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29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시편 (38편)]    기하성 제74차 정기총회 / 부교역자 청빙했더니 '지원자 없다' 83%               효과적인 설교 시간과 방법 / 교회 공적 예배에 후보 인사 시키지 말아야               美 대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행정명령, / 일영연수원으로 옮긴 기감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종철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 시편 (38편)(전체리스트)

    시137:1-9/ 바벨론 강변의 눈물 / 한경직 목사
    2014-08-26 13:53:20   read : 1327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얼마 전 본 교회 당회원 한 분이 제게 오셔서 어떤 특별한 집회를 한번 가지려고 하는데, 그때 와서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하는 말이 그런 목적 위해서 특별한 그런 집회를 가질 필요는 없는 줄로 생각한다고, 그 까닭은 내가 이따금 본 교회에서 설교를 하니까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장로님의 부탁을 좀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미 읽은 시편 137편 첫 절을 제가 다시 봉독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기에 바벨론 강변의 눈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가 망한 후에 바벨론에 잡혀가서 있을 때에 한 무명 시인이 남긴 시의 한 구절입니다. 바벨론에는 강들이 많았습니다. 그 강변에 앉아서 그들은 눈물로 나날을 지냈습니다. 이 눈물은 문자 그대로 나라 없는 슬픔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그런 곳에서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나라 없는 눈물, 노래 없는 삶, 이것이 가련한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생활이었습니다.

    나는 40대 이하의 오늘의 한국 청년들이 이 시편 137편을 어떠한 기분으로 읽는지 자세히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60대,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이 시편을 실로 무심히 읽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60대 이상의 우리들은 나라 없는 슬픔을 실제로 경험하여 본 까닭입니다.

    사실 우리들 가운데는 바로 이 서울 한강변에서, 혹은 평양 대동강변에서, 혹은 신의주 압록강변에서 나라 없는 눈물을 흘린 이들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만주로 망명한 이들은 송화강변, 혹은 흑룡강변, 중국 본토로 망명한 이들은 황하, 혹은 양자강변에서 나라 없는 눈물을 흘린 애국지사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은 아마 미시시피 강변 혹은 허드슨 강변에서 나라 없는 눈물을 흘린 이들도 없지 않은 줄 생각합니다.

    실로 나라 없는 슬픔은 경험해 본 이들만 알 것입니다. 일본에서 오래 목회하던 조기선 목사라고 하는 분이 일본말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 책 이름이 <길가의 잡초같이>라는 책인데, 그 뜻은 책을 읽어 보니까 우리 한국 교포가 일본에 가 살면서 길가의 잡초처럼 짓밟히며 산다고 하는 그 뜻이에요.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자기 경험담이 실려 있습니다.

    그가 한번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기차를 타고 동경을 가는 중에 옆자리에 어떤 일본 사람이 와 앉아서 오래 같이 가니까 대화가 시작되었어요. 이 조 목사는 일본말을 매우 잘해서 그 사람이 조 목사가 한국 사람인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 그가 당한 경험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이 사람은 큐슈 어떤 지방에서 조그마한 곳에서 아마 크게 농사를 잘 짓고 잘 지내는 분인 모양인데, 한번은 자기 무밭에 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따금 나가 보면 그 무가 한 개, 두 개 없어진단 말이오.

    그래서 이 사람 생각은 ‘이건 저 마을 가에 사는 그 한국사람 노동자들이 대여섯 집 있는데, 필연 그 사람들이 이런 장난을 할 게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 저녁은 무밭 옆에 있는 대나무 밭에 숨어서 지켰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한 늙은 여자가 그 무밭 가로 지나가다가 무 2개를 뽑아서 두 손에 쥐고 가더랍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는 벌떡 일어나서, “이 무 도둑놈 거기 섰거라.” 고함을 쳤어요. 아, 그러니까 이 늙은 여인이 조금도 두려운 기색도 없이 달음질도 안 하고, 오히려 돌아서더니 “이놈, 나보고 무 도둑놈이라고? 너희들은 나라 도둑놈들이야. 우리 한국 나라를 도적질한 놈들이 너희 왜놈들이 아니냐?” 대들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농부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무 한두 개 도적질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 아닙니다. 그런 일도 안 해야지요.

    그러나 이 일본시대에 노동자로 끌려가서 노동이나 하면서 사는 이 무식한 한 여자의 마음 속에도 나라 없는 큰 슬픔이 가슴 깊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 이 말 가운데서 나타나지 아니합니까?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1925년 제가 처음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에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10여 일 지나서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배가 호놀룰루에서 하루 묵어요. 마침 어떤 친구가 나와서 저를 영접했어요. 호놀룰루 시가지 구경을 시키는데, 한 작은 건물 앞에 와 보니 물론 다른 건물엔 다 영어로 간판을 써 붙였는데, 우리 한글로 ‘대한국민회 본부’ 이렇게 써 붙였어요.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무심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태극기 둘이 바로 마주보는 벽에 교차해서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독립 선언서’라고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갑자기 이 태극기를 볼 때에 눈물이 앞을 가리어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왜? 그때에는 국내에서는 태극기를 볼 수 없던 때입니다. 사실 태극기를 한 번 띄웠다가, 태극기 한 번 가지고 거리에 나갔다가 매를 맞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며, 감옥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많았으며, 죽은 사람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러분, 그렇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남한에서는 어디를 가나 높이 달린 태극기가 바람에 펄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앉은 청년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어떤 느낌으로 태극기를 바라봅니까? 태극기를 마음대로 띄울 수 있는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세요. 우리에게 독립을 다시 주시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라를 위한 봉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학생시대에 나라 없이 외국에서 7~8년간 살아 보았습니다. 나라 없는 슬픔이란 사실 지나본 사람만 알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 살아도 내 나라가 잘되어야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월남 목사 몇 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한 분은 제가 원래 월남 나트랑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분은 그 월남 신학교 교수요, 또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도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몇 해 후에 사이공이 점령을 당했습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 목사에게 와서 사정을 해서 우리 한국 피난민을 싣고 갔던 그 배를 얻어 타고 자기 가족과 자기 교인 약 70명이 같이 우리 부산에 왔어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를 우리 한국에서 다시 만났어요.

    그다음에 한 1년쯤인가 2년쯤 후에 제가 캐나다 밴쿠버를 갔는데, 거기서 이 목사를 또 만났어요. 그것은 이분이 한국에 서너 달 있다가 그 교인들을 다 데리고 캐나다로 망명을 갔어요. 같은 얼굴이지만 월남에서 보던 그 얼굴이 아니에요. 어딘가 모르게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도사린, 나라 없는 슬픔이 그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우리 남한에서는 무슨 공적 모임이 있을 때에는 늘 애국가를 합창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애국가를 우렁차게 부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껴봅니까?

    제가 옛날 평양 숭실대학에 다닐 때에 바로 같은 반의 한 학생은 특별히 운동을 잘하였습니다. 축구를 잘했어요. 그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체육을 전공하고, 다시 그후에 모교에 와서 체육교사로 있었습니다. 어떤 날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여러 단원과 같이 어떤 음식집에서 모여서 저녁을 같이 먹고, 기쁘게 웃음을 나누며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이렇게 즐겁게 하루 저녁을 지내는데 여러 노래를 부르다가 어떤 학생이 돌연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학생들이 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튿날 일본 경찰이 그걸 탐지했어요. 애국가 한 번 불렀다고 학생들을 다 잡아다가 많은 고문을 하고, 이 선생을 잡아다가 많은 고문을 하고, 이 선생을 학교에서 물론 내쫓아버렸고, 그뿐이 아니에요. 그때 이 선생이 맞아서 머리를 다쳤어요. 그후에 정신병자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얼마 후에 비참하게도 세상을 떠났어요. 애국가 한 번 부르고.

    여러분, 나라가 있기에 애국가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나라가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 사람들이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간판을 내걸고, 실은 우리 배달민족 말살정책을 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을 못 쓰게 했습니다. 뭐, 학교에선 말할 것도 없고 교회에서까지 못쓰게 강요하였습니다. 우리 글로 쓴 책은 출판을 못하게 했었어요.

    아침마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동방요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무슨 공적 모임이 있을 때에는 소위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뭘 했습니다. 아마 젊은이들은 무슨 소린지 모를 거예요. 그러나 여기 더러 외워본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 무슨 뜻이오? 나는 황국 신민인데, 그건 뭐 일본 사람인데 그 뜻이오. 이 일본 나라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소리입니다. 그걸 해야만 뭘 할 수 있었어요. 그때 그들은 드러내놓고 ‘너희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는 죽고, 일본 사람으로 갱생해서 일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고취하던 때입니다. 참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집니다.

    그때 저는 남신의주에 나와서 보린원의 우리 고아들과 같이 있을 때입니다. 뒷동산에 올라가서 홀로 앉아 기도하다가 때로는 ‘이렇게 되다가 장차 우리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올 때에는 실로 정신이 아득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여러분, 민족이 귀합니다.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살아야 나도 잘 삽니다. 개인주의를 버리세요. 우리 민족은 이 험난한 세파 속에서도 단일민족으로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문화 속에서 단일 민족으로서 4,000년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민족이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도 우리는 깨닫고 또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38 이북에는 지금도 이렇게 귀한 우리 민족, 이렇게 귀한 우리나라를 말살하고자 하는 공산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공산당은 계급만 알고 민족을 모릅니다. 그들은 소위 노동자, 농민들이 단합해서 그들이 말하는 대로 소위 부르조아 계급, 상공계급, 이런 모든 사회계층은 모두 숙청해 버리고, 노동자 계급만의 나라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민족간에 투쟁을 선동합니다. 숙청과 학살을 감행합니다.

    그렇다고 오늘의 북한에는 계급이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은 계급이 둘로 나뉘었어요. 하나는 공산당이요, 다른 하나는 공산당 아닌 사람들입니다. 공산당은 지배계급이요,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은 피지배계급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상전처럼 행세하고, 다른 사람들은 노예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 생활의 차이란 천양지간입니다.

    그들의 정치체제는 독재주의를 한 단계 넘어가서 소위 전체주의, 전체주의에서 또 한 단계 넘어가서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을 김일성 한 사람이 주장하고, 또 국민의 사생활까지, 심지어 결혼하는 일, 애들 기르는 일까지 전부 다 지배계급이 주관합니다. 당이 주관합니다. 그래서 직업도, 주택도, 근처 여행을 하려고 해도 허가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숨 막히는 사회에서 신음하는 우리 북한 동포를 생각만 해도 실로 가슴이 메입니다.

    이 공산당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릅니다. 인간의 생명을 천히 여깁니다. 그것은 그들의 유물론적 사상에 기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에서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사람의 몸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렇게 되니 인간은 단순히 물질, 육신일 뿐입니다. 결국은 짐승과 다를 게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짐승이나 사람이나 같이 대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물론적 인간관, 그다음에는 유물론적 윤리관, 사람을 짐승과 같이 대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고, 사람을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체제도 이상합니다. 신통하게 동물원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물론적 윤리관은 유물론적 사회사상을 낳았습니다. 동물원에 가보면 동물들도 그 속에서도 먹을 것도 있고, 뭐 밤에 잘 데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동물들에게 물어보기를, “너희들 그냥 여기에 있고 싶으냐? 전에처럼 나가서 산과 들에서 살고 싶으냐?” 물어보면 아마 거기에 있고 싶다고 하는 동물 하나도 없을 거예요. 왜? 그 속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아주 장기가 있어요. 그건 거짓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기만선전을 잘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 그 집단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자세히 보세요.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써놓았어요. 독재국을 공화국이라고 써놓았어요. 그들의 토지 분배는 토지 몰수를 의미했습니다. 그들의 평화 운운은 실은 전쟁을 의미했습니다. 6?25 사변도 이남이 먼저 북진했다고, 침입했다고 선전합니다. 땅굴도 우리가 파놓고 그런다고 지금 선전합니다.

    그들은 몇해 전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도 속으로는 땅굴을 파던 중입니다. 지금도 기회가 있는 대로 무력 또는 침투작전으로 남침야욕에 그냥 불타고 있습니다. 사실 땅굴은 지금 세 번째까지 발견했다고 하지만, 듣는 대로는 아직도 여남은 개 더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에서 대처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총력안보, 또 하나는 국력배양, 이 두 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전국민이 일치단결해서 우리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군인, 국민, 누구나 우리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를 바르게, 부강하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여기에는 또한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질 방면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 방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물질 면에 총력을 기울여서 산업이 발전하며 생산과 수출이 매년 증대해 가는 것은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대로 계속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정신적인 면입니다. 재래에 우리 민족은 유교와 불교의 문화 풍토에서 지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유교의 충효사상, 충과 효도, 불교의 자비 이념들은 모두 좋은 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종교가 다 같이 천지를 지으시고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교훈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유교에서는 도덕은 가르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나 내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공경하라는 말은 별로 없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 잘 하라고만 권장했습니다. 불교는 소위 범신론적 종교로서 우주와 신을, 인간이 신이요, 신이 인간이라고 이 물질 우주와 하나님을 동일시합니다. 결국은 무신론의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일본 경도에 가서 큰 절간 구경을 한번 갔는데, 거기에 불교를 선전하는 조그마한 팸플릿을 줍디다. 열어 보니 첫 마디가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입니다. 이런 말로 시작해요.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입니다. 불교도는 무신론자들입니다. 이걸 우리가 알고 지내야 돼요.

    우리 한국민의 정신을 지배하던 이 유불(儒彿) 양교가 이렇게 되니 결국 이 땅에 살던 대중의 정신생활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분명히 알지 못하게 되니 결국은 인간은 종교성이 있는데, 아니될 것을 숭배하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미신에 빠져서 하늘을 숭배하고, 땅을 숭배하고, 산을 숭배하고, 바다를 숭배하고, 심지어 짐승을 숭배하고, 구렁이를 숭배하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미신, 온갖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또 유교에서 그렇게 주장한 허례허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신 풍토는 결국은 우리 민중을 무지로 인도했고, 문약(文弱)으로 인도했고, 이 사람들 가운데서 사색당파심, 사대주의, 양반사상, 관존민비사상, 남존여비사상, 노동천시사상 등, 온갖 민폐가 사회에 사무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우리 민족이 점점 무기력하게 되고 약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이러다가 구한국이 망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 새 나라는 새로운 정신 풍토 위에 세워야 합니다. 새로운 정신적 기초 위에 세워야 합니다. 반만 년의 민족의 얼을 지키면서 미풍양속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정신적 기초 위에 우리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믿어왔습니다. 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도 믿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이 고유한 신앙을 도로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기독교는 이 하나님께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죄 가운데서 구속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구주임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죄를 짓고 타락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고 회개할 때에 새 사람이 되고, 성령의 힘으로써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이 새 종교인 기독교가 우리 민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채 못 되었지만, 과거 역사를 잠깐 생각해 보아도 기독교 영향으로 우리는 이미 한글을 되찾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사회 계층에서 한글을 제일 먼저 적용한 단체가 어느 단체 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 믿는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한글을 되찾았습니다. 여성이 해방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먼저 여성이 해방되었습니다. 근로 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민주생활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장로교회에서. 관존민비사상도 점점 없어져 갑니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의 만세반석 위에 세워져야 오고 오는 세대에 우리 민족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요새 보니까 경향(京鄕) 각지에서 향토문화제라 하는 행사가 대단한 모양입니다. 물론 대단히 좋은 정신입니다. 내 뿌리를 찾자고 하는 정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경계할 점은 있습니다. 과거의 미신, 우상숭배, 허례허식, 우리 민족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지막에 나라까지 망하게 만든 이런 것들이 다시 부흥할까 염려가 됩니다. 이런 것들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내 얼마 전에 텔레비전으로 어떤 곳에서 향토문화제 하는 것을 보니까 굿을 합디다. 굿! 바닷가에 뭘 갖다 놓고서 절합디다. 절! 이게 문화입니까? 이게 한국 민족을 옳게 만든 문화입니까? 이게 계대(繼代)해야 할 문화입니까? 쓸어버릴 것은 쓸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신입니다. 섬기지 않아야 할 것을 섬기는 미신입니다. 둘째는 우상숭배입니다. 첫째는 첫째 계명, 둘째는 둘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모든 부정과 부패와 죄악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이 오고 오는 세대에 계속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참 말하기 미안하지만요, 제가 다녀보는 대로는 세계에서 우상이 제일 많은 나라가 인도입디다. 인도! 그런데 인도 사람은 어떻게 사는 줄 압니까? 인도에 이민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 안 해요. 미신, 우상숭배, 죄악, 이 세 가지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받습니다. 이것은 오직 민족복음화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큰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영혼을 구원할 뿐더러,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새 나라의 이 정신적 기초를 옳게 정하는, 진리가 되시는, 변치 아니하시는 만세반석인 그리스도의 표적 위에 세우게 하는 이 사명이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락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나라를 옳게 세워 자손만대에 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 하나하나, 우리 모두가 복음전파에 총궐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가지를 다시 기억합시다. 세 가지를 다시 기억합시다.

    나라와 민족이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 기억합시다. 공산당의 정체가 어떠한 것을 우리가 미리 알고 속지 맙시다. 우리 새 나라는 새로운 정신 풍토 위에,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야 길이 복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사명, 내가 할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셔서 일제 36년간의 압박에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38 이북은 말할 수 없는 그 압박 가운데서 우리 동포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오래 기다리지 마시고 환난의 날을 감해서 우리 이북 동포까지 그 악한 세력에서 해방을 해서, 우리 온 민족이 다 같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하나에게 이때에 복음을 전파해서 우리 새 나라를 새로운 정신풍토 위에 세우는 사명을 맡겼사오니 우리가 이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어디서든지 감당해서 민족복음화에 다 나설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시편 (38편)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