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105-112/ 내 발에 등 / 한경직 목사 2014-08-26 10:19:26 read : 185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105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간은 아무리 명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내일 일을 모릅니다. 사실 다음 시간에 될 일도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인간의 매일의 삶은 마치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외지(外紙)를 보니 지난 60년대 말에 여러 사람들이 장차 올 70년대에 대하여 어떻게 되리라 하는 것을 제 나름대로, 말하자면 예언을 하였는데, 70년대를 다 지난 오늘에 와 보니 그 말들이 도무지 맞지 않았다고 지적하였습디다.
인간이 장래에 대하여 전망할 수 있고, 무슨 계획을 세울 수도 있지만, 사실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행로는 어두운 밤길입니다. 옛날부터 밤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작은 등불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인생행로에도 이 등불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내 길에 빛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상고하여 볼 때에, 본래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의 삶의 실정을 아시는 하나님은 삶의 길을 옳게 가기 위하여 등불을 몇 개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간단히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성의 등불이요, 둘째는 양심의 등불입니다. 셋째는 말씀의 등불이요, 넷째는 성령의 등불입니다.
첫째, 이성의 등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을 생각하고 추리하고 연구하고 판단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흔히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까치는 1,000년 전이나 1,000년 후나 똑같이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작년에 지은 집과 금년에 짓는 집이 다릅니다. 사실 현대의 모든 문명은 이 이성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것들을 생각하라. 저런 것을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권면이 종종 있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이 되지 말라고도 권면합니다. 혹은 심지어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하는 구절도 시편 32편 9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언에는 언제나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고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로마서 1장 21절 이하에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종교 생활에 있어서 이성이 결여될 때에 우상숭배와 온갖 미신에 빠집니다. 오늘 한국의 불신 사회의 현실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고유의 문화를 되찾고 보존하려는 정신은 좋으나, 과거의 온갖 미신과 퇴폐 풍조가 되살아나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소위 향토 문화제를 주도하는 이들이 좀더 이성을 살려 과거의 풍속을 바로 비판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인간의 삶의 길에는 급격한 환경의 변천, 불의의 사고의 돌발 등 예기치 못했던 일을 종종 당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당황치 말고, 우선 이성의 등불을 밝혀서 세밀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비판하여 옳게 처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날 속담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성의 등불을 흐리게 하는 요소도 미리 경계하여야 합니다.
가령 감정의 격발입니다. 큰 분노, 슬픔, 시기, 혹은 군중심리 등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부인이 아이들과 같이 집단 자살을 하였다는 뉴스를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평화적으로 집회나 데모를 하던 군중이 폭동을 일으켜 방화, 파괴 등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소식도 이따금 듣습니다. 오늘의 이란 사태를 주시하면서 세계 사람들은 아마 모두 이성이 아쉽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열심은 좋으나 과열은 위험합니다. 온돌에 적당히 불을 넣으면 온 가족이 따뜻하게 편안하게 살 수가 있지만, 온돌도 과열이 되면 화재가 나는 수도 있습니다. 범사에 과열을 삼가야 합니다. 모든 일에 이성의 등불을 밝혀서 비리(非理), 이치가 아닌 것, 역리(易理), 이치에 거스르는 것, 무리(無理), 이치 없는 것 등을 피하고, 범사에 순리대로 하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양심의 등불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삶의 길을 옳게 가려면 양심의 등불을 또한 밝혀야 합니다. 착한 양심을 언제나 가지도록 힘써야 할 겁니다. 이 등불이 꺼질 때에는 믿음은 말할 것도 없고 삶의 전체가 파탄되고 말 것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사도 바울은 지적합니다. 양심은 특별히 도덕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 줍니다. 배 위의 나침반과 같이 양심은 윤리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갈 길을 올바르게 가르쳐 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그대로 순종하면 칭찬해 주고 거슬러 가면 책망도 합니다. 양심의 가책이 때로는 얼마나 무섭다고 하는 것은 가룟 유다의 자살사건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어떤 분으로부터 귀한 반지를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왕은 언제나 이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언제든지 왕이 무슨 일을 바로 하지 아니하면 그 반지가 손가락을 눌러서 아프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왕은 그 반지를 낀 후로부터는 모든 정치를 바로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양심의 역할이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등불이 밝아야 인생길을 바로 갑니다.
옛날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비록 종노릇은 하나, 모든 살림을 맡은 가정 총무로 있을 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려고 한 사실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담대히 그 유혹을 물리치면서 한 말은 “주인께서 나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이 집에서 당신 외에는 모든 것을 다 나에게 맡겼는데, 내가 어찌 이 악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 있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청년 요셉이 정욕을 통하여 오는 유혹을 이긴 그 원인은 그의 양심의 등불이 밝은 믿음에 있었습니다.
불란서(프랑스)의 유명한 문학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고 하는 소설을 여러분 아마 다 이야기 기억할 겁니다. 거기에 주인공 장발장이 처음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전과자가 되었고, 그러나 그 후에 여러 가지 중한 범죄자로 전락된 후에 그러나 법망을 교묘하게 벗어나서 먼 지방에 가서 다른 이름으로 행세를 하면서 심지어 그 시에서 시장까지 되어 평안히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은 신문을 보니 자기 고향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이 오인(誤認)이 되어 처형이 된다고 하는 뉴스를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진짜 장발장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 법정에 찾아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로 하여금 참된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한 것은 오직 그 양심의 등불이었습니다. 양심이 이렇게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귀한 양심의 등불을 흐리게 하는 요소가 있다고 하는 것도 미리 알고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에 넘치는 욕심입니다. 강한 정욕, 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 욕심들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의 경고를 우리는 기억하고 언제나 욕심들을 삼가야, 양심의 등불을 밝혀야 어두운 인생길을 바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말씀의 등불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삶의 길을 밝혀 주는 데 이성과 양심의 등불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 등불들이 어두워질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양심이 화인을 맞을 때가 혹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성의 비극입니다.
전에 다윗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그가 강한 정욕의 유혹을 받을 때에 그의 양심의 등불은 그만 꺼져버렸습니다. 그리해서 자기의 충복인 우리아를 간접 살해하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암흑의 순간에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아주 망할 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어두운 길을 밝혀주기 위해서 아주 밝은 등불,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삶의 갈 길을 밝혀 줍니다. 우선 10가지 계명을 줍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분명히 갈 길을 보여 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분명히 갈 길을 보여줍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모든 시험을 이기신 것입니다. 또 들으세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등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매일 읽어야 합니다. 그 빛을 매일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가장 어두운 길이 마지막에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한번 지나갈 수밖에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그런 때에도 우리 길을 밝게 비추어 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으니라”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의 등불은 인생의 마지막 길을 이렇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등불을 매일매일 밝혀야 할 것입니다.
넷째, 성령의 등불입니다.
여러분, 아주 중요한 등불 하나를 더 기억하십시다. 그것은 성령의 등불입니다. 말씀의 등불은 우리 밖에서 비추어 주나, 성령의 등불은 우리 속에서 비추어 줍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성령의 등불이 있습니다.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베드로에게 오직 성령께서 그 등불을 밝혀서 고넬료의 집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안수하여 외지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라고 안디옥교회를 지도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으로 하여금 가사로 가는 길로 인도를 했고 또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날 때에 가까이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믿는 이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예수를 주라고 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우리의 몸은 성령께서 계시는 집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 줍니다. 그리해서 갈 길을 지도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성령의 지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 지도를 경히 여기거나 불순종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계속해서 불순종하면 성령의 지도가 그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경고합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심지어 경고합니다.
성령의 지도에 순종할수록 그 지도는 더 분명하여집니다. 성령의 지도를 거부하면 그 지도는 점점 희미하여집니다. 이 성령의 지도에 대해서도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지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지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맞는 이 80년대는 시초부터 국외, 국내를 물론하고 어두운 검은 구름이 덮여 있습니다. 실로 장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등불을 밝혀서 우리의 갈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이성의 등불을 밝히세요. 양심의 등불을 밝힙시다. 무엇보다도 말씀의 분명한 등불을 가리우지 마십시다. 성령의 지도를 거부하지 맙시다.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등불을 주셨을 뿐더러 이 등불 아래 걸어가는 모든 성도들과 같이 동행하시리라고 하는 약속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등불 아래 걸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 가운데서 등불을 밝혀서 용감히 인생길을 헤쳐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빛의 근원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 어두운 인생길에 밝은 등불들을 저희들에게 비추어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언제든지 이 등불들을 밝혀서 아무리 환경이 어둡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살아 나아갈 수 있는 이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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