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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12:31-고전13:13/ 제일은 사랑 / 한경직 목사
    2014-08-26 14:56:10   read : 141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여러분 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말씀이올시다.

    인간의 육체적 생활을 위하여 의식주(衣食住),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주택, 이 세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적 생활을 위하여 신망애(信望愛),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위로 하나님과 옳은 관계요, 소망은 앞으로 장래에 대한 바른 태도요, 사랑은 둘러 있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옳은 관계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도 제일은, 제일 큰 것은 사랑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이올시다.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요한일서 4장 7절, 8절이올시다.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절부터 읽어야 그 뜻이 더욱 분명합니다. 그 마지막 절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믿는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해 말하다가, 모든 은사 가운데도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며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면서 사랑이 곧 더욱 큰 은사요, 제일 좋은 길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욱 큰 은사인 사랑을 사모할 것이요,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일 좋은 길을 잊지 말고, 그 길로 꼭 걸어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왜? 그 이유를 고린도전서 13장에 자세히 설명하여 줍니다. 여러분, 성경을 다 펴시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입니다.

    첫째는 1절로 3절은 사랑의 우월성, 사랑이 다른 은사보다 뛰어나다는 점, 그러므로 사랑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랑의 필수성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 4절로 7절까지의 내용은 사랑은 어떠하다고 하는 사랑의 본질을, 그 내용을 분석해서 우리에게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둘째 대지입니다.

    그리고 셋째 대지는 8절로부터 13절까지인데, 여기에는 사랑의 영원성 곧 사랑은 길이 폐하지 아니하고 영원하다고 지적하여 주십니다.

    이제 먼저 첫 대지 13장 1절로 3절을 제가 천천히 읽을 때에 여러분 마음으로 따라 읽어 보세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아무리 무슨 방언을 하고, 그때에 특별히 방언한다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어요. 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알고 또 비록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알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그 은사를 쓰지 못하면 쓸데없는 소리뿐이라고 여기에 분명히 가르칩니다.

    둘째 줄도 읽어 봅시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실 아무리 예언의 능력과 모든 신비를 깨닫는 지식을 가졌다고 하여도, 또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여도 이 모든 것을 사랑이 없이 사용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셋째 줄도 읽어 보세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다시 말하면 아무리 많은 구제 사업을 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이 이런 일을 하면, 그것은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습니다. 아무리 붉고 노란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고 하여도 빛이 없으면 그 꽃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소금과도 비슷합니다. 아무리 좋은 만반진찬(萬飯珍饌)이 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소금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맛이 없어집니다.

    사랑은 모든 귀한 은사를 빛나게 하고 사랑은 모든 좋은 일을 더욱 맛나게 하는 귀한 은사입니다. 아무리 다른 은사와 재능을 많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누구나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사랑 없는 신앙, 사랑 없는 정통, 사랑 없는 열심, 사랑 없는 선물, 사랑 없는 봉사, 사랑 없는 온갖 구제 사업은 사실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누구나 꼭 받아야 합니다. 사랑의 우월성과 사랑의 필수성을 제일 먼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다음에 4절로부터 7절까지를 생각하세요. 여기에는 사랑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여 줍니다. 사랑의 분석표라고도 어떤 이는 말합니다.

    사랑을 분석해서 여기에 어떠하다고 가르쳐 줍니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말은 ‘아가페’란 말인데, 이것은 보통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기의 사랑을 분석해서 사랑 가운데는 15가지 요소가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햇빛은 희지만 그것을 결정체를 통과시켜서 분석하면 일곱 가지 빛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사랑은 하나인데, 흰빛 같은데 이것을 분석해 보면 15가지 요소가 그 속에 있어요.

    가만히 읽어 보면 긍정적인 요소가 7가지입니다. 사랑은 어떠하다 하는 요소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요소가 8가지입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요소를 또한 지적하여 가르쳐 줍니다. 이제 제가 4절로 7절을 천천히 읽을 때에 여러분도 마음으로 같이 따라 읽으면서 내가 내 자신의 사랑의 생활이 어떠한가, 스스로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그것이 첫째 요소입니다. 우리가 오래 참을 줄 압니까? “사랑은 온유하며” 친절하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도록 힘씁니까?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시기하지 아니한단 말입니다. 시기하지 않습니까? 듣는 대로 어머니가 딸을 시기하는 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를 시기하는 시어머니는 더러 있다고 합디다. 왜?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죠.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남을 위해서 무엇 조금 하여 주고 자랑하면 그것은 사랑이 부족한 탓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겸손합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작은 일을 사랑으로 할 때에 자연히 예절 있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성내지 아니하며” 성을 잘 내지 않는다는 뜻이 있답니다. 신경질 부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남의 악행을 기억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오래 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남이 잘 안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남이 안 되는 걸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누가 오해를 받다가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일이 바로 되면 그것을 즐거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긍정적인 4가지를 간단히 거듭해서 가르쳐 줍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을 이해하려면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를 잠깐 생각해 보면 얼른 이해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참습니다. 뭘 잘못해도 참습니다.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자녀들한테 잘 속습니다. 왜? 믿는 까닭으로. 속아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랍니다. 혹 자녀가 잘못하는 일이 많아도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잘하겠거니 하고 소망을 늘 둡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대해서는. 그런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암만 보아도 그 애가 좋은 아이로 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낙심하고 내어버립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럴 때에도 계속해서 ‘앞으론 잘되겠지.’ 하고 소망을 버리지 않고 견딥니다. 이것이 사랑의 특색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는 모든 허물도 덮어 주고, 그의 말을 믿고, 혹 현재에 실수가 있으나 장래에는 잘 되기를 바라고, 그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도 낙심치 아니하고 그냥 견딥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서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도 제일 먼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8절로 13절 마지막 절까지는 사랑의 영원성을 가르쳐 줍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아는 것뿐입니다. 예언도 부분적으로 예언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것이 올 때가 있는데,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자연히 폐하여집니다. 여기에 기록한 대로 어린아이 때의 지식은 우리가 장성해서는 자연히 폐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아서 압니다. 옛날 거울은 특별히 희미했습니다. 지금 거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만은 언제나 폐하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도 제일은, 제일 큰 것은 사랑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위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사랑은 신앙생활의 법칙일 뿐더러, 모든 삶의 법칙입니다. 햇볕 아래서라야 풀과 나무가 옳게 자라는 것처럼, 사랑 안에서라야 인간의 심령과 그 인격이 옳게 장성합니다. 흔히 불량 소년들은 사랑 없는 가정에서 나오게 됩니다. 사랑은 가정 생활의 법칙이요, 사회 생활의 법칙이요, 교회 생활의 법칙이요, 일반 국민 생활의 법칙이요, 아니 온 국제 생활에도 역시 옳은 법칙이 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화평이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두는 곳에 화평이 따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평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도 화평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사회도 화평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과 같이 벧엘 근처에서 살 때에 아브라함의 가축도 많고 또 조카 롯에게 속하는 가축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축을 먹이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먹이는 목자들 사이에 목장을 가지고 큰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지 말자 우리는 다 골육이요 또 우리 주위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있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네가 동으로 가기를 원하면 나는 서로 가겠고 네가 서로 가기 원하면 나는 동으로 갈 테니 절대로 우리 다투지 말고 화평하게 살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특별히 다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다 골육지친이니까 다툴 수 없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우리 원수인 이방 사람이 사방에 있는 까닭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언제나 화평을 도모할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다 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 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골육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를 비난하려고 하는 불신 사회가 사방에 둘러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차에 양보하고 사랑을 배워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한 것을 굳게 지킬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온 국민이 화평하고 단결해야 될 이유도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다 한 혈통의 자손인 단일 민족의 국가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악한 원수들이 우리 사방에 둘러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1976년 새해를 당하여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조망할 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참된 삶의 법칙인 사랑의 원칙을 새롭게 재발견해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특별히 전국가적으로 화평을 이루어서 대동단결하여 모든 일에 매진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삶의 법칙인 사랑을 북돋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가장 큰 은사, 좋은 길을 좀더 잘 배울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 제일 좋은 길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 속에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우월성, 사랑의 본질, 사랑의 영원성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가 자주 읽어야 하겠어요. 내가 바라기는, 여러분 가운데 금년에 고린도전서 13장을 매일 한 번씩 읽으면서 살아보세요. 그러면서 여러분의 가정 생활이 어떠하고, 여러분의 사회 생활이 어떻게 변하는가, 스스로 시험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는 십자가를 언제나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서 자기의 보혈을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도 좀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의 화신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영이 우리 가슴 속에 언제나 머물러 있을 때에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말이, 우리의 행동이 좀더 사랑에 기초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넷째는, 사랑을 연습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연습을 통하여 새것을 배웁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사랑을 배웁니다. 성경에 있는 사랑의 요소인 15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매일 실천하도록 힘쓰는 가운데 좀더 사랑의 생활을 배울 것입니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오래 참는 가운데 인내를 우리가 배울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온유하고 친절하도록 항상 힘쓰는 가운데서 점점 온유한 성품으로 장성할 것입니다. 첫 번에 모두 실천할 수 없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실천하는 가운데 점점 사랑의 생활을 배웁니다.

    때로는 사람이 무엇하려고 사는가? 스스로 물어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무슨 좋은 일, 큰일을 한다고 하여도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랑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사랑을 많이 배울수록 우리는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갈 것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나라를 향하여 길가는 나그네들입니다. 한 번밖에 지나가지 못하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지나가는 길가에 사랑의 꽃씨를 뿌릴 수 있으면 얼마나 귀한 일일까? 그리하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오늘 저희들이 사랑에 대한 교훈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사랑의 영으로 우리 마음 속에 이 시간 채워 주셔서, 우리가 듣는 자만 되지 말고 언제나 사랑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고, 과거는 어떠하였든지 앞으로는 우리의 가는 길에 좀더 사랑을 배워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좀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이 은총을 우리 하나하나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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