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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e > 이사야 (36편)(전체리스트)

    사6:1-8/ 이사야의 삼관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34:12   read : 163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시는 가운데 그동안 약 3개월 동안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서 여러분들께 무엇으로도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수개월간은 국제적으로 또는 국내적으로 다사다난한 기간이었습니다. 따라서 몸은 외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고국을 떠날 수가 없었으며, 언제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도미해서 처음 1개월쯤은 좀 쉬고, 그 후에는 여러 도시에 있는 교포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여러 교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교포의 수가 약 1,000명 내외만 되면 한국 교회가 또한 조직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 여행에 감사한 일은, 그저 어느 곳을 가든지 우리 영락 교우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성(로스앤젤레스)에는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나성 영락교회가 설립되어 있는 것도 여러분 잘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 분들이 모두 고국에 돌아가면 가정이나 또는 친구들에게 문안하여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고 돌아왔습니다. 대단히 미안한 것은 제가 정신이 부족해서 일일이 다 문안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에 가서 계신 우리 교우들은 모두 평안히 잘 계십니다. 안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이사야 6장 1절을 다시 읽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 어떤 해, 곧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그는 보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본다’는 말은 육신의 눈으로 보기보다도 신령한 눈으로 보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환상’ 혹은 영어로 ‘비전(vision)’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는 신령한 눈으로 본 것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높은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둘째는 죄로 더러워진 자기 자신, 셋째는 자기의 할 일 곧 사명, 이상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이 시간, 이사야가 본 이 세 가지 비전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그는 먼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신령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온 우주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과 영광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청년 이사야는 그의 신령한 눈으로 우주의 대주재시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선지자 하박국은 일찍이 선포하였습니다. 이 천지를 지으신 대주재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우주를 그의 뜻대로 운행하시며, 인간의 역사의 바퀴도 그 오른손에 쥐고 계십니다. 물론 제한된 지성을 가진 우리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33절 이하에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캄보디아의 참상, 요사이 월남의 사태를 볼 때에 우리는 옛날 선지자 하박국과 같이 “주께서는 능히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이렇게 부르짖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서 일시적인 사건의 한둘을 보고, 천지의 공의를 잊으면 아니됩니다.

    옛날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말과 같이 하나님의 맷돌이 비록 천천히 돌아가나 매우 보드랍게 갈아내는 것입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죄악과 비극이라도 초월 통치하셔서 그의 궁극적인 큰 경륜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하나의 채찍으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채찍이라고 해서 항상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 쓴 후에는 꺾어 버립니다.

    이 20세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 악의 공산 세력을 한 채찍으로 쓰는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이 세력을 온전히 꺾어 버릴 때가 불원간 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또는 요한계시록 19장 6절의 말씀과 같이,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이 말씀이 이룰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을 열어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62편의 말씀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 이사야는 둘째로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렇게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불꽃 같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 자신을 살필 때에 그는 그가 얼마나 더러운 몸인가를 깨닫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기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임을 자복하였습니다.

    거룩하시나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인이나 그 죄를 회개하고 솔직히 고백할 때에 사죄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그의 독생자까지 세상에 보내시어 만민의 죄를 대신 지고, 고난을 받으시고 사죄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야도 회개와 고백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깨끗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언자가 되기 전에 먼저 깨끗한 사람이 된 것을 기억하십시다.

    인간은 누구나 남의 얼굴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얼굴은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흔히 남의 허물은 보지만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합니다. 남의 생활 주변에서 부정부패는 지적하면서도 내 생활 주변의 부정부패는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슨 일이 잘 안 되면 흔히 남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남더러 먼저 그 허물을 고치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서로 성명서도 발표합니다. 이리해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은 그냥 남아 있고, 사회는 더욱 소란만 하여 갑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이 무엇일까? 먼저 각각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보고, 그의 불꽃 같은 눈 아래에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각 먼저 자기 허물과 죄를 깨닫고, 이사야와 같이 원통히 회개하여 자기부터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에 우선 자기 하나, 죄인 하나는 감하여질 것입니다. 우리 국민이 누구나 우선 죄인 하나를 없이 하는 운동을 펴서 그 자신이 우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면, 사회의 모든 부조리의 문제도 점차 해결될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우선 내 자신을 바라보고 고칠 것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거울과 같습니다. 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먼저 자기 눈에서 들보를 빼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신앙의 경주를 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먼저 이 점에 대해서 솔선수범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그리고 그 자신을 바로 보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된 청년 이사야는 은연한 가운데 새롭게 하나님의 음성을 또한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는 이 음성을 통하여 자기의 할 일, 곧 사명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생의 할 일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일생을 바로 살고 낭비하지 아니하려고 하면, 자기 일생의 할 일, 그 사명을 분명히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 천부의 사명을 바로 보는 이가 성공하고 또 가장 행복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그분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그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바로 보고 바로 찾아야 합니다. 특별히 청년과 학생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목적을 위하여 각기 재능을 주십니다. 그 재능이 무엇인가를 바로 찾아 일생에 할 일을 바로 택하여야 합니다. 나의 할 일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을 바로 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바로 찾아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생에서 할 일을 바로 찾은 후에는 그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내 역량의 50퍼센트나 60퍼센트만 하지 말고, 요샛말로 100퍼센트 바쳐서 내 사명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옛 성현은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다시 말하면 ‘임금은 임금노릇 잘하고, 신하는 신하노릇 잘하고, 부모는 부모노릇 잘하고, 아들은 아들노릇 잘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국민 각자가 자기 책임을 바로 하는 데 있습니다.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문화인, 각계각층 공무원, 경찰, 군인 등등, 하나하나가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반성해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치면서 자기의 할 일을 바로 보아 거기에 충성하는 데에 나라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러합니다. 교회가 잘 되려고 하면 제직이나 교인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반성하며 내가 할 일을 바로 보고 그 책임을 감당하는 데에 자연히 교회는 은혜를 받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물론 중한 책임 자리에 있는 이일수록 그 책임이 더욱 크다는 것은 깨닫고, 자기를 반성하며 고칠 것을 고치고 자기 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같은 비상시, 혹은 위기에서는 사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면 내가 어느 편에 있든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위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대동단결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각각 나의 할 일을 바로 보고,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마땅히 깰 때라” 누구든지 지금 깰 때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때야말로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때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종교적인 형태 곧 거짓 선지자 혹은 적그리스도로 나타납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 세력, 현대에는 악한 공산세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어느 때보다도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선의를 가지고 무엇을 바로 하기 위해서 말하지만, 우리 원수는 항상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자기들의 선전무기를 삼는 것입니다. 언제나 깨어 있어서 원수가 각 방면에 침투하려고 하는 것을 담대히 싸워서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이럴 때일수록 믿음을 굳게 하고 크게 단결해서 원수를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

    “내 눈을 열어 주소서” 시편의 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때야말로 이사야처럼 신령한 눈이 열려서 위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하며, 아래로는 내 자신을 바로 살펴 반성해서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그리고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그 일을 바로 보아서 거기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옛날 청년 이사야와 같이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으신 지극히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바로 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고 그리고 내 사명을 바로 깨달아서 그 일에 충성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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