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보내소서.』(사 六․八)
청년 예언자 이사야의 대답입니다. 때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의 제왕의 한 사람으로서 재위 五十二년간, 밖으로는 국위가 선양되었고 안으로는 국민이 평화롭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불행하게도 죄로 말미암아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고 필경은 그 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때 마침 북방에서는 심상치 않은 국제적 움직임이 있은 것입니다. 국제정세는 험악해지는데 위대한 왕은 갔으니 국가의 장래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청년 애국자 이사야의 가슴에는 이것이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그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이사야 六장에 있는 큰 환상을 본 것입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그 날 신령한 눈으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을 가득한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셔 섯는 스랍 들을 보았습니다. 스랍 이라고 하는 것은 불같이 빛나는 이들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여섯 날개가 있어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둘로는 발을 가리웠습니다. 여기에는 경애와 겸허(謙虛)의 뜻이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둘로는 날아가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 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唱和)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했다고…』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예배할 때에 이사야는 신령한 눈으로 이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죽었습니다. 세상 왕은 죽습니다. 지나갑니다. 시대는 변합니다. 세상 만사는 무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에 이사야는 예배하는 가운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변천과 무상도 초월하는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예배할 때에 보통 사람들처럼 다만 제단만 본 것이 아닙니다. 촛대만 본 것이 아닙니다. 떡 상만 본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의 옷만을 본 것도 아닙니다. 그의 신령한 눈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예배당에 와서 예배는 드리지마는 다만 강대 상만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만 천장만 바라봅니다. 혹은 성가대의 노래만 듣습니다. 이것들만은 부족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령한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십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거룩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만 군의 주가 되십니다. 그는 마왕의 왕이십니다. 그는 온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그는 모든 국가도 통치하십니다.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아니 우리 하나 하나의 운명을 지배하십니다. 인간의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는 공의로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맷돌이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마는 매우 보드랍게 가루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심판의 주입니다. 하나 하나의 전 생활을 심판하십니다.
그는 또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이 죄 많은 인간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앞에 지금 모였습니다.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연기가 온 집에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집안에 충만히 임재 해 계십니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 옷자락이 온 집안에 충만해서 누구나 그 옷자락을 만질 수 있습니다. 이 곳은 거룩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지금 봅니까?
이사야는 성전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때에 그는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그는 갑자기 공포심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가는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주 대하게 될 때에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이 경외심입니다.
잠언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자기가 인도해서 가나안 복지를 점령한 후에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 하는 말씀이『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로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전도서를 다 기록한 후에 이런 말씀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도『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때에 자연히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가 있는 까닭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공포심과 두려움에 싸이게 되어 곧 자기의 죄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가운데 살면서 만 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습니다.』자기의 죄를 자백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할 때 그는 즉각적으로 자기의 부정, 곧 자기의 죄를 깨닫고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전 인간의 죄를 느끼면서 모든 인가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더러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제일 먼저 할 것은 죄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할 것은 죄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죄를 고백할 때에 그 기도를 들으셨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욥 같은 이도 그렇게 신앙이 좋았지마는 큰 환난을 당할 때에 여러 가지 변론을 많이 하다가 정작 하나님과 대면한 후에야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 끝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도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 때에 자기의 죄를 깨닫고 티 끝과 재 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듣기만 하고 하나님을 아직까지도 그 심령에 친히 대면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죄를 회개하지 않은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대면하게 될 때에는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도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 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질 때에,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지역이 될 때에야 비로소, 예수는 보통사람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죄를 고백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마는 자고새가 남의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죄를 그냥 품고 있는 것은, 아직도 사실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사야가 그의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큰 공포에 싸여서 자기의 죄를 자백할 때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죄를 자백하자마자 스랍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 있던 펄펄 불 붙는 숯을 갖다가 그의 입술에 대면서 하는 말이『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고백하자마자 죄 사함을 받았고 악이 제거함을 입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악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이 악이 제거함을 받고 이 죄가 사함을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해 보세요. 이사야가 죄를 자백할 때에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자백하는 그 즉시로 죄를 사하여 주었습니다. 다윗도 무서운 죄를 짓고 그냥 품고 있었지마는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이 나타나서 죄를 가리켜 줄 때에 깨닫고『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자백하자마자 나단이『하나님께서도 네 죄를 사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기록한 요한 一서 一장 九절에 있는 말씀과 꼭 같은 뜻입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셔서 자백하는 즉시로 죄는 용서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무슨 공력(功力)을 보고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보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곧 그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오직 회개만이 죄 사함을 받는 조건인 것입니다.
또 숯불로 그 입술을 살랐습니다. 불은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실 뿐 아니라 온전히 깨끗케 하여 주셨다고 하는 뜻이 여기 포함된 줄 압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一장 十八절에 있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우리 죄가 아무리 진홍같이 붉지마는 참으로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흰눈과 같이 깨끗케 하시고 온전한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다 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과연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였습니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우리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니 삼위일체간에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위해서 일꾼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은 이사야는 그의 귀가 밝아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그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 음성을 듣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그것은 요컨대 몇 분이나 사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죄를 고백하고 죄 사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이 나라에서, 이 사회에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일꾼을 부르십니다. 이사야는 그 음성을 듣고『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며 자기의 몸을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천국에서는 징병제도를 쓰지 않는 줄 압니다. 이 세상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청년을 강제고 징용을 해다 가 군대를 조직해서 나라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언제든지 자원해서 즐겁게 몸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사명을 맡겨서 하늘나라를 건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한국의 밭을 내려다보시면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며 일꾼을 부르십니다.
지금은 밀보리가 잘 익은 때입니다. 한국의 신령한 밭을 바라보세요. 문자 그대로 희어져서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하신 주님의 음성이 우리 귀에 다시금 들려옵니다.
이 굶주리고 피곤하고 절망에 빠진 민족을 영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원할 일꾼을 부르시는 중입니다. 이 민족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참된 전도자를 부르십니다. 이 민족의 자유를 위해서 참된 정치인들을 부르십니다. 이 민족의 경제생활을 위해서 참된 경제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땅의 농촌을 도울 일꾼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나라 살림을 바로 하기 위해서 진실한 공무원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각계 각층에서 썩어 가는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기 위해서 참된 애국자를 각 방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르고 계십니다.
이 땅에 수없이 많은 고아들, 불량소년들, 윤락여성들을 위해서 참된 봉사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학원을 위해서 참된 교육가, 공장을 위해서 진실한 직공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음성을 듣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려 나왔습니다. 우리가 다만 강대상만 바라봅니까? 과연 우리의 신령한 눈이 열려서 빛나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봅니까? 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 것을 깨달아서 과연 내 죄를 자백합니까?
그리고 그의 약속대로 우리가 다 우리의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이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할 일 많은 황폐한 강산에 참된 일꾼을 부르시는 이 부름에 우리가 몇 사람이나 듣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라건대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 하나 하나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 부름을 듣고 우리의 사명을 바로 찾아서 이 땅, 이 시대에 나의 할 일 곧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 일을 우리 하나 하나가 꼭 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