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1:1-11/ 분별의 은사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09:23 read : 138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빌립보에 있는 교우들이 바울을 위로하기 위하여 멀리서 보내온 선물을 받고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였고, 또 빌립보 교우들이 얼마나 바울을 사랑하고 돕기 위하여 애썼는가 하는 성도의 교제의 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는 그들의 사랑 위에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케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며, 또한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랑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지식과 모든 총명이 더하여져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은사를 또한 받기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특별히 이 지극히 선한 것을 아는, 분별할 줄 아는 은사를 우리도 받기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야 우리도 진실하고 흠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분별력이 얼마나 필요한가는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과 거짓이 언제나 섞여 있습니다. 누르다고 다 금이 아닙니다. 번들번들하다고 다 비단도 아닙니다. 돈과 비슷하나 가짜 돈이 있습니다. 수표 가운데도 거짓 수표가 있습니다. 미제 상표를 붙였다고 다 미제도 아닙니다. 학생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다 학생인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혼돈의 세상 가운데서 진가(眞假)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은 심히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별력은 실업가나 상인이나 주부나 노동자나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분별력은 신앙생활에도 아주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언제나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경고합니다. 양의 탈을 쓰고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영 가운데도 참된 영과 거짓된 영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영을 다 믿지 말고 항상 주의하여 보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받는 은사들 가운데는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도 또한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영들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도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도 우리 믿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소위 사이비 종파를 비밀히 또는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분별의 은사는 매우 필요합니다. 무슨 제단, 무슨 제단 한다고 함부로 따라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무슨 이적을 행한다고 선전한다 해서 맹목적으로 몰려가서도 아니됩니다.
이 분별의 은사는 특별히 지식과 모든 총명이 풍성한 데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방면이나 그 방면에 내가 넉넉한 지식이 있다고 하면 속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부족한 가운데서 속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으면 무슨 주장이나 어떤 운동이나 그 지식에 의지하여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이 부족할 때에 그릇된 점을 깨닫지 못하므로 미혹에 끌려갑니다. 그러므로 이 분별의 은사는 우리가 항상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데서 온다고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총명’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의 근본 뜻은 ‘통찰력’ 혹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 총명은 기도를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성경을 공부하는 데서 오고, 총명 혹은 지혜는 기도를 통하여 받는 은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옳게 하려면 신앙의 옳은 길과 그릇된 길을 분별할 줄 아는 은사를 반드시 또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특별히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것 가운데도 말하자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은사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선한 것 가운데도 좀더 선한 것이 있고 또한 지극히 선한 것이 있습니다. 좋은 길이 있고, 좀더 좋은 길이 있고, 가장 좋은 길이 있습니다. 좋은 길 가운데도 가장 좋은 길을 분별하여 그 길을 따르는 은사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다 좋은 일이나 가장 좋은 일이 있고, 제일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은사는 실로 귀합니다.
인간으로서 추구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것 가운데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추구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진주 가운데도 가장 큰 진주를 탐구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선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행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다 하나님께 받은 재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능을 지극히 선한 일에 바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가 다 적으나 많으나 날마다 돈을 씁니다. 선한 데 쓰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지극히 선한 일에 먼저 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다 이 시간을 옳게 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시간도 지극히 선한 일에 쓸 수가 있다면 얼마나 귀할까? 사실 모든 방면에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그곳에 먼저 온 정욕을 붓는 이들이 성공도 하고, 사실 보람 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은사를 우리가 다 받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대략 서너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곧 전도사업, 교육사업, 그리고 봉사사업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지극히 선한 일을 분별하여 하는가,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전도사업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데도 여러 가지 길, 혹은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인전도(개인으로 전도하기), 집회전도(대집회를 통해 전도하기), 문서전도(글을 써서 전도하기), 방송전도, 노방전도, 파송전도(사람을 보내 전도하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방법을 통하여 기회가 있는 대로 전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도 제일 좋은 길이 어떤 길인가 혹 생각하여 봅니까? 물론 다소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아마 이 모든 방법 가운데도 제일 좋은 전도의 길은 개인전도일 것입니다. 곧 개인개인이 각각 자기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를 찾아 복음을 전파하는 길입니다. 이 개인 전도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가장 효과가 있습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 한국에 있는 믿는 이들이 1년에 한 사람씩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전도한다고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가령 우리 남한의 기독교도의 수를 약 400만 명으로 생각을 합니다. 만일 금년에 이 400만 명이 모두 한 사람씩만 인도한다고 하면 명년에 신자의 수는 800만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만일 그다음 해에 이 800만이 한 사람씩만 전도한다고 하면 다음 다음 해에는 1,600만의 신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다음, 다음 해에 또 한 사람씩만 각기 전도한다고 하면 3,200만의 숫자, 곧 남한 동포 전체가 기독교도가 된다는 이론이 됩니다. 이것은 곧 이론이요, 이대로 실천되기는 물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이들이 전도의 가장 선한 길은 이 개인 전도인 줄 깨닫고 이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실행만 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 각자가 이 개인 전도에 대한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금년이 다 가기 전에 한 사람씩 인도하도록 힘을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집회전도나 문서전도나 방송전도 같은 것은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개인전도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점을 특별히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이 전도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현 한국적인 상황 아래에서 어디에 먼저 전도하여야 민족복음화가 빨리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기에 제일 좋은 곳은 어디일까 생각하여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에 먼저 가서 낚시나 혹은 그물은 던져야 할까요? 그것은 상식적으로 말해서 고기가 제일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에 있어서 물고기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첫째는 군대, 둘째는 학원, 셋째는 공장입니다. 특별히 군대에서는 전군신자화운동을 벌이는 때입니다. 군대에 먼저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군목사업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지금 군대 안에서 제가 아는 대로 가장 필요한 것은 찬송가라고 합니다.
사실 성경은 기드온 협회에서 많이 보급해서 주지만, 군인들이 쓰는 작은 군인 찬송가는 한국교회가 보급하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군인 찬송가는 그 가격이 한 권에 40원씩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가가 약 50만 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령 한 분이 10부를 보내주고자 하면 400원이면 족하고, 100부를 보내주고자 하면 4,000원이면 족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영락교회에서 이 찬송가 수집 운동에 우선 솔선수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군대전도를 생각할 때에는 군대 가운데도 특별히 중점적으로 힘쓸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국군의 모든 장교들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들입니다. 특별히 금년에 영천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는 군종센터를 짓는 중입니다. 영천에 있는 제3사관학교는 매년 1,600명의 졸업생이 소위로 임관이 되어 나옵니다. 듣는 대로 육군 장교의 거의 7할이 이 학교에서 배출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관점에서 볼 때에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제가 듣는 대로 다음 주일 본 교회에서 이 사관학교 안에 짓는 교회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한다고 하는데, 특별히 여러분께서 이 점을 기억하시고 성의를 표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힘쓰는 교육 사업에 대하여도 지극히 선한 길을 찾도록 항상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교육을 생각할 때에는 흔히 덕육, 지육, 체육, 세 가지를 생각하는데, 현대 한국에 있어서 일반 교육은 지육과 체육에 치우치고, 아주 중요한 덕육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지식과 기술은 가르쳐 주나 이 지식과 기술을 옳게 쓸 만한 사람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경향이 많아서 실로 염려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인생이 갈 옳은 길을 가르쳐 주는 종교교육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안에서 모이는 교회학교의 교육을 중시하고, 이 기관을 통하여서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어떻든지 종교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 교회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나 영락중학교나 상업고등학교나 영락여자신학교나 그밖에 본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든 기독교 교육기관들을 적극 지원해서 우리 젊은 학생들에게 종교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교회가 어떻든지 후원해야 될 것입니다.
이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때에는 또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으로 나누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교육이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가정교육입니다. 이 가정교육의 책임은 대부분 누가 맡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들이 맡습니다. 또 교육이란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글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교육은 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교육하는 지극히 선한 일은 먼저 가정에서 시작해야 하고, 어릴 때부터 해야 하고, 특히 어머님들이 자기의 실생활을 통하여 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육에 있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마음에 또한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안의 아주 중요한 봉사사업에 대하여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봉사에는 물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 극빈자들의 구호, 환자들의 구호, 고아사업, 양로사업, 모자구호, 그밖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간 이 고아사업에 대하여 한 가지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영락 보린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이 직면하는 중대한 사회 문제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 문제, 특별히 10대 소년들의 범죄 사건들입니다. 이 청소년 범죄 건수는 나날이 늘어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년들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고아 사업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연장 고아들입니다. 고아들이 어릴 때에는 고아원에서 잘 자라다가 17, 18세가 되면 고아원을 흔히 떠나게 되는데, 이때에 이들을 잘 후견하여 주는 이가 없으면 잘못된 길로 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고아들을 기르는 제일 좋은 길은 고아원보다도 좋은 가정에서 이 아이들을 하나씩 둘씩 데려다가 기르는 길입니다.
홀트 양자회를 설립한 미국의 홀트씨 내외는, 제가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자기 자녀가 3, 4명이 있는데도 한국 고아들을 7, 8명이나 데려다가 자기 아이들과 똑같이 기르고, 그 뒷바라지를 하였습니다. 이곳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의 교사인 버너 선생은, 청년들 가운데 아는 이가 많을 겁니다. 독신 여성으로서 한국에 와서 약 10년간 지내며 또 주일에는 본 교회에 늘 나와서 영어 성경반을 가르치다가 몇 주일 전에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한국에 와서 있는 동안에 한국 고아 4명을 데려다가 길렀고, 지금도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다 좋은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한국 가정에서도 이렇게 고아들을 데려다가 가정에서 길러야 바로 기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제일 좋은 곳은 가정입니다. 기관보다 가정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면,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씩 혹은 둘씩 맡아서, 말하자면 결연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방문도 하고, 간접으로 조금씩 도와주다가 그 아이가 고아원을 나오게 될 때에 직업 알선이나 결혼 관계 등을 돌보아 주는 이들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고아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 이들이 많은 줄 아는데, 앞으로 이 아이들을 돕는 데 있어서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여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일만 아닙니다. 일반 국가에 대한 일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그것을 먼저 힘쓸 때에 우리 국가의 발전이 빨리 될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랑에 기초한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위에 지식과 총명을 더 풍성히 받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함으로 많은 열매 맺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십시다. 분별의 은사를 받으십시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우리 하나하나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 위에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은사까지 주셔서 그저 우리가 잠깐 되는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가장 많은 주님의 일,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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