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0:18-31/ 하나님을 앙망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29:19 read : 123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四十․三十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본래 멀리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五十년, 六十년, 거의 七十년이 흘렀지마는 아직 그들이 해방의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될 때에 자연히 그들 가운데는 낙심하는 사람, 실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선지자는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그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들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들은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며 명철(明哲)이 한이 없으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는 힘을 더한다』고 외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困憊)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특별히 이 구절을 중심해서 우리가 이 뜻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앙망 한다」고 하는 말은 바라본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가운데는「기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의지한다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모신다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종이 상전을 모시는 것처럼 모신다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앙망 한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믿고 의지하고 기다린다』고 하는 뜻입니다.
나를 의지하지 말고, 나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나의 지식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고, 나의 힘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사람을 믿고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사람의 지혜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잠깐 있다가 없어질 돈을 의지하지 말고, 혹 어떤 이가 일시적으로 좋은 환경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변할 수 있는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청춘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앙망 한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 앙망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다 기억하시지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요리문답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사람을 앙망의 대상자로 삼지 말고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지 세상에 있는 향락이나, 세상에 있는 영광이든 가, 세상에 있는 무슨 지위나, 세상에 있는 무슨 돈이나, 이런 것들을 우리 선망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우리의 앙망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마치 봄 동산의 꽃이 위를 향해서 언제나 자라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실명이 하나님을 향해서 언제든지 자라 올라가고, 몸 동산의 꽃이 언제든지 햇빛을 향해 피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꽃 피우는 심령이 되라고,
불길이 언제든지 위를 향해서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타오르는 불길이 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하라고, 언제든지 영혼의 방향을 위로 향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여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가운데서 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의 생활이올시다. 여기 꽃 가운데 해바라기라고 하는 꽃은 언제든지 해를 따라다니지 아니합니까? 그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언제든지 영혼의 해가 되는 하나님을 향해서 따라가면서 살라고 하는 말입니다.
자연히 이것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 신약에 있는 말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앙망 한다고 하는 말은 윌 주님을 앙망 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묵상하며, 그를 항상 앙망 하면서, 꼭 그와 교통하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이와 같이 여호와를 앙망 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어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든 것을 이기는 생활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새 힘을 얻으리니…』전에 없던 새로운 영적 능력을 얻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힘은 항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체력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힘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 지력도 제한이 있습니다. 지혜와 지적 힘도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내력도 제한이 있습니다. 상상력도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의 권세라고 하는 것도 제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앙망 하는 사람은 이 제한된 힘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보면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앙망 하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겠다고 하심 같이 위로 올라가는 힘을 더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달음박질을 할지라도 곤비하지 아니하는 힘을 주시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 하나가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먼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가는 힘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마 요새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제트기가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힘을 주리라고 말했을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다 보신 줄 알지만, 보통 비행기보다도 제트기는 공중으로 올라갈 때 더 빨리 三十도 혹은 四十도, 또 어떤 때는 거의 四十五도 각도로 올라갈 수 있는 비행기인 것입니다. 사실 비행기와 로케트가 발명되기 전에는 사람은 항상 발을 땅에 붙이고야 살았습니다.
공중에 올라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이 二十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공중에 날아 보지를 못했습니다. 비행기가 생긴 이후에야 비로소 사람이 공중에 날아 보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지금은 비행기 시대가 와서 우리가 육신으로 공중에 올라갈 수 있지마는, 아직도 대체의 사람의 심령은 이 땅을, 이 세상을 초월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근심과 염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시기와 질투, 모든 고통과 번민(煩悶), 슬픔, 이런 모든 땅에 속하는 것에 그냥 매어서 사는 사람들이 인류의 대부분인 것을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심령은 땅을 떠나 보지를 못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이와 같은 땅에 속하는 모든 것을 초월해서 마치 공중에 날아가며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가 포함된 줄 압니다.
또한 우리가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은 다 알고, 높은 건물에 오라가 본 사람은 다 알지마는, 우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집니다. 보는 들이 넓어집니다. 또 우리가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는 각도도 사실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비행기가 없을 대는 새의 눈으로 본다는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영어로는「버어즈 아이 뷰우」(birds eye view)하고, 새의 눈으로 본다고 하는 것은 땅에서 보지 않고 공중에 올라가서 모든 것을 살펴본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높은 공중에 올라가 땅에서 무엇을 보는 것보다 달리 보입니다. 거리에 지나가면서 어떤 건물을 볼 때에 그 건물이 굉장히 높다고 하지만 높이 비행기 위에서 내려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땅에서 어떤 산을 보면 그것 참 굉장히 높다 하고 생각이 되지만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국의 대관령 같은 산도 문제가 안 됩니다.
유럽의 제일 높다고 하는 알프스 산도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땅에서 볼 때에는 굉장히 높아 보이지만 실상 높이 올라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르게 보입니다. 모양도 달라 보입니다.
사실은 사람도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처음에 미국에 가서 어떤 여관에 들었는데, 二十층이 채 못되는 여관이었지만 거기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면 모자만 보입니다. 모자에 다리만 둘 달렸단 말입니다.
걸어가는 다리 위에 모자가 얹어져서 꼭 모자가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무슨 흉측한 벌레처럼 보였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보는 것일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앙망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심령이 높이 올라가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견지에서 이 세상 만사를 살피게 됩니다. 그러면 땅에서 보는 것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의 향락, 세상의 영광, 세상의 권세, 이런 모든 것
이 세상 사람의 견지에서 볼 때에는 굉장한 것 같지마는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 하는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전에 귀하게 여기고 전에 사모하던 것을 다 분토(糞土)와 같이 여겼다.』달라 보입니다. 세상의 이런 것뿐만 아닙니다.
그 반면에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슬픔이나 고통이나 죽음까지도 달라 보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四장 十八절 이하에 이런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환난을 받는다고 하지마는 그 환난은 잠깐밖에 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그 환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잠시 받는 환난 때문에 과히 번민하고 고통은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높은 신앙의 지위에 올라갈수록 세상 만사를 다르게 보게 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가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는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 높이 위로 올라가면 구름이 없습니다. 비행기 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트기 같은 것은 보통 한 三만 척까지 올라갑니다.
혹은 四만 척까지 높이 올라가면 거기는 구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름은 다 아래 있습니다. 또 아래 있어서 땅에서 보는 것처럼 어둡고 답답하게 보이는 구름이 아닙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부 햇빛을 받아서 마치 피어오르는 솜처럼 보기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위에는 광명 한 햇빛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면 거기는 구름이 없어요. 거기는 안개가 없습니다. 언제나 광명 한 햇빛이 비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역기 그런 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 하는 참된 신앙생활을 해서 우리의 심령이 높은 곳에 산다고 할 것이면, 거기서는 언제든지 우리의 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소망의 시간」에 늘 부르는 찬송『하늘에 영광, 하늘의 영광』하는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본래 영어로는 헤븐리 선샤인(heavenly sunshine)이라고 해서 하늘의 햇빛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햇빛, 하늘의 햇빛, 언제든지 우리가 신앙의 높은 곳에 올라가면 하늘의 햇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和平)이라.』언제든지 우리의 심령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넘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앙망 하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이만 맛볼 수 있는 행복인 것입니다.
그 다음,『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그것은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인간 생활에는 달음박질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첫째는 인간 생활은 생존경쟁을 의미합니다.
혼신의 분투와 노력이 필요한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는 인간 생활에는 종종 위기가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천재와 지변이 있습니다. 전쟁이 있습니다. 기근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경제 공황이 생깁니다. 큰 사고가 납니다.
질병에 눕게 됩니다. 또는 사람이 우리 앞을 막을 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승리하고 극복하여야 우리가 옳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권능을 주어서 이런 것들을 극복하게 한다고 하는 뜻입니다.
「인생행로」라고 하는 말을 하지만 우리 인생의 일생을 길가는 것으로 비유한다고 하면, 우리의 길은 항상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말한 대로 태산준령을 넘을 수밖에 없는 때가 있고, 강강 대하를 건널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에 신앙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인생의 항로」라고 하는 말이 있지마는, 우리가 건너가는 고해 바다는 항상 잔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풍랑이 일고 폭풍우가 있고, 올무가 우리 앞을 막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어서 이사야 四十三당 二절 이하에 있는 말씀과 같이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여 주시고 불을 건널 때에도 불꽃이 탈 수 없게 만드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앙망 하고 참으로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시편 二十七편을 지은 사람과 같이『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하고 위치는 것입니다.
혹은 다윗과 같이『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 하시도다.』조금 내려가서『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이와 같이 외치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할 때에도 힘을 주어서 곤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것은 어떤 경험을 말씀한 것입니까? 인간 생활에는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 있습니다. 타박타박 내 발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조무미 하지만 부득이 할 수밖에 없는 매일 매일의 우리 각자의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미국 디트로이트라고 하는 곳에 가서 거기 있는 포드 자동차 공장을 한 번 구경했습니다. 굉장히 큰 공장이었는데 그것을 다 볼 수는 없어서 몇 군데만 보고 마지막에는 자동차를 조립하는 공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운데는 긴 레일이 두 개 슬슬 움직여 갑니다.
한 편에서 들어와서는 다른 편으로 나가는데 멘 처음 그 레일 위에 자동차 차체의 구조가 되는 엉성한 뼈대가 놓여서 들어옵니다. 그러면 직공들이 좌우에 수백 명 나열해 서서 그것이 서서히 지나갈 때에 어떤 사람은 의자를 갖다 놓고 어떤 사람은 날개를 갖다 붙이고 어떤 사람은 나사못을 죄고 합니다.
한 사람이 꼭 한 가지 일만 합니다. 죽 서서는 각각 한 가지씩만 맡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못 하나만 박아주고 다음 사람은 그 못을 죄어주고 그 다음 사람은 또 한 번 죄어주고 세 번째 사람은 또 세 번째 죄어주고, 그렇게 수백 명이 서서 한 가지 일만 합니다. 또 뒤에는 부속품들이 서서히 들어옵니다.
날개도 바퀴도 매달려서 슬슬 오면 그 바퀴를 집어다 넣는 사람이 있고 그 바퀴에 못을 주고, 이렇게 꼭 한 사람이 한 가지씩만 맡아서 합니다. 수백 명이 서서 마지막에 저 쪽에 나갈 대는 온전한 자동차가 되어서 나갑니다. 四초나 五초에 자동차 한 대씩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직공들이 종일 서서 한 가지만 한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갖다 붙이기만 하고, 어떤 이는 나사만 조이고, 그러나 쉴 새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되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단조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종일 한 가지 일만 하는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란 말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등포에 있는 공장에 가서 직공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들은 말하자면 기계의 종처럼 한 가지 일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화가,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이런 단조 무미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장에서 되는 일이지만 우리 가정에서 주부들의 하는 일을 보면 그것도 참 단조 무미한 일들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연탄불을 손보아야 하고, 그 다음에 또 물을 데워서 쌀을 일어야 되고, 밥을 해야 되고, 밥이 되면 그릇에 담아 주어야 되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되고, 조반 먹고는 설거지를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 열 한 시쯤 되면 또 청소해야 되고, 금방 점심시간이 또 되고, 밥을 하고, 밥 담고 먹이고, 그릇 씻고, 이것이 끝나면 비로써 자는 시간, 이런 것을 매일 되풀이해야 하고, 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방앗간에 말 돌아가는 것과 비슷해요. 눈을 가리우고 뱅뱅 돌아가는 말이 하는 일과 꼭 같은 것이 우리들의 인생살이인 것입니다. 이렇게 뱅뱅 돌아가는 동안에 어느 새 검은머리는 희어져 백발이 됩니다. 단조 무미하지마는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다고 하는 말은 이렇게 단조 무미한 의무를 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앙망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가운데서 의무를 잘 감당할 수 있게 새 힘을 준다고 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인내력을 줍니다. 참고 견디는 힘을 줍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닙니다. 참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문자 그대로 그런 단조 무미한 일을 매일 매일 하지만 사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밥을 지을 때도 찬송을 하고 뜰을 쓸 대도 찬송을 하고 무엇을 할 때든지 항상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을 하면서 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새 힘을 주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 하는 데서 오는 신앙 이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 하는 데서 오는 신앙의 힘밖에는 다른 없는 것입니다.
앙망 한다고 하는 성경구절을 이사야서에서 두 절 더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이사야서 四十五장 二十二절이올시다.『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 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이것은 영국의 유명한 스펄존 목사를 회개시킨 성경 구절이올시다. 한 절 더 소개합니다.
이사야서 四十九장 二十三절 하 반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전에 키토 박사라고 하는 사람이 어려서 가난하고 병신이요, 말할 수 없이 한심한 가운데서 이 성경구절을 배우고 이 성경구절 그대로 하나님을 앙망 했습니다. 마지막에『나는 수치를 과연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간증을 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살 때나 죽을 때나 하나님을 앙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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