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2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조용기 목사 2014-09-09 10:09:02 read : 1158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사랑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도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복종하고 살았어야만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오히려 배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랑보다도 미움이 자리잡고 있으며 인류의 역사는 항상 서로 미워하고 살생하는 전쟁의 역사가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어떤 종교도 의미가 없습니다. 영국의 북아일랜드는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의 신, 구교간에 죽이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 이기면 무슨 소용 있으며 진들 무엇을 잃어버리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부른다는 같은 기독교의 신, 구교간에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은 벌써 그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역시 레바논에서는 기독교와 회교도간에 싸움은 레바논 전체를 황폐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참 진수는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조차 그 사람을 사랑으로 삼으신 분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욥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셔서 굉장하게 욥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욥은 그의 소유한 아들이 일곱이며 딸이 셋이며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남녀 종이 많았습니다.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그 당시에 이 사람은 굉장한 부자였었습니다. 그는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욥을 두고 이제 하나님과 마귀가 무서운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과 경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탄은 반박하는 장면이 욥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야 천사들 앞에서 욥을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진하고 진실하고 참되고 조건 없는 사랑에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 1장 6절로 8절에 보면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당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나니라"
여기 하나님께서는 사단 앞에서 하나님의 종 욥을 절절히 칭찬하고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께서 천사와 마귀 앞에서 자랑하고 칭찬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의 이 진실한 신앙과 사랑과 경건에 대해서 자랑할 때 사탄은 반박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항상 우리를 참수하기 위해서 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마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은 결코 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반박을 했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 울로 두루 시게)? 하시니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기 사탄이 하는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주를 경외하는 자를 복을 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했는데 여기 사탄이 와서 참수하는 것은 욥을 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순수한 동기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서 나쁜 동기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사랑할 리가 만무하고 오직 조건부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러므로 한번 손을 펴서 욥을 쳐보면 욥은 당장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믿지 아니할 것이라고 사탄은 그와 같이 참수했습니다. 욥을 두고 조건 없는 사랑과 조건부사랑의 대결, 이와 같은 무서운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마귀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그 자체가 탐심이기 때문에 마귀는 사람이 어찌하여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탐심은 언제나 사랑을 가장하지만 그 배후에는 무서운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생활 속에 조건부 인생을 살게 하지 순수한 인생을 살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무조건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경외하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사탄은 그럴 리가 만무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억지소리라고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주고 그의 삶을 창대케하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욥은 하나님을 사랑할 리가 없다. 욥은 반드시 그 마음속에 숨은 잘못된 탐욕의 동기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마귀가 말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어찌할 수 없이 천사들 앞에서 욥의 참된 사랑을 증명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에 보면 이제 두 번째로 제가 말씀해 드린 대로 욥의 극렬한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욥을 처참하게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욥기 1장 13절로 15절에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여러분 마귀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욥이 진실로 어떠한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모든 조건을 다 제해놓는다고 할지라도 욥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마귀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선 사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욥의 재산을 니가 한번 다 빼앗아보아라. 그런다고 해서 욥이 나를 욕하고 나를 떠날 리가 만무하다." 그러자 마자 사탄은 내려와서 욥을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탄은 이방인들의 속에 들어가서 이방인들을 충동해서 욥을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일제히 욥의 재산을 공격해 가지고서 욥의 종들을 죽이고 그리고 재산을 탈취해갑니다.
욥기 1장 16절에 보면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여러분 사탄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의 종들은 하나님의 불이 내려온 줄 알지만 여러분 사탄도 하늘에서 번개와 벼락을 치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공중에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공중권세를 가지고 하늘에서 번갯불을 쳐서 모든 양을 다 살라 죽여버리고 종을 살라 죽여버리고 한사람만 살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또 욥기 1장 17절에 보면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혈과 육에 대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었습니다.
여기에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욥의 재산을 빼앗아간 것은 그 갈대아 사람 자체가 한 것보다도 그 배후에 사탄이 들어가서 그를 충동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우리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수많은 일들이 그 배후에 눈에 안 보이는 마귀가 그 사자들과 더불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우리는 왜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우리보고 그렇게도 간절하게 너희는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부탁했는가,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불행의 그 배후에는 귀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현실, 눈에 나타나는 것만 보지말고 그 배후에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정체를 알고 그 사탄의 정체를 단호하게 대적하고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욥의 시대는 아직까지 십자가 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지 아니하고 사탄이 무장해제를 당치 아니했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무장을 다 해제해 버리고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버려 십자가로 승리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하고 예수 이름 속에 서면 사탄은 어느 곳에나 내어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신앙생활 중에 우리 환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파괴적인 역사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마귀에 대해서 단호하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대적할 때 마귀는 쫓겨가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욥기 1장 18절로 19절에 보면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도 한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자연의 재난도 사탄이 조종할 수가 있습니다. 거친 벌판에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집을 내리치매 집이 무너졌습니다. 거기에서 식사하던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엄숙히 기억해야 됩니다.
도적이 오는 것처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은 좋은 예수님이요 마귀는 나쁜 마귀입니다. 나쁜 마귀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이 좋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품안에 안긴 우리들은 단호한 믿음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우리의 생활에서 환경에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원수 마귀에 대해서 진실로 대결해야 될 것입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불행의 배후에는 원수마귀의 정체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의 정체를 옳게 알고 마귀의 정체를 대결했더라면 수많은 이런 불행에서 우리 개인과 가정과 자녀와 생활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귀에게 이길 수 있도록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주셨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셨으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셨고 성령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단호하게 말씀을 쥐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주장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나가면 원수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마귀는 철저히 욥의 재산을 다 빼앗아가고 욥의 자손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래서 욥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다 빼앗아가므로 이제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욥기 1장 20절로 22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저는 욥의 이 신앙에 감탄합니다. 하나님조차도 욥의 신앙에 감탄하고 욥의 사랑을 크게 칭찬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와 같이 물질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내게 좋은 일이 있으면 할렐루야 감사를 하고 내게 조금만 손해만 있으면 하나님을 배신하고 원망하는 이것은 사탄적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수한 성령의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사탄이 언제나 조건부로 사랑하고 그 조건이 충족하지 않으면 돌아서서 욕하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탄 적인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다가와도 감사하고 좋지 않은 일이 다가와도 감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구원자이기 때문에 순수한 신념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욥을 사랑하고 자랑하므로 이제 제 2라운드 마귀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욥기 2장 1절로 3절에 보면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당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제 아주 당당해지셨습니다. 봐라 욥이 내가 준 모든 축복을 다 빼앗겼어도 그는 순전함을 지켰다. 그는 저래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욥이 나에 대한 신앙은 무조건의 신앙이요 무조건 사랑이지 조건부가 아니다. 그러자 사탄은 또다시 반박하고 나왔습니다.
욥기 2장 4절로 5절에 보면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뀌오니 사람이 그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의 재산만 빼앗아서는 욥이 하나님을 배반 안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허락해서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치게 해서 그가 온 전신에 병들고 고통을 당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한 상황까지 하나님께서는 욥이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제 욥을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욥기 2장 6절로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 몸을 긁고 있더니" 여기에 보십시오. 욥을 쳐서 악창이 나고 병들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이 와서 욥을 치매 욥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을 반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에게 내어주므로 마귀가 우리를 쳐서 우리가 징계를 받아 병들 때도 있지만은 그러나 대다수의 병들은 원수마귀가 와서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사람을 눌러서 병들게 하므로 우리가 마귀를 쫓아내면 마귀가 쫓겨나가자 병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발달된 의학으로서는 마귀가 가져온 병을 치료하지만은 오늘 우리 기도를 통해서는 병을 가져온 그 당사자인 원수마귀를 내어 쫓아버리면 병은 자연적으로 몸이 일어나서 고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욥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든 것은 마귀가 와서 그를 쳐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이제 자식과 모든 재물을 다 잃고 온몸이 병들어 고통 당할 때 마귀는 그 아내에게 들어가서 이제 크나큰 가정에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욥기 2장 9절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극한적인 시험인 것입니다. 이제 사탄이 들어와서 가정적인 분쟁과 파괴까지 가져오는 것입니다.
욥은 이 세상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육체도 병들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자기 아내조차도 자기에게 대적하고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태도가 변했습니까.
욥기 2장 10절에 보면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하나님이 만드신 사람 중에 욥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로서 자랑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극한 상황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욥의 고난을 볼 때 우리 교회 구역장 한 분을 기억합니다. 이 분은 암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수없이 제가 가서 안수를 했습니다.
그는 자궁암으로서 시시각각으로 고통 속에 온몸이 다 비틀고 얼굴은 일그러졌었습니다. 나중에는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나는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안수하고 아무리 위로했지만 병은 차도가 없고 그는 세상을 뜨게 되었었습니다. 그럴 때 내가 물었었습니다.
"구역장 이런 무정한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망스럽죠?"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땀을 흘리고 하다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색을 딱 하더니만 나의 눈을 꿰뚫어 보았었습니다. 그 다음에 "목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합니까.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아무리 무정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로 그 자손들이 당하는 고통이지 어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고통을 원해서 주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인류가 자업자득으로 받는 병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고쳐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어찌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던 안주시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목사님, 내가 이 무정한 고통가운데 죽더라도 나의 책임과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세상을 떴어요. 나는 그 구역장님의 그 신앙고백이 평생에 내 뼛속에 바로 새겨 잊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들은 설교 중에 그만큼 훌륭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짤막한 설교 한마디를 제게 남기고 갔지만은 내 평생에 어려움과 고통이 당할 때 그 구역장이 생각이 나고 내 마음속에 불평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빼앗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욥이 그와 같이 순수한 신앙으로 절대 조건이 없는 신앙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제 셋째로, 여기에 보면 마귀는 욥의 세 친구들을 불러다가 이제 친구들을 통해서 최후의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찾아왔다가 욥의 비참한 환경을 보고 칠일 칠?을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인데 이 사람들은 칠일 후에 입을 열어 말하기를 욥이 고통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란 것입니다.
즉 욥이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죗값으로 욥이 오늘날 이러한 시련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개 우리가 생각한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심판을 받고 채찍을 받고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인 이론이요 또 그것이 거짓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의인도 시련과 환난을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의인이 당하는 시험과 환난은 의인의 마음속에 신앙의 동기가 참되냐 참되지 않냐. 사랑에 대한 시험인 것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진실한가 아닌가를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범죄 하므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이 있는가 하면은 진실한 사랑이냐 조건부 사랑이냐 사랑의 진실성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으로서의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욥을 보고 너는 인과응보로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당한다고 말할 때 욥은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의인이 시련을 당할 수가 있다. 나는 지은 죄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죄를 범치 아니하였다고 자기 양심에 꺼리끼는 한 적이 없다고 격렬하게 주장했었습니다.
왜 이런 시련을 받는지 이유는 자기는 설명할 수 없지만은 종국에 가서는 전금?같이 되어서 나올 것이라고 그는 확신을 한 것입니다. 결국 죄와 벌이 아닌 사랑에 진실성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그는 주장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시험해 보았었습니다.
그 백세에 낳은 아들을 모리야산에 데려가서 제물로 드려라 사랑을 시험해보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참으로 진실한지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사탄이 와서 언제나 이 사람은 조건부로 사랑하지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진실한지 안 한지를 시험해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험을 당할 때 사탄에 올무에 빠지지 말고 진실한 신앙과 사랑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이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물은 질문을 가지고 오늘 우리 하나님 말씀을 종결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디베리아 바닷가에 왔었습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디베리아 바다에 가서 이제 옛 직업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 안개가 가득 할 때 해변 가에서 물었습니다. 얘들아 무엇 먹을 것이 있느냐.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그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두니 고기가 메운 것이 많아서 그 그물이 찢어질 때 요한이 말했습니다. "주님이시다."
베드로는 갑자기 자기 겉옷을 걸쳐 입고 물 속에 뛰어 들어가서 헤엄쳐서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 다 나오니까 예수님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님께서 떡과 고기를 장만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고기와 떡을 나누어주어서 먹게 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사랑이란 말에는 우리 한국에는 한 종류에 말밖에 는 없지만은 헬라어에는 네 가지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에로스라는 것도 우리 한국에는 사랑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남녀간에 육정적인 사랑을 에로스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필레오란 사랑은 친구들간에 사랑하는 친구의 사랑을 필레오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스톨케라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하는 사랑을 스톨케라고 말합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가페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으신 그 앞에서 베드로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말은 네가 나를 아가페사랑을 하느냐하고 물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기 전에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과 함께 체포도 당하고 감옥에도 들어가고 죽는 데까지라도 같이 가겠나이다.
나는 희생적인 사랑, 아가페사랑을 하겠습니다. 하고 자랑을 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힐 때 버리고 도망쳤고 심판 당할 때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는 아가페 사랑을 하겠다는 말만하고 실제로는 조건부 사랑이었고 자기가 불리할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그를 만나서 묻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정말 나를 아가페로 사랑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제가 주님을 사랑한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때는 베드로가 아가페라는 말을 안 쓰고 필레오라는 말을 썼습니다.
"주님이여, 내가 친구로서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 친구의 사랑이란 것은 사태에 여의치 못하면 버릴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의 사랑이 목숨을 바치고 사랑을 하나요. 사태가 좋을 때 사랑하지만은 사태가 여의치 못하면 친구의 사랑은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제 베드로는 정직합니다. 나는 이제 아가페 사랑은 한다고 하고는 못했으니까 이제는 당신을 친구로서 사랑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래 그러면 네 양을 치라." 두 번째 또 주님이 묻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아가페, 희생적으로 무조건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다시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님을 필레오 친구로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면 네 양을 치라."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자세히 바라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 정말 나를 친구로 사랑하느냐."
이 말이 베드로의 마음에 결정적인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에는 희생적인 사랑을 한다고 하고 배반했는데 이제는 친구로 사랑한다고 두 번이나 말했더니만 세 번째는 주님께서 그러면 너가 정말 나를 친구로 사랑하느냐고 묻는데 이것도 배반 할 것 아니겠는가. 주님이 무엇을 알고서 또 묻는 건가 모르겠다.
내가 친구로 사랑한다고 해놓고 난 다음에 이제 친구 사랑도 못하고 배반할 놈이 안되겠는가.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여, 나는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좌우간 시방은 주님을 내가 친구로 사랑한 것은 주께서 아시지만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모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알았다. 너는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 타락한 인간의 사랑이란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이기주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에로스사랑은 말할 수 없이 이기주의고 친구의 사랑도 필레오도 이기주의입니다. 스톨케 부모자식의 사랑도 완전한 사랑은 아닙니다.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면 부모의 사랑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하고 죄를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주님께 나올 때 주님께서 그를 원망하지 않고 과거를 질책하지 않고 받아서 그 몸으로 그를 감싸주고 그 피로 씻어주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이 무한한 아가페의 사랑.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아가페 사랑은 마귀는 흉내를 낼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조건부 사랑 외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가페 사랑으로 온 세상 사람을 사랑했고 이미 온 세상사람을 다 용서해 놓았습니다.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해 놓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분을 용서해 놓았으니 여러분은 용서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베드로처럼 아가페 사랑에 실패할 수 있지만은 그래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아가페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하나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욥은 아가페 사랑을 증명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가페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가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일어나 나를 따르라.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 아가페 사랑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 없습니다.
일어나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갈 때 매일 말씀을 통하여 따라가고 기도를 통하여서 따라가고 예배를 통해서 따라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아가페 사랑을 부어 넣어 주시고 마귀의 조건부 사랑을 박살을 내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따를 때만이 진실한 사랑, 아가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고 비로소 마귀는 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어야 비로소 부부간의 에로스 사랑도 온전하게 되고 친구의 필레오 사랑도 온전하게 되고 부모와 자식간의 스톨케 사랑도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이 없는 모든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요, 마귀적 사랑이요, 육체적 사랑이요, 타락한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아가페, 참사랑, 무조건의 이 사랑,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는 예수를 따라가면서 아가페 사랑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도록 밤낮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마귀는 무조건 사랑인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무조건 사랑한 것도 이해가 안되고 사람이 하나님을 무조건 사랑한다는 것도 결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사탄은 우리에게 조건부 인생을 살도록 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조차도 조건이 없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마귀는 믿고 있지만은 욥은 무조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했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무조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무조건하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우리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라가며 이 아가페 사랑으로 충만, 충만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