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9:1-16/ 청년과 성경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43:30 read : 1834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편 119편 9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청년시대에 당면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입니다. 어디에 취직을 할까? 누구와 결혼을 할까? 등등 모두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구나 당면하는 아주 심각한 도덕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게 하리오?’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청년시대에 깨끗한, 고결한 생활을 할까, 하는 것입니다.
청년시대는 인간의 일생을 통하여 제일 위험한 시기입니다. 혈기는 가장 왕성한 때요, 따라서 유혹은 매우 많습니다. 반면에 또한 경험은 적습니다. 청년시대는 사실 인간 일생의 분기점이올시다. 분수령이올시다. 일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사실 생명과 사망의 기로입니다.
나는 일찍이 아프리카 나이로비라고 하는 도회에 있는 동물원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이 동물원의 한 가지 특색은 넓은 울타리 안에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자유롭게 섞여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호랑이, 사자, 곰 등이 있는가 하면, 한 모퉁이에 가보니 어린 꽃사슴이 외로이 서서 있습니다. 이러한 험악한 세상에 한 외로운 청년이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는 그 모습을 연상케도 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험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깨끗하고 맑은 고결한 생활이 가능할까?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 시인은, 아마 그의 관찰, 혹은 그의 경험에서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으나, 결국은 실패한 그 쓴 경험을 기억하면서 이런 물음을 묻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결심도 하여 보았고, 혹은 교육도 힘써 보았고, 혹은 스스로 수양도 힘써 보았으나, 결국은 깨끗한 생활에 이르지 못하고, 그 마음이 상한 가운데서 이런 물음을 묻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더러워졌으니 깨끗한 길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탄식을 하면서 이런 물음을 묻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모든 고귀한 심령이 청년시대에 물을 수 있는 최고의 문제 중에 하나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오?’ 바로 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청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당면하는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는 아마 이 문제일 것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이 패역한 세상에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오? 오늘 이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길을 분명히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문제는 현재 여러 청년들만 당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여러 청년들도 이미 당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노인들도 한 번은 여러분과 같이 홍안, 흑발의 붉은 얼굴,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도 과거에 이러한 문제에 당착하였던 분들입니다. 현대에 사는 인간들만이 아니고, 과거 수백 수천 년 전에 살던 이들도 한 번은 다 청년시대에 이런 문제에 당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기록한 이 시인은, 그 자신의 경험과 모든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말로 바꾸면, 성경 말씀을 기초로 한 참된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말씀을 좇아 삼가며 그대로 준행하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우리는 청년시대에도 깨끗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곧 주의 말씀을 중심한 생활이 여러 청년들에게 반드시 돈을 많이 모으게 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여러 청년들에게 반드시 많은 지식이나 무슨 높은 지위나 명성을 가져오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확실히 보장되는 한 가지는 있습니다. 곧 여러 청년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며 참된 신앙생활을 하면, 여러분의 일생은 온전히 세상에 물들지 않는 깨끗하고 고귀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성도들의 생활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미 오래 전에 살던 청년 요셉에게 혹 물어보세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는 소년시대에 불행히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당시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외로운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충성되고 깨끗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보디발의 아내를 통한 청년의 정욕의 큰 유혹도 용감히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도 그 큰 권세를 한 손에 잡고, 또 그 조정의 퇴폐한 분위기 가운데서도 그의 생활은 청렴하고 깨끗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물어보세요. 그는 곧 대답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혹은 일찍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과 파사 조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다니엘에게 물어보세요. 그러한 이교 문화와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우상의 제물도 먹지 아니하고, 술도 마시지 아니하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흠을 잡을 수 없으리만치 깨끗하고 고귀한 생활을 하였는가? 그의 대답 역시 매우 간단할 겁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혹은 신약시대에 와서 바울의 제자 중 하나인, 사실 그 후 바울의 후계자가 된 청년 디모데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이 어떻게 청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세상의 헛된 부귀도 버리고, 오직 일생을 가난한 사도 바울을 따라 갖은 고생을 하며, 그러나 깨끗하고 고귀한 생활을 하였습니까? 그의 대답도 아주 간단할 것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서 그 말씀을 따라 산 까닭입니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경시대의 성도들만이 아닙니다. 전교회 역사를 통해서 모든 성도들의 대답이 또한 동일합니다. 교회사 초기에 아마 제일 유명한 성경학자요 설교자인 오리겐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는 본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생을 성경 연구와 복음 전파에 바친 위대한 학자입니다. 그의 생활은 당시 극도로 퇴폐하였던 로마 사회에서 실로 백로와 같이 깨끗하고 고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그 비결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선생의 그 고귀한 생활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도 매우 간단할 것 입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혹은 중고(중세)시대에 산 성 프란시스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났으나 모든 가산을 초개같이 버리고, 일생을 빈민과 고아와 병자를 위해 봉사하며 복음을 전파한 중고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별명을 얻은 분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그러한 생활의 비결이 무엇인가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의 대답도 역시 아주 간단할 것입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따라서 삼가는 신앙생활에 힘썼다.”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19세기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인정을 받는 아브라함 링컨에게 역시 그의 흑인노예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그의 일생을 통한 정치가로서의 깨끗하고 경건한 생활의 비결이 무엇인가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의 대답도 아주 간단할 겁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성경을 배웠습니다. 항상 그 말씀을 따라 삼가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여기 앉은 여러 청년들, 여러분이 참으로 중심의 깨끗한, 고귀한 일생을 원합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며 사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이 성경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하여 그의 뜻을 말씀하셨고, 지금도 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 하나하나에게 그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서 우리는 인생의 행로를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니이다” 한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며 인생길을 걸을 때에는 넘어지지 아니합니다. 왜? 이 밝은 등불이 우리의 길을 비추어 밝게 하는 까닭입니다.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합니다. 위험한 곳을 미리 봅니다. 원수를 미리 살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인생길을 걷는 이들은 실족하지 아니합니다. 넘어지지 아니합니다.
또 성경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모든 원수를 쳐부수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 이 말씀으로 승리하신 것 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항상 읽고, 이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가득할 때에는 어떠한 유혹이 들어올지라도 이겨냅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성경 가운데서 인간 생활의 최고 목표가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물론 인간의 작은 목표들은 여럿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최고의 목표를 그 심령 속에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헛된 무엇이 유혹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이들은 깨끗이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 인간 생활의 최고 표준 혹은 모범을 또한 발견합니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생활을 성경 가운데서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최고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의 생활은 당연히 날마다 향상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합니다.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와 같이 구별하여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 내 죄를 대속하신, 죄인의 구주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리해서 설사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활이 더럽혀졌어도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너희 모든 죄를 깨끗이 씻으리라” 우리 모든 죄를 씻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며 십자가로 대속하신 예수를 만나 그를 따르는 사람만이 사실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청년들, 깨끗하고 고귀한 생활을 사실 원합니까? 발에 등불이 되는 성경을 읽으세요.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하는 성령의 검인 성경을, 말씀을 마음에 두세요. 인간 생활의 최고 목표를 보여주는 성경을 읽으세요. 인간 생활의 최고 표준을 보여주는 성경을 읽으세요. 죄인을 구속하여 깨끗게 하여 주는, 구주를 보여주는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을 읽으면 우선 마음이 깨끗하여집니다. 그의 말이 또한 점점 깨끗하여집니다. 그의 행실이 또한 깨끗하여집니다. 성경을 읽는 가정은 깨끗하여집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도 점점 깨끗하여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군인이 언제나 회중 성경을 가슴에 품고 다녔는데, 한번은 이 군인이 일선에 가서 싸우다가 적탄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적탄이 바로 그 회중 성경에 맞아서 그 생명이 구원되었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성경은 그의 육신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품고 다니면, 어떠한 유혹의 화살이 들어올지라도 우리의 영적 생명은 안전합니다. 가장 안전한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품고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은 말합니다.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세요.
아마 여러분 가운데 바운티(Bounty)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가 많을 줄 생각합니다. 1790년에 영국 정부에서 어떤 절해고도인 한 섬에 고무나무를 심기 위해서 바운티호라고 하는 배에 수십 명의 젊은 군인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영국 청년들이 그 섬에 가서는 그 섬에 본래 사는 토인 여자들과 만나서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결국은 그 배에서 반역을 일으켜서 그 선장을 꽁꽁 묶어서 조그마한 배에 띄워서 망망한 바다로 쫓아 내보내고, 그들은 자기들이 타고 온 바운티호를 타고 다른 작은 섬, 무인고도에 가서 그 젊은 반역 군인들과 또 다른 섬에서 끌고 온 그 본토 여자들과 같이 살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타고 온 배는 아예 안 돌아가려고 불살라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젊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어떤 풀뿌리를 물에 썩혀서 술을 만드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그 젊은 사람들이 또 술까지 마시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술 먹고 음란하고 방탕한, 참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결국은 서로 싸움을 하기 시작하고 서로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는 백인이란 백인은 싸워서 다 죽어 오직 하나만 남고, 끌고 온 그 본토 여자들과 그 여자들에게서 낳은 그 반종 아이들만 있게 되었습니다.
이 홀로 남은 영국 백인 청년의 이름이 존 아담스라고 하는 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홀로 남아서 한번은 그 보따리들을, 아마 죽은 사람의 보따리 같지요? 뒤적뒤적하다가 그 보따리 속에서 책을 하나 발견했어요. 그게 성경책이오. 그래서 이 청년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 영국의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먼 나라로 가게 되니까 가서 읽으라고 그 보따리 속에 넣어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걸 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혼자 남은 백인 청년이 이 성경을 읽고, 읽고, 읽으니 자기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가를 깨닫고, 홀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여자들과 그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 해 후에 영국 정부에서 그 사람들을 다 잡아오려고 가보니까, 부락 가운데는 큰 예배당이 지어져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찬송을 하며 예배를 드리는데, 그 백인 청년이 이제 노인이 되어 그 섬의 왕이요, 또 목사노릇을 하고 있더랍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성경인 줄 압니다. 군인들에게도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성경입니다.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도 성경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성경을 주는 게 아마 제일일 겁니다. 결혼할 때에도 성경을 주는 것이 아마 제일 귀한 선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영국 청년이 자기 어머니에게서 받은 이 성경을 읽었더라면, 그런 참혹한 죽음을 안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머니의 주는 성경을 받아서 보따리에 넣기는 넣었지만 읽지 않았어요. 또 이 청년이 이 성경을 받아서 자기가 읽을 뿐더러 다른 친구들에게 이 성경을 가르쳤다면, 그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은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내가 분부한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읽고, 그대로 삼가서 살며, 또한 남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 어떤 청년들은 교회에 이따금 드나들기는 드나들지만, 그 생활이 깨끗지 않은 청년들도 혹 있습니까? 사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습니까?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삼가서 신앙생활을 합니까? 또 이 말씀을 여러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칩니까? 지금까지 이 성경을 매일 읽지 못하신 청년이 있으면, 오늘 아침 이 성서주일부터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라” 무엇으로 우리의 가정을 깨끗이 하리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무엇으로 우리 사회를 깨끗게 하리오? 주의 말씀 따라 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