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0:1-8/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 한경직 목사 2014-08-23 20:24:14 read : 131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사 二十一․十一-十二)
이사야 二十一장부터 二十三장 사이에는 유대 근방에 있는 여러 나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실려있습니다.
당시는 북방에 강대한 나라 앗수리아가 일어나서 중동 일대를 침략하며 압박하던 때입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국제적 대 혼란기에 역사의 망대에 서서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十一절과 十二절을 두마에 관한 예언이올시다. 두마는 에돔을 의미합니다. 세일산은 에돔의 산입니다. 당시의 사정을 잘 몰라서 그 예언의 뜻을 확실히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세계를 통하여 인간의 깊은 심금을 울리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신령한 가운데 역사의 높은 망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신령한 눈으로 열국을 살피며, 신령한 귀를 열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밤은 깊습니다. 이윽고 멀리 유다 남방의 나라인 에돔인 세일산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어 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환난의 밤이 깊습니다.
이 밤이 얼마나 더 계속되겠습니까? 이 밤이 이경입니까, 삼경입니까? 아니 거의 삼경이 되었습니까? 여기 환난의 밤에 해방과 자유의 아침을 기다리는 영원의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신령한 망대에 서서 이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런 부르짖음은 옛날만 있은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밤 공기를 흔드는 것입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최근 수주일간에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우리의 자유는 소련의 총칼에 짓밟혔나이다. 우리의 입은 소련 탱크로 틀어 막힘을 당하였나이다." 하는 편지가 온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얼마나 애절하며 처절합니까? 밤중에 부르짖는 음성이올시다.
그런데 체코에서만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동포들의 입도 벌릴 수 없는 무언의 부르짖음은 얼마나 더 비참합니까?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이 핍박, 이 억울(抑鬱), 이 포악, 이 노예의 생활에서 얼마나 더 참고 견뎌야 합니까?
벌써 二十여 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런 부르짖음은 북한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본토의 七억의 부르짖음은 전 아시아의 밤 공기를 진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밤은 깊었습니다. 사실은 아시아 뿐만도 아닙니다.
헝가리를 비롯해서 소위 동편 유럽의 모든 위성 국가와 소련 전체 안에서 가련한 국민의 부르짖음과 애원의 소리가 세계의 밤 공기를 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의 밤은 깊었습니다.
우리가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습니까? 우리가 개인 생활 하나 하나를 살펴볼 때에 개인적으로 또한 깊은 밤에 해메이는 외로운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환난의 밤, 질병, 슬픔, 고통의 밤에 부르짖는 음성을 우리는 또한 듣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큰 재난의 밤과 실패의 깊은 밤에, 혹은 고독, 빈곤, 근심, 유혹, 계략의 밤에 부르짖는 음성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와 같은 부르짖음으로 충만하건만, 우리의 신령한 귀가 얼마나 열렸습니까?
먼저 우리는 이사야 같이 이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일산에서 부르는 음성을 먼저 들어야 될 것입니다.
『아침이 오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캄캄한 밤에 부르짖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침이 정녕 올 것이다." 압박과 억울한 가운데서 신음하는 민족들에게 외칩니다. 오래지 않아 "자유의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오랜 질병의 밤에 부르짖는 이들에게 건강의 아침이 온다고 선포하십니다. "성공의 아침도 올 것이다. 번영의 아침도 반드시 오는 것이다. 너희들이 지금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지마는, 기쁨의 아침도 반드시 올 것이다. 승리의 아침 사죄의 아침이 올 것이다." 라고 선포합니다.
사실 아침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 시대에 큰 민족의 밤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부르짖었습니까? "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八․一五해방은 온 것입니다.
二차 대전이 끝나기까지 많은 약소 국가들이 압박의 깊은 밤에서 부르짖었습니다. 二차 대전 후에 많은 약소 국가가 독립을 얻은 것입니다. 흑암(黑暗) 대륙이라고 불러오던 아프리카에도 수 없는 나라가 솟아나게 된 것입니다.
민족이나 국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개인 생활에 있어서도 밤이 깊으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 옛날 동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 가운데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고 했습니다. 혹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저녁에는 눈물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는" 것이다. 반드시 아침에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밤중에 있을 때에 낙심하지 아니해야 됩니다. 실망하지 않아야 됩니다. 자포자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중단해서는 아니 됩니다. 계속해서 싸우고, 계속해서 분발하고 계속해서 용기를 내어서 내 책임을 다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 아침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캄캄한 밤을 지나갈 때 꼭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벽 전이 제일 어둡다는 것입니다. 깊을수록 밤이 어두울수록 아침은 이미 가까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 시대에도 이런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해방되기 바로 몇 해 전에 우리가 얼마나 캄캄한 일을 당했습니까? 우리의 말을 그 사람들이 금했고, 우리의 성을 그 사람들이 고쳤고, 문자 그대로 한국 민족의 말살 정책을 그들이 쓴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못 가서 해방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어두울수록 그 밤이 거이 지나간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기리 참고,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내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밤이 깊은 중에 헤매이는 이들은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이 온다고 하면서 여기 이상한 말이 한 마디 더 있습니다. "밤도 오리라." 우리가 예언을 읽을 때 이런 말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진실합니다.
사실 그대로 선포합니다. 무슨 뜻이고 하니 "이 세상에서는 아침만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어두울 때가 또한 오는 것이다." 하는 그 말인 줄 압니다.
이것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이 증명합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를 보아도 민족적 아침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만 왔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三八선이 생겼습니다. 북한에는 깊은 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二차 대전 후에 많은 약소 국가들이 자유의 아침을 맞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만입니까? 철의 장막 배후에는 오히려 더 캄캄한 밤이 깃들이고 이는 것입니다. 개인 생활에도 환난과 역경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반듯이 옵니다.
그러나 항상 아침만 계속됩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 밤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을 당하는 이에게 주의를 환기할뿐더러 오히려 낮에 사는 이들에게도 주의를 환기하는 말씀이올시다.
낮에 사는 이들도 예언을 자세히 들어야 합니다. 왜? 밤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죄악 세상에서는 항상 아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밤도 옵니다.
우리의 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ꡔ때가 낮일 때, 마땅히 할 이을 하라ꡕ고 했습니다. 왜? 밤이 오면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밤과 같은 환경에 있다고 낙심하지 말고 반면에 내가 낮과 같이 평안한 자리에 있다고 교만한 생각을 버릴 것입니다.
겸손히 내 할 일을 계속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낮에만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환난의 밤이 또한 오리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이 말은 이런 뜻인 것 같습니다. 멀리 에돔 사람들이 캄캄한 밤에 "이 밤이 어찌되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을 물으려거든 물으라 내가 대답하겠다. 그러나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 같이 에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민족적으로 큰 수난기를 당할 때에 평소에는 자기들의 원수로 여기던 이스라엘의 예언자에게 "이 수난기가 얼마나 오래 갈 것입니까?
이 밤이 얼마나 오래 갈 것입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예언자의 대답은 "묻기를 원하거든 물으라 대답하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족하다. 너희가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큰 환난의 밤을 당할 때에 "이 밤이 얼마나 계속되겠습니까?"
하고 물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에돔 사람들을 향해서 예언자가 하는 말은 "너희는 이러한 때에 묻기만 할 것이 아니고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너희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 이것이 너희가 참으로 사는 길이고 영원한 아침에 사는 비결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밤이 다시없는 생활의 비결이라고 한 것입니다.
밤은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인 것을 기억하고, 밤은 회개의 기회인 것을 기억하고 이 환난의 밤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말씀이올시다. 아침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은 이 기다리는 마음에 만족을 줄 만한 아침의 생활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활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죄를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입니다.
환난 때에 이 환난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겠는가를 묻지만 말고, 환난 때에 나 자신을 살피면서 마땅히 고칠 것을 고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참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권면인줄 생각합니다.
이사야 六十장 二十절에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 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 것임이니라." 온전히 돌아오는 이는 해가 지지 아니하는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혹은 미가서 七장 八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려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신앙 생활을 하는 이에게는 어두운 가운데 앉을지라도 하나님의 빛이 그 위에 비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八장 十二절에 예수 님께서 솔직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언제나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핍박을 만나서 억울하게 많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때는 깊은 밤이올시다. 앉은 곳은 깊은 감옥이올시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때에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깊은 밤에 깊은 감옥에 앉았지마는,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빛이 빛인 것입니다. 심령 속에는 영원한 아침이 깃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스데반의 순교사를 기억합니까? 스데반이 핍박을 받아서 돌로 맞아 죽게 될 때에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바라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나더라고 했습니다. 이런 죽음의 깊은 밤에도 심령 속에는 하늘의 영광의 빛이 비친 까닭입니다.
그리해서 욥기 十一장 十七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어두움이 비록 있다 할지라도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침의 빛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四장 二절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아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께 돌아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언제나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줌으로 기뻐 뛰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 六十장 一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으니."
아시아의 밤은 깊었습니다. 세계의 밤도 깊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에게는 영원히 하늘의 빛이 비쳐 아침과 같은 광명한 세계에서 그의 심령이 사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은혜가 우리의 심령 위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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