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2:12-17/ 그리스도의 향기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56:02 read : 184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장 15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란 말이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이들’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아가를 읽으면, ‘샤론의 장미’ 혹은 ‘가시덤불 속의 백합’이란 말이 있습니다. 장미나 백합이나 다 좋은 향기를 뿜는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장미처럼, 백합처럼 향기를 뿜는 인간들,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동시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합니까?
구약을 읽으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백향목으로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백향목은 나무도 좋으려니와 향기가 있는 까닭입니다. 옛날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성 소피아 예배당을 지을 때에는 회삼물(灰三物 석회, 황토, 가는 모래의 세 가지를 한데 섞어 반죽한 물질)에 향품을 섞어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가면 언제나 향기가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옛날 성막과 성전 안에는 향단이 있어서 언제나 향을 피운 것입니다.
몇 해 전, 제가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잠깐 머물 때에, 그곳에 인도 사람으로 조직된 말토마교회에 잠깐 가서 예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예배할 때에 옛적 풍속대로 향을 많이 피워 향기가 교회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동방박사들이 아기 주님을 뵈올 때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유향이라는 말은 향기가 있는 물품, 곧 향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등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 유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향기는 고래로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향기는 곧 거룩함, 깨끗함, 사랑과 정성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그리스도인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9장 18절에,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곧 구약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수양을 불살라서 번제로 드렸는데, 이 번제는 곧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 곧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양으로 인간 대신 드리던 예배 제도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부터 온전히 철폐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5장 2절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신 까닭입니다. 곧 십자가에서 그 몸을 제물로써 향기로운 제사를 만민을 위하여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로마서 12장 1절에 그 방법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다시 말하면, 신약시대 이후로는 우리의 몸으로 산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곧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우리가 올리는 기도가 다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는 성도들의 기도를 곧 ‘향’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향을 가득히 담아 하나님께 올렸는데, 그것은 곧 성도의 기도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경건히 드려야 합니다.
예배뿐만이 아닙니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뜻은, 우리 몸의 일상 생활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전생활은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엄숙히 우리의 생활을 스스로 살피고,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의 일상 생활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인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일상 생활뿐이 아닙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우리의 장차 죽음도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최후의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순교자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참된 성도들의 죽음은 다 최후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그 생활이 살 때나 죽을 때나 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 믿는 이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 곧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세상에 나타내야 합니다. 온유, 겸손, 화평, 기쁨 등의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가 은연 중에 나타나야 합니다. 또는 우리 실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곧 우리의 말, 우리의 행실을 통하여 성결과 진실과 충성과 인내와 용기와 봉사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전에 성 프란시스가 한번은 제자 몇 사람들과 같이 아시시의 성 거리에 내려와서 한 바퀴 빙 돌고 그저 수도원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돌아간 후에 제자 중 하나가 “선생님, 오늘 아침은 어찌하여 전도나 봉사를 도무지 하지 않고 그저 돌아왔습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에 성 프란시스는, “우리의 모든 모습만을 보고도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리만큼 살아야 하느니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납니까?
그리고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입을 열어 그리스도와 그 구원의 진리 곧 복음을 전파함으로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복음은 곧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인간의 심령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그 심령을 성결케 하고, 부드럽게 합니다. 전도는 곧 그리스도의 향기의 발산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교인들로서 모인 우리 교회는, 우리의 평화로운 교회 생활과 모든 아름다운 사업 곧 전도나 교육이나 봉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개인으로 또는 단체인 교회를 통하여 이 추한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할 고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주는 영향에 대하여 한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본문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향기이나 그 끼치는 영향은 사람을 따라 정반대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됩니다. 같은 불이나 금과 은은 녹아지고 진흙은 더 굳어집니다. 같은 밤중의 가로등이나 양민들은 즐거이 빛 아래로 걸어가고 도둑놈들은 그 빛을 피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스도의 향기는 이렇게 상반되는 영향을 끼쳤습니다. 빛을 사랑하는 이들은 빛 되신 주님께 즐거이 나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일을 행하는 자들은 예수를 피하였고, 싫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핍박하고 마지막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신자들이 바라는 그리스도의 향기도 구원 얻을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고, 그러나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얻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좇아 그리스도에게 나와 생명을 얻고, 그러나 망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할 뿐만 아니라, 배척하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핍박하며 혹은 죽이고 예배당을 불사르기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이렇게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며 심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향기의 사명은 실로 중대하고 엄숙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할 한 가지 진리를 더 말씀드립니다. 참 꽃에만 향기가 있습니다. 거짓 꽃, 곧 요새 흔히 많은 것처럼 사람이 만든 조화(造花)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생생한 꽃에만 향기가 있습니다. 죽어 마른 꽃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 믿음이 있는 이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습니다. 거짓 믿음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산 믿음에만 향기가 있습니다. 죽은 믿음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참 믿음,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옛날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잔치를 할 때에 마리아는 값진 향유 나드 한 근이 들어 있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으니 그 향기가 온 방 안에 가득 찼다고 하였습니다. 이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의 향기는 지금도 온 세계에 가득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곳에 향기가 따릅니다.
일전에 우리 한국 신문에 크게 보도된 한 여 성도 줄리아라고 하는 여자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본 분들이 우리 가운데 많은 줄 생각합니다. 이 여자는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산 여자입니다. 당시 임진왜란 때에 평양을 점령하였던 일본 사람의 대장 소서행장의 포로가 되어서 일본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에 같이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서행장이란 일본대장이 오래 평양에 주둔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아마 그 여자는 평양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서행장이란 일본 대장은 당시에 새로이 일본에 전파된 복음, 그때는 천주교만 들어왔습니다. 이 천주교를 믿은 분입니다. 그 가정에서 감화를 받아서 이 여자도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일본에서 그들이 다 한국에서 패퇴해서 돌아간 후에, 그 일본 대장 소서행장과 또 같은 대장이었던 덕천가강이라고 하는 대장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나서 불행하게도 소서행장 일가가 망하고, 이 여자는 그 때에 덕천가강의 가정에 역시 포로로 가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인물이 또한 매우 아름다워서 그 음란하고 호색가였던 주인 덕천가강에게 여러 번 그때말로 수청을 들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신앙을 굳게 지켜서 생명을 걸고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두반도라고 하는 일본의 반도, 태평양으로 쑥 나가는 그 반도 끝에 외로운 섬인 신진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유배가 되어 그 여자는 그 섬에 외롭게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신앙을 지키고, 그 섬에 사는 어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가 그 후에 죽어 물론 그 섬에 묻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380년이 지난 금년 바로 이달에, 그녀의 남긴 유해 말하자면 흙이 일본 사람들의 지극한 존경과 함께 한국에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외로운 한국 여성의 향기를 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불멸합니다. 영원합니다. 참 신앙의 향기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금수강산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더러운 냄새가 너무 많습니다. 부정, 부패, 음란, 방탕, 온갖 악취가 이 땅에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땅에 우리를 불러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은, 이러한 세대, 이러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불러서 세운 것입니다.
교회는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동산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하나는 이 그리스도의 동산의 한 가지 꽃입니다. 그 목적은 이 추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한국 기독교인의 고귀한 사명이올시다. 이것이 또한 우리 영락교우들의 숭고한 최고의 사명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이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