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1:1-12/ 정결케 하소서 / 한경직 목사 2014-08-25 20:07:49 read : 164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또 여러분께 또한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부족한 사람이 그동안 특별히 몸이 불편해서 있는 동안에 여러분께서 저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 본 교회 의료 선교회 회원 여러분들을 비롯해서 또 경희의료원의 여러분의 정성어린 수고를, 간호를 언제나 잊기 어렵습니다.
오늘 사실은 제가 일본에서 설교를 할 약속을 몇 달 전에 했었는데, 제가 몸이 불편해서 가지 못하고, 지금 박 목사님께서 일본 재일 대판 한인교회에서 수고하시는 중에 계십니다. 여러분, 박 목사님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본 교회 독창 잘하시는 박순복 선생도 같이 가서 음악으로 그 대회를 돕는 중에 있습니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시편 51편 7절, 여러분 잘 아시는 말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큰 범죄를 한 후에 회개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여기에 보면 간절한 회개와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이,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그는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슬초는 풀의 이름인데,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결례를 행할 때, 우슬초에 그 물을 찍어서 뿌리던 풍속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에 옛날 모세의 율법과 교훈이 얼마나 외적으로 또는 내적으로 정결하다는 것을 강조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정결해야 된다고 언제나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몸도 정결히 하고, 거처도 정결히 하고, 음식도 정결한 음식만 먹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가령 물고기 가운데도 먹을 수 있는 정한 물고기와 먹을 수 없는 불결한 물고기를 분간해서 가르쳤습니다. 또 짐승 가운데도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짐승, 또 먹을 수 없는 불결한 짐승을 엄격히 구별해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부정한 것에 접촉되었으면 그 몸을 깨끗이 하는 결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외적방면 뿐만 아니고, 내적 방면 곧 마음의 정결을 강조한 것은 물론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여러분이 이미 읽은 24편의 한 구절입니다. 주님께서도 산상보훈에 여덟 가지 복을 가르쳐 주실 때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성경이 주는 이 정결, 혹은 맑음에 대한 교훈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의 사랑이 맑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맑아야 합니다. 욥기를 읽어 보면 욥이 그렇게 신앙이 좋은 분이지만, 그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맑지 못하다고 사탄이 하나님께 도전을 했습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실 때, 사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물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사탄이 욥의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사실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도전합니다. 그것은 물질적 축복이 그 원인이라고 강변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물질적 이기주의가 섞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욥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순결한 것인가는 그 후 그가 받은 모든 환난을 통하여 물론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요새 우리 한국 교계에서도 너무 기복사상에 치우치는 이들이 있다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이 얼마나 맑은가 스스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하박국의 외침과 같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박국이 하는 말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장 17절 이하에 있는 말씀이올시다.
우리도 과연 이렇게 외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맑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맑아야 합니다.
또 인간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도 그러합니다. 우정도 맑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우정은 이해득실을 초월한 맑은 친구간의 사랑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흔히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전하여 줍니다. 그들의 우정 역시 맑은 우정이었다고 합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우정이 어떠한가? 때때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도다”
남녀간의 사랑, 가정의 사랑도 맑아야 합니다. 가정 안에도 불순한 요소가 들어오게 되면 피차에 의심이 생기고 불화가 일어나며, 심하게 되면 가정파탄이 오고야 맙니다. 현대 구미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에서도 이혼율이 점점 증가되는 것은 가정의 사랑이 타락되어서 이러한 불행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가정의 사랑을 꼭 맑게 지켜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봉사도 좀더 맑아야 합니다.
모든 봉사는 실로 귀합니다.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봉사하는 고아 사업, 무의무탁한 노인을 봉양하는 양로 사업, 그밖에 정신박약아, 불구자 등 온갖 불우한 이들을 봉사하는 자선사업은 실로 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있습니다. 맑은 봉사라야 합니다. 6?25 사변 이후에 우리 사회에 이러한 불행한 이들을 돕는 자선사업기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또 많은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그러한 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의 상당한 수가 칭찬보다도 오히려 사회의 비난과 규탄을 받은 사실을 우리는 더러 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한마디로 그들의 뜻은 좋고 수고도 많이 하였으나, 그 봉사가 깨끗하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빙공영사(憑公營私)’란 말이 있습니다.
‘공공한 일을 빙자해서 사사로운 사복을 채운다.’하는 말일 겁니다. 봉사가 귀합니다. 그러나 봉사는 깨끗해야 합니다.
교육사업도 또한 그러합니다. 한 민족, 한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영재를 양성하는 기관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때로는 학원분규, 혹은 학원부조리 사건 등 불행한 말이 종종 들립니다. 왜? 여기에도 한마디로 이 귀한 육영사업에도, 불순한 무엇이 섞이는 까닭입니다. 모든 교육사업, 이 귀한 영재를 위한 봉사도 좀더 맑아야 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모든 기업도 또 여러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노동도 하나의 봉사입니다. 또 이러한 봉사정신으로 기업주나 근로자가 같이 노력하여야 자기 자신들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혜택이 미칠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 중임을 맡은 이 기업을 통한 봉사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종종 무슨 부정 기업이니 무슨 불량제품을 생산했다느니 반갑지 아니한 뉴스를 더러 듣습니다. 좀더 맑은 기업인들, 양심적인 근로자들이 아쉽습니다. 기업을 통한 봉사도 맑아야 합니다.
셋째로, 또 마지막으로 우리가 애국심이란 말 종종 쓰는데, 사실 우리 애국심도 맑아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이 마음, 얼마나 고귀합니까? 그런데 이 애국심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으로 점점 국운이 쇠약하여질 때, 또는 나라가 아주 없어졌을 때에, 국내, 국외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알게 모르게 힘쓰던 애국지사들의 그 애국심은 실로 맑았습니다. 도산 선생이나 김구 선생이나 국내에서 많은 수고를 한 남강 선생, 고당 선생, 안중근 의사, 이상재 선생 등등, 애국지사들의 애국의 심정은 실로 다른 무엇이 없는, 가을 달처럼 맑은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에 소위 여러 면에서 지도자들이 가졌다고 하는 애국심은, 여러 가지 안 섞일 것이 섞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종종 들어옵니다. 가령 지위욕, 권력욕, 금전욕, 명예욕 그런 것들이 섞이기 쉽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가 적지 않으니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부정, 부패, 불행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애국심도 사실 좀더 맑아야 합니다.
또 무엇이 참 애국인지 옳게 분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독립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서 힘쓰는 중인데, 이 운동도 참된 그리고 맑은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인 줄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다. 참된 민족주의는 민족 지상주의가 아닙니다. 민족이 귀하지만 지상(至上)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일 높습니다. 옛날 독일 나치스의 전철을 밟지 아니해야 합니다. 참된 민족주의는 배타주의도 아닙니다. 우리는 내 민족도 옳게 사랑하고,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옳은 대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맑은 애국심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할 때에 우리나라는 사실 모든 방면에 모범이 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맑은 정치인, 맑은 공무원, 맑은 기업인, 맑은 근로자, 맑은 교육가, 맑은 사회사업가, 좀더 맑게 사는 우리 국민들이 아닙니까? 교회도 역시 그러합니다. 맑은 교역자, 맑은 제직, 어디서나 맑게 행동하는 교인들이 가장 요구됩니다.
구한국 말기에 불란서 신문기자 조지 비고(Georges Bigot)라는 분은, 그때 한국에 와서 뉴스를 본국에 보도하는 가운데 당시 자기가 보는 대로 한국의 실정을 보면서 한 만화를 그려서 자기네 나라 신문에 게재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을 앞을 못 보는 장님으로 그리고, 한편에서는 일본 군인, 다른 한편에는 러시아 군인이 서서 각기 자기 편으로 가자고 끌어당기는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의 한국 실정이 뭐 그러하다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당시 지도자들이 국제 사정을 전혀 모르던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민족이 눈을 떴습니다. 세계 정세도 압니다. 현대 과학 문명도, 그리고 기술도 도입합니다. 민주주의도 배우는 중입니다. 산업도 발전해서 세계 시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꼭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맑아야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 한국의 공무원, 경제인, 교육가, 문화인, 우리 국민 모두가 좀더 맑아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 아시아에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회에서 맑은 샘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맑은 샘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슬초로 나를 씻기소서” 이러한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10월 31일은, 1517년에 독일의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선언한 ‘종교개혁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종교 개혁은 한마디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교회를 좀더 맑게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오랜 세기 동안 누적된 병폐, 그릇된 사상과 풍속을 씻어버린 날입니다. 교리도 좀더 맑게 하였습니다. 예배 의식도 좀더 맑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조직과 정치도 좀더 맑게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였습니다.
일찍이 마틴 루터가 대야에 물을 떠 손을 씻고 또 씻으면서 “내 손은 물로 씻을 수 있으나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탄식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복음의 중심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깨끗하여진다고 하는 진리를 성경에서 분명히 찾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솔직히 가르쳐 줍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장 7절에 있는 말씀이올시다.
십자가를 믿는 이들은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여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올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현재 마음과 생활의 상태가 아무리 더러울지라도, 중심으로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와 십자가를 붙들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하나로 하여금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현재 상황이 아무리 깨끗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의 심령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정결한 이 축복을 우리 모두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같이 희리이다. 이것이 우리 하나하나의 간절한 염원이며 기도입니다. 이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이 우선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말도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행실도 깨끗하게 하여 주셔서 이 어지럽고 부정 부패가 많은 이러한 사회 가운데서 과연 우리 하나하나의 생활이 맑고 깨끗한 샘터가 될 수 있도록, 또 우리 교회가 이런 사회 가운데서 맑은 샘터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한 사람의 영혼도 더러운 죄 가운데 그냥 두지 마시고 이 시간 그 외로운 영혼을 꼭 불러내어서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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