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22:8-13/ 성서의 재발견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18:36 read : 161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세계 교회가 같이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이 시간 읽은 말씀은 옛날 유대 나라 요시야 왕 때의 된 일입니다. 요시야 왕은 역대 왕 중에 종교개혁자로 유명한 왕입니다. 그가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서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에게 큰 공사를 지시하게 하였습니다.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어떤 구석에서 한 낡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집어서 읽어 보니 그 책은 다른 것이 아니고, 곧 여호와의 율법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면서 왕에게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그 책의 내용을 듣고는 그의 옷을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결단을 보이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왕이 그 책의 내용을 들을 때에 자기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을 거슬러서 사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성전 뜰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과 국민들을 모이게 하고, 그 책의 내용을 읽어준 후에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법에 거스르는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하기로 국민과 같이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당시 백성들이 흔히 섬기던 바알과 아스다롯과 그 밖의 모든 우상을 철폐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그 뜻대로 살도록 전 국민생활에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율법책이, 지금 우리말로 하면 곧 성경이 성전 안에서 잃어졌다고 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책이 재발견됨으로 당시 교회와 국가의 생활이 또한 새로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성서의 재발견 된 사실을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교훈을 또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성경이 역사 속에 잃어진다고 한 사실은 그때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 가운데서도 성경이 잃어졌던 사실과 또는 재발견된 사실을 기억합니다. 구라파(유럽)의 중고(중세)시대, 특별히 약 10세기로 15세기까지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왜 그 시대가 이렇게 암흑시대로 불리었던가? 그 시대는 바로 성경이 잃어진 시대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을 중심한 기독교회는 성경이, 말하자면 교황청 속에서 잃어졌었습니다. 심지어 일반 신도들의 성경 읽는 것을 교회가 금지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진리의 빛은 가리워졌고, 자유와 발전이 없는 암흑시대로 화하였습니다.
다행히 16세기 초에 한 가난한 수도사 마틴 루터가 이 성경을 찾아내었습니다. 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구약에서는 시편, 신약에서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그는 인간이 죄 사함을 받는 것은 무슨 순례를 하거나 속죄표를 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의롭다함을 얻는 구속의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는 진리의 빛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반드시 교황이나 신부를 통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간다는 진리, 곧 신자는 누구나 제사장의 자격이 있다는 원리를 또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모든 구속을 벗어난 자유인이라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은 역사 속에 잃어졌던 성서를 재발견함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교회는 혁신되고, 온 세계가 자유와 발전의 시대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간혹 잃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릇된 전통과 사상에 때로는 묻히기도 쉽습니다. 성경은 재발견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인류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종교개혁뿐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새로운 운동은 이 성경의 재발견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렇게 땅끝까지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건만, 성경의 이 부분은 오랫동안 말하자면 묻혀 있었습니다.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캐리, 데이비드 리빙스턴, 혹은 저드슨 같은 이들이 이 진리를 재발견하고, 크게 깨달아 자신들의 고향과 고국을 떠나 친히 산 설고 물이 다른, 알지 못하는 나라들을 향하여 복음을 가지고 나감으로써 비로소 기독교회 안에 외지 선교 운동이 불붙듯, 19세기에는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성서의 재발견과 같이 일어난 선교 운동의 혜택으로 복음이 지금은 전세계에 확포(擴布)되게 되었고, 우리 한국에도 80여 년 전에 이 신교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외국 선교의 위대한 운동도 이 성서의 재발견에 있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이런 구절도 처음부터 우리 성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기에 와서 교회 지도자들이 이 진리를 새롭게 재발견할 때에 교회의 일치운동, 연합운동, 또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모두 이 성경의 교훈을 재발견한다고 하면, 한국 교회는 앞으로 보다 더 화평하고 연합하고 일치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혹은 아모스 5장 24절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이런 구절도 오래 전부터 성경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잃어져 있었습니다.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게 됨으로 해서 사회 정의운동, 사회 혁신운동이 또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누가복음 4장에는 주님께서 자기의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선포하실 때에 그는 친히 이사야 61장 1절 이하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다시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혹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런 구절들도 처음부터 성경에 있었으나, 그러나 오직 이 구절을 새롭게 재발견하게 됨으로 해서 영적 자유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자유와 민주운동이 또한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역사를 통하여 모든 위대한 운동들이 성서를 재발견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는, 이뿐만 아닙니다. 개인 생활의 변혁도 이 성경을 재발견하는 데서 흔히 오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이 성서 중에 특별히 로마서 13장 12절 이하를 읽고 회개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곧 이 말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청년이 이 말씀을 재발견할 때에, 그 심령이 이 말씀에 부딪힐 때에 그는 변해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계 제2차대전 때에 동경을 제일 먼저 폭격한 두리틀 장군이 지휘한 폭격기 편대 가운데 드쉐저라고 하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가 탔던 비행기는 목적한 중경까지 채 가지 못하고 상해 근처에서 그만 추락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일본 사람의 포로 수용소에서 갖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이 포로 수용소 안에서 성경을 얻게 되어 이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온전히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전 후에는 그는 미국에 돌아가 학교를 마친 후에 다시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폭탄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고, 성경을 끼고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서 다시 온 것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성서를 재발견하므로 새 사람이 될 뿐더러, 선교사까지 된 것입니다. 이분의 전도를 받고 진주만을 처음에 폭격한 일본 비행대의 지휘관이었던 후치다 대좌가 또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뿐더러 복음 전파자가 되어서 우리 한국을 방문한 사실을 아마 여러분께서 또한 기억할 것입니다.
성서를 재발견할 때에 새 사람이 됩니다. 성서를 읽을 때에, 그 진리에 부딪힐 때에 과거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여러분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성서를 재발견하세요. 성서를 읽으세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요시야 왕 때에 성경이 성전 안에 있었건만, 사실은 잃어졌었습니다. 먼지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성경이 내 집안에 있건만, 사실은 먼지 속에 묻혀 있는 가정은 없습니까? 성경이 내 책상 위에 있건만, 사실은 묻혀 숨겨진 분은 없습니까? 잃어진 성경을 재발견하세요. 성경을 찾으세요. 성경을 여세요. 펴세요.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을 공부하세요. 배우고 연구하세요. 성경은 큰 광산과도 같습니다. 금은보석 이상의 보화가 이 책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근면하고 정직한 진리의 광부만 이 보화를 찾습니다. 학생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배울 것입니다. 자녀들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의 길, 곧 모든 도덕의 근본을 배울 것입니다. 온 가정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그 가정에는 언제나 경건과 기쁨과 평화가 깃들일 것입니다. 죄인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픔을 당한 이들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위로와 영원한 소망을 얻을 것입니다. 죽는 이들이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한 민족과 국가가 이 성경을 재발견하면 그 사회와 그 나라에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과 발전과 기본인권이 존중될 것입니다.
성경은 자유의 대헌장입니다. 그린(Jone R. Green)이라는 영국의 역사가가 저술한 영국역사 가운데 엘리자베스 1세 그 시대를 묘사한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 국민은 한 책의 백성이 되었다. 곧 그 책은 성경이었다. 각계각층이 이 성경을 읽었다. 그 결과는 놀랄 만하였다. 전국가의 도덕적 분위기가 변하였다.” 그리고 여러분 그때부터 영국이, 19세기 와서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사실도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기 전에 그들은 먼저 성경을 발견하였던 이들입니다. 그들의 후손이 오늘의 미국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도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성경의 재발견은 국가 발전과 민족중흥의 정신적 기본이 될 것입니다. 내가 바라기는 한국의 정치인들, 교육가들, 기업인들, 아니 온 국민이 이 성경을 발견하여 이 책을 애독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신자들은 성경을 매일 읽는 거룩한 습관이 꼭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향상하고, 그래야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영락 교우들은 이 성서주일에 누구나 이 성서를 재발견하여 매일 이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께서 이 귀한 생명의 책을 저희들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 이 책을 참으로 재발견해서 매일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주시는 생명 양식을 받아서 우리 하나하나가 실천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어서 주님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건강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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