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4:11-17/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한경직 목사 2014-08-25 14:42:38 read : 152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야고보서 4장 14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얼마 전, 우주선 첼린저(Challenger)호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러한 성경 구절이 새롭게 마음에 스며듭니다. 건강한 미국 청년 7명이 수백 만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구를 떠났으나 불과 73초 만에 공중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도 허무한가? 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벌써 오래 전에 인생의 이러한 면을 지적하면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인간의 생명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시편 102편 3절에는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잠깐 보이다가 소멸하는 연기에 비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욥기 7장 7절에는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호흡’ 곧 ‘숨결’이란 뜻입니다. 한번 숨을 내쉬면, 날이 추우면 잠깐 보이다가 곧 사라집니다. 인간 생명이 이렇게 잠깐이요 허무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역대상 29장 15절에는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이렇게도 기록되었습니다. 그림자란 항상 변하고 또 해가 나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두 인간 생명의 허약성, 허무성, 혹은 순간성을 의미합니다. 또 누가 감히 인간 생명의 이러한 면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근래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여러 번 목격하였습니다.
몇 달 전만 하여도 멕시코에서는 큰 지진이 홀연히 일어나 아까운 생명 수만 명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또 콜롬비아 나라에서는 오래 사화산으로 잠잠하던 큰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여 근처에 있던 작은 도시 하나가 일시에 소멸되고, 역시 수만 명의 생명이 홀연히 화산재와 홍수에 쓰러졌습니다.
그뿐입니까? 현대는 먼 여행은 거의 비행기로 하는데, 대형 비행기 추락 사고는 왜 그렇게 많습니까? 얼마 전에 이웃 일본에서도 큰 비행기가 높은 산 위에 떨어져 500여 명의 생명이 순식간에 희생되지 아니하였습니까?
지금은 과학시대요, 기계문명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도처에 사고는 빈발합니다. 한국의 교통사고도 점점 큰 문제로 대두됩니다. 서울만 해도 매일 교통사고가 60건으로, 많은 날이면 100건에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부상자의 수가 늘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지 않은 생명이 희생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바다에서는 해상사고 곧 선박의 침몰사고가 일어납니다. 또 도회에는 화재사고, 탄광에는 매몰사고 등, 온갖 사고로 인간의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이 너무나 빈번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실로 생명의 허약성, 허무성, 순간성을 너무나 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실로 우리 인간은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다음 시간의 일을 모르고 삽니다. 여기에 또한 인간 생명의 맹목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선 성경은 소극적으로 삼가야 할 일을 여러 가지로 가르쳐 줍니다. 오늘 읽은 야고보서에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허탄한 자랑을 삼가라고 충고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겸손히 늘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 기록한 대로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곧 이런 이들에게 ‘너희는 내일 일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인간은 영어로 말하면 ‘프로프즈(propose) 곧 제안은 할 수 있으나, 오직 하나님만 디스포즈(dispose) 곧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저것을 하겠다고 말하여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이러한 제한성을 기억하는 이는 언제나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면 연기하지 않도록 힘쓸 것입니다. 오늘에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고, 또 그러한 기회가 있으면 즉시 단행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왜요? 그러한 힘과 그러한 기회가 앞으로 아주 없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또 인간 생명의 이런 면을 기억하는 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원수를 짓지 않도록 힘쓸 것입니다.
혹 원망하는 이가 있으면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가서 화해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분쟁을 오래 계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화해할 기회가 아주 없을지 누가 압니까? 늙은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장 15절 이하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맙시다. 회개를 연기하지 맙시다. 어떤 이는 믿을 마음은 있지만 세상 재미를 좀더 보다가 회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듯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세요. 회개할 기회가 없을지 누가 압니까? 내세에 대하여도 무관심하지 마십시다.
여러분,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 가운데 하나인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아마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어떤 곳에 돈 많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과 날마다 열락으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와 같은 거지를 물론 무관심하게 보았습니다. 더욱 내세에 대하여는 생각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죽고 보니 자기는 음부에, 곧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상상할 수도 없는 고초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멀리 바라보니 자기 문전에서 구걸하던 나사로는 빛나는 하늘나라에서, 또 아브라함 품 속에서 큰 사랑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후회하지만 이제는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자기 친척들의 영혼을 생각한 것은 괜찮았지만 이제는 그 기회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도 지나갔습니다. 회개의 기회는 아주 지나갔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연기하지 마세요. 그 기회가 다시 올지 누가 압니까? 성경은 거듭하여 허탄한 자랑을 삼가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돈이 많다고 자랑하지 마십시다. 언제 그 돈이 없어질지 누가 압니까? 지식이 많다고도 자랑하지 맙시다. 그 지식이 꼭 축복이 될는지 누가 압니까? 지금 인기 있고 명예가 높다고도 자랑하지 맙시다. 오늘 내가 권력의 자리에 있다고도 자랑하지 맙시다. 이러한 자랑은 다 허탄한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오직 성경은 부탁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오직 주를 자랑하라고 성경은 또한 권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 이하를 읽어 보세요.
이렇게 허약한 생명을 가진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그 적극적인 면을 생각하여 보십시다. 한마디로 굳센 믿음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여러분 아십니다. 자세히 읽어 보세요. 거기에는 히브리 민족 전역사를 통하여 위대한 삶을 가진 용사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주의하여 읽어 보면 모두 ‘믿음으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아벨도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도 믿음으로 큰 홍수를 이겼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상상할 수 없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일일이 다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브리서 11장 33절과 34절 이하를 돌아가서 읽어 보시면 여러분이 다 아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40장 31절에 선언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에게는 겉사람 곧 육신과 속사람 곧 영혼이 있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음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육신의 생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생명 곧 불멸의 생명이 또한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아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이사야 43장 1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허약하고 순간적인 것 같지만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른 것은 이러한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언하였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성케 하기 위하여 오셨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삶 가운데서도 가장 풍성한 생명을 얻어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성한 생명이 오늘 아침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 이렇게 허약성과 허무성과 순간성이 있으나 우리는 믿음으로써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가장 보람 있고 가장 힘 있고 인간을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풍성한 삶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주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심을 생각할 때 감사와 찬송을 드리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오늘 아침 우리 하나하나에게 주님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는 나날을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며 어디서나 하나님 찬송하고 우리 동포들에게 봉사하고 어디 가나 화평을 도모하며 선을 행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믿음의 식구들이 다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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