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금 성가대에서 불러주는 할렐루야 합창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할렐루야에 대한 얘기가 필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이 다 마음으로 할렐루야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또 항상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할렐루야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브라질에서 있은 목사 수양회에 갔을 때에 어떤 브라질의 목사를 만나서 한 가지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저는 브라질 말을 잘 모르니 영어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이가 듣더니 영어를 잘 모르는지 갑자기 손을 들면서 할렐루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손을 들고 할렐루야라고 대답했지요. 할렐루야는 세계적 단어올시다. 할렐루야를 부르면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또 천국의 방언이기도 합니다. 아마 천국에 가서도 이 할렐루야는 그냥 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 들으니 어떤 분이 말할 때에, 평양에는 부벽루가 있고 남원에는 광한루가 있는 것처럼 하늘에는 할렐루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할렐루라는 말은 다락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한 뜻을 다 배우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라고 하는 뜻은「여호와를 찬양하라」하는 뜻입니다.「할렐」이라는 말은 찬양하라 하는 뜻입니다.「야」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인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는 것을 할렐루야 내 영혼아 할렐루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것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받는 깊은 인상은, 성경은 찬송으로 충만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읽었지마는 성경 가운데 시편이라고 하는 책은 전부 찬송의 책이올시다.
옛날 유대인들이 부르던 찬송가책이올시다. 이 책 가운데 옛날 사람들이 부르던 一五0장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구약을 보면 모세의 노래가 있습니다. 드보라의 노래가 있습니다. 한나의 노래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가 있습니다. 또 예언서도 대부분은 시문학이올시다. 우리가 신약을 읽을 때에는 마리아의 노래를 찾아봅니다. 사가랴의 노래를 찾아봅니다. 혹은 크리스마스 새벽의 천군 천사들의 노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저녁에 모든 교훈을 주시고 성찬식을 거행하신 후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전에『또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캄캄한 밤중, 겟세마네를 향하여 갈 때에 십자가를 앞에 두고도 우리 주님과 제자들은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깊은 밤에 빌립보 감옥에 갇혔어도 찬송을 불렀다고 하는 기록을 우리가 찾아봅니다. 그리고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는 천군 천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천만 성도들의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는 찬송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어보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부터는 찬송을 잘하기 위해서 특별히 성가대를 조직한 것을 봅니다. 당시의 레위 사람 가운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四천 명에 도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도 특별히 익숙해서 찬송가를 잘 부르는 이들이 二八八명이라고 하였고 또 당시의 유명한 지휘자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타납니다. 가령, 아삭, 헤만, 요두둔의 아들들은 유명한 성가대 지휘자들이었습니다.
성가대를 위해서는 특별히 예복을 만들어 그 예복을 입고 성가를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벌써 옛날 그때에 여러 가지 악기도 발명해서 악기와 같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해서 시편 一五0편에 나타나는 악기의 이름만 보더라도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 퉁소, 제금(提琴) 등 지금의 관헌악대를 구비해서 여러 성가대가 같이 하나님께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옛날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찬송을 아주 중요한 순서로 생각했습니다. 또 옛날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그 성가대의 책임이 아주 중요한 것을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는 이와 같은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전장에서 찬송으로 승리한 기록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六장을 읽어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에 일곱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면서 엿새 동안 한번씩 여리고 성을 돌고 이레 되는 날에는 나팔을 불면서 일곱 번을 계속해서 돌 때에 그 성이 무너졌다 하는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혹은 역대하 二十장에 볼 것이면 여호사밧 왕 시대에 모압 사람들, 암몬 사람들 세일 사람들이 연합군을 조직하여 유대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에 여호사밧 왕은 믿음이 독실하신 분이올시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지하여 노래하는 여러 사람을 모아서 거룩한 예복을 입고 이들이 군대 앞에 앞장서서 나가며, 여호와께 사례 할세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하시리로다 하며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때에 모든 원수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패주(敗走)했다고 하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찬송으로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의 상징이라 생각합니다. 찬송하는 십자군은 항상 승리합니다.
여기에『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한 이 시인이 자기 영혼을 깨우칩니다.『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만하신 분입니다.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과 같으신 이가 또 계시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일월성신을 만드셨습니다. 산천초목을 내셨습니다. 금수(禽獸)어별(魚鼈)도 지으셨습니다. 오곡백과도 주신 분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또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만세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리해서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독생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하시고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 크신 섭리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찌 이와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왜? 찬송은 인간의 최고의 의무와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 존재의 뜻이 어디 있습니까?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 별들이 노래를 불렸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산천초목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다의 물결들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금수와 어별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가을의 벌레들도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이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인간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 큰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지 아니하면 마땅히 드릴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고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여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왜? 찬송은 참된 신앙의 자연적인 표현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캄캄한 밤중에 빌립보 감옥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까 그들에게는 참 신앙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비록 감방이지만 주님께서 그들과 같이 계셨던 까닭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까닭입니다.
참 신앙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과 찬송이 있고 믿는 사람의 심령은 마치 종달새와도 같아서 그 심령이 높은 신앙의 하늘에 올라갈수록 찬송을 더 잘 부르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믿는 사람의 심령은 품금과 비슷합니다.
파이프 오르간과 비슷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파이프 속으로 많이 들어갈수록 웅대한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라.』왜? 찬송을 통하여 내가 더욱 은혜를 받습니다. 찬송을 하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불평과 불만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시험과 유혹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악한 마귀가 놀라서 도망을 갑니다. 찬송을 하면 서 일하게 되면 일이 더 잘 됩니다. 찬송을 하면서 밥을 지으면 밥도 더 맛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촌에서 크리스마스 저녁에 참석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순안 북편에 작은 교회가 다섯이 있는데 그때 그 교회들을 목사 한 사람이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날은 그 가운데에 있는 성태 교회에 다섯 교회가 다 모여서 축하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어린아이 때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여러분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자모산성에서 믿는 한 분이 내려와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 말이, 자기 동네에서 믿는 이가 자기 혼자밖에 없어서 언제나 예배를 보려고 교회를 찾아오는데 그 교회까지의 거리가 한 三十리 길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캄캄하고 추워서 어떤 날은 무서운 생각이 나곤 하였답니다. 그때마다 찬송을 부르면서 올라가면 무서운 생각이 다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행로가 대체로 밤길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며 인생행로를 걸으면 두려운 마음이 없어집니다. 찬송을 하면서 길을 가면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찬송은 길가를 나그네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서 인생행로를 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왜? 찬송은 나를 도와줄뿐더러 다른 사람도 도와줍니다. 찬송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전에 미국에 유명한 무디 부흥사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다니면서 항상 노래를 불렀던 생키라고 하는 음악가의 독창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에 빌리 그래함 같은 이의 설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받은 줄 압니다.
그러나 그와 항상 같이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비빌리쉐이의 독창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줄 압니다. 우리 교회에도 교인들이 들어와서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특별히 성가대의 찬송을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에게 와서 그런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찬송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다른 사람의 심령을 구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들리는 찬양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이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 옆의 경찰서 유치장에 와 있으면서 우리 교회에서 나는 찬양 소리를 듣고,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라고 저에게 편지한 사람도 있습니다. 찬송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제가 늘 잊을 수 없는 것은, 六․二五 사변 시에 우리가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에 제가 이른 아침에 어느 집에 심방 갈 일이 있어서 보수산 기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산기슭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추운 겨울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데 그 천막들 속에서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이 천막에서도 들리고 저 천막 속에서도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추운 겨울 이른 아침에 천막에서 나오는 찬송 소리를 들을 때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 찬송 소리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찬송의 생활은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가 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왜? 하나님께서 찬송 들으시기를 제일 좋아하시는 줄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늘나라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항상 찬송을 부른다는 것을 보니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천만 성도들도 항상 찬송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가지 축복과 은혜를 우리 인간에게 다 그저 주십니다. 다만 그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할 줄을 알아서 찬송을 부르면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할렐루야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찬송을 잘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선 입술로 찬송을 잘 부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당에 와서 예배는 보되 가만 보면 남은 다 찬송 부르는데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 양반이 계신지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예배당에 와서도 찬송 안 부르는 사람 있습니다.
예배당에 와서도 안 부르니 가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선 찬송을 잘 불러야 되겠습니다. 어떤 분은『부를 마음은 있으나 부를 줄을 알아야지』하는 이도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일 설교를 잊지 않았지요? 모르면 배우시면 됩니다.
더욱이 우리 교회는 박 순복 장로님 같은 이가 계셔서 일년 내내 주일과 삼일 저녁까지 저녁마다 찬송을 배워줍니다. 우리 영락교회 교인으로 찬송을 배우지 못했으면 그 책임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지 교회 책임은 아닙니다.
이 다음에 핑계 못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가대에서 이렇게 찬송을 잘 하지마는 성가대 찬송만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온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하나 하나가 다 성가대입니다.
그런데 성가대 가운데 벙어리 성가대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인지 모르나 제가 옛날 처음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에 가니까 거기에 이런 얘기가 돌아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교수가 전에는 찬송을 열심히 부르지 않더니 요즈음은 아주 열심히 부르신다 해서『선생님은 어떻게 되어서 찬송을 열심히 부르게 되셨습니까?』하고 누가 가서 물었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제가 몇 해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높은 산 위에 있는 천성을 가보았지요. 거기에 큰문이 있어서 그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리면서 베드로가 척 배다보며 하는 말이, 아무개 박사 왔나?
당신은 신학을 잘 알고 잘 가르치는데 그 신학은 우리 천당에서는 별로 쓸데가 없네. 천당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찬송을 부르는 것인데 당신은 아직 찬송을 잘못 부른다고 하니 가서 찬송을 좀 더 배워하기고 와』하면서 문을 탕 하고 닫고 말아서 깨보니 꿈이더랍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면 지식 같은 것은 다 쓸데가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찬송을 잘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찬송을 잘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전에 감리교를 처음에 세운 요한 웨슬레 목사가 찬송을 항상 강조하였는데, 찬송 부르는 것에 대하여 몇 가지 주의 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는 곡조대로 불러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은 부르기는 하나 곡조대로 안 부릅니다. 그러니 맞지를 않습니다.
둘째는 가사 대로 부르라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 대로 부르라는 말입니다. 내가 들으니 어떤 할머니는『웬 말인가 내 형제여』라는 찬송을『이거 웬 말인가 내 신세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셋째는 누구나 다같이 부르라. 교회에서는 찬송 부를 때에는 누구나 다 불러야 합니다.
넷째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부르라. 어떤 사람은 부르기는 하나 모기 소리만 하게 부릅니다.
다섯째는 예모 있게 부르라. 되는대로 부르지 말고 또 손바닥 치며 떠들며 부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섯째는 같이 시작하고 같이 그치라. 이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남들 다 시작했는데 나중에 시작해서 다 끝났는데 찬송합시다 하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일곱째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부르라. 찬송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는 것이므로 영적으로 제사로서 불러야 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 교회는 좀 더 이렇게 찬송 부르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찬송을 잘 부를 수 있을까? 우리가 마음으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입술로는 항상 찬송을 부를 수 없으나 마음으로는 항상 찬송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배당에 와서는 찬송 부르고 혼자 있을 때는 유행가 부릅니다. 그래서 수술하고 깰 때에 유행가 부르는 집사 되지 맙시다.
혼자 있으면서 무슨 노래를 부르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심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마음과 입술에는 언제나 시온의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노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의 심령 속에는 언제나 할렐루야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에도 이 할렐루야가 울려 나올 때에 그것이 참 하나님의 아들, 딸인 것입니다.
셋째는 어떠한 환경에서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물론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괴로울 때에도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괴로움이 물러갑니다. 건강할 때에도 찬송을 부르고 병중에서도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병도 낫는 것입니다. 기쁜 때에도 찬송을 부르고 슬플 때에도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기쁜 때에 찬송을 부르면 즐거움이 배가되고 슬플 때에 찬송을 부르면 슬픔이 반감됩니다. 찬송을 통하여 역경을 돌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훗날이 춥고 어둡되 찬송을 끊지 말세.』
아무리 춥고 어두운 날이라도 찬송을 끊지 맙시다. 살 때도 부르고 죽을 때에도 불러야 합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여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생활을 음악적으로 표시한다고 하면 두 절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절이 있고 하나는 찬송의 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항상 기도와 찬송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기도의 절은 끝입니다. 왜? 그때는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도 찬송의 절은 그냥 계속됩니다. 찬송은 영원히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一一五편 十八절을 제가 읽을 때에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여러분은 다 이런 응답이 있습니까? 나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여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