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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3:1-26/ 긍휼히 여기는 자와 복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35:18   read : 154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산상보훈의 여덟 가지 축복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축복을 받고, 그러한 이는 또한 자기의 죄를 애통함으로 애통하는 자가 되어서 축복을 받게 되고,

    그러한 이는 또한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 온유한 자가 되어서 또한 축복을 받게 되며 그러한 이는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로는 그와 같은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가 되어서 또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라는 말 다음에 긍휼이 오는 것은 뜻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의에 긍휼이 없으면 냉정한 혹은 무자비한 의가 되기 쉽습니다. 반면 긍휼에 의가 없으면 무분별한 죄의 용납을 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와 긍휼은 영원히 나누일 수 없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 다섯째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 각 사람 머리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긍휼 이라고 하는 말의 뜻은 우리가 다 짐작하실 줄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비, 인자, 혹은 인애(仁愛), 민망(憫惘), 그저 쉽게 말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올시다. 따라서 긍휼 이라고 하는 말의 반대되는 말은 무자비, 잔인, 포악, 무정, 냉정(冷情), 혹은 무시, 이런 말이 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 뜻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히 불우한 경우에 있는 이들, 불쌍한 경우에 있는 이들, 혹은 범죄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행과 불우(不遇)와 범죄자에 대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한 마디로 말하면 긍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한 긍휼의 하나님이올시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一0三편 七절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여기 인자라고 하는 말은 역시 긍휼 이라고 하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시편 一0八편 四절을 읽어보면『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穹蒼)에 미치나이다.』이와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애가 三장 二十二절에 보면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殄滅)되지 아니함이다.』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것을 찬송한 거입니다.

    디도에게 편지한 사도 바울은 디도서 三장 五절에 이런 말로 기록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쫓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

    우리 기독교는 긍휼의 종교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자비를 말합니다. 유교에서도 맹자 같은 이는 특별히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하는 말을 써서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이 자비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불교나 유교뿐만 아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철학자들과 도덕가들이 자비와 긍휼을 강조해서 가르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진리는 한 자연 계시에 속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이미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특수한 것은 하나님이 이 긍휼 하신 성품을 단순히 가르쳐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 어떠하다고 하는 것을 깊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긍휼에 대한 진리는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는 특수한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로든 나타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자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셔서 여러 촌으로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을 고쳐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하신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성품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슬픈 자를 위로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 병든 자, 손 마른 자, 눈 못 보는 자, 다리를 저는 자, 말을 못하는 자, 문둥이들을 고치시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려 주신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긍휼 하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때에 바리세인들 혹은 서기관들은 비난하였지마는 세리 장 삭개오의 집에 친히 들어가 몸을 쉬면서 그의 심령을 구원한 사실,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다른 사람의 질시를 받으면서도 세리와 죄인을 가까이 하고 많은 죄를 지었지마는 눈물로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그 발을 씻는 죄 많은 여자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 모든 사실,

    심지어 간음하다 붙잡혀 온 불쌍하고 가련한 여자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놓아주신 그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 하신 주님의 자비하신 그 성품을 그대로 나타내신 긍휼의 역사인 것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위해서까지도『아버지여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이들이 하는 것을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니이다.』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까지 용서하신 그 사실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긍휼을 그대로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을 향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 그 아들의 자비하신 성품을 배우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의해서 들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잠언 三장 三절에『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인자는 긍휼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六장 六절과 八절에 이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교훈 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여 인자를 사랑하며(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누가복음 六장 三十六절에『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이렇게 권면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四장 三十二절에『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이와 같이 권면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긍휼히 여기는 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잠깐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자비한 자의 모습은 어떠한 분인가? 먼저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자비한 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 대륙은 흑인 대륙으로 유명합니다.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부분은 오랫동안 다른 세계와 교통이 없었습니다.

    十七세기 이후부터 백인들이 점점 그 지방에 많이 여행하게 되었는데 진주를 구하기 위하여 가는 사람들, 금강석을 구하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고 그런 지방에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흑인 대륙에 가 보니 얼굴이 새까만 흑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야만인들이 어디 있나, 뭐 이런 사람들은 아주 사람이라고 할 것 없고 그저 짐승보다 좀 나을 것밖에 무엇이 있는가,

    이것들은 종으로밖엔 쓸데가 없겠군. 그래서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뭘 조금씩 주고 얼려서 데려 오다가 그 다음엔 강제로 잡아다가 배를 태워 유럽에 오고 혹은 미국에 와서 검둥이를 전부 종으로 흑노(黑奴)로 매매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十七세기와 十八세기에 흑노 무역 사업이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눈은 잔인하고, 멸시하는 눈으로 이 흑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멀리 자기의 고향을 떠나서 대서양을 건너 남아프리카를 향해 간 리빙스턴이나 그 밖에 모든 선교사들은 이와 같은 눈으로 흑인들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이 사람들은 얼마나 모르는가, 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열대 지방의 병으로 고생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그는 자비한 눈으로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병원을 설립하고 병을 고쳐 주고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쳐 주고 교회를 설립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흑인 대륙 이곳 저곳에 흑인 독립국이 우후죽순과 같이 일어납니다. 이 독립국을 위해서, 독립 운동을 위해서,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모든 지도자들은 모두 이 선교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비의 눈으로 흑인들을 보았습니다. 흑인들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 두 가지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멸시의 눈 혹은 자비의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또는 6․25를 통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이북에서 밀물처럼 서울에 오고 남한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피난민을 향해서 본래 남한에 계시던 분 가운데서는 두 가지 눈으로 본 줄 압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자비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집과 모든 것을 다 잃고 오는 이런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자비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멸시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자비의 눈을 가졌습니다. 비록 죄를 범한 사람도 죄를 미워하는 것보다도 저 사람의 저런 죄를 짖는 것은 필연 그의 마음 가운데 어떤 병이 있든지 그의 환경 가운데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이다―그 범죄자까지도 불쌍히 보고 자비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먼저 자비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자비한 귀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가까이 오실 때에 어떤 소경이 멀리서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는 것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잠잠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주님의 귀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소경을 오라고 해서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과 같이 험악합니다.

    따라서 이 인생이 험악한 길에서 불한당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부르짖는 소리가 많습니다. 약자의 부르짖음, 병자의 부르짖음, 고독한 자의 부르짖음, 가난한 사람들의 부르짖음, 여러 가지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많이 있습니다.

    자비한 귀를 가진 사람들만 이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냉정한 귀를 가진 사람은 이런 부르짖음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비한 귀를 가진 사람은 심지어 다른 사람의 어떤 허물이든지, 다른 사람의 어떤 죄에 대해서 들을 때에 곧 그 말대로 듣지 아니하고 그 말을 얼른 듣고 속단하지 아니하고 자비한 이론과 자비한 판단을 가지고 듣습니다. 여기 공자 님께서 자기의 생활을 돌아보며 한 말 가운데 육십에 이순 (六十耳順)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나이 육십이 되니 귀가 순해졌다―아마 그 뜻은 이런 말 같습니다. 비록 반항을 한다든 가 성을 낸다 든 가 하지 않고 그런 모든 것도 깊이 생각해서 자비로운 심정으로 듣는 말을 다 자비롭게, 긍휼 한 심정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긍휼 한 입, 혹은 혀를 가졌습니다. 칼로서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혀로써 많은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칼로만 사람을 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혀로도 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해하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잔인한 혀도 많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 혀가 인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十장 十二절의 말씀을 보면『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롭다.』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입의 말은 대단히 은혜 스럽습니다. 이사야 五十장 九절을 읽어보면『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困乏)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하게 여길 줄 아는 그 혀는 어떻게 곤고(困苦)한 사람을 말로 도와줄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四장 六절을 보면 너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한 거와 같이 고른 말을 하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긍휼한 자의 혀는 자비한 혀입니다.

    그리고 긍휼 한 자는 자비한 손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문둥이가 더럽지마는 친히 어루만지면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아이들 머리 위에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친히 떡을 떼어 오 천 명을 먹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손은 자비한 손입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의사의 손이나 간호원의 손은 보통 다른 사람의 손들 보다 자비한 손처럼 보입니다. 그 까닭은 의사의 손, 간호원의 손은 언제든지 병난 사람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싸매 주고 피를 씻어 주고 고름을 짜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그 손을 씁니다.

    우리가 다 의사가 아니고 우리가 다 간호원이 아니지만 우리의 손이 신령한 방면으로 여러 가지 방면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자비한 손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주님의 손바닥에는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이 못 자국은 모든 사람의 죄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서 친히 못 박힌 못 자국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손바닥에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어떻든지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이끌어 내기 위해서 우리의 손 가운데도 못 자국이 있어야 될 줄 생각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자비한 발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로의 집에서 설교할 때에 예수님께 대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로 두루 다니면서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두루 다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착한 일을 합니까? 우리가 일생을 산다고 하면 아마 여러 만 리를 걸어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몇 만 리 가운데 참으로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 걸어 다닌 마일 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실 이 긍휼 한 마음은 모든 착한 일, 모든 자선 사업, 모든 인도주의 운동, 모든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 사업의 근본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하러 어찌하여 나이팅게일 같은 여자가 자기의 고향을 떠나서 저 멀리 싸움터 크레미아 전쟁터까지 친히 가서 여러 군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그들을 도와주기를 힘썼습니까?

    그와 겉은 봉사로 말미암아 적십자사 운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의 마음속에 전쟁에서 상처를 입어 피 흘리며 넘어지는 여러 군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이 결국은 그 여자로 하여금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이 남부전쟁의 위험을 앞에 보면서 까지도 흑로를 해방하는 선포를 하고 흑로를 해방시켜 주었습니까? 모든 검둥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그 마음이 결국은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이 만든 것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전 세계에, 이 세기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혹은 아프리카로 혹은 아시아 사람이 별로 가보지 못한 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도하려 갑니까? 죄를 짓고 이 세상에서도 형벌을 받고 영원한 멸망을 받을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 한 그 마음이 결국은 자선가를 만들고,

    위대한 선교사를 만들고, 성자를 만들고,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의 도움을 받을 불쌍한 사람이 많고 많지만 그저 무심히 지나고 그저 냉정히 지나는 것은 결국은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인 긍휼의 마음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또한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도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오는 세상에서까지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공산당에서는 소위 무자비한 투쟁을 장려합니다.

    사람의 가슴에서 이 자비가 떠나면 그는 벌써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긍휼이 없는 무자비한 생활은 사탄의 생활입니다. 긍휼이 풍성한, 자비한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입니다.

    산양과 면양의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오른쪽에 있는 의인들을 향해서 인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創世)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보았느니라. 의인들이 하는 말이 주여 언제 우리가 그런 일을 하였습니까? 인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이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나라를 상속해서 영원한 축복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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