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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1:8-17/ 채무감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41:43   read : 143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로마서 1장 14절을 다시 읽었습니다.

    “다 내가 빚진 자라” 여기에 부채자의 의식, 혹은 채무감에 눌린 분이 있습니다. 그는 곧 사도 바울이올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이런 채무감, 빚을 졌다고 하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무슨 빚을 그리 많이 졌습니까? 돈을 많이 빚졌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빚입니까? 돈 이외에도 빚이 많습니다. 신령한 빚이 있습니다. 이제 그의 채무감을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의 채무감의 내용을 잠깐 생각하십시다.

    사도행전 9장, 22장과 26장을 읽으면, 거기에 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개했는가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본래 맹목적인 청년 바리새인으로서 처음에 기독교를 핍박하여 많은 예루살렘 신자들을 괴롭혔고, 다메섹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잡으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 거의 가서 홀연히 밝은 빛이 두루 비침과 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대할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늘에서 보이신 것과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라는 사명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곧 이방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전체를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헬라인’은 문화인의 대표요, 문화를 모르는 이들은 다 야만인으로 여겼습니다. ‘지혜 있는 자’ 역시 교육을 받은 이들을 의미함이요, ‘어리석은 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을 뿐더러, 전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전도의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디모데전서 1장에 친히 기록한 대로, 그는 본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뿐더러, 이방의 사도직을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 사람들을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이 영적 채무감에 눌림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빚은 마음이 있으면 갚고, 마음이 없으면 안 갚는 것이 아닙니다. 빚은 졌으면 언제나 꼭 갚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전파에 대해서 꼭 이렇게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는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이와 같은 강한 채무감은 그로 하여금 일생을 통하여 복음전파에 온전히 헌신케 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어디나 가기를 주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험한 길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넓은 바다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느 때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였습니다. 그는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회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전하였습니다. 또 누구에게나 그는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실로 그는 이 영적 채무감에 눌려서 일생을 살고 또 죽은 분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은 누구나 다 이 영적 채무감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채무감뿐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다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것을 알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다 하나님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일월성신, 산천초목, 대자연계를 비롯하여 우리 일상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빚을 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육신이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심령이 사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물로 우리에게 그저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 곧 그리스도까지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많은 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영과 육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한 비유에 있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다 문자 그대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종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선 하나님께 대하여 다 빚을 진 이들입니다. 우리가 다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기억합니까? 빚이 너무 크므로 오히려 잊어버리는 경향은 없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채무감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이 채무감을 조금이라도 느껴서 만분의 일이라도 이 빚을 갚아보려는 생각을 해본 때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먼저 이 채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다른 사람에게서도 빚을 지고 삽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작은 핏덩이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다고 하는 것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빚을 졌습니다. 아버지의 빚도 졌습니다. 의사의 빚도 졌습니다. 간호원(간호사)들의 빚도 졌습니다. 항상 먹을 것을 생산하기에 수고하는 농부들의 빚도 졌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들의 빚을 졌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제직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의 빚을 졌습니다.

    현재에 사는 이들에게만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도 우리는 많은 빚을 졌습니다. 과거의 많은 애국자, 과학자, 철학자, 발명가, 신앙의 선배들에게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사는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채무감을 혹 느낍니까?

    나는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나의 과거를 잠깐 회상하여 보았습니다. 부모님께로 진 빚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기 3~4년 전에 우리 작은 동네에 한 농촌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듣는 대로, 그 교회는 초대 선교사 가운데 하나인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 馬布三悅) 박사 흔히 마 목사라고 합니다. 이분이 와서 그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내가 자라나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 교회에 나가서 찬송가를 배우고, 성경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 교회를 세운 마 목사와 그 교회로부터 진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교회와 같이 작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진광학교라고 하는 학교가 또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옛날 글방 곧 서당에 가지 아니하고, 어렸을 때부터 이 학교에 나아가서 기독교 교육과 신문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와 그때의 선생님들의 은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들에게도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정주 오산학교에 갔는데, 이 학교 역시 내가 세운 학교가 아닙니다. 그때에 애국지사이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웠고, 역시 애국적 교육가인 고당 조만식 선생이 교장으로서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시켰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평양에 있던 숭실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대학 역시 내가 세운 학교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 곧 배위량(William M. Baird 裵緯良), 마포삼열, 나도래(R.O. Reiner 羅道來) 같은 이들이 이 학교를 세우고, 철저한 애국적인 기독교 교육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도 엠포리아 대학, 프리스턴 신학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세운 학교들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이 세웠습니다. 나는 그저 거기 가서 공부만 하였을 따름입니다. 얼마나 많은 빚을 그들에게 졌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실로 나는 빚을 많이 진 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중병에 걸렸을 때에도 내가 세우지 아니한 병원에 가서 2년간이나 입원해서 무료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 많은 빚을 갚을 길이 사실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평양에서, 신의주에서, 그리고 이 서울에 와서 지나온 과거 40년간의 생활을 회고할 때에,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여러 교역자들과 제직들과 교우들과 친척들에게 진 빚을 생각하면 실로 태산보다도 높아서 무엇으로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 강대 주위에는 여러분이 자세히 보셨는지 모르지만, 성경 구절이 두 절 새겨져 있습니다. 가까이 앉으신 분은 보셨겠지만, 멀리 앉으신 분은 볼 수가 없을 겁니다. 십자가 위에도 성경 구절이 한 절 새겨져 있고, 십자가 아래에도 성경 구절이 한 절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성경 구절은 여러분이 잘 따라 외우는 성경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올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리고 여러분, 십자가 아래에 가로새긴 성경 구절이 무슨 절인지 압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시편 116편 12절이올시다. 그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그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것은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고백이 또한 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빚진 자의 괴수입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진 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나만 이렇게 빚진 자는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도 역시 과거를 회상하면 다 이렇게 빚진 자인 것을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진 자들입니다. 잠깐이라도 회상해 보면 깨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채무감이 있는 이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빚을 갚으려고 힘을 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빚을 갚기 위하여 그 일생을 전도와 봉사에 바쳤습니다.오늘날 우리가 전도나 교육이나 봉사에 힘쓰는 것도 이 빚을 갚으려는 동기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남에게 전도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내가 남의 전도를 받아서 구원을 얻은 까닭이 아닙니까? 내가 왜 교회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까? 그것은 나도 역시 다른 이들에게 어렸을 적에 배운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개척교회를 세우고 도와주어야 합니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도 역시 일찍이 작은 농촌교회에서 은혜를 받은 까닭입니다. 우리가 왜 학교를 세우며 교육 사업을 도와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도 역시 일찍이 남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외국에도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까? 그것은 외국의 교인들이 일찍이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을 보내서 복음을 전파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특별히 북한전도를 힘써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일찍이 북한에서 은혜를 받은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빚을 진 자들은 그 빚을 갚기를 힘써야 합니다. 빚은 꼭 갚아야 합니다. 특별히 연말은 빚을 갚는 때입니다. 성탄은 특별히 하나님의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기억하면서 빚을 갚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전도로, 봉사로, 이 사랑의 빚을 만분지 일이라도 갚을 수 있도록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영적 채무감은 인격과 신앙의 척도입니다. 인격이 고상할수록 이 채무감이 강합니다. 인격이 비열한 사람은 이 채무감을 거의 모릅니다. 신앙이 독실할수록 이 채무감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외쳤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나는 빚진 자로다” “내가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어떤 이가 효자가 됩니까? 부모의 은혜를 깨달아 이 채무감에 눌린 아들과 딸들입니다. 어떤 이가 애국자가 됩니까? 국가의 은혜를 깨달아 이 채무감에 눌린 이들입니다. 어떤 이가 제일 봉사를 많이 하려고 애씁니까? 하나님과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깨달아 이 채무감에 눌려 사는 이들입니다. 누가 전도를 제일 열심히 합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이 복음의 채무감에 눌려서 일하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채무감은 전도와 봉사의 또한 척도가 됩니다. 채무감에 눌려 일하는 이들은 원망이 없습니다. 불평이 없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원하여 합니다. 원해서 합니다. 안할 수 없어서 합니다. 남은 알든지 모르든지 일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려면 그 속에 불덩이가 있어 견딜 수 없습니다. 이렇게 채무감에 눌려 일하는 이들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합니다. 수고를 아끼지 아니합니다. 오직 기쁨과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이 성탄 계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서, 또한 모든 사람을 통하여 오는 은혜를 깨달아서, 이 채무감이 불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나 나는 빚진 자로다. 이 시간 하나님께로부터 진 모든 빚, 인간을 통하여 진 모든 빚을 저희들이 생각하면서 이 깊은 채무감에 사로잡혀서 주를 봉사하며 복음을 전파하며 나라를 봉사하며 모든 방면에 전진할 수 있는 이 은혜를 이 성탄 계절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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