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6:5-19/ 놀라운 은혜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36:08 read : 1734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7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슬픔 중에 우리 가정에 크신 위로와 은혜를 내려주셨고, 믿음의 식구 되신 여러분들은 기도와 사랑과 온갖 봉사로써 저희 가정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한 말씀을 무엇으로 다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16편의 저자는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이분은 큰 환난, 혹은 위기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이 노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읽은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이것이 역시 제 심경입니다. 제 마음은 평안하고 감사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로 우리 가정을 후대하셨습니다. 제가 일찍이 이북에 있었을 때에 피현 테마교회에 가서 1주간 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그 교회의 부인들 몇 분이 제게 찾아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게 묻기를, “목사님은 가정이 없습니까? 한 주일을 거의 말씀하시면서도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더군요. 작년에 오셨던 사경 선생님은 자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그때에 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리고 그 후에도 제가 별로 이 강단에서 제 가정 이야기를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하자면 제 가정은 없어졌습니다. 작년 말로 내 가정생활은 온전히 마치고 끝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마 지금쯤은 옛말 삼아 내 가정 이야기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제가 지금 약 60년의 가정생활을 다 마치고 회고할 때에 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놀라운 것뿐입니다. 저는 본래 평양에서 북으로 약 100리쯤 들어가서 어파역이란 작은 정거장에서 가까운 작은 농촌, 흔히 ‘자작’이라고도 부르고 ‘샛말’이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은 부하지 못하지만 자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없는 가운데서 자수성가한 분으로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이 그 생활의 특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어릴 때 기억하는 대로, 그는 언제나 밝기 전에 일어났고, 또 저녁 어두울 때에야 들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님도 역시 그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농사를 돕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 이외에 목화를 심어서 그 목화를 따서 호리개로 틀어 씨를 빼고 그것을 활로 타서 또 솜을 만들고, 또 그것을 물레질을 해서 실을 만들고, 또 그것을 베틀에 매고, 그 후에 천을 짜서, 무명을 짜서 만드는 일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족들의 옷을 지어 입히는 책임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어릴 때에 목화밭에 따라 나가서 목화 따는 것을 돕던 기억이 지금도 나고, 밤에 자다가 깨어 보면 언제나 어머님은 자지 않고 물레질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이렇게 너무 과로한 탓인지 모르지만, 제 어머니는 제가 아홉 살 되던 정월 열나흗 날 저녁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께서는 제게 대한 두 가지 결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음을 평생 유감으로 생각한 나머지, ‘내 아들은 꼭 공부를 시키겠다.’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에 저를 학교에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방에서 소학교를 마친 후에는 특별히 애국심이 많은 학교를 택한다고 하면서 정주 오산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때 사실 우리 집은 평양은 100리밖에 안 되고, 정주 오산학교는 200리 이북으로 들어가야 되던 때입니다. 그런데 오산학교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애국자이신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하셨고, 당시에는 고당 조만식 선생이 교장으로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께서 제게 대한 둘째 관심은 자기가 너무 가난하여 아주 늦게 결혼을 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 나머지, 맏아들이 되는 저를 일찍이 장가를 보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님은 아직 믿지 않던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윗동네에 아주 부지런한 할머니가 있어서 무명을 제일 많이 짜낸다고 하는 집에서 며느리를 구해 왔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13살이요, 내 아내 나이는 16살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이룬 후에 외국 유학 관계로 여러 해 서로 떠난 적도 있었지만, 작년까지 말하자면 결혼생활을 60년이나 한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제가 좀 섭섭한 뜻을 말하니, 내 옆에 앉았던 한 권사님이 “아이고, 목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결혼생활이라고 도무지 2년밖에 못하여 보았습니다.” 그래요. 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로 우리 가정생활을 후대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대략 아시는 대로, 저는 본래 몸이 약하여 이 약점을 아는 제 아내는 일생토록 제 건강관리를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특별히 두 가지 방면에 유의하였습니다. 하나는 꼭 옳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특별히 혼식에 주력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쉬는 시간, 곧 언제나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어떻든지 이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살림을 전담해서 저는 사실 이때까지 일평생을 살았어도 어디 쌀집이 있으며, 쌀값이 얼마인지 모르고 산 사람입니다. 이것도 교역자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다행하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온전히 일을 분담하였으므로 내 자신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온전히 교역에 전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 역시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절제하고 아끼는 성품이었지만, 제가 늘 감사히 생각하는 것은 교회 헌금이나 가난한 친척이나 이웃이나 외로운 이들을 돕는 데는 언제나 너그러웠습니다. 이러한 맡은 일에 충실하며 또 나를 일생토록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생의 반려자를 주신 하나님께 나는 항상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는 하나님께서 두 자녀를 주셨는데, 딸은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아들은 목사가 되었으며, 또 내 동생도 목사가 되었고, 내 동생의 맏아들도 목사가 되어 부족하지만 우리 집안에 지금은 목사가 다섯이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후대하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감사를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시편 116편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 말씀이야말로 제 심경을 여실히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그 수가 너무 많아 다 헤아릴 수 없고, 물론 보답할 수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 시편의 저자와 같이 “무엇으로 보답할꼬 무엇으로 보답할꼬” 탄식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날 무렵에 선교사 마포삼열 목사가 깊은 농촌에까지 찾아와서 작은 교회를 세워 놓았습니다. 교회뿐 아니고 교회학교까지 설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작은 농촌교회에 나아가 찬송을 배울 수 있었고, 성경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배운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리라” 또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서는 물론 소학교에서도 매일 성경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마포삼열 박사 기념관을 건축하기 위해서 애쓰는 중에 있지만, 저는 내 유년기를 회고할 때에 마포 박사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농촌에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셨던들, 내 일생의 방향이 어떻게 되겠으며 그 온 지방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 때에 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이 기념관을 마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는 중에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로, 이 작은 농촌교회에서 목사가 아홉이 났고, 대한민국의 장관이 한 명 났습니다. 모두 교회가 세워졌던 덕택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제 백부님이올시다. 이분은 다른 촌에 살면서 종종 우리 집을 방문하셨는데, 그분은 언제나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면서 우리 대문간을 들어오셨습니다. 사실 우리 조부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온 재산을 탕진한 분이 이분입니다. 지금 말로 하면 알코올 중독자였던 모양입니다. 사실 우리 한씨 문중에 이런 술 잘 마시는 내력이 있습니다.
만일 복음이 우리 농촌에 들어오지 아니했던들, 나 역시 저런 술주정뱅이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에 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실로 놀라운 것뿐입니다.
그리고 제 일생을 회고하면 이것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안되었다 하던 것이 모두 잘 되었습니다. 제가 일찍이 미국에서 신학교를 마친 후에 폐결핵에 걸려서 2년간이나 병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그것이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독한 사망의 그늘에,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동안 내 자신을 좀더 반성하고 죄를 회개하며 더 깊은 신앙생활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에 평양 숭인 상업학교에서 제가 교원으로 1년 있었습니다. 또 당시 숭실대학에서 저를 교목으로 초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일본 학무당국은 교원인가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에서 나와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교원인가를 거부한 것도 얼마나 잘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그들이 한 것이 아니라, 이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또 일제 말기에 일본경찰 당국은 저를 제가 시무하던 신의주 제2교회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때에는 물론 다소 섭섭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교회에서 쫓아내었으므로 저는 보린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고아원에 나가서 직접 아이들과 같이 살면서 고아들을 친히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친히 기르던 두 청년은 지금 남한에 내려와서 다 크게 성공하였고, 내가 낳은 아들과 다름없이 우리 가정을 정성껏 돌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때에 교회에서 아주 나왔으므로 해방 직후에 자유로이 사회를 봉사할 수 있었고, 또 공산당들이 체포하려고 할 때에 마음에 부담 없이 이북을 떠나 38선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잘 안 된 듯하던 일들이 지나고 나니 모두 잘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대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그 성경 구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곧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넓고, 너무 신비하여 다 헤아릴 수도 없고,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이 시인과 같이 오직 탄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 116편 15절에는 이런 말씀이 또한 적혀 있습니다. “성도의 죽는 것은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십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의 죽음은 영적 추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불러 성도를 삼고 일생토록 그 구원받은 심령을 기르다가 마지막에 그 귀한 알곡을 거두어 하늘 곳간에 넣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도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아주 귀중히 여기십니다.
둘째는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종의 온전한 제사입니다. 성도의 매일매일의 생활은 산 제사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성도의 죽음은 가장 향내나는 온전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셋째는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수고와 희생의 결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위하여 이러한 죽음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그 몸을 버려서 죄를 대속하여 주셨고, 성령께서는 매일 감화 감동으로 인도하여 주셔서 이 모든 것이 합하여 아름다운 성도의 죽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넷째는 성도의 죽음은 하늘의 큰 기쁨이 됩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된다고 우리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회개한 영혼이 일생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 최후로 하늘나라에 가게 될 때에 얼마나 큰 기쁨이 하늘에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다섯째는 성도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는 환송이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큰 환영을 의미합니다. 천사의 환영이 있습니다. 천군들의 환영의 찬송이 있습니다. 24장로의 환영 박수가 있습니다. 아니,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환영이 하늘에서 열립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여섯째는 성도의 죽음은 모든 성도들의 다시 만남을 의미합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회동(大會同)을 의미합니다. 먼저 간 친구들, 먼저 간 부모님들, 먼저 간 형제들, 먼저 간 가까운 성도들을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십니다.
일곱째는 성도의 죽음은 이렇게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영원무궁한 축복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근심도 없고 눈물도 없는, 참된 행복의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그러므로 사실 성도의 죽음은 꼭 올 때에 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우연은 없습니다. 이른 죽음도 없고, 늦은 죽음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크신 경륜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에는 유감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오직 “할렐루야!” “아멘.”이 있을 뿐입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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