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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18:16-17/ 부모와 어린이 / 조용기 목사
    2014-09-07 08:35:27   read : 1192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모와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어린이 주간을 맞이하게 되면 문득 어린이가 우리들에게 과연 있었구나 이와 같은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는 너무나 삶의 바쁜 일정에 휘말려 어른의 세계속에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와 같은 어른 일변도의 삶을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어린이들이 어른들 무관심 속에서 순식간에 청소년들로 나라나고 또 우리의 슬하를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들이 돌봐주지 않은 만큼 영적인 정신적인 공해 속에서 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대에는 비행 청소년 문제가 사회 국가적 규모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대담하고도 몰인정한 강도 강간 살상등의 범죄이야기는 이젠 신문의 사회면에 다반사처럼 장식하고 있습니다. 해가 가면서 어린이 및 청소년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 어린이들을 내버려 두고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눈 코 뜰사이 없이 어른들 세계속에서만 살아가지 말고 이제는 일단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주위에 어린이들의 울부짖음과 탄식과 그들의 고통을 덮고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여러분과 나의 생명의 연장이요. 장래의 희망이며 조국의 내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어린이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봐야 겠습니다.

    성경 시편 127편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는 여호와가 주신 기업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상 우리가 기업이라는 말을 하면은 유산을 말하던지 재산을 말하던지 사업을 경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독히 자녀는 야웨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마음대로 만든 기업도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방치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를 자기 개인의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가끔가다가 보면 가족들이 자녀를 데리고 가서 동반자살을 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가 죽을 일이 있으면 자기 혼자 죽을 것이지 자녀를 데리고 함께 자살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하나의 자기 개인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는 야웨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기업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녀를 마음대로 취급하면 하나님께로부터 형벌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책임 있게 키워야 합니다.

    여러분 기업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자란 것 보았습니까.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열심히 돌봐야 기업이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부모가 많은 관심을 투자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투자하고 금전을 투자해서 열심히 돌봐주어야 이 자녀라는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기업을 자녀로 맡겼다는 것은 기업 경영을 잘 해서 이것을 파산시키지 말고 발전시키라는 것인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파산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신문에 보니까 학교에서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다가 십여명의 남학생들이 세사람의 여학생들을 끌고 산 속으로 들어가서 폭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폭행한 사실을 집안에 연락하니까 부모들은 이렇게 착한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자기 자식들의 행위를 전혀 모르고 있더랍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미 그 학생들은 불량배로써 지적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느 정도 자기 자식을 무관심했던지 학교에서 불량배로 지적하고 있는 자식을 언어 심사 행동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업 경영에서 제로점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기업이 파산한 것입니다. 이런 자식을 기른 부모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에 파산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고도 난 다음 하나님 앞에 떳떳이 얼굴을 들고나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업을 잘 운영하면 기업의 이윤이 남고 복이 돌아옵니다. 여러분 잘 키운 자녀를 통하여 부모에게 하나님이 복이 돌아가게 한 것은 당연한 위치입니다. 자녀를 잘 키워놓으면 그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생활적인 축복을 부모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에 기업 일은 반드시 잘 운영하면 이윤이 생겨나고 그 이윤은 생활을 유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잘 키워놓으면 굉장한 가정에 행복을 가져오게 됩니다. 성경에는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녀를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자녀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이 있는데 성경에는 야웨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인정을 받고 상급을 받으면 기쁨과 만족이 마음속에 옵니다.

    이처럼 자녀를 잘 길러 놓으면 일생 부모에게 기쁨과 자랑과 만족이 되는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녀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이를 물리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들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장사가 전통의 화살을 가득 채워놓고 활을 들고 어떠한 승승장부라도 두렵지 않고 어떠한 원수 앞이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 그는 전통의 화살이 가득하고 활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를 방어 할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처럼 잘 기른 자녀는 부모에게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 커서 부모의 뒤에 함께 있으면 부모가 의지가 되고 그리고 원수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부모에게 굉장한 축복으로 허락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부모들이 너무나 이기주의 적으로 자녀에게 무관심하고 부모 위주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도 파산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상급도 짓밟아 버리게 하고 자녀가 오히려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원수가 되는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부모의 잘못된 기업 경영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을 잘 길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일 첫째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교육을 아무리 잘 시켰다고 해도 악마의 자녀로 만들어 놓으면 부모는 자녀에 대한 의무를 철저하게 잘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을 바꾸겠냐고 했는데 자녀는 벌써 자기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원한 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자녀를 육체만 먹이고 기르고 가르쳤다간

    나중에 그 속 사람이 세세토록 지옥 불에 떨어져서 울며 탄식하며 부모가 나를 잘 못해서 부모가 나에게 하나님을 잘못 알게 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울부짖을 때 여러분 천당에 가 앉아 있은 들 부모의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부모는 그 무엇보다 도 자녀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뭘 압니까. 철이 없어서 예배드릴 때 시끄러우니까 한쪽 방으로 몰아버리고 어린 아이들은 쫓아버리고 어른들만 예배를 드려야지 어린아이는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여기에 예수께서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하고 하신 것을 보면 어린 아이가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어린아이에게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왜 예수께서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하고 하셨습니까. 그러므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놀랄 만큼 어린아이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능력을 그들 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는 알고 어린 아이때 부터 그리스도를 전도하고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들은 직감적인 신앙이 깊습니다. 어른들은 이 세상에게 때가 마음속에 와락 해지고 그리고 인간의 여러 가지 이론과 논리를 내 세우므로 그리스도의 계시를 잘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직감이 강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할 때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직감적인 계시를 그대로 받아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보면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깨어지고 회개해서 그 마음이 단순해져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라는 것은 세상을 속고 속이고 그리고 마음이 와락하고 이론이 많아서 하나님의 계시를 믿을 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환경에서 깨어지고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고 솔직해져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그 마음이 되어야 예수를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오히려 어린 아이에게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겸손합니다. 자기 잘난 체를 안 하지요. 어른들은 자기 잘난 체 하고 자기 체면을 세우고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나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느냐. 그래서 교회 나가가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주 단순해서 자기 잘난 체를 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에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이같이 마음을 겸손하게 낮출 때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굉장히 크게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났다고 해서 그래도 난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아주 납작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오면 하늘나라에는 대통령도 장관도 군대에서 장군도 졸병도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와서 사람 차별하면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두다 어린 아이처럼 낮아져요. 그리고 낮으면 낮아질수록 하나님께서는 높게 생각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사회적인 지휘가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사회의 지휘에 따라 대접받을 줄 생각하고 왔다가 크게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교회는 사회적인 지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나와있는데 감히 하나님 앞에서 사회적인 지휘가 뭡니까. 죄인들이 와서 무릎을 꿇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깨어지고 낮아지는 것이 교회지. 교회에서 어떻게 사회적인 지휘를 인정해 준다는 말입니까. 교회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천국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탐욕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게 하나님을 받듭니다. 어른들은 마음속에 가지가지 욕심과 탐욕을 가지고서 자기의 욕심의 입각해서 하나님께 조건도 내어 걸고 억지소리도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 오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만 어린 아이들은 그 마음속에 탐욕이 없기 때문에 가장 단순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깁니다.

    누가복음 18장 17절에 보면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같이 탐욕 없이 진실하게 하나님께 받드는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천국과 어린 아이에 관해서 여러 가지 말씀으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에 품에 안겨있는 그 자녀들이 어린아이로 있을 때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난 다음 전도하려면 이론이 많고 조건이 많고 반발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로 있을 때 그리스도를 심어주면 그는 쉽게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일 때 그 마음이 부드러울 때 그리스도를 심어놓으면 그 심어놓은 신앙은 장년이 되도 떠나지 않습니다. 모세가 어린 아이 때 젖먹일 때 그 어머니 품에서 자라고 그 다음 그 가슴에서 떼어내서 바로의 품에 들어가서 청년이 되어서 애굽의 문물은 다 배웠지만 어머니 품속에서 배운 야웨 하나님의 신앙이 그 몸을 완전히 부여잡고 인격을 부여잡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사십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독립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광야에 들어가서 팔십이 되도록 있었지만 어린 아이 때 어머니 품속에서 배운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거리를 떠나지 않아서 결국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한 살부터 여섯 살 때까지가 가장 그 인격의 형성기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부모에게 배운 사실을 일평생동안 그 마음속에 잊어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어린 아이들은 교육은 가정에서 받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다 교육을 시켜서 인격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지 인격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님들 밑에서 그 인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제일 먼저 집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언어입니다. 가정에서 말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사람의 인격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사람은 나쁜 말을 합니다. 사나운 사람은 사나운 말을 합니다.

    더러운 사람은 더러운 말을 해요. 고운 사람은 고운 말하고 착한 사람은 착한 말하고 부드러운 사람은 부드러운 말을 합니다. 내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혀가 우리의 인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에서 6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게라 하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이 혀가 성경말씀에 온몸을 다스리고 이 혀가 온몸을 불 태어 버릴 수도 있고 지옥의 사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린 아이가 집안에 있을 때 부모로부터 말을 배웁니다. 그 말이 인격을 형성하는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말은 사상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통해서 어린아이는 생각하는 것을 배우고 그 생각이 마음속에 정리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들이 더러운 말 사나운 말 파괴적인 말을 이것을 듣고 어린 아이가 그것을 배워서 그것을 사용하므로 그러한 사고가 그 인격을 형성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집에서 고운말 쓰기 운동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나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해요. 저는 우리 가정에서 어린이를 키울 때 언제나 저의 집사람이 저보고 어린아이에게 존칭어를 쓰라고 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어린 아이보고 잘 주무셨어요. 기뻐요. 말씀 잘 들어야 되요. 학교 조심해서 가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 집사람이 없을 때 야. 학교 갔다와. 임마 옷을 왜 이렇게 입어. 그러다가 우리 집사람이 있으면 깜짝 놀라서 옷 잘입어요.
    밥은 깨끗이 먹어야 되요. 그랬는데 나중에 제가 알고 보니 효과가 있어요. 학교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가정방문해서 하는 말이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길렀기래 고운 말을 씁니까.

    학교에 와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꼭 존칭어를 쓰고 고운 말을 씁니다.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가정에서 고운 말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학교에나 사회에 나가서 고운 말을 쓰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이 고운 인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는 가정예배를 보고 목사의 아이들이니까 자라날 때 십대소년들의 비행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좋은 말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좋은 말이 언제나 좋은 행동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교육이라 언어 교육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부터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욕하고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절대로 금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어린아이들은 가정에서 삶의 가치를 확립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은 가정에서 확립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사는 생애를 보니 세속적이고 방종하고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로구나.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금방 배워서 그 인격전체가 세속적이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것으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어릴 때 저희 아버님께 배운 교훈을 지금 50십이 넘도록 내 뼈 속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것도 모를 때도 가만히 보니까 이웃집을 보면 아버지가 술이 많이 취해서 집에 와서 물건을 던지고 그 부인을 때리고 그 아이들을 발로 차고 온갖 욕을 하는 것을 제가 여러분 들었어요.

    그리고 그 어머니도 화가 나면 아이를 때리면서 야 이 범 물고 갈 놈아. 혀 빠질 놈아. 그런데 그 이웃과 같이 있는 우리 집에는 우리 어머니도 절대 그런 욕하는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번도 혀 빠질 놓아. 들은 소리 없어요. 그러다가 가만히 보니까 아버님이 절대로 술도 안 잡수고 담배도 안 핍니다.

    나는 아직까지 아버님이 술이 취해서 술 주정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한번도 못 봤습니다. 그리고 담배도 피지 아니하시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술도 안 잡수고 담배도 안 피시고 우리 어머니 아버님은 욕도 안 하는데 우리가 그래서 되겠느냐. 이것을 우리 영혼 속에 꽉 박혔습니다.

    6.25사변 때 사회가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먹고살기 위하여 허덕일 때 저도 부두에서 노동도 하고 사나운 아이들 사이에서 일도 했는데 그 아이들은 전부 술 먹고 담배피고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제가 예수를 믿지 않았어도 저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담배도 입에 안되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왜냐 아버님이 내게 보여준 생애의 그 모델이 내 영혼 속에 꽉 들어 박혔기 때문에 아버지가 잡수지 않는 술을 내가 왜 먹어야 되느냐. 아버지가 담배를 피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담배를 피느냐. 우리 아버지가 방탕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방탕을 하느냐. 이것이 내 생활에 한 룰이 되어서 내 영혼을 붙잡았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간 아홉이 자랐는데 아홉중 한 사람도 방탕한 사람이나 속썩인 사람이 없이 자랐습니다. 그것을 내가 보게 될 때 가정에서 부모들의 모범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생 가치를 결정하는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세속적이고 방종한 삶을 살고 난 다음 장차 자녀들이 세속적이고 방종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악한 사람들이 되고 난 다음 가슴을 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강건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서 자녀들이 자연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활이 몸에 들어와서 이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도덕적인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우리 부모들을 보면 한국은 자녀들을 너무 방종하게 키웁니다. 예배당에 가보면 미국이나 구랍파나 일본을 가보더라도 예배당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없어요. 어린 아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강건하게 예배드립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부모에게 끌려나가서 얻어맞아요. 그런데 미국이나 구랍파 가면 한국 이민들 교회를 가면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며 강단에 와서 내 옷을 잡아당깁니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와서 오줌을 싸고 해도 부모들이 오냐. 오냐. 오냐 합니다. 과잉 보호 과잉 사랑, 이런 것들이 오늘날 유약한 자식들로 만들고 반발적인 자식을 만듭니다.

    부모가 강건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뿐 아니라 잘못할 때는 단호하게 꾸짖고 채찍을 때려야 합니다. 채찍 때린다고 죽지 않습니다. 과잉보호 내 자식이라고 과잉 칭찬하는 것 좋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언제나 올바르게 자식들을 키워야지 동물적인 애정만 가지고서 자식을 키워서는 안됩니다.

    좋은 것은 좋고 안 되는 것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나중에 그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식들은 삶의 모델을 아버지 어머니로 가지고 살기 때문에 아버지가 횡포하면 아 인생사는 것은 횡포 하는구나. 아버지가 어머니 발로 때리는 것을 보면 자기도 배워야지 했다가. 장가가서 마누라를 때리고 발로 찹니다.

    어머니가 치마 바람을 날리는데 그 밑에 자란 딸은 아 인생은 치마 바람을 날리는구나 후에 시집가서 남편 멱살 잡고 막 쥐어박고 치마 바람을 날리는 것이 인생이구나.
    그렇게 합니다. 내가 가만히 목회 삼십년을 하고 보니까 가정에서 이혼을 해서 고통을 당하고 슬픔을 당한 그 가정이 자녀들이 이혼 안 할 줄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가하고 시집가서 쉽게 이혼하더랍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부모에게 당한 그 마음과 슬픔을 충분히 교훈을 받을 줄 생각하고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삶의 모델이 되어서 그들이 쉽게 이혼해 버리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지 인격을 가르치는 곳은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올바른 교훈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셋째로, 어린 아이는 여러분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어린아이는 자랄 때부터 개성과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경북 안동에 있는 지지나 학교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거기 있는 아이들은 바보인데 여러분 이 바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데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십니까. 수도꼭지를 열었다가 닫는 것을 한번이면 배울 것을 바보 어린 아이들에게는 삼천 번을 가르쳐야 수도꼭지를 열었다가 닫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국민하고 졸업해도 보통 유치원 아이들보다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지지나라고 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 그 지지나들 속에 특별한 은사를 주어서 한가지 소질은 다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수를 놓는 아이들이 있는데
    여자 대학교 가정과에 나온 사람들이 수를 놓는 것 보다 더 잘 놓아요. 목각을 만드는데 그 목각하나를 만드는 것은 전문가만큼 잘해요. 바보이지만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질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굶어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개성과 소질 주었는데 그 개성과 소질을 무시해 버리고 출세 일변도로 일류 대학에 가거라. 일류 의사가 되거라 해서 아이들이 죽을 지경입니다.

    소질도 자기 개성도 다 짓눌러 버리고 일류 병이 들어서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그러나 그 부모는 대통령도 못 되었으면서 자식보고 대통령 되라. 자기도 못된 의사가 되어라. 너는 판사가 되어라. 되고 싶으면 자기가 되지 왜 아이들보고 야단입니까. 부모의 욕망의 희생물로 자녀들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쉽게 자녀들을 좌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교육에서 에디슨의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에디슨이 학교에 갔을 때 학교의 선생님이 애들아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에디슨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입니까.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고양이 더하기 쥐새끼 한 마리는 고양이가 잡아먹기 때문에 한 마리입니다. 그러나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도 될 수 있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기가 막혀합니다. 저 아이는 바보이니까 이 바보는 내가 가르치지 못합니다.

    데려가세요. 그래서 에디슨 어머니가 당신이 모르는 이 아이는 창조적인 머리가 있다. 당신이 바보라고 가르치지 아니하면 내가 가르치겠다. 내가 가르치겠다. 그 어린아이를 좌절시키지 않고 가르친 결과로 역사적인 인물로써 발명왕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좌절시키지 말아야 되고 그들 속에는 숨은 보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속에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바보라고 해도 숨은 보화가 그 속에 있습니다. 미국에 힐라델피아 가서 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힐라델피아의 어떤 사람이 큰 농장을 사서 목장을 했는데 풀이 잘 나지 않고 그 주변에는 시냇물이 거스름이 있어서 소가 물을 잘 마시지 않고 해서 그는 목장으로 먹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캐나다에서 석유 수출을 하는 사촌 동생에게 편지를 해서 열심히 석유 공부를 해서 그 농장을 헐값으로 팔고서 캐나다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농장을 산 사람이 쓸데없는 땅이니까 풀도 자라지 않고 짐승도 잘 안되고 하는데 나중에 왜 풀이 자라니 않을까 하고 코를 데고서 냄새를 맡아보니까 땅에서 석유 냄새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 도랑에 거름을 보니까 거름을 다 모아 가지고서 불을 붙이니까 물이 확 타거든요. 그래서 석유 회사하고 계약을 해서 보니까 그 농장 전체가 기름 위에 떠있어요.

    완전히 석유 광이요. 미국의 저 동부해안에서 가장 큰 석유광이었습니다. 그것을 헐값으로 팔고 나간 사람은 자기의 농장이 기름 위에 떠있는 것도 모르고서 자기는 그것을 팔아버리고 저 캐나다에 있는 석유 회사 직공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아마 그 소리를 듣고 배가 아파서 오래 못살았을 것입니다. 그 땅은 버린 땅이라고 했지만 그 밑에 기름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다 숨은 보화들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숨은 소질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용지물을 절대로 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소질과 심의와 직업이 일치되도록 만들어주십시오. 이 세상은 밥만 먹고 인생을 살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직장을 삶고 사는 것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소질에 맞지 않고 소질도 없는데 밥 벌어먹기 위해서 억지로 직장생활을 하면 괴롭고 고통스럽고 말로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마땅히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린아이의 미래를 소질로 키워주고 그리고 그곳에 취미를 가지고서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서 인생을 보람차고 가치 있게 살도록 해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이가 없는 집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막내가 고등하고 일학년이니까 야 오늘 어린이 날이지. 아버지가 오늘 한턱내겠다. 하니까 아버지 저는 어린이가 아니에요. 그럼 너는 뭐고. 나는 벌써 청소년인데 왜 날보고 어린아이라고 합니까.

    하하.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저는 아버지로써 철이 들려고 하자마자 어린이는 청소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툴고 무능한 아버지였으나 하나님께서 제게 자비를 베어서 세 아들이 모두다 하나님을 공격하고 강건하면 그들의 삶의 세계를 찾아가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어린이가 없는 가정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인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고 인류의 미래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어린이 주간, 보모의 주간, 이 주간에 가정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고 내 가정에 있는 어린이들이 과연 하나님의 기업으로써 하나님의 상급으로써 장차 내가 자라날 수 있는 전통에 화살처럼 올바르게 가꾸어져 가고 있는가를 오늘 깊이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먹고산다고 너무 바빠서 어린 아이들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금년에도 틀림없이 어린이 주간도 다가오고, 그리고 어버이 주간도 다가옵니다. 오늘 어린이와 어버이 주간을 합친 이 시간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 어버이들은 우리 자식들을 어떻게 기르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생각하고 잘못 기르고 난 다음 나중에 와서 자식 추수 잘못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탄식하는 일이 없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서 우리 자식들을 잘 길러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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