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23일 (금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누가복음]    효과적인 설교 시간과 방법 / 교회 공적 예배에 후보 인사 시키지 말아야               美 대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행정명령, / 일영연수원으로 옮긴 기감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홈     ,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 누가복음(전체리스트)

    눅15:11-24/ 옛 사람과 새 사람 /조용기 목사
    2014-09-08 12:49:05   read : 911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옛 사람과 새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제 5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피부 색깔을 통해서, 종족을 통해서 수다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을 분류하면 간단하게 두 종류의 사람들로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옛 사람과 새 사람인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옛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사는 사람은 모두 새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어떻게 다르며 어떠한 성품을 갖고 있는지를 자세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로 24절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 가운데 둘째 아들의 생애를 통해서 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이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옛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인본주의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을 보면 아버지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을 아버지가 다 준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상스럽고 따뜻한 사랑이 그 아들을 위해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권위를 벗어나서 내 독자적으로, 내 중심으로, 마음대로 살고 싶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게 속한 재산의 분깃을 내게 주소서, 내게 주어서 나도 아버지 권위 하에 살지 않고 독립해서 살겠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를 취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둘째 아들이 취한 태도가 바로 오늘날 아담과 하와가 취한 태도요, 오늘날 옛 사람이 취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체를 예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자상스럽고, 따스한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에덴동산을 저버리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서 하나님 권위를 벗어나서 인본주의로 살기를 원했었습니다.

    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저 버리고 떠난 이후로 오늘날 인류들은 대다수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과 세계를 강탈해 가지고서 인본주의로 삽니다. 인간중심으로 삽니다. 자기 멋대로 삽니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의 특색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들을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나누어 가지고는 곧장 먼 나라로 도망을 쳐버렸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미치지 아니하는, 아버지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하는, 아버지의 꾸짖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그 나라로 도망을 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않은 세계,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세계, 인간 마음대로 사는 세계로 멀리 멀리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님이 없는 불법의 세계요, 세속적인 세계요, 허랑 방탕한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지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까, 인간은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아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떠나 아버지의 손길이 없는 먼 나라에 가니까 자연적으로 이제는 허랑 방탕하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 자기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깨고싶은 시간에 깨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마시고, 그리고 이 세속적으로 나가서 허랑 방탕하고 살아도 아무도 그를 자상스럽게 돌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 자유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끝없는 허랑 방탕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하나님을 저버린 아담과 하와 이후 인생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적인 제재를 벗어나니까,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까, 끝없는 허랑 방탕의 인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여러 가지 잡 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반역한 행동으로 그 잡 종교를 믿던지, 그렇지 않으면 우상을 섬김으로 영적인 방종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인본주의 혹은 무신론에 서서 권력 만능주의, 물질 만능주의, 쾌락 만능주의를 좇아서 끝없는 정신적인 방종의 생활을 해 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간은 어디를 가나 하나님 없는 세계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행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육체적으로는 술 취함과 약물 중독과 방탕과 부도덕과 불륜적인 육체적 방탕이 끝이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말초 신경을 자극해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세계는 어떠한 방탕도 다 허용되고 자기마음과 육체의 욕심대로 다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아버지를 멀리 떠난 이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나쁜 친구들이 있어서 끊임없이 나쁜 친구들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점점 제기불능의 타락의 세계로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그처럼 오늘날 우리의 나쁜 친구는 원수 마귀입니다. 마귀는 수많은 귀신과 더불어서 사람들을 끝없이 부패하게 만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라"고 성경이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귀신들과 함께 사람들 속에 온갖 탐심을 일으키고, 온갖 탐욕을 다 일으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좇아 멸망의 길로 줄 다름 질 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옛 사람이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보면 그 젊은 청년이 이와 같은 방탕 생활을 끝없이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다가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방탕의 생활에는 반드시 흉년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원이 끝없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탕의 종결은 흉년에 처하게되고 나중에 벌거벗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와 인류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이 주신 자산을 끝없이 방탕으로 소모하고 난 다음, 지금인간은 한없는 흉년의 위기 속에 처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는 정의의 흉년이 다가왔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힘있는 자가 정의가 되고, 힘없는 자는 무조건 짓밟히는 이와 같은 세계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국민일보를 창간했습니까? 우리 민족 가운데 국민일보를 창간한 이유는 이 나라에 힘있는 사람이 정의가 되고, 돈 있는 사람이 정의가 되어온 이러한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 국민일보를 창간 한 것입니다.

    힘있는 사람이 불의를 행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질타하고, 파헤치고, 돈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짓밟을 때 그것을 우리는 질타하기 위해서 파수꾼으로서 국민일보를 세운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오늘날 정의의 궁핍한 시대가 다가온 것입니다.

    힘이 난무하는 시대,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5공 비리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4공이나 5공이나 다 한가지로 여러분 그때는 힘이 정의였고, 힘만 가지면 어떠한 일도 행할 수가 있고, 어떠한 정치 권력도, 사회 권력도, 재산도, 힘으로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힘없는 국민들은 무조건 짓밟히고, 입을 함구하고, 그리고 옴짝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 5공 비리의 국회 청문회가 온 국민의 관심하의 보게되었고, 이것이 심문에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비벼가면서 읽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인 것입니다. 정의의 흉년,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체험한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가치와 의미의 흉년이 다가왔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왜 사는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 가는지 모릅니다. 그저 먹고 자고 깨는 동물적인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함의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추합니다. 여러분 오늘 신문을 보고 놀랬지요? 우리 한국 사회의 구석에 얼마나 깊은 방탕의 상처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룩함의 흉년인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사람들은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평화의 흉년이 다가왔으며, 기쁨의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겉으론 웃지 만은 속으론 모두다 눈물을 흘리는 삶이 오늘날 삶인 것입니다.

    사랑의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에 진실한 사랑을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모두다 탐욕으로 꽉 들어 찾고, 어찌 하던지 이기주의로 꽉 들어차서 자기의 욕심만 채울 수 있다면 하나님까지라도 팔아서 자기 유익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세상이니 사랑의 흉년이 다가온 것입니다.

    소망의 흉년이 다가 왔습니다. 우리에게 줄기찬 소망을 누가 줄 수 있나요? 믿음의 흉년이 다가 왔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부모가 자식을 믿을 수 없고, 자식도 부모를 믿을 수 없습니다. 형제나 친구를 믿을 수 없고 이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흉년이 다가왔었습니다.

    더구나 윤리와 도덕적인 흉년이 다가왔었습니다. 전 요사이 정말 겁이 나는 것은, 요사이 길거리에 젊은 청소년 뿐 아니라 부녀자들까지라도 강제로 탈취해 가지고서 창녀로 팔아먹습니다. 길거리에 공연히 걸어가는 사람도 깡패들이 달려들어 가지고서 그냥 머리채를 잡고서 고함을 치니까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아내인줄 알고, 자기 딸 인줄 알고 손을 대지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끌고 가서 창녀촌에 넘기는 이러한 시대, 지금 공권력의 진공 상태에서 우리가 노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의 또 윤리와 도덕의 공백상태가 왔고, 흉년이 다가 왔다는 것을 우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 마음대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 하지만은 하나님을 떠난 세계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생활에서 무서운 흉년이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인류들은 전세계적으로 이 흉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흉년이 들어서 살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있는 돈 다 써버리고, 아무도 자기를 위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한 사람에게 직장을 구하니 그 사람이 이 사람을 고용해서 시골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가장 천한 직업이 돼지 치는 직업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이제 마지막 가는 길, 짐승처럼 낮아진, 돼지 치는 것입니다. 그는 돼지를 치면서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염 열매를 나눠 먹으려고 하다가 돼지에게 물리고 돼지에게 짓밟혔습니다.

    짐승처럼 낮아진 인간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 인류 문화는 하나님을 떠나서 인본주의로 서서, 인간이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데 실상은 돼지 소굴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늘날 우리의 삶 전체가 짐승과 같이 낮아진 그러한 비극적인 삶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정의는 사라지고, 평화는 없어지고, 이제 언제 온 세계가 멸망의 마지막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까지 내려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모습이며, 또한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영광스럽게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정 반대였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곧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왔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인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새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새 사람은 바로 회개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젊은 청년이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야,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영도 마음도 몸도 다 병들어서 죽어 가는데 우리 아버지 집에는 매일 매일 아버지 집에서 머슴으로 고용한 사람도 배불리 먹고 음식이 남는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정말 이제 보니까 우리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고 준비해 놓은 그 세계에,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를 따르고, 아버지를 섬기며 사는 것이 참 행복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는 인본주의를 버리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버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행복한 옛날 시절을 다시 생각하고 돌이키는 회개가 바로 새 사람의 출발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만민에게 아버지께로 돌아오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죄의 용서함이 있고 자유가 있고 축복이 있고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죄를 값없이 심판에서 용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죄, 너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께 책임지어서, 예수님이 이것을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 찢고 피를 흘려 다 청산하시고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오시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죄의 빚은 청산되었었습니다.

    심판은 그 곳에서 다 지불되었었습니다. 사망은 거기에서 철폐되었었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께로 활짝 열려졌으니,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예수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좋은 하나님을 져버리고 우리 인본주의에 서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려고 하다가 피투성이가 된 이 삶을 계속하지 말고 돌아가자는 이것이 바로 새 사람이 된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 없이, 돌이킴이 없이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내 중심에서 살던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던 것을 하나님 뜻대로 살고, 나를 섬기던 것을 하나님을 섬기고, 나를 믿던 것을 하나님을 믿고, 내가 준비하던 것을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은 돼지우리를 떠나서 그는 '새로운 삶으로 돌아가자' 마음도 몸도 병들고 온몸에 돼지 퇴비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헐벗은 그대로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부르셔서 새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는데, 여러분과 제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온전하게 되어서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우리 스스로 온전하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병든 그대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켜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아버지께 가까이 갈 때 아버지는 벌써 그 아들이 오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멀리 바라보고 있다가 '저곳에 아들이 옵니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야위고 병들었는데 아버지의 눈은 재깍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뛰어나갔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

    "아버지여,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으니 나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합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그것은 회개한자의 마땅한 마음이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일으켜서 그 아들을 당장 끌어안았습니다. 돼지 퇴비 냄새가 나고 더럽고 추한 그 아들을 마다하지 않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품에 안은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더러운 것도 묻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그것이 예쁘고 고마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품어 주시고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제 새 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긍휼을 한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외쳤습니다. 종들을 보고 "이 사람들아, 집에 가서 제일 좋은 옷을 가지고 오너라" 이것은 어마어마한 말입니다. 지금 목욕도 안하고 돼지 퇴비 냄새가 가득한데 보통 사람 같으면 "야, 저 창고에 가서 헌 옷 하나 갖다 입혀라"

    그렇게 할 것인데 이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메시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더러워서 영원히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자비와 긍휼로써 우리의 과거의 모든 삶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제일 좋은 옷,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로 산 의의 옷을 갖다 입히라는 것입니다. 전혀 의롭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내 아들은 의롭게 되었으니 의의 옷을 입혀라, 그를 의인으로 칭하라" 그렇게 말합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사람이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품성이 변하여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되어야 의롭게 되고 신선이 되어서 하늘 나라로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딱 잡아떼어 거짓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흠도 없고 점도 없이 품성이 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왜냐면 성경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는데 인간이 스스로 품성이 온전해 진다고 말한다면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몰아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단지 아버지의 자비로, 오직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운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선물로 의롭다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빨리 와서 가락지를 갖다가 손에 끼워라" 아들 된 보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의롭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아들 된 증거로써 성령의 인을 우리의 영혼 속에 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속에는 성령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 속에는 성령이 인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셔서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어 주며, 영적인 세계를 알고 아버지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의식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오직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이 오셔야 여러분과 제가 온전히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신발을 갖다가 신겨라" 맨발 벗고 걸어서 발이 너덜너덜 하게 찢어지고 피투성이 되었었습니다. 그에게 신발을 갖다 신기라 그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 인간의 힘으로 살아오는 동안에 우리의 발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졌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수고와 고생과 괴로움을 당하고 가시밭 엉겅퀴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겨라, 십자가에서 특별히 제조한 신발을 신겨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만든 신발은 무엇입니까? 죄를 용서하는 신발이요, 하나님과 화목해서 성령을 채워주는 신발이요, 우리의 연약과 병을 짊어지신 건강의 신발이요, 모든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는 신발이요,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과 영생을 주는 신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평안의 예비한 신발, 오중 복음과 삼박자의 신발을 신겨라"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신을 신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신을 신고 난 다음 이제 우리는 외로운 고아와 같이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화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 속에 들어왔습니다. 맨 발로 인생을 뛰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세계 속에서 들어온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비한 신발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예비한 것을 누리며 살아야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 저 무리에 가서 돈도 안되고 팔 수도 없는 여위어 비틀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리고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턱걸이로 천당에 올라오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여러분과 저, 새사람 된 사람에게 살찐 송아지를 잡길 원합니다. 살찐 믿음, 풍성한 소망, 풍성한 사랑, 풍성한 의, 풍성한 평강, 풍성한 기쁨 등,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길 원하는 살찐 인생을 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불러서 풍악을 울리며 즐거워하자,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하나님이 새사람 된 우리들께 원하는 것은 우리는 즐거운 삶을 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길 "내가 네게 기쁨을 주노니 나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도 가장 어둡고 캄캄한 로마의 감옥에서 이제 언제 끌려나가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유산이요, 가장 큰 힘은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새사람이 된 우리들에게는 기쁨을 누리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4장 7절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시편 16편 11절에 보면『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었으며,

    시편 30편 11절에는『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가서 술을 먹고 춤을 추고 게임을 해서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니 기쁨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기도 열심히 하시고, 말씀 열심히 보시고, 예배도 드리시고, 성령이 충만하면 거기에 따라서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도저히 비길 수가 없습니다. 이 기쁨은 맑고 밝고 환하고 담백하며 영혼 깊이 가득 찬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쁨을 가지고 있으면 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힘있게 살 수 있는 것은 그 영혼 속에 이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말하길 "먹고 즐기라, 기뻐하라" 우린 이 세상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탕자처럼 옛사람에 속하여 살았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와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을 입었으니 감사하고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낡은 해를 보내면서 우리 속에 혹시 아직 옛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가 살펴보고 이 옛사람의 모습을 활짝 벗어서 가는 해와 함께 던져버리고 다가오는 새해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옛사람 속에 살면서 옛사람의 현실 속에 절망하며 살았었습니다. 죄책과 정죄에 짓눌리고 허무와 무의미에 몸부림치고 죽음의 절망 앞에 몸서리 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사람을 주시고 새 세계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탕자가 돌아온 것처럼 우리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모두 다 새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의 예비한 세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누가복음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