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0:1-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한경직 목사 2014-08-25 12:10:16 read : 1365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시편 50편 15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너를 건지리니 곧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곧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리라고 또한 말씀을 하십니다.
전에 야곱이 아람 땅에서 자기의 장인 라반의 집에 우거하면서 거기서 결혼도 하고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큰 우양의 떼를 몰고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얍복 강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뜻밖에 자기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향하여 마주 온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일찍이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형의 받을 축복을 도적질한 야곱은 겁에 질려서 그 강을 그날 저녁 감히 건너지 못하고, 밤새도록 얍복 강변에서 어떤 이를 만나 씨름을 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창세기에 있습니다. 씨름하였다는 말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뜻입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그날 저녁 야곱은 ‘이스라엘’, 곧 기도를 통하여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무사히 형 에서를 만나게 되었고 화해도 이루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히 환난 날에 부르짖음으로 결국은 승리를 하였습니다.
유명한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이 죽은 후 여러 해를 지나니 애굽 사람들은 요셉을 다 잊어버렸고 거기에 내려와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 가련한 처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보내시어 그들을 구출하신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부르짖는 음성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위대한 백성으로 결국은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억하실 줄 생각합니다. 옛날 선지자 요나는 선지자는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 니느웨라고 하는 곳으로 가라는 길을 버리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자기 마음대로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결국은 큰 물고기 배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요나서 읽어 보세요. 요나는 그 물고기 배 속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 죄를 사하시고 그를 구원하실 뿐더러, 그에게 큰 능력을 주어 니느웨 성을 회개시킨 위대한 선지자 요나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인간의 삶은 종종 환난 날에 부딪히게 됩니다.
천재지변이 있습니다. 큰 지진, 태풍, 홍수가 있습니다. 개인생활에도 환난의 날, 눈물의 날이 있습니다. 질병의 날이 있습니다. 실패의 날, 실직의 날, 혹은 애통의 날이 또한 있습니다. 국가 또는 사회생활에도 환난의 날이 있습니다.
때로는 전쟁도 일어나고 사회가 혼란스런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국가에 있어서도 종종 온갖 여러 가지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은 인간의 죄 혹은 실패로 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야곱이 당한 환난, 요나가 당한 환난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 이유를 모두 깨달을 수 없는 환난들이 또한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욥이 당한 환난입니다. 의인의 수난입니다. 그 외에도 천재나 지변, 불의의 사고 등 그 이유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또한 적지 아니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실로암에 세웠던 망대가 무너져 18사람이 참사한 사건이 일어났고,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어본 이가 있습니다. 또 같은 때에 빌라도의 학살로 무고한 생명을 잃은 갈릴리의 몇 사람에게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질문을 받으신 일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에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한 마디 말씀을 더 하십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장 4절로 5절의 말씀을 읽어 보세요.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 주님은 분명히 천재지변으로, 혹은 사고로 생명을 잃는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죄가 더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시면서 우리에게 또한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곧 이러한 기회에 죄에 대하여 회개할 것을 권면하시면서 그렇지 아니하면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비록 간단하지만 심히 엄숙합니다. 죄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망한다는 말씀은 필연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최후 심판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제가 이제 요한계시록 20장 12절 이하를 읽을 때에 직접 들어보세요. 요한이 계시로 본 바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장 12절과 13절을 읽어 보세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과거도 역사적으로 심판하신 예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가령 노아 때에는 홍수로 심판을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말합니다. 현 세계에서의 천재 지변 그리고 온갖 불행한 사변들은 다만 장차 올 대심판의 예고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으로서 환난 날에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곧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부르짖으라” 곧 간절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새롭게 살피며 모든 죄를 뉘우쳐 고치고 하나님께 돌아와 부르짖어야 살 길이 열립니다.
그렇게 하면 여기 약속의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니” 곧 건져서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구원을 통하여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을 불러서 구원하십니다. 때로는 이 환난을 통하여도 우리를 부르시고 회개케 하시고 구원하시고 최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환난 날을 당하였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원망하지 마시고 주님께 돌아와 부르짖으세요. 그리하면 환난의 날도 오히려 전화위복의 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전에 탕자가 아버지께로부터 자기 분깃을 다 받아 가지고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서 아버지가 보지도 못하고 간섭할 수도 없는 다른 곳에서 허랑방탕하고 온갖 세상 향락에 그 많던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때에 마침 설상가상으로 그 지방에 큰 재난,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일자리도 없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돼지 치는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어떤 직업이나 상관없이 생각하는 시대이지만 그 당시 유대 사람들은 돼지고기란 절대로 먹지 않았고, 또 돼지를 치는 유대 사람은 하나도 없던 때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이 유대 청년은 할 수 없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일을 하는데, 흉년이라 먹을 것이 없으니 돼지물을 조금씩 얻어먹고 살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청년이 이렇게 굶어 죽을 지경에서 자기 아버지 집을 한번 돌이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탄식합니다. “우리 아버지 집은 곡식도 많고 일꾼도 많고 모든 것이 넉넉한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긴 탄식을 하다가 그러다가 크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돌아가서도 물론 감히 아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저 다만 일꾼의 하나로 받아서 일이나 시켜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몇 번 하다가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얼굴을 아버지 집이 있는 편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려서 힘이 없어 달음질은 못하였어도 죽을 힘을 다하여 허우적거리며 아버지 집을 향해서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돌아옵니다. 아버지 집에 가까이 와서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아마 멀리서 바라보고 섰을 것 같습니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그러한 탕자라도 잊을 수가 없어서 아마 매일 집 앞에 나와서 멀리 앞길을 바라보며 행여 아들이 돌아올까 기다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은 멀리 지평선 위에 한 거지가 보이는데, 걷는 모습이 꼭 자기 아들이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설마 하고 한참 서서 기다리며 점점 가까이 와서 그 얼굴을 보게 되니 참 이게 꿈인가, 정말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는 너무 감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그저 그 늙은 몸으로 힘을 다하여 마주 다가간 줄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너무 기뻐서 그 아들을 팔로 안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성경에서 읽는 대로 새 옷으로 가져다 입혀 주고 손에는 금가락지를 끼어 주고 일꾼들을 불러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대연을 배설하고,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을 모두 모아 같이 즐기며 하는 말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였다고 말합니다.
더 부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난 날에 사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러합니다. 과거의 모든 허물과 죄는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충만한 삶을 다시 얻게 됩니다. 환난의 날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한국 역사상에 특별히 해방 후의 역사상에 환난의 날로 기억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태풍도 너무 자주 엄습해 왔습니다. 집중호우도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홍수도 너무 크게 났습니다. 공장마다 노사분규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억울하고 슬픈 장례식도 더러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리오마는 이러한 시기야말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돌아와 나를 위해서 기도할 뿐더러 우리 환난에 동참하는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난에 허덕이는 농민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노사분규로 시달리는 근로자들과 기업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내 주변에 불행한 사정으로 허덕이는 모든 이웃과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캠퍼스의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환난의 날이 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쁜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부르는 음성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환난의 날을 지나갑니다. 지난 여름도 너무 큰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 사회는 큰 전환기를 맞아서 너무 소란한 환난의 날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환난을 당합니다. 아버지시여, 그저 저희들은 아버지의 음성을 이러한 때에 들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을 원망하지 말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내 자신의 고칠 것을 고치고 내 자신이 이 환난 날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깊이 생각하면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가운데서 환난 날이 변해서 오히려 큰 축복으로 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러한 민족, 이러한 국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앉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먼저 이 음성을 분명히 듣고 내 자신을 먼저 보고 내 자신을 먼저 구원하고 내 자신을 통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저희들이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