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5:16-18/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조용기 목사 2014-09-11 10:19:34 read : 138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강렬하고도 누구나 알기 쉽게 하나님의 뜻을 표시한 성경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우리가 모두 잘 외우고 있는 구절들이 바로 요한3서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너무나 간절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기보다는 하나님의 강력하신 명령이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의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오늘 읽은 이 성경말씀은 분명하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아무도 의심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추상같은 명령으로 이것을 우리 생활 속에 실천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의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항상 기뻐하라.'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기뻐해도 좋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타협함이 없는 명령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기쁨을 추구합니다. 그 이유는 기쁨이 삶의 힘이 되고 행복의 근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욕도 잃어버리게 되고 행복은 구겨진 휴지가 되고 맙니다. 삶의 힘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기쁨을 얻기를 간구하고 또 기쁨을 늘 유지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적인 성공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일시적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의 용기와 힘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큰 기쁨을 얻으려고 하고 명예를 얻어서 인정을 받고 거기서 기쁨을 얻습니다.
지위를 얻어서 그는 기쁨을 얻고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다스리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사람은 인기를 얻을 때 그 인기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자기의 소원이 성취될 때 소원성취 때문에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스포츠나 예술이나 음악을 위해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늘날 매스컴에서 스포츠나 예술이나 음악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기쁨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음식물을 통해 기쁨을 얻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쁨이 오지요. 그러므로 음식을 잘하는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일본은 한 음식점에는 들어가서 음식을 먹으려면 적어도 세 시간이상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음식을 먹으려고 왜 세 시간동안 줄을 서서 기다립니까? 그것은 먹는 기쁨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퇴폐한 기쁨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알코올중독이나 마약 등으로 자기 인생을 파멸에 처하게 하면서 까지라도 일순간 적인 기쁨을 얻으려고 하고 또 많은 젊은이들이 성적인 방종을 통해서 일시적인 육체의 쾌락을 얻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길어온 물과 같습니다. 다 마시고 나면 텅 비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기쁨은 자꾸 가져와서 마시고는 또 텅비어 버리니 또 새로 떠와야 되고 또 새로 길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적인 기쁨은 기뻐한 만큼 그 뒤에 공허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기쁨은 마치 파선을 당하여 바다에 떠 있으면서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바닷물을 마시고 나면 목에 소금 끼가 붙어서 또 물을 더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마셔도 마셔도 만족함이 없어 나중에는 배가 남산처럼 불러져서 배가 터져 죽습니다. 이러므로 조난 당한 사람은 절대로 바닷물을 마셔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세상쾌락은 바닷물을 마시는 조난 당한 사람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셔버리고 나면 텅 비어 버리는 것입니다. 길어온 물 아무리 아껴 마셔도 마시고 나면 끝장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예레미아서 2장 13절에 말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해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쾌락이나 환락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우물입니다.
아무리 지위, 명예, 권세를 얻고 인기와 소원성취를 하고 스포츠나 예술이나 음악을 즐기고 좋은 음식물을 먹기도 하고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성적인 방종을 하고 그래서 얻은 쾌락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다 터진 우물입니다.
이 쾌락은 담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수식간에 새어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 뒤에는 오직 텅 빈 공간, 더 갈급함, 더 처절한 고독만이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지위나 명예나 돈이나 권세까지 다 가졌던 미국의 유명한 헤밍웨이 같은 문학가도 그는 노벨 문학상까지 탔지만 사냥총으로 자살할 때 쓴 유서가 있습니다.
저는 그 유서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전기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져 버리고 텅 빈 전구와 같이 나는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고 무의미하여 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살한다' 그리고는 사냥총으로 자살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이 땅에서 살면서 자기가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벌써 그것은 자기의 손에서 떠나가고 그를 통해서 오는 기쁨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보고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 자체가 기쁨입니다.
시편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영원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 주님 그 자체가 바로 즐거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4편 7절에는 "주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
곡식을 다 거두고 새 포도주가 풍성해서 기뻐하는 농군들보다도 주님이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는 기쁨은 더 크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우리 인간의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2절에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나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터진 우물에 담가놓은 물이 세어나가듯이 빠져나가 버리는 기쁨이 아니라 영원히 솟아오르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3절에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하옴이니다"
이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가 기쁨으로 우리 마음속에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 이 기쁨은 길어온 물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생수의 근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도 바울같은 사람은 로마감옥에 갇혀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는 캄캄하고 어둠침침한 곳에 습기차고 뼛골이 쑤시고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병에 걸리고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희미한 촛불 밑에서 편지할 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선생이 자기 마음속에 기쁨이 없었으면 남보고 어떻게 기뻐하라고 말씀을 했겠습니까? 바울선생이 가진 기쁨은 세상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심으로 하나님이 그 영혼 속에 솟아오르는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께서 우리 중심에 와 계시면 하나님이 기쁨의 샘물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기뻐하며 살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를 얻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스포츠를 통해 기뻐하는 것, 예술을 통해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약이나 술 중독이나 육체적인 향락을 통해서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셔서 끝없는 기쁨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굳게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 마음을 기뻐하도록 결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 되어서 늘 우리가운데서 기뻐해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성경말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과도 우리가 계속해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 더 친해지고 더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화를 중지하면 점점 오해가 쌓이고 점점 멀어지고 그리고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깊은 교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통사람들은 하나님께 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하나님 앞에 못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 덕분에 하나님께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 일생의 죄가 용서함 받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용서받은 의인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고 대화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을 주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이 하나님과 우리가 대화할 때 우리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깊은 평안히 다가오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교통일 뿐만 아니라 기도는 청소하는 기계와 같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청소하는 기계가 있어 집을 깨끗이 청소하면 집이 언제나 잘 정돈되고 맑고 밝고 환하지만 집에 청소를 안 하면 먼지와 티끌이 쌓이고 빨랫감이 늘어지고 집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좋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기도는 청소하는 것과 같아서 여러분의 생애 속의 모든 죄악을 청소해 내고 모든 귀신들을 다 소재해 내 버립니다.
기도하면 회개 안 할 수 없고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언제나 잘 소재 되고 잘 정돈되고 깨끗하게 되어서 언제나 하나님이 기쁘게 오셔서 거할 수 있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데 정비례해서 충만한 것입니다. 이래서 성령이 충만해야 강한 믿음이 생기지..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마음속에서 넘쳐나는 강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의 짜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려고 생각만 하면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에 잡담하지 말고 잡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도할 것이 없는데 무엇으로 기도 하냐고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는 처소로써 광야에 성막을 만들도록 하고 성막에 나와서 제사장들이 주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들은 다 예수 믿고 왕 같은 제상 장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모두다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면서 우리의 성막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막은 들어가기만 하면 제일 먼저 놋제단이 있어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립니다.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먼저 성막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 십자가의 보혈을 감사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죄를 사하시고 마귀와 세속에서 놓아주는 보혈을, 치료하시고 축복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보혈을 능력을 우리는 감사하고 찬송을 하고 그 다음 조금 앞으로 걸어가면 물두멍이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씻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진실하고 충성스럽고 거룩하고 용서와 사랑이 있고 온유와 겸손이 있고 하나님의 믿음의 말씀의 분량을 쫓아 사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우리는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썩어져 가는 옛사람의 구습을 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게 해달라고 우리는 그곳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면 성소의 왼쪽에 일곱 금촛대가 있습니다.
일곱 금촛대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 지혜의 영, 총명의 영, 모략의 영, 재능의 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 하나님의 경외케 하는 일곱 가지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성령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아니하면 일순간이라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늘 같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께 감사하고 예배하고 찬송을 합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보면 거기에 떡상이 있습니다.
진설병 뜨끈뜨끈한 떡을 매일같이 갔다 놓았는데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읽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믿고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감사하고 말씀을 더욱 잘 알아서 말씀을 가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달라고 우리가 간구하고 그 다음 정면을 보면 향단이 있습니다. 향단은 하나님께 향기를 피우는 곳인데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그리고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지으시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그 다음에는 휘장을 제끼고 들어가면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곳에 법궤가 있는데 그곳에는 예수님의 뿌린 피가 새 언약의 증거로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뿌린 피로써 하나님 앞에 새 언약을 맺어 주었는데 이 언약은 우리의 죄가 영원히 용서받았다는 언약이요 우리에게 영원한 의로움을 주는 언약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주는 언약이요 이 언약을 우리를 부활시켜서 천국으로 영원히 데려가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이 법궤 위에 뿌린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바라보고 우리는 영원히 용서받고 영원히 의롭게 되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원한 부활을 얻고 천국을 얻은 것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의 모든 소원을 하나님 앞에 간구 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막형 기도는 여러분 하루에 몇 십분 기도해도 좋습니다.
여러분 짧은 시간에는 10분 이내에 이 성막을 다 돌아가면서 기도할 수 있고 그리고 시간이 있으면 30분 이내에 천천히, 천천히 가면서 기도할 수 있고 또 더 시간이 있으면 천천히, 천천히, 더 깊이 깊이 기도하면서 한시간 이상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한 것처럼 오늘 광야를 지난 우리 영적인 이스라엘은 오늘날 성막의 모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할 줄 모른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막을 지나가면서 기도하는 것은 누구도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막형 기도를 계속할 때 여러분의 신앙에 거대한 힘을 얻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면 우리는 기도하는 것을 쉬어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감사에 인색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은혜를 받고도 잊어버리고 악한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훌륭한 사람만이 은혜를 감사로 갚습니다. 예수님이 한때 사마리아를 지나가다가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아홉 명은 감사하다는 말도 안하고 지나가는데 사마리아인 한 사람 뛰어와서 예수께 소리쳐 감사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열 사람이 문둥병이 나았는데 아홉 사람은 어디 가고 너만 왔느냐?"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었으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탄식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매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죄 짓고 영원히 지옥에 갈 우리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쓰고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그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고 우리 일생의 죄를 청산하여 주신 것, 생각할수록 얼마나 감사합니까?
친구를 위하여 그 목숨을 버리는 자는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원수같이 하나님을 대적했는데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려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매일같이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나깨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을 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를 보십시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만에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집으로 모셨을 때 마리아는 옥합을 비단에 싼 것을 끌어와서 그 옥합을 주님 앞에서 깨뜨려서 그 이름을 머리에 붓고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써 그 발을 닦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시집갈 때 지참물로 반드시 옥합에 나드기름을 가져가야 합니다.
기름을 많이 가져가면 지참 물을 많이 가져왔다고 해서 사랑 받고 기름을 적게 가져가면 구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리아는 부모도 없이 자기가 노력해서 모은 자기가 시집가려고 모아 놓은 이 나드기름을 기름 옥합을 그대로 깨뜨려서 그 기름을 머리에 붓고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일생을 예수님 발 앞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이제는 시집을 갈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일생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겠다.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온 방안에 향기가 가득하고 그 머리는 산발이 되어 기름이 뚝뚝 흐릅니다. 그럴 때 가롯 유다가 꾸짖었습니다. '
이 무슨 낭비인고?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을 것을..' 그 때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를 꾸짖었습니다.
"이 여자를 꾸짖지 말라. 그가 나에게 참으로 좋은 일을 해 주었다. 이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이 전파되리라." 이것은 예수님에게 뜨겁게 생명을 내어 부어서 감사하는 이 마리아에 대해서 우리 주님이 크게 감동하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감사를 원수로 갚는 사람에게는 원수가 그 뒤를 끊임없이 쫓게 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서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 받았을 때 반드시 감사를 해야 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고난 당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우리 영혼의 때를 벗기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편안하고 잘 살기만 하면 세상때가 묻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심한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고 자복 하게 되고 세상 때가 벗겨지고 세상 귀신들이 붙었다가 쫓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억센 시련을 통해서 강한 신자가 됩니다. 여러분 고난을 당하지 않은 신자는 그늘 밑에 자란 풀과 같아서 키만 컸지 노랗게 되어 있어 햇빛이 비추면 말라버립니다. 시련을 당하면 곧장 죽어버립니다.
억센 고난을 통해서 넘어지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일어나서 전진하고 전진해서 연단 받은 믿음은 강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강한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어깨에 걸머지고 끌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할 수가 있고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강한 믿음은 억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교만을 깨뜨리고 겸손케 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난만 당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교만해 집니다. 자기가 잘난 줄 압니다. 그러나 끝없는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에 시달린 그 영혼은 깨어지고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온유하게 되어서 주의 말씀에 절대로 복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이 와야 이해심이 깊고 동정심이 깊습니다. 내가 고난 당한 사람만이 남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고 동정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6.25를 알지 못하고 자라난 세대들은 6.25때 우리가 얼마나 배고프고 쓰라리고 고생했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6.25때 배가 고팠다면 라면 사먹지 왜 배가 고팠냐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배고픔을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배고픔이 무언지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동정심 깊고 이해심 깊고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고난을 당하고 일이 실패했을 때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될 때면 누가 감사 못해요, 일이 안될 때도 감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안 되는 일이 나중에 두고 보면 되는 일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잘 아는 친구 고목사는 백령도에 집회를 약속하고 인천에서 배를 탔는데 사람이 많이 탔다고 경찰이 와서 다른 사람을 버려두고 이 고목사만 자꾸 잡아당겼습니다. 고목사는 오늘 내가 집회를 해야 되니까 기어코 가야된다.
다른 사람을 끄집어내더라도 나는 가야 된다고 하니까 경찰관이 '당신 목사가 먼저 질서를 안 지키며 뭐 이런 게 있냐'고 밀어버리니까 그만 인천 바다에 빠져 버렸습니다. 목사님이 성경책 쥐고 짐 보따리 가지고 바다에 빠져서 퐁당퐁당하는 것을 사람들이 밧줄로 건져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분노하고 '이 경찰관 너 목을 내가 안 자르나 보자' 그러고는 갈 수가 없고 배는 떠나버리고 그는 여관에 들어가서 옷 말린다고 발가벗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경찰관이 뛰어왔습니다.
목사가 노발대발해서 왜 찾냐고 고함을 치니까 '목사님 나보고 감사하다고 하십시오.' '무슨 소리냐?' '그 배가 지금 침몰해서 탄 사람이 다 빠져 죽었습니다.' 고목사가 그날 그 배를 탔으면 다 빠져 죽었을텐데 그는 지금도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실패한 것이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여러분 안되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은 안 되는 것이 뒤에 보면 더 유익 되게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될 때만 감사하지 말고 일이 안 될 때도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구라파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구하여 조그마한 범선을 타고 구사일생으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동부에 도착하여 풍토병과 인디언의 습격으로 많은 생명이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어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제사를 드린 것이 기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 300년 조금 더 된 미국이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가장 크게 복을 준 나라가 된 것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서 나라를 세웠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국법으로 언제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절기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그 감사를 향기 맡으시고 하늘에 있는 것으로 주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구원을 여러분께서 체험하려면 여러분의 삶을 감사로 넘치게 하십시오.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하게 해 놓으면 원수 마귀가 다가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로 풍성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는 주께서 오셔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려면 얼마든지 있지요. 벌레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감사할 수 있습니다. 5천년 전에 태어나지 않고 20세가 마지막에 이 편리할 때 태어나 사는 것 감사하고, 6.25 전에 태어나지 않고 이 한국이 번창할 때 태어난 것도 감사하고
, 내 옷 입고, 밥 먹고, 잘 때 있는 것, 감사하고 그리고 예수 안 믿고 살다가 지옥 가는 사람들 많은데 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도 감사하고 감사할 것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택하여 감사할 것을 늘 생각하고 감사로 제사를 지내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너무나 감사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여 기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시간에 세상 잡담하고 살았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시간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어겼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합니다. 오늘 추수감사 예배동안에 우리 아버지여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옵나이다. 아멘.