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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16:1-11/ 애통하는 자와 그 복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38:39   read : 156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지난주일 여덟 가지 복을 생각하면서 특별히 첫째 복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산상보훈 가운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 가운데 둘째 되는 축복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 말씀을 읽을 때에 자세히 듣기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얼른 들을 때에는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모순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이른 바 역리적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애통(哀痛)이 무슨 복이 될 수 있겠느냐고, 이렇게 얼른 생각이 됩니다. 물론 애통 자체는 우리가 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난한 자에 있어서는 애통도 복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눈물에도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서 七장 四절에는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愚昧)자의 마음은 열락(悅樂)하는 자의 집에 있느니라.』

    먼저 애통을 통하여 인생과 우주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천로역정」을 기록한 영국 청교도 지도자들 가운데 유명한 존 번연 이라고 하는 이가 젊었을 때에 군대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 저녁은 어떤 주요한 곳에 보초로 그 곳을 지킬 책임을 맡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깐 볼일이 있어서 존 번연은 자기 친구에게 잠깐 동안만 그 곳을 대신 지켜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어디 갔다 와서 보니 자기 대신 그 자리에 보초로 섰던 자기의 가까운 친구는 원수에게 저격을 당해서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 친구는 자기의 생명을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크게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 번연 이라고 하는 청년은 이 큰 애통을 통해서 인생의 깊은 뜻을 더욱 탐구하게 되었고 따라서 깊은 신앙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혹은 사랑하는 남편을, 혹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먼저 보내는 큰 애통 가운데서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하늘의 위로를 받은 이가 많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랜시스 같은 이도 부자 집에서 호화롭게 자라나던 청년이었지만 한 번은 중병에 걸려서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에 인생 문제를 다시 한 번 탐색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탐구는 그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게 했고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몸을 바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살아 있지만 일본의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목사는 지금부터 삼십 년 전에 우리가 학생 시절 때 유명한 소설 하나를 썼습니다. 그 소설 이름이「사선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사실 애통을 통해서 사선을 넘게 될 때에 인간은 인간의 깊은 뜻을 찾게 되고, 인간이란 단순히 육체가 아니오 그 속에 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낮에는 밝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멀리는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될 때에 하늘 멀리 우주 끝에 있는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들으니 미국의 월슨 천문대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렌즈인 이 백 인치나 되는 망원경이 있다고 합니다. 이 큰 렌즈를 통해서 전에 자세히 보지 못하던 여러 별들을 더 자세히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실 가장 신령한 나라, 가장 신비한 나라인 하늘 나라는 세상 사람들이 만든 렌즈를 통해서 볼 수 없고 이상하게도 눈물의 렌즈를 통하여야만 이 하늘 나라의 신비를 더 자세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애통해서 인생과 우주의 깊은 진리를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애통도 그러하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특별히 자기의 죄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애통은 죄 사함을 가져옵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자기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애통히 회개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웃시아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를 둘려 서있는 여러 스랍들의 창화(唱和)하는 소리를 역시 들었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만 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사야가 그 영광스럽고 거룩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에 직각 적으로 깨달은 것은 자기의 더러운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부르짖기를『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오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 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보았음이로다.』

    이렇게 탄식하며 애곡(哀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이 애통이 심할 때에 스랍 하나가 핀 숯을 제단에서 취하여 그 입술에 대어 주면서 말하였습니다.『네 악이 제하여 졌고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애통이 있는 곳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에 자기를 따라 오면서 우는 여러 여인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감히 눈을 우러러 위를 보지 못하고 다만 굽으려 가슴을 치면서『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부르짖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렇게 예수를 사랑하고, 그렇게 담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지만 정작 주님께서 악한 무리에게 붙잡히어 끌려갈 때 뒤로 천천히 그를 따라 가서 대제사장 뜰에 들어갔지만, 실상은 그 환경 가운데서

    『너도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너도 예수를 따르던 사람이 아니냐?』고 물을 때에 그만 용기가 다 줄어져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마지막에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와 심히 통곡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애통이 비록 시몬 베드로가 자기의 선생을 부인하는 중한 죄를 지었지만 죄 사함을 가져 왔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히 오순절에 전도를 한 사도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三十四편 十八절에『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도다.』시편 五十一편 十七절에『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 하시리이다.』하나님께서 구하시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올시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 바리세인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그 동리에서 가장 추하게 알려진 어떤 여자가 뒤를 따라 왔습니다. 그 여자가 예수께 대해서 그 발 위에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에는 자기의 머리를 풀어서 발을 씻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시몬 바리새인은 그 여자를 멸시하고 오히려 예수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시몬에게 옳은 대로 가르쳐 주시고 그 여자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애통은 죄 사함을 가져옵니다. 구원 얻는 유일(唯一)의 길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이 여자와 같이 예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살펴서 내 더러운 온갖 죄악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으로 회개하는, 이 길만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유 일의 길입니다. 또한 이것만이 교회가 부흥될 수 있는 유 일의 길입니다.

    온 교우 하나 하나가 주님 앞에서 겸손히 이 여자와 같이 내 자신을 살려서 내 허물과 내 죄를 깨닫고 원통히 회개할 때에 과연 교회는 부흥하겠고 교회 가운데 은혜가 충만하여 질 것입니다.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남의 애통에 같이 애통할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따르다가 울고 여러 여인들이 눈물을 흘릴 때에 예수님도 역시 눈물을 흘리시면서 같이 울었다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여러 교우들에게 간절히 여러 가지로 권면하고 부탁할 때에도 우는 자와 같이 울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보신 줄 압니다.

    제가 몇 주일 전에 시내 어떤 신문에「상품에 부치노라」하는 난이 있기에 며칠 동안 계속해 보니 그 난에는 6․25 때에 자기 자녀를 잃고 자기의 잃은 자녀를 찾는 부모들의 눈물어린 편지, 또는 6․25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있는 불쌍한 아이들이 부모를 찾는 눈물의 편지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편지를 다 신문에 싣자고 한다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조용히 귀를 기울여서 우리 사회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울음소리,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울음소리, 남편을 잃은 여러 아내의 울음소리, 실업자의 울음소리, 고학생들의 울음소리, 순진한 여성들이 악당의 유혹을 받아서 일생을 그르친 가련한 여성들의 울음소리, 이 울음 소리를 듣고 같이 애통하는 자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됩니까?

    이 애통하는 울음소리가 문자 그대로 삼천리 강산에 사무치건만 이 울음 소리를 듣고 같이 애통하는 참된 정치가, 참된 실업가, 참된 공무원, 참된 사회사업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됩니까?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사회는 눈물 없는 사회가 아닌가, 이렇게도 탄식할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애통할 줄 모르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가 복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남의 애통을 알아서 같이 나누고 수고를 나눌 줄 아는 민족이 오직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의 눈물을 내 눈물로 알고 남의 설움을 내 설움으로 알아서 같이 십자가를 질 줄 아는 민족만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남의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 더욱 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에서 예루살렘을 보시고『오 예루살렘아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듯이 내가 너희들을 모으려 한 적이 몇 번이었는가.』

    고 탄식하면서 통곡하셨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민족들이 죄로 말미암아서 멸망할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 주님은 가슴이 메어지는 아프셔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들어가는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그 간절한 애통의 심정에서 하늘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간의 죄를 자기의 죄로 지시고 애통하는 심정의 역사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렇게 죄로 말미암아 오는 모든 인간의 애통을 자기의 애통으로 삼으신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우리를 향해서 너희도 각각 자기를 이기고 십자가를 지고 곧 다른 사람의 죄와 십자가를 대신 지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십니다.

    남의 죄를 애통하는 자, 이런 이가 참 전도자가 되고 참 권사가 되고, 참 목사가 되고,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죄를 위하여 애통할 줄 아는 그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올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기독교는 불교와 다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애통을 피합니다. 인간의 애통과 고난을 도피합니다. 그리하여 산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애통을 같이 나눕니다. 십자가를 같이 집니다. 그리고 고아를 돌아보고 모든 노인들을 돌아보며 가련한 동포들을 봉사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입니다.

    애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눈물의 사자가 이따금 우리의 가슴, 우리의 가정을 방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자도 주님 안에서 맞으면 복을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애통을 통하여 인생과 우주의 깊은 진리를 깨닫습니다. 애통을 통하여 죄 씻음을 받습니다. 남의 애통에 참여함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참된 하나님의 일군이 됩니다. 이런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위로를 더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위로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는 콤포오트(Comfort)라고 합니다.

    본래 라틴말에서 온 말인데「힘을 준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런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힘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 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런 이들을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읽으신 이사야 六十一장 一절로 三절까지,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제가 다시 한 번 읽을 때에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 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喜樂)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는 이 목적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애통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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