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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32:1-8/ 마른 땅에 생명강 / 한경직 목사
    2014-08-26 22:20:19   read : 1717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 같으리로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이사야 32장 2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한 구절입니다. 장차 한 사람이 나타날 터인데, 그는 광풍과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으며, 마른 땅에 냇물 같으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떤 제왕이 능히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성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 중에는 이런 일을 할 만한 이는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옛날부터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오직 메시아만, 곧 그리스도만 이런 일을 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먼저 두 가지 사실을 주의하여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묘사가 이 말씀 가운데 있고, 또 하나는 메시아의 하시는 일에 대한 묘사가 이 말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이 묘사하는 이 세상은 어떠한가?

    첫째는 광풍과 폭우가 있는 위험한 세상입니다. 둘째는 메마른 땅입니다. 셋째는 곤비한 땅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메시아가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첫째는 피하는 곳, 가리우는 곳이 되십니다. 둘째는 냇물 혹은 강의 역할을 하십니다. 또한 셋째는 큰 바위 그늘의 역할을, 곧 안식을 주시는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을 간단히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과연 문자 그대로 광풍과 폭우의 세계입니다. 얼마 전에도 태풍 사라호니 혹은 태풍 리타호가 한국의 남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약 1개월 전에는 미국 동부에 큰 폭우로 말미암아 홍수가 나서 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해가 났다고 우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간 생활에도 때로는 광풍이 일어납니다. 폭우가 쏟아집니다. 어떤 때에는 광풍 같은 데모가 일어날 때도 있고, 폭동이 일어날 때도 있으며, 혹은 혁명, 혹은 전쟁의 광풍이 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생활에도 때때로 환난의 광풍, 실패의 광풍, 질병과 사망의 광풍이 엄습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혹은 우리 심령 속에도 정욕의 광풍 혹은 유혹의 광풍, 의심, 시기, 혹은 분노의 광풍과 폭우가 엄습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폭풍의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은 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숨을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이런 때에 배가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항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폭우를 피하기 위해서 또한 집도 짓는 것입니다. 광풍과 폭우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이러한 위험한 세상에는 아주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이러한 환난을 당하는 인간들에게 피난처가 되시기 위하여, 숨을 만한 곳이 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따금 찬송을 부릅니다. “풍우 대작할 때와 물결 일어날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저를 품어 주소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이런 찬송도 부르는 것입니다. 광풍과 폭우를 피할 수 있는 심령의 피난처를 우리가 다 찾으셨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이 광풍을 피할 만한 곳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쉴 만한, 숨을 만한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본문은 “그 사람은 마른 땅에 냇물 같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냇물은 강물이란 뜻입니다. 큰 물이 넘치는 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막같이 메마른 땅이기도 합니다. 성지는 대부분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일찍이 메마른 시내 광야를 지나온 경험도 있습니다. 사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들보다 메마른 땅의 의미를 더 잘 안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는 풀과 나무가 없습니다. 그러니 꽃이 없습니다. 향기도 없습니다. 새의 노래도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즐거움이 없고, 만족이 없고, 그저 건조무미한 땅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또 어떤 면에서는 이런 방면이 있습니다. 쓸쓸합니다. 황폐하여졌습니다. 삭막합니다. 모든 것이 메말랐습니다. 인정이 메마르고, 의리가 메마르고, 이해가 메마르고, 피차 이해해 주는 마음이 메마르고, 심지어 양심까지 메말라집니다. 이 시대를 과학시대 혹은 우주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의 심령은 아주 메마른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기갈이 심한 세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인간들이 이 메마른 땅에서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인간들은 허무감, 좌절감, 고독, 공포심, 절망에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심령의 깊은 속에 있는 이 기갈은 사회적으로 온갖 불행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폭행, 범죄, 자학행위 혹은 자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리해서 어떤 나라에서는 소위 히피운동 혹은 환각제를 합법화해 달라고 하는 운동까지 일어나는가 하면, 또 다른 나라에서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이가 자살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땅, 이러한 시기에 가장 요구되는 것은 냇물입니다. 곧 강입니다. 생명의 강입니다. 메마른 심령에 생명을 줄 수 있는 풍부한 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메마른 땅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생명강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메마른 땅을 흐르는 생명의 강입니다. 저는 몇 번 비행기로 애굽을 지나가면서 공중에서 그 나라 전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애굽이 위치한 북부 아프리카 일대는 거의 사막과 광야입니다. 이 사막지대에 어떻게 애굽이란 나라가 생겼는가? 그 원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곧 이 황폐한 사막지대에 나일강이란 큰 강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애굽은 이 강 좌우편으로 약 60마일 넓이로 푸른 나무와 곡식으로 덮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말하자면 요샛말로 녹지대, 긴 그린벨트처럼 공중에서는 애굽이 보입니다. 나일강은 애굽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생명강입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역할이 또한 이러합니다. 메마른 땅에 초목이 무성하며, 오곡백과가 풍성한 생명을 주님께서는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큰 강변에 위대한 문명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말한 대로 나일강변에 애굽의 문명이 일찍이 일어났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변에 옛날 바벨론 문명이 일어났고, 황하와 양자강변에 옛날 중국문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복음이 가는 곳에 기독교 문명이 일어났습니다. 예술과 과학이 발전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이 메마른 세상에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강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강이 흐르는 곳에는 사막에도 꽃이 핍니다. 열매가 맺습니다. 아름답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사막같이 메말랐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실 때에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아름다워집니다. 우리의 가정이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 가정이 아무리 메마른 사막 같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웃음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습니다. 아름다워집니다.

    강의 역할은 물론 다방면입니다. 아마 그 가운데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깨끗하게 하는 역할일 것입니다. 공중에서 내리는 가는 비는 공기를 깨끗이 씻고, 산과 들을 깨끗이 씻고, 농촌과 도시를 깨끗이 씻어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멀리 짠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역할이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에 어디나 깨끗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오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여집니다. 우리 가정에 오실 때에 우리의 가정이 깨끗하여집니다. 사회도 깨끗하여집니다. 나라도 깨끗하여집니다.

    기억하십시다. 강은 근원이 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저 높은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립니다. 나일강은 중앙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흘러내립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생명강은 저 높고 높은 하늘의 보좌에서 흘러내립니다. 그러므로 이 물은 가장 맑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새롭습니다. 인간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시원하게 하여 줍니다.

    제가 여러 해 전에 미국 덴버에서 한 여름을 지날 때에 어떤 날 친구들과 같이 거기 제일 높은 산 마운트 에벤스라고 하는 산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 산에 거의 다 올라가다 보니 길가의 바로 바위 틈에서 나오는 샘물이 있습디다. 그래서 그 물을 옆에 있는 컵에 받아서 마시니 얼마나 찬지, 도무지 마실 수가 없으리만큼 그렇게 찼습니다. 왜 그 물이 그렇게 차고 맑은가? 그것은 라티산 꼭대기를 덮은 눈 속에서 그 물이 바로 흘러내리는 까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이러합니다. 가장 맑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새롭습니다. 왜? 하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인 까닭입니다. 세상 어떤 사상가나 철학자가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생명강이 풍성히 흐르는데 왜 어떤 이는 목마르게 사는가? 어찌하여 이 생명강변에 나와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흡족히 마시지 않는가? 어떤 이는 이 강변에 나오지만, 말하자면은 마시지는 않고, 그저 보기만 합니다. 어떤 이는 물에 대해서 생각만 합니다. 기독교 철학만 배우는 것은, 머리로 배우는 것은 부족합니다. 기독교 윤리만 배우는 것,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마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생수가 우리 심령 속에 충만해져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해야 합니다. 왜 독실히 믿지 못합니까? 왜 작은 컵으로만 이 물을 마십니까? 흡족히 생명강변에 나와서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마실 뿐더러, 우리가 생명강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왜 이 뜨거운 여름에는 사람들이 강물 속에 들어갑니까? 들어가면 시원한 까닭입니다. 좀 우스운 말 같지만, 옛날엔 우리 믿는 사람들의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 별명은 ‘물고기’라고 했습니다. 이상한 별명이지요. 물고기라고 했습니다. 그건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라고 하는 말을, 헬라말의 첫 자를 모아 놓으면 ‘익투스’ 곧, 헬라말로 ‘물고기’란 말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 핍박이 심해서 예수를 오늘날 북한처럼 내놓고 믿지 못할 때에 믿는 사람들이 만나서는 조용히 땅에다 물고기를 그려서 피차에 믿는 사람들을 서로 알게 되었고, 이렇게 물고기가 신앙의 암호가 된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삽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제일 행복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성경은 주 안에 있으라고 권합니다. 우리 주님도 너희는 내 안에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행복스럽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생명강이 되시는 주님께 나아와 생수를 흡족히 마시고, 주 안에서 살면서 풍부한 생명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메마른 이 땅에 생명강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보내신 아버지시여,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기갈한 우리 심령 속에 이 시간 주님 주시는 생명수로서 흡족히 먹여주시고 우리가 이 생명강 안에서 살 수 있는 은혜의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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