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51:1-12/ 중심의 진실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51:10 read : 1871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아침에는 시편 51편을 봉독하였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참회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그는 솔직히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죄를 깨끗이 씻겨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절에 내려가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좀더 문자적으로 다시 번역하면, “마음의 속 부분에 진리를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내용 전체를 보아서 여기에서 ‘진리’라는 말은 ‘진실함’으로 아마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할 줄 생각합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마음의 그 속을 보느니라. 오늘 본문의 뜻은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곧 마음의 속 부분에 진리 혹은 진실함을 요구하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표면적 의식만이 아니고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도 진실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우리 주님도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 중심에, 우리의 속 부분에 무엇이 가득히 쌓여 있는가? 곧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선을, 혹은 진실함을 가득히 쌓으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오늘 아침, 이 중심의 진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 중심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전파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마침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역시 나오는 것을 보시고, 그는 그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은 준엄한 책망을 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들은 분명히 중심의 진실한 회개가 없이 세례를 받으러 나왔던 모양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그는 요구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처음 믿기 위해서 교회에 나올 때에 먼저 나와서 등록을 합니다. 이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과거의 죄에 대해서 중심의 속 깊은 곳의 진실한 회개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심령 깊은 곳에 죄에 대한 애통과 통분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죄를 지은 후에 심히 통곡하면서 중심에서 회개하였습니다.
참 회개에는 이 중심의 애통의 눈물이 있습니다. 이 애통의 눈물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중심에서 온전히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죄를 온전히 끊어버리고 방향을 전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죄를 사랑하였으나 이제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도 죄를 온전히 미워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는 영혼 깊은 곳에까지 모든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물론 먼저 육에 관한 보이는 죄들을 회개합니다. 술 마시던 것을 먹지 아니합니다. 음란하고 방탕한 곳에 갔겠지만 이제는 가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만 그쳐서는 아니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정신적인 죄들이 많습니다. 곧 교만, 시기, 질투, 거짓, 미움 등등 이런 모든 것까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버려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읽었지만, 시편 24편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이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고 곧 손이 깨끗하며” 겉으로부터 먼저 청결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기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하나님은 중심의 속 부분에서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여덟 가지 복을 가르쳐 주실 때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외부만의 회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그 속 깊은 곳까지 진실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 하나하나에게 중심의, 그 속 부분에서 진실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산상보훈에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구약에는,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나를 부르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어찌하여 행함이 없는가?” 그것은 그 속에 있는, 마음 속에 있는 나무, 곧 신앙의 나무가 죽은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20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신론자 곧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는 허무주의자, 아무것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어떤 신학자는 말하였습니다. 믿기는 믿는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도 실상은 무신론자들과 허무주의자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곧 관념적으로는, 겉으로는, 머리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실상 그 중심에는 그 깊은 곳에서는 잠재의식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사실 천지의 창조자시요, 인간 역사의 지배자시요, 우리 하나하나의 운명을 다스리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중심에,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믿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하는 태도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이는 죄를 함부로 짓지 못합니다. 각각 중심에 스스로 물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가? 혹은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사실 중심에서 영혼의 불멸을 믿으며 내세를 믿습니까? 천당과 지옥을 믿습니까? 오직 우리를 구원하실 이는 예수밖에 없는 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믿습니까? 그 믿음의 진가 여부는, 그 믿음이 사실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믿지 아니하는 그의 가족, 그의 친척, 그의 친구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의 길을 걷는 줄 분명히 알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그저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중심에 진실한 신앙이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유명한 배우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배우들은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연극을 해서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데,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엄숙한 사실을 가지고도 그렇게 무력하게 전도를 하니 웬일인가? 내가 만일 당신들의 신앙을 조금이라도 가졌다고 하면 하루라도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수표를 가지고 돈을 찾기 위해서 은행에 갔다가 가짜 수표인 것이 나타나서 돈을 못 받을 뿐더러 조사만 받고 돌아왔다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신앙이 중심의 진실한 신앙인가, 혹은 가짜 신앙인가? 이것을 미리 살펴보아야 이다음 천국에 들어갈 때에 낭패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 깊은 곳의 진실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을 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실 때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혹은 이것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시몬 베드로는 곧 대답했습니다. “그러하외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또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는 베드로는 근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어떤 사람보다도, 무슨 물건보다도, 무슨 돈이나 지위나 향락이나 정력이나 세상에 있는 무엇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와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 중심에 사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가슴을 헤치고 일편단심을 보세요. 우리가 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고 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다 이 대답을 할 만큼 주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곧 영적 간음이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현대에도 아직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 종교들이 많습니다. 영적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보이는 우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무엇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명예나 지위나 무엇이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곧 우상 숭배입니다. 곧 영적 간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야고보서 4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데마 같은 청년은 수년간 바울을 따라다녔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를 떠나 데살로니가로 간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우리 속 깊은 곳의 진실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오늘은 현충일이올시다. 말만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며 그 유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이 순국 애국자들이 우리에게 염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중심의 진실한 애국심을 요구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나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애국심을 요구합니다. 열매를 맺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애국심을 요구합니다.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악한 공산주의 사상을 몰아내고,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통일된 민족 건국을 요구합니다. 공무원들만 아닙니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애국심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 주님을 위해서 문자 그대로 생명을 바친 수다한 남북한의 순교자들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들은 중심에 내 생명보다도 주를 더 사랑해서 그들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이 거룩한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중심의 진실한 신앙과 사랑으로써 우리 온 민족을 주님께로 인도해서 이 땅에 과연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중심의 진실한 신앙, 사랑, 봉사, 전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본 교회에서 또한 꽃주일로,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이날을 지키기도 합니다.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중심의 그 속 부분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진실한 사람들로 길러야 하겠습니다. 진실한 신앙과 사랑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거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교사들과 여러 어른들이 진실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다른 이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하나가 중심에 진실한 회개, 사랑,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하심을 원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의,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참된 회개와 믿음과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아버지시여, 오늘 아침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이런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순국 영령의 유가족들을 축복해 주시고, 남북한의 순교자들의 유가족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해 주시고, 우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또한 축복해서 이런 중심의 큰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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