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1:8-16/ 승리적 생활의 비결 / 한경직 목사 2014-08-23 21:49:56 read : 1150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一․八)
오늘 아침은 구약에 있는 다니엘서 가운데서 몇 절을 봉독(奉讀)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지혜와 학문이 많은 학자요, 장래의 인류의 역사를 미리 본 위대한 예언자요, 바벨론과 바사의 양조를 거쳐서 섬긴 탁월한 정치가요, 그러나 원수들이 아무 틈이나 허물을 찾을 수 없었던 고결한 생활을 한 인격자로서 역사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산 그 시대나 그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며 그 배경이 남달리 좋아서가 아닌 것입니다.
그가 나기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한 상류 계급의 가정에서 난 것은 틀림없지마는 그는 어릴 때에 벌써 바벨론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서 멀리 딴 나라에 잡혀가게 되었고 그 가정과 부모는 아나 그 후 예루살렘 성이 아주 파괴될 때에 필연 같이 화를 입은 모양이올시다.
이렇게 그는 어렸을 적부터 원수의 나라에서 포로의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그런 역경 가운데서 그는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자기를 해치려는, 모략하는 사람도 다 이기고 마지막에는 문자 그대로 사자들까지 이기면서 그런 인물이 되었고 또한 그런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한 그 승리 적 생활의 비결이 어디 있었던가? 제 생각에는 그런 생활의 비결은 설명하여 주는 구절이 다니엘서 가운데 특별히 두 줄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 한 절은 우리가 읽은 말씀 가운데 있는 一장 八절이올시다.『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환관장(宦官長)에게 구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다니엘이 비록 소년 시대이지마는 뜻을 정하였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뜻을 정한 결의, 즉 그의 결심이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니엘서 六장 十절에 나타나는 줄 생각합니다.『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기 다니엘의 기도의 생활과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다니엘의 청년 시절의 결심을 보여주고 또 하나는 다니엘이 일생을 통하여 지킨 기도 생활의 일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먼저 다니엘의 결심이 어떠한 것을 생각하십시다.
다니엘은 어려서 바벨론 궁중에 잡혀갔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아마 인물도 준수하고 재주도 있어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여러 포로로 잡아온 소년들 가운데서 특별히 네 사람을 택해서 훈련을 시켜서 장차 자기의 일군을 삼으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다니엘에게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왕은 이 소년을 잘 훈련시키기 위해서 소년들의 먹을 음식까지 지정하여 준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왕이 먹는 진미가 있고 왕이 마시는 포도주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보통 소년 같으면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옛날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그 안에서 장성해 나온 다니엘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우선 모세의 율법에 의지하면 고기 가운데 정한 먹을 수 있는 기고가 있고 부정한 멱을 수 없는 고기가 있습니다. 생선 가운데도 먹을 수 있는 생선이 있고 먹을 수 없는 생선이 있습니다.
또한 그 때는 다 우상을 숭배하던 때라 으레히 고기 같은 것은 먼저 우상에게 드린 후에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술로 말할지라도 제주로 그 인부는 붓는 풍속이 있었고, 또한 술은 자기 몸에 유익이 없는 것을 다니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내 몸을 더럽히지 아니할까?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여기에 기록한 대로 뜻을 정하고 자기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자기는 다른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채식만 하고 물만 마시기로 결심을 하고 이와 같이 환관장에게 말한 것입니다. 환관장은 그 말을 들을 때에 대단히 염려했습니다.
『물론 당신 생각에는 좋지마는 내게는 대단히 곤란한 것이 왕이 당시의 음식을 이렇게 지정해 주었는데 이 음식대로 먹지 아니하고 채식만 먹다가 조금이라도 건강에 손해를 받아서 왕이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면 내 목이 위태해.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달래면서 적어도 열흘 이상 실험해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채식만 먹고 물만 마시고 다른 사람들은 왕이 보낸 음식대로 그냥 먹고 그 후에 우리의 건강을 비교해 보아서 그 다음에 판단하기를 바란다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그렇게 다 실험해 본 결과는 채식을 먹는 다니엘이나 그 세 친구의 건강이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좋아졌다고 여기에 기록한 것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보통 청년 같으면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서 이런 결심을 하는 것보다도 아마 이제야 우리가 바벨론에 왔으니까 바벨론에 온 후에는 여기의 풍속대로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처럼 살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음식의 구애를 방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마 보통 청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게 신앙 생활에 얼마나 관계되어서 이것으로 방해되겠는가 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는 대로 우선 먹어가면서 차차 형편을 보아서 작정하지, 아마 이런 태도를 가지는 청년이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소년 시절부터 그런 청년은 아니었습니다. 조금도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해서 자기의 몸을 더럽힐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이는 젊지마는 이미 뜻을 정하였습니다. 내가 먹는 이것으로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결의하였습니다.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역경이 닥쳐왔지만 청년시대에 결심을 하고 자기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로 하여금 모든 환경 가운데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한 첩경이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도 이와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번 결단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멜산상에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참 신이면 그를 섬길 것이며 바알이 참 신이면 그를 섬길 것이라고 결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승리 적 생활은 여호와, 바알 사이의 결단으로 시작됩니다.
이 더러운 세상 가운데서, 이 속세에서 같이 내 몸을 더럽히며 살겠느냐? 비록 속세에 살지마는 깨끗이 내 몸을 보존하겠느냐? 결단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님께서도『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하느니라.』말씀하였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서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서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바람에 밀려서 요동하는 물결 같은 마음,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무슨 승리 적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단의 생활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계속해서 말합니다.『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케 하라.』결심한 마음이 성결한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결단을 할 수 있는 대로 젊었을 때에, 청년 시대에 해야 일생을 바로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결단을 새해에 하게 되면 그 해를 내내 바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여 나아가는 가운데도 이 같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야 될 줄 압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야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꼭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내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꼭 살 테야.』『성경에 가르치는 대로 십일조를 드릴 테야.』
『아무래도 내가 십일조를 드리기는 드리겠어.』『드리겠어, 드리겠어.』하면서도 결심은 못합니다.『내가 아무래도 철저한 절제 생활을 해야 돼. 안 믿으면 모르지만 믿는 내가 되어서 깨끗한 생활을 꼭 해야 될 테야.』말을 하면서도 결단을 못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이 결심이 필요합니다. 한 번 사람이 마음을 정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때에는 모든 복잡한 생각이 들어와서 번민(煩悶)과 고통으로 매일 매일 지나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을 정하게 되면 마음은 편합니다.
전에 모압 여자 룻이 자기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갈 것이냐, 모압에 그냥 남아 있을 것이냐를 작정하기 전에는 마음가운데 많은 번민을 가진 줄 압니다. 그러나 한 번 작정을 한 후에는 그 다음에는 마음이 편안하여졌습니다.
나오미가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동서 되는 오르바는 한 때 따라 나오다가 나오미의 권면을 듣고 도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여기 머물러 있으라고 다시 권면해 주지 마세요. 나는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내가 가겠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고, 어머니가 섬기는 신을 내가 섬기겠고, 어머니가 사는 곳에 내가 살겠고, 어머니가 죽는 곳에 내가 죽겠습니다.』결단한 마음, 마음이 평안합니다.
한 번 이와 같은 결심을 한 다음에는 새로운 용기가 납니다. 마음을 정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생각 가운데서 정력이 분산됩니다.
어떤 큰 목적을 위하여 마음을 정하게 된 마음에는 모든 정력이 거기로 집중되어서 새로운 힘이 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힘을 주어서 모든 것을 돌파할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내리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생활은 이와 같은 결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해에 내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면 우리가 금년 일년 동안 승리 적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도 다니엘의 기도의 생활을 생각해 보세요. 다니엘이 자기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 한방에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이 열렸는데 그 창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생활에는 열린 창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의 심령의 방에도 이렇게 열린 창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열린 창으로 햇빛이 들어 왔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 왔습니다.
다니엘의 이 열린 창을 통해서 하늘의 햇빛이 그 심령을 비추어 주었고 열린 창을 통해서 대기와 이 우주에 차 있는 새로운 공기를 그 심령이 호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심령에도 하늘과 통하는 열린 창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결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심만은 부족합니다. 왜? 사람의 의지는 약합니다. 사람이 먼저 결심을 하겠지마는 이 결심은 기도로 뒷받침하지 아니하면 이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해서 봄눈 녹듯이 스러지기 쉽습니다. 결심이 먼저 필요하고 그 결심을 뒷받침해 줄 기도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생활을 잠깐만 회고해 보세요. 다니엘이 어떻게 그 많은 지혜를 가지고 위험한 외국의 주정에서 오랫동안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왕조가 바뀐 후에 바사의 다리오 왕, 여러 왕들을 섬길 수가 있었습니까?
이 모든 지혜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여러 이야기를 다할 수는 없지마는 여러분이 다니엘 서를 읽어보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느부갓네살 왕이 어떤 날 아침에 잠에서 깼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용안이 대단히 불안해졌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유명한 박사들을 다 불러 들이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 모였습니다.
이 왕이 하는 말이『내가 어제 저녁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너희들이 꿈을 꼭 해석해야 돼. 만일 이 꿈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너희들의 몸을 쪼갤 것이요, 너희들의 집을 거름더미로 삼을 테야.』
그러니까 박사들이 송구해서『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그 꿈을 말씀해 주세요.』『아, 내가 그 꿈을 알면 야, 그 꿈을 잊어버렸어. 그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란 말이야!』자 이러 던 때입니다.
지금은 아마 아무리 세력 있는 독재자라도 그런 말을 안 하겠지요. 옛날은 그렇든 때입니다. 그러니까 박사나 박사 할아버지라도 어떻게 합니까? 큰일 났습니다.
벌벌 떱니다. 또 옛날에는 왕이 이렇게 말했건 저렇게 말했건 그 나라 법은 한번 입에 말로 던진 후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입니다. 해석을 못하니까 그들을 다 내어다가 베어 죽이라고 했습니다. 시위 대장이 냅다 몰아 내갑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런 가운데 다니엘이 그런 소식을 듣고 간절히(그 때 다니엘은 박사 측에 못 들던 때입니다)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 느부갓네살 왕의 꾼 꿈을 보여 주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왕에게 들어가서 그 잊어버린 꿈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습니다.
큰 우상을 보았다고 그랬습니다. 머리는 금으로 되고 가슴은 동으로 되고 그 다음에는 무슨 철로 된 우상입니다. 공중에서 돌이 하나 내려오더니 그 큰 우상을 한 번 치니까 전부 부스러져서 우상은 없어지고 온 세계에 돌이 점점 퍼져서 가득해졌다는 그런 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잊어버린 꿈을 다 다시 이야기 해주면서 그걸 해석까지 해준 다음에야 느부갓네살 왕이 기뻐서 다니엘을 칭찬해주고 또 다른 애매하게 죽을 박사들을 다 죽이지 말라고 하고 살렸습니다.
이렇던 시대에 왕 하나님 아니고 여러 왕을 계대해서 八十이 넘도록 재상 노릇을 한다는 것은 여간한 지혜를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요, 여간한 용기와 담력이 아니면 전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지혜, 이 용기, 이 담력,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느냐? 이 인내, 매일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서 위로 내려오는 지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고 근신하는 것을 배웠고 모든 것을 배운 줄 생각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일정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아마 아침, 저녁 또 한 번은 낮인가 봅니다. 또 기도하는 일정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자기 집의 한 방인데 예루살렘을 향하는 창이 있는 방이었습니다. 또 일정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꼭 서편을 향해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꿇어앉아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꼭 규칙적 생활을 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 시간은 도무지 어기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아마 여기 앉은 우리보다 몇십 배, 몇 백 배 분주한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책임을 가지고도 분주하다고 하는데 그 때 바벨론 천지가 一二0도나 되는 총리 노릇을 하려고 하면 얼마나 분주했겠습니까? 그런 분주한 가운데서도 이 기도하는 시간을 절대로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는 조금 분주하면 기도하는 시간 어기고, 조금 분주하면 가정 예배도 그만 두고, 조금 더 분주하면 주일 예배도 다 그만 둡니다. 마틴 루터가 한 번은『이거 오늘은 너무 분주해서. 일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적어도 세 시간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해야겠군!』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분주하면 분주할수록 기도를 더 해야 됩니다.
또 이것을 보세요. 다니엘이 기도하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 여기 六장에 읽어보면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그랬습니다. 그 조서가 어떤 조서인지 압니까?
그 조서는 다니엘을 시기하는 방백들이 만들어서 꾸민 것입니다. 무엇인고 하니, 한 달 동안 다른 신에게 절대로 기도하지 못하고 왕에게만 드리게 하고 누구든지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자 굴에 넣게 하라고 하는 조서입니다.
그 조서가 자기를 모함하려고 만든 줄을 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여전히 자기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이렇게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그 기도하는 시간을 지켰습니다.
자, 이런 때 기도 시간을 지킨 것을 보니까 다른 때야 생각할 것 없습니다. 이만큼 다니엘은 자기의 기도하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켰습니다.
규칙적 생활을 꼭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먼저 결심하고 그 결심의 뒷받침으로 매일 시간을 정하고 하루에 세 번씩 간절히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능력을 얻은 결과는, 일생을 통하여 어떠한 환경에서나 어떠한 처지에서나 모든 것을 이기를 승리의 생활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규칙적 신앙 생활이 필요합니다. 예배 시간을 꼭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개인의 기도 시간도 꼭 정하고 그 시간대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 읽는 것도 매일 정하고 그대로 읽는 것이 유익합니다.
우리 가정 기도회를 보는 것도 한 번 시간을 정하고는 암만 분주해도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심과 기도,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승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새해를 당해서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뜻을 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새해를 당해서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고 이 기도의 시간을 분명히 정해서 규칙적으로 이 시간을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 어지럽고 험악한 세상 가운데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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