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0:1-11/ 내 백성을 위로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35:08 read : 1208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四十․一)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올시다. 우리 중에 몸에 상처를 가지신 이도 더러 계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가지신 분들은 아마 그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몸이 질병과 무슨 사고로 종종 상처를 입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이 거칠고 죄 많고 환난 많은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때에 종종 상처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해서 남은 알지 못하지마는 그 속에 마음의 피를 흘리면서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육신이 상처를 고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자연계에서 여러 가지 약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의 상처를 회복해 주시기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위로의 준비를 하여 두신 것입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먼저 자연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주신 이 자연계는 물론 우리 육신이 살기에 만족한 자연계입니다. 육신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햇빛이 있고, 공기가 잇고, 물이 잇고, 집을 지을 수 잇는 산천초목 이 있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채소와 오곡백과가 넉넉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신을 쓴 인간이 의식주를 얻을 수 있으리 만큼 모든 준비가 된 자연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신뿐만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심령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준비 한 바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육신만 생각한다고 할 것이면 하늘에 태양 하나만 있어도 우리 육신이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양 하나만 지으시지 아니하시고 달도 지으시고 뭇 별들도 지으신 것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생활을 위해서 지으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 때때로 별을 보고야 사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달을 보고야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망의 별이란 말을 우리가 이따금 듣습니다. 가령 우리 육신은 먹으면 사는데, 그렇다면 채소나 오곡백과만 있어도 능히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에 이런 것들만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아름다운 꽃들도 많이 지으셨습니다. 그리해서 봄 동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름, 가을 늦은 가을까지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는 자연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꽃들은 뭘 합니까? 이것은 우리 육신을 위해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심령을 위해서는 꽃들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꽃도 좀 보아야 살 수 있습니다. 공기도 그렇습니다. 우리 육신을 위해서는 공기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기를 만드실 때에도 아주 아름답게 많은 공기가 쌓이면 푸른빛이 나게 해서 이 지구는 언제든지 푸른 하늘로 감 싸이게끔 지었습니다.
여러분, 고요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자연계 가운데도 우리 심령을 가진 인간이 위로를 받게 하시려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아침해와 저녁 노을, 문자 그대로 천자만홍의 가을의 단풍, 봄 동산의 뭇 새들의 노래 소리, 가을 저녁에 요란히 들리는 뭇 벌레들의 음악, 온 땅을 은세계로 화하는 겨울의 흰 눈, 높이 솟은 산악과 기암괴봉(奇巖怪峰) 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들, 이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의 심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이 거 칠은 도시 생활에서 집만 보고 살게 되니 마음이 거칠어지고 마음이 물질만 생각하게되고 그 이상의 것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도회에 살수록 이따금 하늘을 보아야 하고, 달빛을 우러러보아야 하고, 캄캄한 밤의 별빛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대자연과 접촉을 해야 우리의 심령이 원만히 장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대자연의 품에 안길 때에 알지 못하는 중에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준비하여 주신 하나님의 위로를 잊지 마십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그의 백성을 위로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자연계의 준비가 아주 귀하지마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특별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 특별 계시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올시다.
이 성경에는 우리 인간 심령 생활에 필요한 양식과 모든 준비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특별히 우리 인간 심령의 위로의 모든 준비가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이 성경에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모든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말하자면 길르앗의 유향(乳香)이 이 책 가운데 다 실려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지만 어떤 큰 환난 중에 헤매는 이가 있습니까? 시편 五十편을 읽으세요. 특별히 十五절을 읽으세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혹은 시편 九十一편을 읽으세요.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懇求)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혹은 시편 三十편을 왜 안 읽으세요? 특별히 四절 이하에『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 찌어다. 그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낙심한 중에 계시는 이가 있습니까? 시편 四十二편을 펴 보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에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혹은 시편 六十二편을 펴 보세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서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왜 낙심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세요. 혹 여러분 가운데 어떤 공포심에 쌓인 이가 없습니까?
이사야 四十장 十절을 읽으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혹은 이사야 四十三장을 펴 보세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요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할 것이라.』
여러분, 근심이나 염려를 그냥 가지고 오신 이들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베드로 전서 五장 七절에『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혹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으세요.
빌립보 四장 六절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세상의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혹 불평할 마음이 생깁니까? 시편 三十七편을 읽으세요.『행악(行惡)자들을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 찌어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
여러분 가운데 혹 죄로 말미암아 마음 가운데 고통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이가 있습니까?
이사야 一장 十八절을 읽으세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죄 사하는 길이 있습니다. 요한 일서 一장 九절을 읽어보세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 캐 하실 것이요.』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고독을 느낍니까? 히브리 十三장 五절을 기억하세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떠나지 아니합니다. 혹은 이사야 四十六장 三절과 四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나에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 기운 너희는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외 우리가 속이 답답하면 극장에 갈 생각부터 합니까? 어떤 이는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술 동무는 왜 찾아가게 됩니까? 파선을 당해서 바다 위에 떠다니는 사람의 제일 큰 문제는 목이 마른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에 아주 목이 마르게 되면 바닷물을 먹는다고 합니다.
바다 물을 먹게 되면 소망이 없다고 합니다. 왜? 바다 물은 먹을수록 목이 더 마르다 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은 따라갈수록 목이 더 말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의 상처를 회복할 만한 모든 준비를 이 말씀 가운데 두신 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더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연계를 통한 준비를 하였을 뿐 더러, 말씀을 통해서 위로해 주실 뿐더러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위로의 메시야올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오신 목적은 이사야 九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여 주시기 위하여』서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상상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실 대에 둘째로 하는 말씀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심으로 애통하는 이들이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망으로 오는 인간의 애통을 위로하여 주시기 위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적을 세 번이나 행하신 것입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그 부모의 상처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셔서 그 불쌍한 과부의 눈물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시면서 예수 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으니라 내가 잇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피차에 죽음으로 인하여 흘리는 뜨거운 눈물을 씻어 주시면서 주님께서 특별한 이적을 행하시고, 죽은 후에도 확실히 생명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가르쳐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그도 역시 사망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四十일 동안 땅위에 계심으로써 여러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고 과연 무덤의 배후에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사별의 뜨거운 눈물을 씻어 주실 분은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일을 더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라고 하는 말은 위로해 준다고 하는 말입니다. 위로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아주 귀한 목적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령의 상징 가운데 하나는 기름이올시다. 기름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처에 바르면 고통이 멎어지고 빨리 회복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을 성령으로써 없이 해주시고 빨리 회복해 주십니다. 성령의 다른 한 가지 상징은 바람이올시다. 서늘한 저녁 바람은 우리의 심신을 상쾌하게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글도 있지요. 남풍지훈해요 해민지우(南風之薰而 解民之憂)라고. 남풍 의 훈훈한 더움이여 이 백성의 걱정을 풀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오실 때에 우리의 근심을 속으로 풀어주십니다. 물론 성령의 불이지요. 깨끗 캐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 캐 해 주시고 모든 것을 이기며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로해 주십니다. 자연계를 통해서도 위로해 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위로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어서 모든 것을 이기고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말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힘을 주십니다.
영어에 위로라는 말을 컴훠트(comfort)라고 쓰는데 그 뜻은 힘이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실상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올시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잇는데 우리가 어찌하여 항상 근심과 걱정에 싸여서 살며 어찌해서 낙망하여 어찌해서 자포자기할 것입니까?
이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어떤 근심, 어떤 염려, 어떤 무거운 짐이 잇든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그 심령에 새로움을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그 심령이 안정과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은 은혜를 받게 되면 우리가 위로를 받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사실 위로를 받은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바나바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올시다. 그러나 바나바라고 하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바나바는 위로를 잘한다. 하는 뜻입니다.
그는 은혜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잘 위로해 주고, 잘 격려하고 잘 도와줘서 바나바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주님 앞에 나와서 먼저 위로를 받으시고 새로운 힘을 얻어서 이 고통과 근심과 슬픔과 사망 가운데서 헤매이는 우리 민족 사이의 바니바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격려할 수 있는 바나바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느 때엔들 우리 민족을 위로하지 아니하리 오 마는 이와 같은 성탄 계절에 우리가 특별히 우리 민족을 위로해야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굶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병중에 있는 사람도 너무나 많고, 낙심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주님 앞에 나와서 내가 위로를 받고, 내가 은혜를 받은 다음에 이 민족을 위로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성탄 계절에 우리 자신이 이 위로를 받고 온 민족을 위로할 수 있는 은혜 받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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