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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e > 이사야 (36편)(전체리스트)

    사40:1-5, 사61:1-3/ 위로의 메시야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34:27   read : 909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四十․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헨델의 유명한 오라토리오「메시야」가 이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을 여러분이 들으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백성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읽은 둘째 부분의 본문 이사야 六十一장 一절에서 三절까지는 일찍이 우리 주님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 회당에서 친히 읽으시고, 오늘날 그 말씀이 응하셨다고 하신 구절입니다.

    그 내용은 성령께서 내게 임 하사 나로 하여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케 하시고 마음 상한 자를 고치고 눌린 자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며 주님의 복된 은혜에 대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신다는 말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거기에도 메시야가 오셔서 하신 일의 총 결론적으로서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생각할 때에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모든 마음 상한 자들을 고쳐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메시야는 의로운 메시야 입니다. 이 성탄 계절을 맞아서 메시야가 세상에 오신 것을 회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상심한 자로 충만하여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때때로 우리의 육체에 상처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넘어질 수도 있고, 분주한 거리에서 혹 자동차에 치일 수도 있고, 뜻밖에 우리 몸에 상처를 입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험악하고 거 치른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상처를 입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상처는 눈에 보이나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프기는 아마 더 아플 것입니다. 육신의 상처는 외부적이니까 치료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치료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살펴보면 육신의 상처를 입은 이는 그 수가 비교적 많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령한 안목을 열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그 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지나간 一년 동안의 생활을 살펴볼지라도 마음 상하지 않은 분, 몇 분이나 계십니까? 내가 잘못한 실수로 말미암아서, 내 죄로 말미암아서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남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을 때도 많습니다. 남편의 죄로 말미암아서 아내의 마음이 상합니다. 아내의 죄로 말미암아 남편의 마음이 상합니다. 부모의 죄로 말미암아 자식들의 마음이 상합니다. 자식들의 죄로 말미암아 부모의 마음이 상합니다.

    여러 가지 물질관계로 마음이 상하는 이는 얼마나 많습니까?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빗을 지기도 하고, 빗을 주고 못 방아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혹은 자녀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부모들도 많이 있습니다.

    요사이는 입학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이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고, 졸업은 했지마는 취직을 못해서 마음이 상하는 이들, 결혼문제로 마음이 상하는 이들, 몸이 약하고 병들어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이들, 사랑하는 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마음 상하는 큰 슬픔을 당하는 이도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상처를 입을 때는 반드시 치료를 합니다. 약을 사서 붙이고 치료를 합니다. 붕대로 싸맵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육체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게을리 해서 그냥 둘 것 같으면, 그만 상처가 점점 더 커져서 중한 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치료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중대한 결과를 육체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싸맴을 얻지 못하면, 치료함을 얻지 못하면 낙심하기 쉽고, 자포 자기하기 쉽고, 반항할 수도 있고, 비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육체의 질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노이로제도 걸립니다. 정신병도 들립니다. 마음의 상처는 꼭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독생자인 메시야를 보내신 것은 마음의 상처를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위로를 더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 위해서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 마음의 상처를 고치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까? 이사야 七장 十四절에『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그 뜻을 번역하면『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다』하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七장에 보면 예수 님께서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청함을 받아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그 동리에 살던 어떤 향유를 가진 젊은 여인이 주님 뒤에 서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므로 그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기의 머리털을 풀어서 그 눈물을 닦고 그 주위에 향유를 부어준 얘기를 우리가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마음에 눌림을 받아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죄인과 세리라도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죄 사함 받기를 원하여 이와 같은 일을 한 줄로 생각합니다. 예수 님께서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평안한 마음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님께서 한 번은 가버나움에서 가르칠 때에 반신불수 병자를 넷이 메고 와 예수님이 계신 방에 들어가려고 하나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으니까 천장을 뚫고 달아 내렸습니다.

    곁도 보실 뿐 아니라 속까지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상처는 육체에도 있지마는 그보다 더 깊은 상처가 그 심령 속에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의 말씀이『소자야! 네 죄를 사하였다.』먼저 그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까지도 회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충심으로 심령의 상처와 변모를 고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깨닫고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죄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리는 이가 충심으로 회개하여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 님께서는 그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우리 죄를 씻어 정결케 하시어 상한 심령을 회복해 주시는 이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산상보훈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죄를 애통히 여기며 회개하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반드시 위로함을 받습니다. 그 심령이 온전함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十四장 十四절을 여러분께서 기억하는 이가 많으신 줄 압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예수님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우리의 상처 입은 그 마음에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신령한 은혜는 마치 기름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을 때에 마음이 윤활하여집니다. 부드러워집니다. 겸손하여집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는 마치 길르앗의 유향과 같습니다. 상처를 다시 회복시키는 약과 같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제일 큰 은혜는 물론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고 하지마는, 성령의 은혜를 우리가 충만히 받을 때에 우리 마음속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충만하게 되어서 아무리 섭섭한 일, 아무리 슬픈 일을 당하였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

    반항하지도 않습니다. 조급하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네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은혜 받은 심령은 아무리 마음의 상처가 깊을 때에도 이렇게 부르짖습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여러분, 욥기를 다 읽어 보셨지요? 욥이 얼마나 그 마음이 상하였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재산이 없어지고 자녀가 다 죽고 몸에 병까지 나서 외롭게 앉아 있을 때에 그 다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그러나 은혜 받은 욥의 말을 들어보세요.『주신 이도 여호와 시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시니 오직 여호와 이름을 찬송할 것이로다.』 은혜 받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여 더욱 깊은 자리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분이 큰 슬픔을 당했습니다. 마음이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면 낙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받은 그 심령에는 주님께서 진리로 그 심령을 깨우쳐 줍니다. 네가 성경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가 알지 못하고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말씀을 네가 기억치 못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도 다 세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고 하면 네게 이와 같은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도 하나님 모르게 야 될 수 있겠느냐?

    그러면 그런 일도 어렵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다고 하면 여기에도 하나님의 어떤, 지금은 우리가 모르는 선한 뜻이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로마서 八장 二十八절에는『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았느냐?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는 기쁜 일만 있는 줄 아느냐? 평안한 일만 있는 줄 아느냐?

    이 모든 일 가운데는 고통스러운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같이 포함된다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 네가 왜 좀더 하나님을 이런 가운데서 의지하지 못하느냐? 요셉의 생활을 네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요셉이 억울하게 형들로부터 종으로 팔려서 멀리 애굽으로 가게 될 때에 그 마음이 얼마나 상하였겠느냐? 그러나 그 결과를 알지 않느냐? 네가 지금 병으로 인하여 낙심하느냐?

    성 프랜시스의 전기를 익어보지 못했느냐? 그 이가 젊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중한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회개할 기회가 있었겠느냐?

    우리의 육체도 이와 같이 귀합니다. 그러나 네가 깨닫지 못하느냐? 네 속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네 영혼이 아니냐? 불멸의 영혼이 아니냐? 육신은 잠깐 동안 살다가 끊어지지마는 네 속에 있는 그 영혼, 그 인격, 그 속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냐? 영혼이 살려고 하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영혼이 되면 여간한 연단도 또한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곡식이 잘 익어서 알곡이 되는데는 따뜻한 햇빛만 있어도 안 됩니다. 때때로 비를 맞아야 합니다. 잔잔한 날씨만 있어도 안 됩니다. 바람도 불어야 합니다. 찬 서리 도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곡식이 알곡이 되어 천국 곡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받는 이 시련, 내가 받는 이 어려움, 내가 받는 이 눈물이 내 영혼으로 하여금, 내 믿음으로 하여금, 여물어서, 장성해서 하늘나라에 가서도 능히 살 수 있는 그와 같은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인 줄 누가 나느냐?

    여러분 봄이 돌아오면 농부가 쟁기를 가지고 밭을 깊이 갑니다. 밭이 감각이 있다고 하면 아플거에요. 그러니 밭을 깊이 갈고 종자를 뿌려야 가을에 가서 많은 수확이 있게 됩니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 심령의 받을 고통의 모습으로 깊이 갈 때도 없지 않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은 한 방울도 허비가 안 되는 줄 압니다. 그 눈물이 이 다음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가 쓸 면류관에 한 방울이 진주로 달린 줄 누가 압니까?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진리로 하여금 우리를 더 깊은 자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세상의 고통도 잠깐입니다. 세상의 이별도 잠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과 이별했다고 오랫동안 계속해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을까요?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는 만날 소망이 있고, 영원한 우리의 생명은 하늘나라에 본향에 있다고 하는 깊은 진리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진리로써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 위로라고 하는 근본 뜻 가운데 이 능력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영어로 콤훠트라고 하는데 뒤의 훠트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왔는데 그것은 힘이라는 뜻입니다. 능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같이 계시므로 위로를 더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진리로써 우리의 상처를 회복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우리와 같이 계셔서 능력을 주시어 견딜 수 있게 만듭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을 읽어보세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전도할 때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 어느 밤에 사도 바울의 곁에 섰습니다.『두려워하지 말아라, 입을 닫지 말고 계속해서 말하여라.』왜? 이 성에는 내 백성이 많다. 같이 계셔서 능력으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혹은 사도 바울이 지중해에서 큰 풍랑을 만나서 十四일 동안이나 표류하는 가운데 선원 이하 모든 승객들은 다 정신을 잃었지요. 그 때 주님께서 곁에 서서『두려워하지 말라. 배는 잃어버릴지언정 한 사람의 생명도 상함을 입니 아니하리라.』

    『이 사람을 내가 너희에게 맡기었은즉 두려워하지 말아라.』힘을 주었습니다.

    참된 신앙 생활을 가진 사람의 체험에는 오늘날도 이와 같은 축복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위로의 메시야 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상처 입은 우리 민족에게 우리 교회는 위로의 역할을 다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들에게 능력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을 위로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들을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나바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지요. 그의 본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라고 했습니다. 왜요? 바나바라는 뜻도 위로하는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격려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우리가 위로의 메시야를 깨닫고 우리들 각자가 우리 민족을 도와주고 위로하는 메시야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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