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7-11/ 고후4:16-18/ 날로 새로워지는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38:58 read : 205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6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이 절을 새 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고 있으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체험을 말합니다. 사실 그의 겉사람, 곧 육체는 점점 후패(朽敗 썩어 문드러짐)하여 가던 중입니다. 그 원인은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는 항상 과로로 인해서 그 몸이 지쳐집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그 몸에 가시, 곧 그를 괴롭히는 병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늘 고통이 있습니다. 그 외에 또한 그는 종종 핍박으로 말미암아 그 몸에 상처를 입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그는 점점 늙어가니 쇠약해서 약하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결과로 그의 겉사람은 후패하여져 갑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의 속사람, 곧 그의 심령은 나날이 새로워진 까닭입니다. 그는 날로 후패하여지는 육신 가운데서도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 겁니까? 이 시간 우리가 다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새로워진다는 말은 생명을 연상케 합니다. 산 것이 새로워집니다. 죽은 것은 새로워지지 못합니다. 썩어집니다. 살아 있는 풀에 새싹이 납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서 새 잎이 돋습니다. 살아 있는 꽃이 더 아름다워집니다. 죽은 것이 새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날로 새로워지려면 먼저 죄와 허물의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영적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먼저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새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선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워지는 은혜는 먼저 온전히 내 심령이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시작이 됩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온전히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날로 새로운 은혜를 받는 첫 계단입니다. 여러분, 다 이 첫 계단에 올랐습니까? 이것이 필요합니다.
또, 새롭다는 말은 아침을 연상케 합니다. 아침에는 만물이 새로워집니다. 왜? 그것은 아침에는 아침 햇빛이 비추는 까닭입니다. 동편에 아침 해가 솟을 때에는 어두움의 그늘은 사라지고 만물이 빛나고 새롭게 됩니다. 시편 27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의 근본입니다. 우주를 비추는 참 빛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빛으로 오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빛이 아침 햇빛처럼 우리 심령의 지평선 위에 솟아오를 때에, 그리고 우리를 속속히 비추어 주실 때에 우리의 심령은 새로워집니다. 어두운 것은 사라집니다. 더러운 것은 깨끗해집니다. 새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새 기쁨과 소망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해서 하나님의 빛을 받는 이는 새 힘을 얻겠다고 말씀합니다. “독수리의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우리 심령 위에 날마다 하나님의 빛, 그리스도의 빛, 진리의 빛, 사랑의 빛, 생명의 빛이 비칠 때에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창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속사람을 비춰 줍니다.
또, 새롭다는 말은 맑은 샘물을 연상케 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메마른 사막 길을 걷던 나그네가 길가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그 맑은 샘물을 마시게 되면 그는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원기를 회복합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사마리아의 수가라고 하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마침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한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런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이 세상은 사막과 같이 메마른 곳입니다. 이런 곳을 지나가는 인간들은 다 피곤하고 쇠약하여집니다. 그러나 주를 믿고, 기도를 통해서 그와 항상 교통하는 이들에게는 시원한 맑은 솟아나는 생명수, 곧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심령은 아무리 피곤한 인생행로를 걸어가나 그 심령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새 용기를 나날이 얻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기도 생활이 필요하고 날마다 성령의 새롭게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새로워진다는 말은 안식을 연상케 합니다. 편안히 쉬어야 우리 육체는 새로워집니다. 하루 저녁 잠을 잘 잔 후에는 그 이튿날 아침에는 우리 육체가 새 힘을 얻습니다.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심령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편안히 쉬어야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외쳤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 앞에 나와서 그 심령이 안식을 얻는 이는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거운 짐들을 스스로 지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다 주님께 맡기고, 우리의 심령이 주의 품에서 평안히 쉴 때에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더 아름다워집니다. 장성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동산, 곱고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에서 편히 쉴 때에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주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합시다. 영양이 좋아야 새로워집니다. 꽃은 물과 비료를 주어야 날로 새로워집니다. 곡식도 우선 옥토에 심고 좋은 비료를 주어야 날로 장성하고 새로워집니다. 어린아이들도 우유와 좋은 음식을 먹여야 날로 자라고 새로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도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 날마다 새로운 만나를 하나님께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먹어야 우리의 심령이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날마다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하는 말이지만 기도도 날마다 드리고, 성경도 날마다 읽는 습관이 형성되어서, 이 거룩한 습관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가 있고, 우리의 심령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새 힘을 받아서 맡은 바 책임을 바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될지라도 용감하게 극복하면서 지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사실 믿음이 있는 이는 겉사람이 후패하여 갈수록 그 반비례로 속사람이 더욱 새로워집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겉사람인 육신이 점점 후패하여 허약하게 되면, 이 육신을 근거로 하는 온갖 추한 욕심이 사라집니다. 곧 정욕, 물욕, 권세욕, 세상에 붙은 온갖 허영심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남에게 대한 시기나 질투나 분노나 증오심 같은 악한 감정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하게 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날 동양에서 내려오는 글귀 가운데도 ‘인지장사에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고, ‘사람이 장차 죽을 때에 그 말이 선하다.’고 하는 그런 글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망이 끊어지게 될 때에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됩니다. 세상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겉사람이 아주 후패하여질 때에, 육신의 눈이 점점 어두워질 때에 그 심령의 눈은 더욱 밝아져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됩니다. 육신의 귀가 어두워져 세상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될 때에 신령한 귀는 더욱 밝아져서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겉사람이 후패할수록 믿음이 있는 이는 그 속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더욱 새로워집니다. 그러다가 육체가 아주 무너지게 될 때에는 새로워진 그 심령은 옛집을 유감없이 버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집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홀로 굴 속에 앉았을 때에 그의 겉사람은 늙고 병들어서 아주 후패하여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아주 새로워졌습니다. 그의 신령한 눈은 아주 밝아져서 영원한 세계의 장래까지 바라볼 수 있었고, 지극히 높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직접 엿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령한 귀는 또한 밝아져서 천군천사들의 노래와 수없이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화답을 친히 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원한 새로운 나라에 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 영락교우 여러분들, 신앙생활이란 날로 새로워지는 생활입니다. 이런 생활에 들어가기 위하여 먼저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밝은 빛을 우리의 심령이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맑은 샘물 같은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의 인생길을 가는 이들로서 누가 피곤치 아니하리오만, 모든 염려와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날마다 안식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신령한 만나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우리의 겉사람은 아무래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후패할 것이나, 우리의 속사람은 그 반비례로 날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새 기쁨, 새 사랑, 새 소망, 새 용기, 여러 가지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장성할 것입니다. 성숙할 것입니다.
이 1973년 새해를 당하여 우리는 이렇게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아서 새로운 열심과 충성으로 주님을 봉사하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만 새로워질 것이 아니고, 내 가정도 이렇게 새로워지고, 우리 교회도 날로 새로워지고, 그리고 우리나라도 참으로 유신(維新)이 되어서 새로워지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을 읽으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할 때가 옵니다. 온 우주가 새롭게 될 때가 옵니다. 눈물과 죄악과 전쟁과 압박이 없는 새로운 세계가 옵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우리 성도들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새해에 이 새로운 은혜를 받읍시다. 기도하십시다.
오,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새해를 당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옵나이다. 이 새해에 우리 심령 하나하나가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하늘의 빛을 날마다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생명수와 만나를 날마다 먹어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이 은총을 우리 하나하나에게 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