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0:1-11/ 백성을 위로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7 10:16:22 read : 182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장 첫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얼마나 반가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잡혀가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하였으며, 눈물도 흘린 것입니다. 시편 137편에서 보는 대로, 그들은 바벨론 여러 하숫가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으며, 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고, 그 외로운 이역에서 시온의 기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예언자를 통하여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얻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그 백성은 다시 시온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는 이 말씀을 잠깐 묵상하고자 합니다.
‘위로’라고 하는 말은 진정, 진통, 곧 고통을 더는 의미로부터 회복 곧 상처를 회복하며 피곤한 데서 회복하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힘을 더하여 용기를 돋워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생활에 있어서 이 위로는 매우 필요합니다. 육체의 상처에 약이 필요한 것처럼, 심령의 상처에 위로가 필요합니다. 시드는 곡식밭에 단비가 필요한 것처럼, 메마른 심령 위에 위로의 말씀이 또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이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자연계를 통하여서도 우리 인간을 위로하십니다. 자연은 우리 인간의 육체에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름다운 대자연은 피곤한 인간 심령에게도 언제나 많은 위로를 가져오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다 우리의 인간을 위로합니다. 아름다운 아침 해와 저녁노을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유쾌하게 합니까? 캄캄한 밤에 반짝이는 별들은 절망에 허덕이는 인간들에게 소망을 주며 봄 동산에 웃는 꽃들과 새들의 노래는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것입니다. 푸른 하늘, 망망한 바다, 아름다운 산천초목은 상한 인간의 심령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로하기 위하여 또한 우리에게 예술을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노래와 음악을 주셨습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음악이 얼마나 인간 심령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바로 어제 저녁에 김순애 교수께서 새로 작곡한 성탄 캐롤의 연주회가 우리 기념관에서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오셔서 그 노래를 들으신 분들은 다 큰 감명과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음악뿐이 아닙니다. 다른 방면의 예술 곧 아름다운 그림, 조각, 시, 문학들도 모두 인간 심령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옛날 무덤 속에도 종종 아름다운 벽화를 우리는 찾아봅니다. 장례식을 할 때에 어떤 때에는 고인이 즐겨 부르던 찬송가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인이 생전에 특별히 많은 위로를 받았던 찬송가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찬송가들이 몇 장씩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이 거룩한 음악, 곧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위로하여 주십니다. 상처를 회복하여 주시고, 새로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계를 통하여 또는 예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제일 큰 위로는 크리스마스에, 그때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탄생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물론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말은 ‘슬픈 자를 위로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신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그들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도, 갇힌 자를 해방하여 주는 것도 그들을 위로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렇게 가난한 자와 포로 된 자와 압박 받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여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며, 근심 대신에 찬송을 주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위로의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하신 말,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또는 천군 천사가 부른 그 노래의 한 구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이와 같은 노래를 한 것은 다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모든 슬픈 자들이 위로를 받아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혜사 성령 곧 위로의 영이 친히 임재하셔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직접 회복하여 주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위로의 근본이 되는 성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습니까? 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눈물 골짜기와 같은 이 세상에 큰 위안처가 되는 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위로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늘 읽고 잘 아는 시편 23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안위’라는 말은 ‘위로’라는 말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이것은 물론 다윗의 경험이올시다.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 까닭은 주께서 같이 계시며,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항상 위로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 여기 앉은 우리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파도 높은 이 20세기 또 이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도 역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몇 번이나 지나온 분들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일제의 압박 시대를 지나온 분도 계신 줄 압니다. 38선을 넘어오신 분도 있는 줄 압니다. 해방 후 혼란의 시대, 6?25의 동란, 거듭되는 혁명의 시대, 이 모든 때를 지내온 분들도 계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때까지 지나온 것은, 또한 우리가 이 하나님의 전에서 이 시간 이 예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험악한 가운데에서도 간단(間斷 끊임)없는 주님의 보호와 위로를 받은 까닭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였습니다. “상처 없는 마음이 없고, 눈물 자국이 없는 얼굴도 없다.”고. 사실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고해 같은 세상에서 환난, 실패, 재난, 질고, 슬픔, 눈물 골짜기를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위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과거의 많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 현재에도 신앙생활을 통하여 많은 위로를 받는 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위로를 받았으므로, 여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위로하는 자가 또한 되어라”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울라”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는 자로 함께 울라고 하는 말은 위로하라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에는,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위로자가 되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한 권면하십니다.
서로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서로 위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평안하나 내일 무슨 일을 당할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내가 건강하나 언제 병에 걸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평안할 때에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해야 하고, 내가 건강할 때에 병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해야 하고, 내가 즐거울 때에 슬픔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혹 환난을 당할 때에, 내가 혹 병에 누울 때에, 내가 혹 슬픔을 당할 때에, 그들이 역시 나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위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심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상이 날 때에 서로 위문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는 위로의 계절입니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위로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 정신은 남을 위로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때에 위로를 게을리하리오마는, 특별히 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우리는 위로의 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불우한 이들, 외로운 이들, 나그네들, 병든 이들, 가난한 이들, 무의무탁한 이들을 위로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 나라를 위해서 일선에서 밤낮 수고하는 국군장병들, 혹은 국내의 치안을 바로 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경관들,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수고하는 여러 분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서로 위로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위로할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이는 노래를 불러서 위로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병원 같은 데 가서 찬송을 부름으로 많은 환자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쓸 줄 아는 이는 글을 씀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위문편지를 써서 우리 국군 장병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이는 선물을 보내서 위로할 수 있습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에서는 특별히 일선을 지키는 국군장병들을 다 각 구역에서 연합해서 위문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모든 구역에서 협력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서로 위로하고 서로 위로를 받기 위해서 기도를 또한 힘써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올시다. 우리 인간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께 나와 우리 자신들이 먼저 구원과 위로를 받고,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위로하는 위로의 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6절을 들어보세요. “저희가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때가 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들어보세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세상에서 위로의 주님을 영접하여 위로를 받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이들은 장차 이러한 영원한 하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본 교회에는 장례식을 일곱 번을 거행했습니다.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세상은 실로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에게 금생과 내생에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몇 주간 전에 삼각산 인수봉에 올라갔던 청년들이 자일을 잡고 줄을 잡고 내려오다가 그만 걸려서 6~7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을 당하였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우리가 읽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을 올라가는 등산 코스에, 한 옆에 높은 봉우리 위에는 흰 대리석으로 만든 큰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위에는 ‘오직 예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대리석 십자가 배후에는 실화가 있습니다. 어떤 유력한 한 실업가가 자기의 딸을 데리고 알프스 산을 관광하기 위해서 그 코스로 등산을 하다가 그 꼭대기에 올라와서 그만 자기 딸이 실족을 해서 그 아래 벼랑에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그 딸을 그곳에서 잃었습니다. 이 딸은 이 실업가의 무남독녀였습니다. 그러니 이분이 얼마나 마음이 상할 것입니까? 그 슬픔을 잊기 위해서 이 실업가는 온 세계를 방랑하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도 가보고, 저 나라도 가보고, 구경할 데 있다면 다 가보고, 그러나 이분은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께 온전히 몸과 마음을 바치게 되고, 주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은 후에 너무 감사해서 그 자리에 대리석 십자가를 세우고 ‘오직 예수’ 인간을 위로하실 분은,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위로하실 분은 오직 예수라고 새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주께 나와 위로를 받고, 그리고 또한 다른 이를 위해서 위로의 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위로의 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우리 한국 백성을 우리가 꼭 위로해야 되겠습니다. 북한 동포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가? 기도하면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영원한 하늘나라의 위로를 받을 때가 옵니다. 거기는 다시 눈물이 없고, 영원한 생명이 있을 뿐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위로의 근본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함을 드리옵나이다. 이 험악하고 눈물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을 보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이 주님께 나아와 내가 먼저 위로를 받고 눈물 흘리며 인생길을 지나가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모든 동포들에게 위로의 사자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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