무슨 뜻입니까? 다른 뜻이 아닙니다.

    숨 한 번 쉴 사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영어성경에는 하품 한 번 하는 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품 한 번 하는 것이 얼마나 깁니까? 하품 한 번 하는 잠깐 사이에 우리의 평생이 지나간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저 잠깐이라는 말입니다.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 마지막에 후―하고 숨 한 번 내 쉬면 그만입니다. 그게 인생이란 말입니다. 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十절에 보니『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글귀를 읽을 때에 자연히 인생 칠십은 고래희(古來稀)라고 하는 유명한 동양의 시인 두보(杜甫)의 명구를 연상하게 됩니다. 동서양의 철인의 말이 어떻게 그렇게 부합되는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보통 七十 살면 잘 사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이 가지마는 사실 제 경험으로 보더라도, 보통 六十 이상 七十 내외에서 많이 갑니다. 주보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벌써 환갑 지나면 날이 저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 길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연수의 자랑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동양에도 수즉다욕(壽則多辱)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금 오래 살면 욕되는 일이 많다고 하는 뜻입니다.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수고에는 내적 수고가 있습니다. 죄와 그 고민을 의미합니다.『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은밀한 죄를 얼굴 빛 가운데 두셨나이다.』이런 심각한 글귀도 있습니다. 잠깐 되는 세상을 살지마는 죄와 그 고통이 심합니다.

    또 외적 수고가 있습니다. 환난과 재난이 많은 세상입니다. 질병과 사망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슬픔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좀 오래 살면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는데 그 주름살마다 눈물이 흐른 자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인간은 잠깐 되는 것이요. 또 수고와 슬픔이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육신 면으로 보는 인생의 현실입니다. 세월은 빠른데 인생도 또한 빨리 갑니다.

    이러한 인생의 현실을 직면하게 될 때,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여기 중요한 기도 둘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十二절에 있습니다.『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우리 날의 수를 헬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날의 수가 정해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와서 몇 해, 몇 달, 몇 날 살 수 있는 날의 수가 정해 있는데 이것을 미리 헤서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을 날이 있는 것을 기억하게 해 달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마음입니다. 우리 날의 수를 헤일 줄 아는 것이 지혜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다 잘 아시지요? 어떤 곳에 부자가 있는데 그 해에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곡간이 좁아서 쌓을 수 없습니다. 곡간을 더 크게 지었습니다. 많은 곡식을 곡간에 쌓았습니다. 마음이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자신과 자문자답을 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 주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이렇게 아주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왜 어리석습니까? 자기 날을 헤 일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자기 날의 수가 한정된 것을 모릅니다. 그저 세상에 늘 살 줄 압니다. 그래서 욕심도 많이 부리고 시기를 하고, 질투를 하고, 싸움을 하고 어떤 때는 살인강도질도 합니다.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자기의 날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모릅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날을 계수한다고 하는 말은 결국 하루 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귀중히 쓴다고 하는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성경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가 악하다고도 했습니다. 서양 속담에 시간은 돈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더 귀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한 시간을 낭비하면 한 시간의 생명이 그저 없어집니다.

    돈은 잃어버렸다가 혹 다시 찾을 수 있지마는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생명은 다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시간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해서 한 시간 한 시간을 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부지런하라고 권면 합니다.『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

    우리의 날을 계수 한다고 하는 말은 그 날에 할 일을 꼭 그 날에 한다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의 마음입니다.

    우리 날에 끝이 있는 것을 알고 제한된 것을 알아서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을 귀하게 바로 쓸 줄 알고 내 책임을 다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지혜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의 일생은 이렇게 잠깐이니 이 세상만을 위해서 살면 안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내세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니라』고 가르쳐 줍니다.『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 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 이다.』
    대대로 우리 영혼의 거처 가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의 마음입니다.

    이 순간적인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미련하고 가련한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시는 예수를 모르고 사는 것처럼 한심한 일은 없습니다. 지혜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十四절에 기도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여기 아침이라고 하는 말은 하루의 아침이 아니고 인생의 아침을 가리킨 것입니다.

    인생을 하루로 보면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습니다. 소년시대 청년시대는 아침입니다. 중년시대는 낮입니다. 노년시대는 저녁, 황혼의 때입니다. 여기서는 인생의 아침 즉 소년시대에 주의 인자를 받아서 주님을 섬기는 도를 깨닫고 옳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전도서 十二장 一절에『너는 청년의 때…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청년시대에 은혜를 받아서 옳은 길을 가게 하여 달라고 시도하였습니다. 젊은 시대에 옳은 길을 걷기 시작하면 평생에 즐겁고 기쁜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잠깐이요, 수고와 슬픔이 많지마는 젊을 때부터 참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인생의 아침에 바른 길을 택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 스위스의 어떤 노인이 약 八十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강건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八十년을 사는 동안에 자기의 시간을 어떻게 썼나 한 번 조사해 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확실한 조사인지 모르지만) 二十六년간은 침상에서 누워만 있었습니다. 아마 잠을 넉넉히 잔 모양입니다. 또 二十一년간은 일만 했습니다. 六년 동안은 음식 먹는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음식도 굉장히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또 다른 六년 동안은 불쾌하고 노한 중에 지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한 모양입니다. 五년 동안은 다른 사람이 시간 안 지키기 때문에 남을 기다리느라고 허비(虛費)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큰 골치입니다. 남 때문에 허비한 시간이 五년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二二八일 동안 수염 깎는 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二十六일은 아이들을 욕하는 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손자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또 十八일 동안은 넥타이 매는 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으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또 八十일 동안은 코 푸는 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시간이 가는 모양입니다. 열 이틀 동안은 담배 불 붙이는 데 허비됐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담배 피운 시간은 그보다 더 길 것입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데만 열 이틀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기쁨과 웃음으로 지낸 시간을 잘 계산해 보니 마흔 여섯 시간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날을 어떻게 계수 하십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주후(主後) 七세기초에 복음이 처음으로 영국에 전파될 때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 때에 영국은 적은 나라 여섯으로 나뉘어 있던 때입니다. 그 나라 가운데 노듬브리아(Northumbria)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 에드워드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도자가 그 왕에게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왕이 자기 혼자는 암만 생각해야 확실히 알 수 없어서 하루 저녁은 연회를 베풀고 모든 신하를 다 초청해서 저녁을 잘 대접한 후에 이 문제를 꺼냈습니다.

    『어떤 이가 와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예수를 ale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 하는 것을 토론해보자』고. 그러니까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떤 늙은 재상이 일어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이렇게 가끔 저녁에 불을 켜고 연회를 하게 될 때, 밖은 어둡고 마침 비가 오고 바람마저 불게 되면, 참새란 놈이 창으로 날아 들어와서는 이 밝은 방안을 한 번 휙 돌고 저편 창문으로 도로 나가는 그런 경우를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리 인생이 그 참새와 비슷합니다. 이 밝은 세상에 잠깐 와서 사는데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새로 들어온 종교가 우리 인생의 이 깊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면 우리는 이 종교를 믿어야 될 줄 압니다.』이렇게 말할 때에 모든 신하들이 다 옳게 여겨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인생의 이 깊은 뜻을 해결해 주는 종교입니다. 순간적인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종교입니다. 인생이 비록 잠깐이나 이 동안에 영원한 거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생활의 최고목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인간 지혜의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을 천금같이 아끼면서, 바로 사용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봉사하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 즉 민족과 국가를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참된 지혜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인생의 아침에, 일찍 젊었을 때, 이 진리를 깨닫고 이대로 나아가면, 비록 수고가 많고 슬픔이 많은 이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만족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九十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이 참된 진리의 길을 찾지 못한 이가 있습니까?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오늘 이 시간에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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